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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공중 부양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8.07.10 16:27
  • 수정 2018.09.17 13:3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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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여행 내내 마음이 붕붕 떠 있었다. 
오랜만에 즐기는 호캉스와 처음 가 보는 
여행지에 대한 기대가 
날개 짓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애에 대한 소원을 들어 준다는 월하노인이 모셔진 샤하이청황먀우 사원
연애에 대한 소원을 들어 준다는 월하노인이 모셔진 샤하이청황먀우 사원

 

●단단하고 단정한 도시 


공항에서 수도로 진입하는 길은 어쩔 수 없이 그 나라의 첫인상이다. 그런 면에서 타이완의 첫 인상은 SF적이었다. 타이완 타오위안 국제공항(臺灣桃園國際機場)을 벗어나자마자 시작된 고가는 랜드마크가 꽂혀 있는 도심까지 저공비행처럼 이어졌다. 착륙 지점은 타이완에서 가장 높은 건물, 타이베이 101(Taipei 101) 앞. 이번 호캉스의 무대가 될 그랜드 하얏트 타이베이(Grand Hyatt Taipei)가 바로 옆에 있다. 여기는 시청과 국립국부기념관, 국제컨벤션센터, 쇼핑몰 등이 몰려 있는 신이(Xinyi)구. 이곳은 타이베이의 최고의 상업지구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루산쓰에는 용이 살고 있다
타이베이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롱산쓰에는 용이 살고 있다
샹산에서 내려다본 타이베이 101과 시내 전경

 

최고의 관광명소를 옆에 두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호텔 체크인을 마치고 바로 타이베이 101로 향했다. 509m 높이의 대나무 모양의 빌딩을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는 중력의 저항을 뚫고 89층으로 직행했다.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도시의 풍경들. 그 아찔함이 불안으로 바뀌지 않도록 중심을 잡아 주는 무게추가 이 전망대에서는 또 다른 볼거리다. 태풍이나 지진이 오면 동조질량감쇠기(Tuned Mass Damper)라는 무게추를 바람의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건물의 균형을 잡게 되는데, 그 추의 지름이 5.5m, 무게 660톤이나 된다. 87층과 88층 사이에서 실물을 본 후에, 그 추가 실제로 흔들리는 동영상을 보고 있자니 새삼 과학이 위대하게 느껴진다. 

1 미슐랭 가이드에서 가성비 좋은 식당으로 소개된 야시장 노점 량지루웨이  2 우롱차 테이스팅을 제공하는 왕드촨 티숍
1 미슐랭 가이드에서 가성비 좋은 식당으로 소개된 야시장 노점 량지루웨이 2 우롱차 테이스팅을 제공하는 왕드촨 티숍

 

올라갔으면 내려가야지. 호텔에서 가까운 린쟝지에야시장臨江街夜市(通化夜市)으로 향했다. 타이완 야시장의 명성은 익히 들어온 것이지만, 막상 시장에서 내 시선을 먼저 끈 것은 음식 노점이 아니었다. 매장마다 진열해 놓은 모양새가 너무나도 질서 정연해서 놀라웠다. 정리정돈 위원회 같은 게 있다고 생각될 정도. 이 인상은 이후 타이베이에서 본 모든 상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곳에선 꺼리게 되는 길거리 음식을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이 단정한 인상 때문이었다. 시장 초입에서 냄새를 영업부장으로 부리는 소시지 구이, 역한 냄새와 달리 맛은 괜찮은 처우더우푸(臭豆腐, 취두부), 아이스크림과 땅콩엿 가루, 고수풀의 조합이 예사롭지 않은 아이스크림 크레페를 위 속으로 밀어 넣은 뒤에도 버블티 노점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결국 미슐랭 가이드의 ‘빕 구르망’ 리스트에 선정되었다는 소와 돼지 부속물을 판매하는 노점 량지루웨이(梁記滷味)를 그냥 통과한 것이 두고두고 아쉬울 뿐. 이 먹방은 다음날 용캉지에(永康街)에서도 이어졌다. 딘타이펑(鼎泰豐) 본점은 줄이 길어 입장을 포기했지만, 대신 선택한 식당도 썩 괜찮았고, 이어지는 스무디 하우스(Smoothie House)의 망고 빙수와 유명한 차 전문점인 왕드촨(王德傳)에서의 우롱차 시음으로, 위가 또 한 뼘은 늘어나고 말았다. 

청대부터 정착지가 형성된 보피랴오역사거리
청대부터 정착지가 형성된 보피랴오역사거리

 

●바라고 바라옵건대, 행복


타이베이의 정신적 랜드마크를 뽑으라면 단연 롱산쓰(龍山寺)일 것이다. 1738년에 창건한 절의 지붕 한가운데에는 빨간 여의주가 올라가 있고, 처마 끝에는 여의주를 향해 눈을 이글거리는 용들이 앉아 있는 곳이다. 용의 기운과 여러 신들의 가호를 구하는 사람들은 바쁘게 치성을 드린다. 반달 모양의 빨간 나뭇조각을 던지며 답을 구하거나, 초를 공양하거나, 경전을 읽는 사람들의 경건함이 철없는 관광객들을 압도한다. 여러 전각마다 다른 신과 부처들이 있는데, 누군가 결혼과 연애에 대한 소망을 말하자 번지수가 틀렸다고 했다. 연애의 운을 관장하는 이는 이 절이 아니라 샤하이청황먀우(霞海城隍廟)에 모셔진 월하노인이라고.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여행 동안 그 사당을 2번이나 갔었다. 

