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잔스키, 사반투이 축제에 가다
부르잔스키, 사반투이 축제에 가다
  • 정은주
  • 승인 2018.08.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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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바시코르토스탄 Bashkortostan

부르잔스키
Burzyansky

 

북에서 남으로 2,000km 남짓 뻗어난 우랄 산맥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경계다. 최고봉인 북부의 나로드나야산 높이는 1,894m이며 남부로 갈수록 점점 낮아져 준평원 같은 지형이 나타난다. 우랄 산맥 남부에 있는 스타로수브한굴로보(Starosubkhangulovo) 마을은 우파에서 차로 5시간을 달려야 닿는 작고 아담한 산골 마을이다. 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파스텔 톤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천연가스가 풍부한 나라답게 마을 구석구석 노란색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는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선 매년 6월 초 무렵 전통 축제인 사반투이가 열린다. 

촬영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동화 같은 풍경이 인상적이다. 마을을 가로질러 난 노란 파이프관이 눈길을 끈다
촬영 세트장을 연상시키는 동화 같은 풍경이 인상적이다. 마을을 가로질러 난 노란 파이프관이 눈길을 끈다
남우랄 산맥에 자리한 작은 산골마을 스타로수브한굴로보. 파란 대문에 걸린 붉은색 철제 우체통이 도드라져 보인다
남우랄 산맥에 자리한 작은 산골마을 스타로수브한굴로보. 파란 대문에 걸린 붉은색 철제 우체통이 도드라져 보인다

 

●봄의 제전, 사반투이 축제에 가다


사반투이(Sabantuy)는 바시키르, 타타르인 등 볼가강 유역에서 살아온 투르크계 민족의 전통적인 봄 축제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사반투이는 이들 민족에겐 명절 같은 축제로 러시아를 비롯해 전 세계 곳곳에서 열린다. “바시키르어로 ‘사반(Сабан)’ 은 쟁기를, ‘투이(туе)’ 는 결혼을 뜻하죠. 봄이나 축제를 의미하기도 해요.” 축제장에 도착하기 전 통역 가이드인 올가가 이름에 따른 유래를 설명했다. 굳이 직역하자면 쟁기 결혼식쯤 되는 건가? 따사로운 봄날, 파종을 마친 이들이 모여 그간의 수고로움을 나누며 즐기는 모습이 우리네 농촌과 다르지 않다. 

사반투이에서 가장 신기했던 경기는 나무 오르기. 맨발과 맨손으로 나무에 올라 원하는 상품을 따면 된다
사반투이에서 가장 신기했던 경기는 나무 오르기. 맨발과 맨손으로 나무에 올라 원하는 상품을 따면 된다

 

너른 벌판에 펼쳐진 축제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말을 탄 기수들이 러시아와 바시코르코스탄, 부르잔스키 지역의 깃발을 들고 입장하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뒤이어 마을과 학교, 공공기관과 직업별로 나눠진 행렬이 한참 동안 이어졌다. 주무대에서 민속 춤 공연과 전통 악기인 쿠라이 합주로 흥을 돋우는 사이 먹을거리 코너와 이동식 놀이터는 이미 문전성시를 이뤘다. 세계 어디를 가나 역시 먹는 것이 가장 인기다. 생김이 비슷해서 그럴까. 눈이 마주치는 이들마다 수줍은 미소를 건네 왔다. 종종 외국인들이 축제를 찾아오기도 하지만 한국인은 우리가 처음이란다. 낯설어 하면서도 환대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씨름과 비슷해 보이는 케레시. 한 번에 들어 메치는 실력들이 대단하다
씨름과 비슷해 보이는 케레시. 한 번에 들어 메치는 실력들이 대단하다
민속 춤을 선보이는 소년, 소녀들
민속 춤을 선보이는 소년, 소녀들

 

사반투이는 전통 스포츠 경기가 주를 이룬다. 유목민의 후예답게 승마 경주가 빠지지 않는다. 출발 신호와 동시에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바람을 가르며 초원을 달려 나가는 모습이 자유롭게 살아온 이들의 삶을 보여 주는 듯했다. 승마에 이어서 활쏘기 대회, 나무 오르기, 팔씨름, 외나무 위 자루싸움 등 재미난 경기들이 펼쳐졌다.

