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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od Earth의 나라를 다녀오다

중국여행수기 공모전 대상작

  • Editor. 조남경
  • 입력 2018.07.05 10:06
  • 수정 2018.07.0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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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나무와 판다가 그려진 티셔츠를 팔던 그들을 마음 속 한 켠, 
그리움의 추억으로 남겨 둔 채 나의 중국으로의 여정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베이징 북서쪽에 있는 이화원은 자연과 중국 전통의 풍경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베이징 북서쪽에 있는 이화원은 자연과 중국 전통의 풍경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수교 이전의 중국을 만나다 


1989년 겨울, 죽의 장막이 서서히 걷히던 때에 중국에 가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 처음으로 중한사전을 펴내게 되어 그 기념으로 대학생 중국 연수단이 꾸려지게 되었고 연수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게 되었던 것.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기였고 당시 중국과 수교도 없던 때였으므로 설레는 마음과 함께 약간 두려운 마음으로 베이징에 도착했다. 공항에 가득 찬 삼성, 대우 등 우리 기업체들의 광고들과 기업 로고들이 새겨진 카트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고, 그제야 ‘환잉(欢迎, 환영)’이라는 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겨울이라 그런지 곳곳에서 피어오르는 석탄 연기들과 짙은 안개 속에서 조금씩 중국을 마주보게 되었다. 


차창 밖으로 인민복을 입은 ‘인민’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들의 모습에서 펄벅의 소설 <대지The Good Earth>가 떠올랐다. 중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접하게 해준 소설 <대지>,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중국인을 만났고 중국 역사를 만났으며 중국 대륙에 발을 들여놓기도 전에 이미 그들과 ‘관계’ 맺고 있었다. 가혹한 자연과 운명에 맞서 삶을 개척해 나가는 가난한 농부 왕룽, 그의 헌신적인 아내 오란, 다양한 삶을 사는 그의 아들들, 또 그들의 후손들….


수많은 도전과 인간적 갈등에 대처하는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떠올리는 사이 우리를 태운 버스는 베이징의 도심 가운데로 들어섰다. 소설 속 메뚜기 떼의 습격이 기억 속을 스쳐 갈 무렵 퇴근 시간을 맞은 시내는 자전거들로 넘실대고 있었고 우리는 마침내 숙소에 도착했다. 처음 맛본 베이징 카오야(화덕에서 구워 낸 오리구이)와 백주인지 황주인지 모를 독한 술 한 모금과 중국에 취해 베이징의 첫날이 깊어 가고 있었다. 

베이징 자금성 내의 고궁박물원
베이징 자금성 내의 고궁박물원

 

봐도봐도 끝이 없던 고궁 박물관의 유물들, 겹겹이 둘러싸인 자금성의 황금색 지붕들, 이화원의 꽁꽁 언 호수 위와 끝도 없이 펼쳐지던 만리장성을 거닐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왕조의 흥망성쇠를 생각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베이징대학교에서 그곳 교수님들과 가졌던 간담회였다. 진지한 토론이 오가는 동안 나는 수많은 석학들을 배출해 낸 중국 지성의 요람에 심취해 빨리 캠퍼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만리장성
언제나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만리장성
용경협 케이블카
용경협 케이블카

 

겨울나무와 어우러진, 너무나 아름다워서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호수, 미명호(未名湖)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신문화 운동의 발상지, 얼마나 많은 중국의 젊은이들이 이 호수를 보며 꿈을 키우고 새로운 학문에 대해 논하며 밤을 지새웠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과 나라의 밝은 앞날을 계획하고 기원했을까. 루쉰이 걸었던 그 길을 나도 따라 걷고 있다는 생각에 감개무량했었다. 호수를 품은 안개 사이로 중국 고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펼쳐졌고 나도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을 잠시나마 가져 보았다.


●베이징을 뒤로하고 상하이로


베이징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기차를 타고 상하이로 향했다. 한참을 달린 기차 아래로 굽이치는 흙탕물이 보였다. 너무나도 위압적으로 넘실거리던 누런 흙탕물, 그 상류에는 물살이 너무 빨라 그곳을 오르는 물고기는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황토 고원을 흐르고 흘러온 문명의 젖줄, 황하였다. 함께 있던 친구들은 이 강이 황하일까 양쯔강일까, 왜 황하는 ‘하’이고 양쯔강은 ‘강’일까, 장강은 양쯔강과 같은 말일까, 왜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중국 문명은, 겨울에도 얼지 않아 사시사철 배의 운항이 가능하고 비교적 비옥한 토지의 양쯔강 유역이 아니라 척박한 황하 유역에서 꽃피웠을까, 라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나누었다. 이렇게 중국에 대한 호기심과 젊은 날의 치기가 서로 어우러져 잠을 이루지 못한 채 기차에서 새벽을 맞았다. 

상하이 중심부에 위치한 불교사찰인정안사
상하이 중심부에 위치한 불교사찰인정안사
상하이의 상징인 동방명주탑전망대의 유리바닥
상하이의 상징인 동방명주탑전망대의 유리바닥

 

며칠 후, 상하이에서의 일정 중 상하이 앞바다로 흘러 들어오는 양쯔강(扬子江, 장강)을 보게 되었다. 6,300여 킬로미터를 인간사의 이런 저런 사연을 품고 굽이굽이 흘러왔을 강을 보니 그 앞에 저절로 숙연해졌다. 강이 면면히 흐르듯 우리의 삶도 대를 이어 흐를 것이고 그렇게 나의 역사도 흘러가리라고 생각했다.

