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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랑 해랑 기차여행

  • Editor. 김선주
  • 입력 2018.05.09 15:06
  • 수정 2018.05.24 11: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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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랑 <해랑> 기차여행에 올랐다. 우리나라 유일무이의 럭셔리 침대 열차. 둘이어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라는 닮은 점 덕이었을까, 레일도 부부를 아늑하게 안았다. 기차로 움직이고 기차에서 먹고 기차와 함께 잠든 1박2일 해랑 기차여행기다.
 
우리나라 유일의 럭셔리 침대 열차 ‘해랑ⓒ코레일관광개발
침대 열차 내부
 
침대열차에서 샤워하는 호사

복도가 마치 오리엔트 특급열차 같지 않아? 꽤 화려하네, 칸마다 객실 모양이 다른가봐…. 원래 저랬었나 싶을 정도로 아내는 오늘 유독 호기심이 많다. 설레서겠지. 우리나라 유일의 침대열차에 처음 올랐으니 그럴 만도 하다. ‘레일 크루즈’라 불리는 <해랑>이다. 2008년 11월 국내 최초로 ‘호텔식 관광전용열차’로 출발했으니 벌써 10주년이다. 10년 치고는 깔끔하고 정갈한 걸….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그냥 혼잣말인지 모를 재잘거림이 801호 우리 객실 앞에 설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아내의 그 모든 호기심의 종착역은 객실이다. “와! 생각했던 것보다 넓으네, 통유리로 바깥 경치도 다 들어오고, 침대도 충분하네…”. 객실 한 쪽은 커다란 통유리여서 시원스럽고, 벽면은 거울이어서 그런지 실제보다 더 넓어 보인다. 해랑 로고가 박힌 새하얀 침대보가 통유리를 뚫고 들어온 햇살을 받아 더 하얗게 빛난다. 영화에서 봤던 오리엔트 특급열차보다 백배는 좋지 않으냐고 물으려 보니, 아내는 어느새 샤워실에 매료돼 있다. 아담하지만 샤워하는 데는 전혀 비좁지 않다. 기차 안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차라리 감동이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즐기다니! 유럽 야간열차에도 샤워실 딸린 침대칸은 드물다고 짐짓 아는 체를 하니 듣는 둥 마는 둥 헤어드라이기도 있고 화장실도 비데라며 흡족해한다. 뽀송뽀송한 수건과 비품에도 마음을 연다. 어딜 가든 그런 게 여자들을 감동시킨다.

침대에 누워 베개 높이도 맞춰보고 사진도 찍고 언제든 승무원과 통화할 수 있는 전화기도 만지작거리는 등 부산을 떠는가 싶더니, 디럭스룸이 이 정도면 스위트룸은 더 근사하겠는걸, 다른 객실로 호기심을 보낸다. 해랑의 객실은 4가지다. 디럭스룸과 스위트룸은 2인1실 객실인데 호화롭기는 스위트룸이 단연 앞선다. 킹사이즈 침대에 냉장고와 소파도 갖췄다. 주문형 영화감상 모니터도 딸렸다. 패밀리룸은 3인 가족을 위한 객실로 싱글침대가 2층에 하나 더 있다. 4인실인 스탠다드룸은 공간 제약 상 샤워실과 화장실은 객실 밖 공용시설을 사용한다. 해랑 열차는 1호기와 2호기 두 대인데, 모두가 선망하는 스위트룸은 1호기에만 있다. 1호기는 탑승 정원도 54명으로 2호기 72명보다 적다. 스위트룸이면 어떻고 패밀리룸이면 어때, 우리나라에 단 두 대 밖에 없는 거잖아! 아내가 쿨하게 스위트룸에 대한 호기심을 접는다. 400~500명이 탔던 기차를 고작 50~70명이서 독차지한다고 생각해봐, 진짜 호사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맞장구친다.
 