가장 신기했던 건 곧게 다듬어진 나무 기둥에 올라 원하는 상품을 따오는 나무 오르기였다. 맨발, 맨손으로 오르는데 기둥이 여간 높은 게 아니다. 웃통을 훌렁 벗어 던지고 도전해 보지만 중도에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대신 성공하면 그야말로 영웅 대접이다. 우리의 씨름과 비슷한 케레시(Kuresh)도 흥미진진하다. 샅바를 쥐고 힘을 겨루다 상대의 등이 땅에 닿으면 점수를 얻는다. 승부에는 양보가 없다. 시합에 나선 이들의 표정이 국가대표 못지않게 결연해 보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합장 한 켠에서는 양 한 마리(승자에게 주는 전통적인 상)가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치열한 승부를 보인 승마 경기. 유목민의 후예답게 말 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치열한 승부를 보인 승마 경기. 유목민의 후예답게 말 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유르타에서 즐기는 유목민들의 음식


전통가옥인 유르타(ю́рта)가 줄지어 선 풍경은 이국적이다 못해 신기했다. 몽골의 게르와 비슷하지만 이들은 침상 대신 바닥에 양탄자를 깔고 지낸다. 식사를 할 때도 가운데 음식을 차려 놓고 모두가 둘러앉아 먹는다. 점심 만찬에는 빵과 고기, 수프, 발효주, 꿀 등 바시키르 전통 음식이 가득했다. 삶은 양고기나 수프에 섞어 먹는 시큼한 쿠루트(Курут) 등 모두 처음 맛보는 음식이었지만 몇몇을 빼곤 대부분 입에 잘 맞았다. 전통 과자인 착착(Chak-Chak)과 손님 대접에 빠지지 않는다는 카지(Qazi, 말고기로 만든 소시지와 순대)도 별미였다.

흥겨운 자리에 술이 빠질 수가 있나. 말이나 양젖을 발효시켜 만드는 쿠미스(Kumys)는 우리의 막걸리와 비슷한 맛이다. 쿠미스에는 유목 생활의 지혜가 녹아 있다.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려다 미각을 강타하는 새콤한 기운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음식과 술을 나누며 함께 웃고 즐기다 보니 바시키르가 한결 가깝게 느껴졌다.

이 지역 유목민들의 전통 가옥인 유르파. 침상이 없고 양탄자를 깔고 지낸다. 식사 때도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다
이 지역 유목민들의 전통 가옥인 유르파. 침상이 없고 양탄자를 깔고 지낸다. 식사 때도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다

 

돌아오는 길에, 도로를 살짝 빠져나온 차가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한적한 길가에 내린 우리는 느릿한 걸음으로 자작나무 사이를 걸었다. 언덕 아래 푸른 숲을 휘감아 돌아가는 강줄기가 보였다. 순간 강원도인가? 하는 착각이 일었다. 굽이쳐 흐르는 벨라야강 위로 영월 서강의 풍경이 겹쳐 보였다. 이런 곳에 한반도 지형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왠지 우랄 산맥이 품은 비밀을 살짝 엿본 기분이었다. 

영월 서강 청령포를 빼닮은 우랄 산맥의 숨은 비경
영월 서강 청령포를 빼닮은 우랄 산맥의 숨은 비경

 

▶‘바시키리야 허니’를 아시나요


바시키르의 특산품인 벌꿀은 세계적인 품질을 자랑한다. 특히 부르잔스키는 토종인 ‘부르잔 꿀벌(Burzyan Bee)’을 보호하기 위한 구역을 따로 지정할 정도로 자부심이 높다. 우연찮게 이곳 양봉 농가를 방문하게 됐다. 들판에 늘어선 네모난 박스들이 모두 벌통이란다. 안면이 망사로 된 헐렁한 작업복을 입고 벌통 사이로 들어섰다. 붕붕거리는 날개짓 소리가 어찌나 위협적인지. 나도 모르게 몸이 ‘벌벌’ 떨렸다. 남우랄 지역은 시베리아부터 유럽까지 분포하는 다양한 식물군이 자라고 있어 꿀도 남다르다고 한다. 특히 비타민과 아미노산, 천연 효소가 풍부한 피나무 꿀을 최고로 친다. 잘 흘러내리지 않고 잼처럼 진득한 것이 특징. 빵에 발라 먹어도 좋고 그냥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꿀 한 숟가락 입에 넣었다. 달달한 인생이다. 

 

글·사진 정은주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바시코르토스탄 관광청 bashkiria.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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