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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차 타고, 지프 타고 족자카르타 천년 역사 여행

  • Editor. 이동미
  • 입력 2018.03.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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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로 떠나기 바로 전날 아궁 화산이 폭발했다. 발리 공항은 폐쇄됐고, 이틀 뒤 출장 일정은 족자카르타로 바뀌었다. 일행 중 몇몇은 발리가 아닌 것에 서운해 했지만,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여행지’에 족자카르타가 있었던 나는 ‘드디어’ 하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기대했던 보로부두르 사원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왔던 프람바난 힌두사원
네덜란드가 지배 당시, 불상의 머리를 잘라 팔아 먹거나 가져가서 얼굴 없는 불상이 많이 남게 되었다 
부처의 일대기가 그려진 부조에는 원래 안료가 칠해져 있었지만 1,000년 넘게 화산재에 묻혀 있다가 모두 사라졌다 
무색계에 해당하는 층에는 실제 사람 크기의 와불이 있다. 스투파 안에 있기도 하고, 사진처럼 스투파가 씌워지지 않은 불상도 있다
 

족자카르타로 가는 길이 발리만큼 쉽지는 않았다. 자카르타에서 비행기를 한 번 더 경유해야 하는데, 폭우 때문에 몇 시간 동안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저녁 7시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밤 11시가 되어서야 움직였고, 호텔에 도착했을 땐 다들 녹초가 되었다. 

족자카르타(Yogyakarta)는 자카르타(Yakarta)와 함께 자바섬 안에 위치해 있다. 자바섬(자와섬이라고도 한다)은 세계에서 13번째로 꼽힐 만큼 큰 섬이라, 자카르타에서 족자카르타까지의 거리만도 400km에 이른다. 비행기로는 한 시간을 가야 하는 거리. 자바섬은 또한 인도네시아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을 만큼 인구 밀도가 높은 섬이다. 수도인 자카르타에 가 본 사람이라면 엄청난 수의 자동차와 오토바이와 사람들의 카오스를 경험해 봤을 것이다. 

족자카르타는 우리나라로 치면 경주 같은 도시다. 역사가 오래됐다. 아직도 왕족이 살고 있으며, 대통령제를 도입한 뒤에도, 족자카르타만큼은 왕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있다. 그래서 족자카르타에서는 지금도 술탄 왕족이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다. 

관광면에서는 이제 막 알려지기 시작했다. 자카르타나 발리보다는 여유롭고 느긋한 구석이 있다. 100개가 넘는 대학이 모여 있어 교육의 도시로도 알아 준다. 무엇보다 족자카르타는 자바인들에게 ‘마음의 고향’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아시아 3대에 꼽히는 불교사원과 유적지가 숨어 있고, 전통 예술이 살아 있는 문화의 도시다. 
 
이슬람 명절을 맞아 더 많이 모여든 보로부두르 사원의 관광객들
스투파의 회랑을 돌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원형의 길을 따라 탑돌이를 하는 관광객들이 많다
보로부두르 사원 입구의 포토 존
 
 
●1,000년 비밀 품은 불교사원
보로부두르 사원 Borobudur
 
족자카르타를 꼭 한 번 가 보고 싶은 여행지로 품었던 것은 보로부두르 사원 때문이었다.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 어느 나라를 여행하던 비행기 안에서 기내지를 보다가 보로부두르의 신비로운 사진을 보게 됐다. 아스라한 새벽 빛에 사원 꼭대기의 불상이 숲을 굽어보고 있는 사진이었는데, 한참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앙코르와트의 바이욘 사원에 갔을 때 느꼈던 마음의 징 소리가 이곳에서도 울릴 것 같았다. 그렇게 기다렸던 보로부두르 사원이기에 당연히 족자카르타에서 가장 기대하는 여행지였다. 
 

유적지 입구를 통과해 10분도 채 걷기 전에 보로부두르 사원의 거대하고 시커먼 층층이 눈앞에 펼쳐졌다. 날이 흐려서 화산 돌로 만들어진 사원은 더 어둡게 보였는데, 곳곳에 컬러풀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층마다 바글바글해서 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마침 이슬람교도의 큰 휴일이 겹쳐서 보통 때보다 사람들이 더 몰렸다고 했다. 

