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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국경 없는 여행자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8.05.28 13:25
  • 수정 2018.05.28 1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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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가끔 그러지 않나요? 정치라면 신물이 난다면서도 가끔 정치인들을 조롱하는 것으로 스트레스의 출구를 찾는 거죠. 실제로 ‘욕먹어도 싼’ 일이 허다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여행 중에 그랬다가 곤란해진 적이 있었습니다. 인도 소수민족의 마을에서, 어느 정치인의 동선이 자꾸 취재팀의 동선과 겹쳤던 날이죠. 그때마다 “저기 봐요! 그분이 오셨어요!”라고 귓속말을 전하는 가이드의 호들갑이 생경해서 “하하, 저분이 우리를 계속 쫓아다니시네요”라고 말했다가 싸늘한 반응을 경험했습니다. 정말 존경하는 분이었던 거죠. 


이 일을 계기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에게 함부로 정치 혹은 정치인을 소재로 농담을 하지 않게 되었죠. 생각해 보면 역으로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국제 뉴스에 관심이 있는 여행자를 만나서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고 밝히는 순간, 북한 지도자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거림이 시작되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사교적인 제스처로 처음엔 살짝 맞장구를 치다가도 원색적인 말들이 길어지면, 기분이 복잡해졌습니다. 전쟁, 분단, 이산의 역사를 살아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민에게 남북한 사이의 긴장과 북한 지도자의 액션은 결코 농담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요즘 처음으로 북한을 정치의 관점이 아니라 여행의 관점에서 떠올려 봅니다. 몇 주 전 다녀온 타이완 출장에서도 저녁 테이블에 남북 정상간의 만남이 화제로 올라왔고, 우울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가장 신나는 주제는 북한 여행이었죠. 지구상 최후의 ‘오지’가 바로 서울에서 북쪽으로 두어 시간만 달려가면 되는 그곳에 있는 셈이니까요. 이달에 트래비스트들은 ‘나의 첫 북한’ 여행지를 선택해 주었습니다. 등반, 서핑, 술, 셀카 등등 각자의 취향대로 북녘땅을 누비고 싶다고 했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북한발 뉴스는 엎치락뒤치락 예측불허입니다. 하지만 두 나라의 정상이 웃으며 북에서 남으로, 남에서 북으로, 가볍게 넘었던 그 국경을 넘어 보고 싶은 소망이야, 다 같은 여행자 마음일 겁니다. 이번 호의 첫 머리에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유레일 열차 여행을 실었습니다. 언젠가 한반도를 종단하는 레일이 연결되는 날이 오면, 우리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국경을 넘었다’라는 식의 여행기를 쓰게 되겠죠. 기다리고 있습니다. 

<트래비> 팀장 천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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