해랑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이벤트 칸
해랑 열차 복도
해랑에서는 음료와 간식이 무료다
 
즐거움이 멈추지 않는 열차

서울역을 출발한 해랑은 중간 정차역에서 나머지 승객들을 모두 태우더니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목적지는 경주다. 객실 스피커로 이벤트칸 ‘포시즌’으로 모이라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오리엔테이션 하려나 보네, 열차 탐험도 할 겸 일찍 나선다. 복도를 따라 열차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누빈다. 총 여덟 량 중 정중앙의 두 량을 카페와 이벤트 공간으로 꾸몄고, 그 앞뒤로 세 량씩 객실을 배치한 구조다. 남자들은 특히 4호칸과 5호칸을 주목한다. 카페 ‘선라이즈’와 이벤트 공간 ‘포시즌’이다. 술과 안주와 음료와 간식과 각종 요깃거리가 끊이지 않을뿐더러 전부 무료다. 채앵채앵 덜컹덜컹 기차의 리드미컬한 소리와 움직임에 몸을 맡기고 낮에는 맥주 탐닉, 밤에는 와인 홀릭이 되는 게 예의다. 여기 진짜 좋다, 1박2일 틈틈이 많은 시간을 이곳에 쏟겠노라고 미리 예고하듯 아내에게 말한다. 

이벤트칸으로 탑승객들이 모이자 여섯 명의 승무원들이 인사한다. 우리나라에 고작 아홉 명 뿐인 해랑 승무원 중 여섯 명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해랑 승무원들은 만능 재주꾼이다. 노래며 가야금 연주며 성악이며 모두 수준급이다. 수 백 명의 KTX 승무원 중에서 뽑히고 해랑 승무원으로 특채됐으니 당연하다. 어쩜 노래를 그렇게 잘하세요! 아내가 한 여성 승무원에게 부러운 듯 건네자 맑은 웃음이 되돌아온다. 승무원이야말로 해랑의 내적 가치를 키우는 요소다. 언제나 반듯한 자세와 맑은 미소로 일인다역을 소화하는 승무원이 없는 해랑은 상상하기도 싫다. 

1박2일 여정을 함께 할 승객들도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면서 거리를 좁힌다. 5살 아들 생일을 기념해 왔다는 가족부터 칠순 효도여행 왔다는 어르신 부부, 인생 최초로 자매끼리 여행 중인 이들까지 다채롭다. 그중에서도 유독 한 중년 부부가 시선을 끈다. 저 아저씨 진짜 상냥하다, 저렇게 좀 해보시지…. 다정스레 아내의 손을 잡고 있는 그 아저씨만큼 할 자신이 없어 벌컥 맥주를 들이키며 딴청을 부린다. 대신 마사지 해줄게, 어깨 마사지기를 걸어주니 웃는다. 
 
경주 불국사
경주 월지 야경
대릉원에서 한복을 차려 입고 사진을 찍는 소녀들

레일크루즈 기항지 경주 

해랑이 기차역에 닿으면 승객들은 여행지에 대한 기대로 퐁퐁거리며 내린다. 마치 바다를 순항하다 기항지 육지에 내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애칭이 ‘레일 크루즈’인가 보다. 해랑 전용 관광버스가 역 바로 앞에 대기하고 있으니 기항지 투어는 수고스럽지 않다. 해랑 승객을 태운 버스는 경주 당일투어에 나선다. 문화유산해설사의 경주 설명은 깊고 넓다. 벚꽃이 터지기 직전의 경주는 봄의 경계에서 따스하다. 불국사로 향하니 몇 해 전 여행 왔을 때 보수 중이었던 석가탑이 온전한 모습으로 반긴다. 제대로 볼 수 있으니 좋네, 카메라에 다보탑과 석가탑을 다 담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인파 속에서 해랑 배지를 단 일행들이 소풍 나온 학생들처럼 한 무리로 다니니 시선을 끈다. 석가탑이 온전해진 대신 이번에는 천마총이 공사 중이다. 덕분에 4월말 공사가 끝날 때까지 아예 대릉원 입장료가 무료란다. 해랑 여행에는 따로 돈 들 일이 없어 어차피 상관없는데 무료라니까 그냥 신난다. 신라 천 년의 역사를 머금은 고분 사이를 거닐다 살짝 아내의 손을 잡는다. 여행을 하면 이렇게 애틋한 감정이 되살아난다. 만개한 목련 꽃 아래 한복을 맞춰 입은 소녀무리가 까르르 웃으며 셀카를 찍는다. 인생의 봄을 기록한다. 저녁 식사는 조금 서두른다. 해랑은 경주역에서 8시30분 동해역으로 출발한다. 그 전에 경주 동궁과 월지 야경도 보고 가기 위해서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인파로 북적인다. 그래도 변함없는 것은, 그 북적임과 소란을 모두 적요 속으로 빨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동궁과 월지가 빚어내는 야경은 환상적으로 아름답다는 점이다. 아직도 동궁과 월지를 ‘안압지’라고 잘못 부르는 이들이 있다며 안타까워하던 문화유산해설사 선생을 떠올리며 해랑으로 되돌아간다. 왠지 집에 가는 느낌이다.
 
