레이먼 킴 & 정호영 일본의 부엌에서 위로를 얻다
레이먼 킴 & 정호영 일본의 부엌에서 위로를 얻다
  • 최갑수
  • 승인 2018.03.0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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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오사카. 비행시간도 1시간 30분밖에 되지 않아 아침 일찍 출발해 저녁에 돌아오는 비행기를 이용한다면 알찬 ‘먹방 투어’를 즐길 수 있다. 레이먼 킴과 정호영 셰프도 1박 2일 일정으로 오사카를 찾았다. 오사카에서 그들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먹고 마셨다. 라멘, 오뎅, 야키니쿠, 규카츠를 먹었고 소주, 생맥주, 사케를 마셨다. 충분히 즐거웠다.
 
 “형, 여기 어떨까?” 두 셰프의 오사카 여행은 식당에서 시작해 식당에서 끝났다
내장과 간, 우설로 이루어진 토라보의 호루몬 야키 세트

여행이 뭘까. 거창하게 얘기할 필요 없이, 여행은 먹고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 인생에서 먹고 마시는 일 빼고 나면 뭐가 남을까. 영국의 작가 제프 다이어Jeff Dyer가 그의 책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149쪽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흔이 지나면 온 세상이 오리가 지나간 자리의 물결처럼 되는 거야. 마흔이 지나면 인생은 원래 낭비하기 위해 있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 그래. 마흔 넘은 인생에게 그 본질은 낭비라면, 낭비의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고, 여행의 가장 좋은 방식은 먹고 마시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어느 겨울 레이먼 킴과 정호영, 요즘 가장 뜨는 두 요리사는 오사카로 훌쩍 날아갔다. 먹고 마시기 위해서라는 명확하고 분명한 여행의 방식을 실천하기 위해.
 
가무쿠라의 라멘. 배추가 들어가 맛이 담백하고 시원하다
가무쿠라의 주방 풍경
 
형 우리 뭐 먹을까요?

간사이공항에 내렸을 때 그들은 충분히 허기져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정호영이 레이먼에게 물었다. “형, 우리 뭐 먹을까요?” 레이먼이 대답했다. “라멘 먹어야지. 일본에서의 첫 끼라면 당연히 진한 돈코츠 라멘이어야지.”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은 도톤보리. 도톤보리강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약 500m의 거리로 우리나라의 명동이라고 보면 된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관광객들과 현지인들로 붐빈다. 달리기하는 남자의 글리코맨 간판, 카니도라쿠 간판, 복어 조형물 아래로 북적이는 인파가 지나는 거리의 사진은 한 번쯤 보았을 것인데 그곳이 바로 도톤보리다. 

도톤보리를 찾은 여행자라면 으레 가는 라멘집이 있다. ‘긴류라멘’이다. 용그림이 그려진 간판으로 유명하다. 밥과 김치를 제공하기 때문에 한국 여행자들이 많이 찾는다. “아, 진짜 저기는 제가 요리 공부할 때 자주 갔던 곳이에요. 돈은 없는데 배부르게 먹고 싶을 때면 저길 갔죠.” 호영이 간판을 가리키며 말하자 레이먼이 묻는다. “그럼 옛날 생각해서 가 볼까?” 하지만 호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싫어요. 질렸어요.”

호영이 레이먼을 끌고 간 곳은 그 옆에 있는 ‘가무쿠라’다. 긴류보다 이 집이 한 수 위라고 한다. 벽에는 이 집을 다녀간 유명인들의 사인이 걸려 있다. “이 집 라멘이 좀 독특해요. 일반적인 돈코츠 라멘보다 좀 가벼운 맛이에요.” 호영의 설명이다. 라멘이 나오고 국물을 한 입 맛보니 그의 말대로다. “숙주나물과 배추가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맛이 깔끔하네. 돼지뼈도 잘 고은 거 같아. 느끼하지 않네.” 레이먼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잇푸도나 이치란의 라멘에 비해서는 맛이 훨씬 가벼워. 한국 사람 입맛에는 오히려 이 집 라멘이 맞겠다.”