10층 높이의 사원은 상공에서 보면 정방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사원의 한 면 길이는 123m에 이른다. 총 200만개의 화산돌을 탑처럼 쌓아 올려 9층까지 만들었고, 꼭대기에 거대한 스투파(부처가 들어 있는 탑 혹은 종)가 자리해 있다. 

보로부두르 사원은 8세기에서 9세기까지, 10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1,000년 넘게 화산재 더미에 묻혀 있다가 1815년 네덜란드 지배 당시 우연히 발견되었다. 놀라운 점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불가사의한 면들이 많다는 것. 보로부두르 사원이 왜 지어졌는지, 정확하게 언제 지어졌는지, 접착제 없이 어떻게 이 돌들을 계속 쌓아 올렸는지 등 아직도 밝혀내지 못한 이야기들이 수두룩하다.

사원이 가까워지자, 꼭대기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도, 층마다 있는 불상도 더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다. 

“층마다 상징하는 바가 모두 달라요. 1층부터 3층까지는 속세의 욕계, 4층부터 6층까지는 색계, 7층부터 9층까지는 무색계를 상징하죠. 꼭대기 스투파에 오르면 해탈에 이르렀음을 의미하고요. 4층에 걸쳐 있는 회랑의 부조는 이 사원에서 특히 압권이에요. 부처의 탄생부터 일대기가 묘사되어 있죠. 부처의 행적과 가르침 등을 부조로 정교하게 새겨 둔 겁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며 봐도 좋겠지만, 이 부조를 한 줄로 늘어놓으면 4km가 넘는다니, 하루에 다 보기는 애초에 힘든 일이다. 

층을 오르며 자꾸 눈길이 멈춘 곳은 머리가 없는 불상들. 네덜란드인들이 발견 초기에 몰래 머리를 잘라 가거나 팔아 먹은 흔적을 그대로 담고 있는 것이다. 사원의 7층부터는 정방형이 아니라, 원형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스투파 안에 총 72기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고, 스투파가 쓰여 있지 않은 불상도 있다. 숲을 내려다보고 있는 불상은 생각보다 규모가 아담해서 놀랐다. 잡지에 실린 사진에서는 엄청 크게 보였는데, 조금은 속은 기분도 들었다. 게다가 사진을 한 번 찍을라치면 곳곳에 걸리는 사람들의 머리와 얼굴 때문에 사원이 아니라 마치 놀이공원에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결국 사진 찍기를 포기한 나는 그나마 사람이 없는 곳에 자리를 잡고 무심히 아래를 내려다봤다. 휴일을 맞아 관광 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사방이 분주했다. 

투어 프로그램 중에는 동틀 때 올라와서 보는 투어가 있던데, 새벽 사원의 분위기는 많이 다를 것이다. 내가 앙코르와트의 바이욘 사원을 문도 열지 않는 새벽에 올랐던 것처럼. 보다 명상적이고, 고요한 가운데 사원을 둘러보고 싶다면, 선라이즈 투어가 가장 적당할 듯싶다. 
 
마차를 타고 작은 마을들을 둘러보는 안동빌리지 투어
1 카랑안야르 마을에서는 도자기를 만드는 작은 체험을 할 수 있다  2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두부를 만드는 집을 둘러볼 수 있다 
안동빌리지로 가는 길에 만나는 야자수와 논 풍경
 
●마차 타고 작은 마을 구경
안동빌리지 Andong Village
 
기대보다 아쉬웠던 사원의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빠져 나와 마차를 타고 안동빌리지로 향했다. 지역명처럼 들리지만, 안동은 ‘마차’를 의미하는 단어다. 보로부두르 사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바틱 천, 두부, 도자기를 만드는 마을이 자리해 있는데, 이 마을들을 마차를 타고 차례차례 구경하는 투어다.
 