청령포 나룻배 
청령포 소나무숲
망상해수욕장
단종의 주거터를 재현한 모습
단종의 능인 장릉

해랑의 밤, 해랑의 낮

잘 잤어? 난 잘 잤는데…. 아내의 아침인사에 고개를 살짝 가로젓는다. 아무리 해랑이지만 잠귀 밝고 예민한 승객은 어쩔 수 없나보다. 경주역을 출발한 해랑은 승객들의 숙면 유도를 위해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 4시간 정도 영주역에 정차했는데, 다시 출발할 때 덜커덩 닥친 위기를 넘지 못하고 깼다. 승무원은 미리 예견했다는 듯 둘째 밤부터는 적응해서 푹 자니까 다음에는 2박3일 여행상품을 이용하라고 농을 던진다. 2박3일이면 전국일주인데 더 재미있겠다, 아내가 덥석 미끼를 문다. 해랑의 매력에 빠져 14번이나 탑승한 일본인 고객이 있다는 답이 온다. 외국인한테도 인기가 있나보군, 왠지 뿌듯하다.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먹은 황태해장국 덕분인지 찌뿌드드했던 몸은 금세 풀린다.
 
그러고 보니 여정 동안 참 잘 먹는다. 첫날 경주 한우구이와 경주 한정식도 모자라 해랑 카페도 번질나게 드나들었으니…. 간밤에 승무원들이 펼친 특별공연이 흥을 한껏 돋워 그랬던 모양이다. 난타공연부터 마술쇼까지 흥겨웠다. 생일이거나 기념일인 승객을 위해 케이크도 준비해 함께 축하하고 함께 나눠 먹었다. 생일을 맞은 시어머니께 보내는 며느리의 편지는 사랑스러웠다. 고부갈등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모를 정도로! 그렇다고는 해도 남들 다 방에 돌아갔는데도 아내와 둘이서 끝까지 음주가무를 즐긴 건 좀 무리였다. 아침 메뉴가 황태해장국인 걸 보면 우리만 그러는 게 아닌 거야, 합리화해보지만 궁색하다. 망상해수욕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파도 일렁이는 찬연한 아침 바다로 성큼성큼 다가간다. 먼저 와 있던 가족의 모습이 아침 햇살에 실루엣으로 일렁인다.  
 

점심은 영월 한우다. 이렇게 잘 먹어도 되나 짐짓 미안함이 든다. 단종의 한과 비애가 서린 곳 아닌가.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등돼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한 단종, 1458년 세조 3년 때 성삼문 등이 왕위 복위를 도모하다 탄로나 결국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시신도 수습하지 못하게 한 것을 영월 선비 엄흥도가 몰래 수습해 장례를 치렀다. 단종의 능인 장릉을 찾아 역사를 되짚고, 유배지였던 청령포로 향하는 여정은 애잔한 길이다. 뒤로는 절벽이고 앞으로 삼면은 물길인 청령포는 고립의 땅이다. 이곳에서 단종은 얼마나 한탄스러웠을지, 청령포 소나무 숲길에서 가늠해본다. 묵직한 울림으로 그렇게 1박2일 해랑 기차여행도 종착역으로 향한다.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코레일관광개발[레일크루즈 해랑]
 
글·사진=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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