라멘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고 거리로 나왔다. 이제야 비로소 여행 온 기분이 든다. 도톤보리는 인산인해다. 일본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인과 한국인, 대만과 홍콩, 태국에서 온 여행자들로 북적인다. 호영이 레이먼의 소매를 슬쩍 잡아끈다. “이제 밥 먹으러 가요.” 레이먼이 눈을 크게 뜨고 말한다. “아니 방금 밥 먹었잖아.” “아, 그건 애피타이저고. 제대로 된 점심 먹어야죠.” “뭘 또 먹어. 지금도 배부른데.” “배 안 부른 거 알아요. 따라와요.”
 
겐지의 규카츠 산도
오사카를 대표하는 커피점 마루후쿠 
 
나 이거 점심 메뉴로 해 볼까?

그들이 찾은 곳은 오사카 외곽에 자리한 ‘겐지’ 레스토랑이다. 오너셰프인 모토카와 아츠시 셰프는 TV 프로그램 <쿡가대표>와 <냉장고를 부탁해>에 나와서 한국인들에게 유명해졌다. 지금은 한국인을 위한 특별메뉴도 있고 한국인 셰프도 근무하고 있다.

호영과 레이먼과는 예전부터 알던 사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마자 두 팔을 벌리고 활짝 웃으며 반긴다. “오사카에 여행 왔다가 들렀어요. 얼굴 안 비치고 가면 서운해할 것 같아서요.” 호영이 말하니 겐지 셰프가 “그럼, 서운하지. 잘 왔어” 하며 자리를 마련해 준다. “배고파요. 밥 주세요.” 앉자마자 두 사람이 꺼낸 말. 

이번엔 코스요리다. 찐 전복과 사시미가 차례로 나온다. 사시미는 입에서 살살 녹는다. 다음은 소바. 오리고기가 들어간 따뜻한 소바쯔유에 찍어 먹는다. 도빙무시(생선, 닭고기, 은행, 버섯 등을 넣고 끓여 낸 국물요리)도 입 안을 담백하게 씻어 준다. 하지만 오늘 요리의 하이라이트는 ‘규카츠 산도(규카츠 샌드)’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둘의 입에서 ‘아’ 하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규카츠는 레어에 가까운 미디움 레어. 고기를 감싸 안은 바삭한 토스트와 특제 데미그라스 소스, 그리고 머스터드의 환상적인 조합이다. 호영이 레이먼을 향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형, 나 이거 점심 메뉴로 해 볼까?”

‘마루후쿠’라는 카페에서 잠시 휴식. 도톤보리 블록의 센니치마에에 있다. 1934년 오픈한 곳이다. 일본 카페답게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점심에는 런치세트도 먹을 수 있다. 관광객은 거의 찾지 않는 모양. 현지인들이 대부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간사이의 커피 전문점으로는 고베를 중심으로 성장한 니시무라 커피, 교토의 이노다 커피가 있다. 마루후쿠 커피점은 오사카를 대표한다. 마루후쿠의 커피는 강배전이다. 레이먼이 한 모금 커피를 마시며 말한다. “묵직하면서 강한 맛이 일품이군.” 
 
오뎅바 마리아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두 셰프

인생이 그럭저럭 살 만하다네

커피를 마시고 나오니 어느새 저녁이다. 거리는 시끌벅적하다. 검은 양복을 입은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술집을 기웃거린다. “한 잔 해야지?” 레이먼이 말했고 호영은 “그래야죠” 하며 대답했다.
 
“뭐 먹을까? 따뜻한 오뎅 어때?” “좋죠.” “아는데 있어?” “없어요. 걸어가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들어가요.” “좋지.”