상하이의 유명 건물들이 밀집한 와이탄 거리는 야경이 아름답다
상하이의 유명 건물들이 밀집한 와이탄 거리는 야경이 아름답다

 

상하이에서의 일정을 마치면서 나의 중국 대장정도 끝이 났다. 그 후로도 나는 기차 차창으로 보았던 풍랑 치는 황토색 흙탕물의 강을 꿈에서 몇 번이나 마주했다. 꿈 속의 나는 무엇인가를 찾기도 했고 누군가를 기다리기도 했고 아니면 그저 두려운 마음으로 하염없이 강물을 바라보다가 잠에서 깨곤 했다.

 

●딸이 안내한 30년 후의 중국 


그 후 30년이 흘렀다. 딸아이가 베이징에서 대학을 다니게 되었고 졸업을 축하해 주기 위해 다시 중국에 가게 되었다. 딸아이는 뜻한 바 있어 혼자 중국 유학길에 올랐고 고군분투하며 대학 생활을 성실하게 마쳐 인생의 한 페이지를 마무리하며 또 다른 출발을 향하고 있었다. 너무나 대견스러운 마음에 함께 졸업의 기쁨과 그간의 베이징 생활을 나누고 싶었다. 누가 ‘괄목상대’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지, 30년 만에 다시 베이징을 찾은 나는 눈부시게 발전한 중국의 모습에 그야말로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베이징의 낭만적인 예술거리 다산쯔 예술지구
베이징의 낭만적인 예술거리 다산쯔 예술지구

 

한없이 펼쳐진 고층 빌딩과 도로를 꽉 채운 고급 승용차들. 운동장만 한 식당과 화려한 쇼핑몰들, 거리의 노점상에서도 가상화폐 결제가 되어 현금이 필요 없는 시스템, 이 모든 것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베이징대학교, 칭화(清华, 청화)대학교 그리고 어언대학교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우다오코우(五道口, 오도구)는 수많은 상점과 음식점, 외국인들로 북적거렸고 자전거를 타고 들렀던 재래시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큰 쇼핑몰이 대신하고 있었다. 그동안 딸아이가 생활했던 이곳저곳을 그대로 함께 다녀 보았다. 녹음이 우거진 캠퍼스와 기숙사, 아침마다 식사를 했다는 학교식당, 그곳에서 중국식 아침을 먹고 열심히 공부했을 강의실과 도서관도 둘러보았다. 운동장도 서점도 편의점도, 그리고 중국 친구들도 모두가 나에게는 딸아이를 키워 준 자양분이었고 그래서 모두가 고맙고 모든 것이 정겨웠다. 대학생활을 하는 동안 틈틈이 인턴 생활을 했던 한국 문화원, 한국어를 가르쳤던 학생이 사는 아파트 단지, 또 다른 인턴을 했던 산리툰(三里屯)의 빌딩, 커피 한잔을 마시며 피곤함을 잠시 잊었을 카페, 중국 곳곳을 배우기 위해 바삐 다녔을 박물관과 후통(胡同)의 골목길….

2008년 3월 완공된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2008년 3월 완공된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나의 중국여행은 현재진행형


그 모든 곳에서 딸아이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비록 아이의 대학생활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볼 수 있었고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나에게 베이징은 외국의 어느 낯선 도시가 아니었다. 더 큰 꿈을 꾸고, 그것을 향해 도전하고 나아가게 해 준 베이징이 딸아이에게는 또 다른 고향이 되었을 것이다. 그곳에서 스스로 탐구하고 노력해서 얻은 열매는 자신의 보화로 남을 테니까 말이다. 

베이징의 번화가인 왕푸징에 있는 한 쇼핑센터
베이징의 번화가인 왕푸징에 있는 한 쇼핑센터

 

베이징을 떠나왔지만 나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행은 책이고 스승이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여행은 삶이 주는 선물이라고 한다. 참으로 공감한다. 여행은 늘 도전과 모험이고, 낯선 이들과도 곧 친구가 되는 신비로운 경험이다. 떠난다는 것 자체가 용기이며 개인 역사의 또 다른 시작이다. 여행은 늘 추억을 만들고 일상의 삶을 풍성하게 한다. 눈부신 중국의 경제 발전에 감탄하면서도 문득 30년 전 천안문 광장에서 기념품으로 인민모를 팔던 샤오지에들(小姐, 아가씨), 얼굴을 흘낏 보고는 쓱싹쓱싹 단 몇 번의 가위질로 종이에 사람 얼굴을 그대로 오려 내던 작은 장인들, 멋있는 한자체로 순식간에 도장을 새겨 주던 꺼거(哥哥, 오빠)들이 그리워졌다.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대나무와 판다가 그려진 티셔츠를 팔던 그들을 마음 속 한 켠, 그리움의 추억으로 남겨 둔 채 나의 중국으로의 여정은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중국주서울관광사무소는 중국 여행자들의 생생한 중국여행 이야기를 공유해 중국을 더욱 친밀하고 가깝게 만들기 위해 3월 한 달 동안 ‘제2회 중국여행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약 530편의 수기가 접수되는 등 호응이 컸다. 대상작 ‘The Good Earth의 나라를 다녀오다’를 비롯해 총 18개 응모작이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글 조남경  사진 중국주서울관광사무소, 여행신문  에디터 김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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