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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보라카이야 미안해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8.03.27 13:40
  • 수정 2018.05.24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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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짝 놀랐습니다. 뉴스에서 보라카이 폐쇄라는 제목이 스치더군요. 여행자들이 놓고 간 쓰레기와 미흡한 정화시설로 인해 섬 전체가 환경 위기에 처했다는군요. 살펴보니 필리핀관광청의 공식 입장은 폐쇄가 아니라 개발 속도를 늦추는 보전대책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이미 다녀오신 분들에게도, 저처럼 여행지 리스트에 올려 둔 사람에게도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보라카이가 얼마나 몸살을 앓았으면 이렇게 격리조치까지 필요해진 걸까요.

비보가 들려왔을 때 한참 필리핀의 마지막 비경이라고 불리는 팔라완의 바다 영상을 들여다보는 중이었습니다. ‘뜨는’ 동시에 그 맑은 바다가 쓰레기 가득한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니, 알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여행기자의 직업적 아이러니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주에 여행작가를 지망하는 어느 대학생이 물어 왔습니다. “정말 나 혼자만 알고 싶은 좋은 곳이 있을 때, 여행기자는 어떻게 하세요?”

어떻게 했을까요? 나만 알고 싶던 광주 양림동에 누군가를 보내야 했을 때, 저는 트래비팀의 김예지 기자를 소환했습니다. ‘아무나 보내고 싶지 않다’면서요. 그녀라면 양림동의 공기에서 제가 맡았던 박하향을 맡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양림동이 제게 얼마나 소중한지 잘 설명하고, 어떤 마음으로 다녀오면 좋을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며칠 후 그녀는 그곳에 머무는 동안 손수 그렸다며, 작은 유화 사진을 보여 주었죠. 

‘오지’와 ‘비경’을 허락하지 않는 시대입니다. 전 세계의 여행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입니다. 후미진 곳까지 리조트가 들어서고, 여행자들이 몰려들겠죠. 이제 ‘어디’로 여행할지보다 ‘어떻게’ 여행할지가 더 중요한 시대에 도착해 있는 셈입니다. ‘아니 온 듯 다녀가소서’라는 오랜 전 말씀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래도록 이 지구를 누리고 싶다면, ‘흔적 없이’ 다니는 수밖에 없습니다. 뒤를 돌아보세요. 무엇인가를 남기셨나요? 그곳이 보라카이가 아니었기를 바랍니다. 

<트래비> 팀장 천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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