술꾼들에겐 ‘촉’이라는 게 있다. 간판만 보고도 문만 보고도 괜찮은 술집인지 아닌지 ‘감’이 온다. 거리를 걸으며 레이먼과 호영의 촉이 술집을 감각하기 시작. 드디어 걸려든 곳은 난바 지역에 있는 ‘마리아’라는 오뎅바. 71살의 할머니가 혼자 운영하는 굉장히 작은 곳이다. 테이블은 없고 긴 바 형태로 되어 있다. 자리에 앉으면 흰머리 가득한 할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술을 가득 따라 주고 안주를 직접 내준다. 관광객들은 거의 찾지 않는 곳이다. 

할머니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내 준 추천메뉴는 유부주머니. 연근과 당근 등으로 속이 꽉 차 있다. 옆에 앉은 일본 아저씨가 여긴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는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렀어요.” 아저씨는 “난 여기 10년째 단골인데 맛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최고야” 하고 말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짓는다. 천천히 사케를 마신다. “따뜻한 술 한 잔을 기울이다 보면 인생이 그럭저럭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레이먼이 말한다. 호영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마블링이 촘촘히 박힌 토라보의 야키니쿠
쇠고기를 한 번 튀긴 다음 구워 먹는 규카츠 산도
늦은 밤 이자카야에서 맛본 가리비 구이
 
전력질주할 때와 천천히 걸어야 할 때

레이먼 킴, 정호영. 이들은 결코 1차에서 술자리를 접을 사람들은 아니다. 오뎅쯤은 애피타이저. 2차로 찾아간 곳은 야키니쿠집 ‘토라보’, 겐지 셰프가 추천해 준 곳이다. 우설과 안심, 내장으로 이뤄진 모둠으로 시킨다. 달궈진 불판 위에 먼저 우설을 올린다. “소 혀는 뒤쪽에 마블링이 많아 기름지고 부드러워요. 구워 먹기 좋죠.” 레이먼이 고기 전문가답게 설명을 곁들인다. 

우설이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고 호영은 바로 내장을 올린다. 호루몬 야키다. “원래 ‘호루몬’은 ‘버려진 것’이라는 뜻이에요.” 호영이 아는 척을 한다. “일본 패망 이후, 남겨진 조선인들과 새롭게 밀항한 제주 사람들이 내장구이를 팔며 살았다고 하는데 거기에서 시작된 음식이죠.” 손은 고기를 굽느라 바쁘고, 입은 고기를 먹느라 바쁘다. 테이블 위에는 술병이 쌓여 가고 어느새 밤이 깊어 간다. 

고기를 배불리 먹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 작은 술집이 보인다. 예닐곱 명이 겨우 들어갈 것 같은 작은 술집이다. 호영이 레이먼을 보고 말한다. “형, 저기서 한 잔만 더 하고 가자.” “그래, 그게 좋겠지?”

술집은 정감 있다. 젊은 남자가 혼자 주방을 지키고 있다. 들어서자마자 ‘이랏샤이마세’를 외친다. 자리를 잡고 앉아 하이볼과 사케를 주문한다. “일본에 왔으니 야키도리를 먹어야죠. 카루파쵸(카르파쵸)도 시키고, 야키소바 스파게티도 먹죠. 닭간구이도 맛있겠다.” 메뉴판을 읽어 내리는 호영의 눈길이 바쁘다. “참이슬츄하이도 있구나. 나중에 이것도 마셔 보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두 셰프. 어렵게 시간을 내 오사카에 왔다. 먹고 마시러 왔다. 그들은 알고 있다. 인생은 길고 지루한 싸움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으로 질주할 순 없다는 걸. 전력질주 할 때가 있고 천천히 걸어야 할 때가 있고 그늘에 앉아 쉬어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약간의 각오와 약간의 여유 그리고 즐겨 보자는 마음가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 인생을 즐기는 법 말이야.” 레이먼이 사케잔을 집어 들며 말한다. 호영도 고개를 끄덕인다. “인생은 우리 뜻대로 되는 게 아니고 아직 많은 날들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건배하시죠.” 여기는 오사카. 두 남자의 밤이 조용히 깊어 가고 있었다.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일본전문여행사 엔타비 051 466 4602, www.ntab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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