딸랑딸랑 말에 달린 종이 울리고, 또각또각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마차를 타고 달리는 족자의 시골길은 생각보다 운치가 넘쳤다. 길 양옆으로 펼쳐지는 라이스필드(라 불러야 왠지 어울리는)와 야자수 풍경은 한껏 이국적이었고 기분 좋게 얼굴을 스치는 바람도 시원했다. 

바틱 천을 만들고 파는 마을 나랑, 두부를 만들고 튀기는 과정을 볼 수 있는 마을 탄중사리(Tandjung Sari), 물레질을 하며 도자기 체험도 할 수 있는 마을 카랑안야르(Karanganyar)에 차례로 선 마차는 다시 사람들을 태우고 달렸다. 가는 길에 본 마을 사람들의 소박한 집이며, 빨래들, 마당에 모여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사람들의 미소가 친근하고 정겨웠다. 비록 마을들은 아직 별다른 관광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제대로 된 체험이나 쇼핑을 할 수는 없었지만, 늘 타고 다니던 단체버스가 아니라 마차를 타고 둘러본 마을은 족자카르타에서 가장 좋았던 경험 중 하나였다. 
 
프람바난 사원 입구에서 한눈에 보이는 6개의 주요 신전들
가장 중심이 되는 시바 신전에서 내다보이는 다른 신전들의 풍경도 색다르다
비슈누 신전 앞 그늘에 모여 앉아 쉬고 있는 자바 아가씨들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큰 힌두사원
프람바난 Prambanan
 
기대에 못 미쳤던 보로부두르 사원의 여운을 가득 채워 준 것은 프람바난 사원이었다. 보로부두르 사원과 함께 족자카르타에서 꼭 찾아가는 명소 중 하나로, 850년경에 지어진 힌두사원이다. 인도네시아에서는 가장 큰 힌두사원이며, 정교하게 장식된 건축물이 빼어나다. 

입구에 들어서니 무너진 돌무더기 너머로 마치 다른 행성의 창조물처럼 거대하게 솟은 사원들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가장 중요한 6개의 신전을 비롯해, 총 18개의 사원들이 돌무더기 사이에 흩어져 있는데, 원래는 240개의 크고 작은 신전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된 전설에 의하면 건설 당시에는 신전 수가 1,000개에 달했다고.

신전은 모두 돌로 지어졌다. 16세기 화산 폭발로 무너진 뒤 2,000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1918년에 복원이 시작되었고, 현재 18개의 신전이 원래 모습을 되찾은 상태다. 보로부두르 사원에 비하면 복원 속도가 상당히 늦은 편인데, 이는 이슬람교도 수가 절대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힌두사원에 대한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고.  

프람바난 사원이 모여 있는 중앙으로 가면, 3개의 가장 중요한 신전을 마주하게 된다. 힌두교의 3대 신을 모신 곳으로, 북쪽의 브라마 신전과 남쪽 비슈누 신전, 중앙의 시바 신전이 그것이다. 특히 가장 높은 47m 높이의 시바 신전은 힌두 최고 신을 모신 신전답게 동쪽의 시바신을 비롯해 북쪽에는 시바신의 부인인 두르가상, 서쪽에는 아들 가네샤상, 남쪽에는 스승 아가스트야상이 석실 안에 봉인되어 있다. 부인인 두르가상의 몸을 만지면 아름다워지고, 지혜의 신인 가네샤상의 코끼리 코를 만지면 지혜로워진다는 전설 때문에 특정 부위는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까맣고 반들반들하다. 

신전 안을 오르내리는 분주한 걸음 외에도 신전의 외벽도 유심히 볼 필요가 있다.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인 라마야나(Ramayana)의 전설이 치밀한 부조로 새겨져 있고, 계단 위 신전에서 내다보는 다른 신전들의 풍경도 아름답다. 외부 부조 중에는 전 세계적으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의 문양 조각도 존재한다. 

사원의 곳곳에는 무너진 돌무더기들이 많이 보인다. 워낙 정교한 건축물이라 복원하는 자체도 힘들지만, 재정 문제도 더해져 언제쯤 제 모습을 찾을지는 알 수 없다.  
 
글·사진 이동미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인도네시아대사관 www.indonesia.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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