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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루가노, 마르코의 주장에 대한 두 가지 반론

기차 타고 유럽 여행
Switzerland Lugano

  • Editor. 노중훈
  • 입력 2018.06.18 14:07
  • 수정 2018.06.27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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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가노의 자연 전망대,몬테 산 살바토레
루가노의 자연 전망대, 몬테 산 살바토레

이튿날 아침, 호텔 인근의 작은 카페 아우름(Aurum)에서 더블 에스프레소를 한입에 털어 넣고 스위스 남부에 위치한 도시 루가노(Lugano)를 목표로 길을 나섰다. 이번엔 기차뿐만 아니라 배의 힘도 빌리기로 했다. 풀어 설명하자면 루체른 선착장에서 플뤼엘렌(Fluelen)까지는 유람선으로(약 2시간 45분 소요), 플뤼엘렌에서 루가노까지는 기차로(약 2시간 30분 소요) 이동하는 계획. 그러니까 크루즈 여행과 기차 여행이 결합된 형태다. 증기선을 타고 플뤼엘렌까지 이어진 호수 여행은 고양이의 늘어진 낮잠처럼 평온했다. 배는 바다 같은 호수를 담담하게 흘려보냈고, 갑판 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 사람들은 무더기로 쏟아지는 햇발을 온몸으로 받아냈다. 산발치에 형성된 마을의 가옥들이 장난감 블록 같았다.

아담한 호반의 도시, 루가노
아담한 호반의 도시, 루가노
볕이 잘 드는 잔디밭에서 교감을 나누고 있는 아이와 엄마
볕이 잘 드는 잔디밭에서 교감을 나누고 있는 아이와 엄마
4월 하순 루가노 호숫가에는 다양한 색깔의 튤립이 만개했다
4월 하순 루가노 호숫가에는 다양한 색깔의 튤립이 만개했다

그런데, 배에서 내리자마자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플뤼엘렌과 루가노를 이어 주는 고타드 파노라마 익스프레스(Gotthard Panorama Express) 대신 일반 열차가 배정된 것이다. 기차 안에서 커다란 창문을 통해 파노라마 뷰를 만끽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장탄식이 터졌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기차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이 풀렸다. 국경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바람에 파노라마 열차가 올 수 없었다는 승무원의 설명. 거듭된 사과와 함께 음료, 맥주, 스낵이 무상으로 제공됐다. 환불 절차도 밟게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올해 예순인 시니어 승무원의 유쾌한 손님 응대와 사근사근한 설명, 일행 중 한 명이 휴대폰을 통해 틀어 놓은 80~90년대 노래, 그리고 약간의 취기가 긴밀하게 호응하며 ‘작아진 창문’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렸다. 창밖 풍경의 본질이 창문의 크기와 상관없는 것은 당연하고.

루가노의 느낌을 잘 나타내는 사진 한 장. 급할 것 없고 서두를 필요가 없는 사랑스런 도시다
루가노의 느낌을 잘 나타내는 사진 한 장. 급할 것 없고 서두를 필요가 없는 사랑스런 도시다

‘스위스 속 이탈리아’라는 별칭은 루가노의 기본적 특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지리적으로 이탈리아와 가깝고, 주민들도 이탈리아어를 주로 사용한다. 이탈리아에서 이주한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바 어반(Bar Urban)에서 맥주를 마시다 우연히 만난 마르코도 그런 경우다. 시칠리아 태생으로 어릴 적 스위스로 건너왔다는 그의 말이 배꼽을 뺀다. “루가노요? 뭐 볼 게 있나요? 5분이면 투어 끝! 스위스 음식은 또 얼마나 맛이 없게요. 맥주요? 어휴, 꼭 휘발유 마시는 것 같다니까요.” 마르코의 공고한 편견을 전부 부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두 가지 반론은 제시해야겠다.

첫 번째는 음식. 루가노 방문 당시를 기준으로 약 한 달 전 문을 연 ‘따끈따끈한’ 피자집 스탈리오(Staglio).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4년 전 새로운 도시로 거처를 옮긴 부부가(실제로는 아내 혼자. 남편은 본업이 따로 있다) 열심히 피자를 굽고 있다. 이탈리아 피자의 대명사 마르게리타를 비롯해 납작한 빵인 포카치아에 햄을 곁들인 피자, 가지 토핑 피자, 버펄로 젖 치즈를 올린 피자까지 골고루 맛보았는데 한결같이 맛이 준수했다. 부부가 공들여 꾸민 매장도 맛만큼이나 정갈하고 어여쁘다.

 

프레스코화로 유명한 루가노의 산타마리아 델리 안졸리 성당
프레스코화로 유명한 루가노의 산타마리아 델리 안졸리 성당
사람들을 몬테 산 살바토레 꼭대기로 데려다주는 푸니쿨라
사람들을 몬테 산 살바토레 꼭대기로 데려다주는 푸니쿨라

두 번째는 볼거리. 개인적으로는 루가노에 사람들을 몰아치는, 까무러칠 정도의 관광자원이 없어서 오히려 더 좋았다. 특출한 구경거리가 없으니 마음이 조급해지지 않았고, 걸음을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빨리 걷지 않으니 루가노의 세밀한 표정을 꼼꼼하게 챙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도시가 무미건조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치아니 공원(Parco Ciani)과 루가노 호숫가 산책길에 만발한 온갖 봄꽃이 화려한 자태를 뽐냈다. 특히 아롱다롱하고 울긋불긋한 튤립이 마음 밭에 감겨들었다. 공원에서는 봄부터 여름까지 책과 비치 의자를 무료로 대여해 준다고 한다. 도시의 중심 리포르마 광장(Piazza della Riforma)에는 노천카페와 레스토랑이 몰려 있어 사람들이 시도 때도 없이 미식과 일광욕을 즐겼다. 가이드가 루가노를 두고 왜 ‘햇살 비치는 거실(Sunny Livingroom)’이라 칭했는지 수긍되고도 남았다. 푸니쿨라를 타고 오르는 몬테 산 살라토레(Monte San Salvatore)와 몬테 브레(Monte Bre)는 자연 전망대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쯤 되니 마르코가 말한 ‘5분’은 도시가 작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취재협조: 루체른관광청 www.luzern.com, 루가노관광청 www.luganoregion.com, 이탈리아관광청 www.italia.it, 밀라노관광청 www.comune.milano.it, 토스카나주관광청 www.visittuscany.com / www.toscanapromozione.it, 피렌체관광청 www.firenzeturismo.it, 피렌체컨벤션뷰로 www.destinationflorence.com, 유레일 한국 홍보 사무소 www.eurail.com
 

글·사진 노중훈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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