역사가 120년이 넘은 라오송국민소학의 옛 교실 모습. 액자 속 인물은 전 총통 장제스다
역사가 120년이 넘은 라오송국민소학의 옛 교실 모습. 액자 속 인물은 전 총통 쑨원이다

 

용산사 바로 옆으로 보피랴오역사거리(剝皮寮歷史街區)가 시작되고 있었다. 타이완의 초기 이주민이 정착한 곳으로, 역사가 청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붉은 벽돌과 목조로 이뤄진 거리 탐방을 시작하기 좋은 장소는 1896년에 세워졌다는 라오송국민소학(老松國民小學)이다. 교정의 일부를 역사박물관으로 개조해 운영 중이다. 옛 생활상을 보여 주는 다양한 민속자료를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교실 내부를 재현한 전시실이 아주 낯설지가 않다. 일제시대 지어진 학교이기 때문. 한국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배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이완에는 반일감정이 거의 없는 이유에 대해 잠시 토론이 진행되기도 했었다. 잘 풀리지 않는 타이완의 정치적, 외교적 난제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착잡하다. 타이완과 수교를 맺고 있는 나라는 이제 19개국밖에 남지 않았다. 


마지막 날 아침엔 주말마다 등산을 즐긴다는 폴(Paul Ou)씨의 안내로 짧은 트레킹에 동참했다. 목적지는 샹산(象山). 코끼리를 닮았다는 산의 모양은 미심쩍지만 타이베이 전경 하나는 확실한 명소다. 30분 정도의 짧은 코스지만 쉽지만은 않은 계단식 트레일이다. ‘아이고’ 소리가 한 번 나올 만한 적당한 지점에 중간 전망대가 있고 정상에는 6개의 육중한 바위가 모여 앉아 있다. 등반 금지 경고가 분명하지만 바위로 올라가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은 말릴 길이 없다.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조망 장소로 이름난 샹산 정상에는 6개의 바위가 있다
조망 장소로 이름난 샹산 정상에는 6개의 바위가 있다

 

●껍질을 벗는 창의 도시 


오늘은 걷는 날로 결심. 베이먼(北門)역에서 내려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으로 따랐다. 고풍스러운 건물과 시장이 나왔다. 디화지에(迪化街)는 타이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래시장이었다. 한약재, 찻잎, 말린 과일류, 우롱차, 말린 숭어 등을 구입하기 좋은 곳이라는 것은 표면적인 사실일 뿐. 한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벽돌 건물들은 전통적으로 앞쪽이 가게, 뒤쪽이 살림집인 구조인데, 그걸 개조한 상점들이 꽤 있다. 가게 안에 가게, 그 안에 전시관, 그 안쪽에 바가 있는 식이다. 그렇게 숨어 있는 스피크이지 바(Speakesay Bar)를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타이완의 탁월한 디자인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에스라이트 스펙트럼 스토어
타이완의 탁월한 디자인 감각을 확인할 수 있는 에스라이트 스펙트럼 스토어

 

골목으로만 들어서도 독특한 카페와 아티스트와 공예작가들이 직접 만든 도자가, 목공예, 액세서리를 판매하는 편집숍들이 재래시장 안에 또 다른 챕터를 펼치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타이베이의 젊고 역동적인 속살을 본 장소는 송산문창원구(松山文創園區)였다. 담배공장을 개조해 다양한 전시와 문화행사가 펼쳐지는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참고 참다가 물욕이 폭발한 것은 창의공원 맞은편의 에스라이트 스펙트럼 스토어(誠品生活松菸店)에서였다. 세련된 기념품, 독창적인 디자인의 의류, 탐이 나는 디자인 소품과 액세서리들이 가득해 결국은 지갑을 탈탈 털리고서야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쓰쓰난춘은 1950년대 중국 본토에서 온 군인과 가족들이 살던 곳으로 현재는 역사문화공간으로 보존 중이다

 

이제 남은 것은 이지카드와 동전 몇 푼뿐. 무작정 지하철을 타고 무작정 지도상 단수이(淡水河)강과 가장 가까운 베이먼역에 내렸다. 확신 없이 떠난 석양 헌팅이었지만 다행히 시야를 가로막고 있던 수문(Pier 5)을 통과하자 안쪽에 따따오청(大稻埕) 부두와 옌핑강변공원(延平河濱公園)이 나왔다. 애견과의 산책이나 자전거 라이딩으로 분주한 주민들 뒤로 푸드 트럭과 DJ의 믹싱 음악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트럼펫 연주를 멈추고 옌핑강변공원의 석양을 감상하는 음악도

 

낙후된 항구였던 곳이 문화공간으로 재생되어 새로운 피가 돌고 있는 중이란다. 활력은 채워졌으나 허기는 남았다. 시먼역 방향으로 걸어가는 중에 유독 사람이 많은 우육면 전문점, 건굉뉴러우멘(健宏牛肉麵)을 발견했다. 눈치껏, 예산껏 옆 테이블을 커닝해 ‘기본’을 주문했다. 맵고 짤 것 같은 모양새와는 달리 담백하고 진한 국물이다. 24시간 운영하는데다가 3,500원 정도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노포를 우연히 발견하는 횡재로 이날의 여행은 해피엔딩. 공중 부양 중인 기분은 여전히 내려올 줄 몰랐다. 

한약재를 들고 있는 디화지에 거리의 조형물
한약재를 들고 있는 디화지에 거리의 조형물

글·사진 천소현 기자  자료사진 그랜드 하얏트 타이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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