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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법

기차 타고 유럽 여행
Italy Firenze

  • Editor. 노중훈
  • 입력 2018.06.20 09: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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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 전경을 굽어보기 좋은 장소인 미켈란젤로 광장. 역시 두오모 성당에 가장 많은 눈길이 쏠린다
피렌체 전경을 굽어보기 좋은 장소인 미켈란젤로 광장. 역시 두오모 성당에 가장 많은 눈길이 쏠린다

로맨스나 멜로 영화만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심장은 딱딱하지 않았고, 감성은 메마르지 않았다. 간난 세월이 따뜻한 손과 촉촉한 마음을 거세해 버렸다. 칠정이 말라 버렸다. 피렌체(Firenze)의 두오모 성당Duomo di Firenze(정식 명칭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Santa Maria del Fiore) 쪽으로 발걸음을 놓으며,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한 2001년 작 <냉정과 열정 사이>를 떠올리려 애썼지만 ‘10년’과 ‘재회’라는 키워드 이외에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없었다. 하긴 그 두 가지가 영화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한때 연인이었던 준세이와 아오이는 헤어진 후 각자의 삶에 집중한다. 준세이는 역사의 도시 피렌체에서 명화를 복원하고, 아오이는 패션의 도시 밀라노의 어느 보석상에서 일한다. 아오이의 서른 살 생일에 두오모 꼭대기에서 만나자던 10년 전 약속을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지켜 낸다. 사랑은 돌아오는 것일까. 냉정도 아니고 열정도 아닌 냉담과 방관만이 남은 지금, 성당 내부에 들어가 천장화를 올려다보지도 종탑에 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한 발 떨어져서 흰 대리석과 초록 및 분홍 석판으로 장식된 성당 외부를 눈길로 어루만졌을 뿐이다.


피렌체에는 다정한 연인들을 위한 명소가 몇 곳 더 있다. 아르노강 위에 놓인 베키오 다리(Ponte Vecchio)는 피렌체 출생의 시인 단테가 그의 여인 베아트리체를 만난 장소다. 단테는 <신곡>을 통해 베아트리체를 이상적 여성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한때 수많은 연인들이 이곳에서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자물쇠를 채운 뒤 강물에 던졌다고 한다. 다행히(?) 지금은 이런 부질없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해 질 녘엔 높은 지대에 걸터앉은 미켈란젤로 광장(Piazzale Michelangelo)을 찾는다. 해거름의 응원을 받아 한결 요염해진 피렌체의 붉은 지붕들이 시야 가득 펼쳐진다. 해가 지듯 머리는 연인의 어깨 위로 떨어지고 사랑의 밀어가 어지럽게 흩날린다. 

입구에 다비드와 헤라클레스 동상이 세워져 있는 베키오 궁전

광장 중앙에서는 미켈란젤로 탄생 400주년을 기념해 세워진 다비드상 복제품이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다. 노루 꼬리만큼 짤막한 체류 일정을 한탄하며 부지런히 걸어 다녔다. 출입구 양옆에 다비드와 헤라클레스 동상(모조품이다)을 거느린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메디치 가문을 부러워했던 피티 가문 회심의 역작 피티 궁전(Palazzo Pitti), 피렌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타 크로체 광장(Piazza di Santa Croce) 등과 만나고 헤어지기를 거듭했다.

조명 때문에 노란 빛깔이 도드라진 피렌체 밤 풍경

허기가 밀려왔다. 정서적 허기가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피렌체에서, 아니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네 도시를 잇는 이번 출장길에서 마지막 만찬 장소로 오스테리아 산토 스피리토(Osteria Santo Spirito)를 골랐다. 식당 안팎은 이른 저녁부터 사람들로 넘쳐났다. 간신히 자리를 얻었고, 주저 없이 피렌체식 거대한 티본스테이크인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를 주문했다. 음식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장준우씨의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에 따르면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는 최소 2주 동안 저온에서 숙성시킨 키아니나(토스카나 지역 토착 품종) 티본 부위를 5~6cm 두께로 뼈째 써는데, 그 무게가 1~1.5kg에 육박한다. 잘 구워진 고기는 테이블에 오르기 전 굵은 소금과 토스카나산 올리브유 이외의 어떤 도움도 거부한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1kg짜리 스테이크를 필두로 앤쵸비 샐러드와 두 종류의 파스타가 눈앞에 놓여졌다. 스테이크는 듣던 대로 크고 두꺼웠다. 써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맛은 크게 나무랄 데가 없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질겼다. 그제야 장준우씨가 덧붙인 구절이 떠올랐다. ‘굽기는 두말할 것 없이 레어다. 자칫 미디엄 레어라도 돼 버리면 그것을 더는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라 부를 수 없다.’ 아아, 미디엄 레어가 아니라 레어로 부탁할걸. 기억력 감퇴로 맛의 정점을 놓친 것 같아 못내 찜찜했다. 언젠가 혹시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피렌체를 재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은 끝내 들지 않았다. 레어 버전의 비스테카 알라 피오렌티나를 음미하기 위해 피렌체에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취재협조 루체른관광청 www.luzern.com, 루가노관광청 www.luganoregion.com, 이탈리아관광청 www.italia.it, 밀라노관광청 www.comune.milano.it, 토스카나주관광청 www.visittuscany.com / www.toscanapromozione.it, 피렌체관광청 www.firenzeturismo.it, 피렌체컨벤션뷰로 www.destinationflorence.com, 유레일 한국 홍보 사무소 www.eurail.com


글·사진 노중훈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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