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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모래에 씻긴 시간, 전남 신안군 신도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8.09.03 16:02
  • 수정 2018.09.03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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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의자를 펼치고 앉았다. 눈앞에 신도의 새하얀 해수욕장이 팝업북처럼 펼쳐졌다. 
그 어떤 책보다 흥미진진했다. 책갈피를 꽂아 둔 장면들이 있다.

800여 미터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신도해수욕장
800여 미터에 이르는 아름다운 해변으로 유명한 신도해수욕장
섬 주민들의 인심을 만났던 마을 산책
섬 주민들의 인심을 만났던 마을 산책

 

●800m의 해변 독점하기 


유달산이 멀어지고 있었다. 목포대교 밑을 통과한 차도선이 바다로 몸을 밀어 나아갔다. 목적지인 전남 신안군 신도를 가기 위해서는 일단 하의도 웅곡선착장까지 가야 했는데, 2시간 20분의 긴 뱃길이었다. 아침식사로 각자 준비한 김밥과 빵을 나눠 먹었다. 그렇게 덜어 낸 짐의 몇 배나 되는 식료품을 하의도 선착장 뒤 농협마트에서 구입했다. 이왕이면 지역에서 소비하기로 작정했다. 문제는 시간. 낙도보조선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허겁지겁 꼭 필요한 것만 샀지만, 어쨌든 섬 캠핑이라 식수도, 얼음도 부족하지 않게 확보해야 했다. 내린 선착장에서 배를 갈아타고 3km 정도 떨어진 신도까지는 1시간 10분이 걸린다. 섶나무(땔감나무)가 많아서 섶 신薪자를 쓰는 신도로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 아는 바의 전부였다.

   
에너지 비축을 위해 두 다리 쭉 펴고 누웠지만 자꾸 바깥으로 시선이 갔다. 하의도를 출발해 상태도, 장병도, 개도 등 인근의 여러 섬을 경유하는 낙도보조선이었기에 꽤 볼거리가 있었다. 네모난 구조물이 떠 있는 곳이 전복 양식장이고 장대가 꽂힌 곳은 전복 먹이용으로 키우는 미역과 다시마 양식장이다. 마침 전복의 식사시간인지 포클레인으로 다시마를 뿌리는 배들이 꽤 여럿 있었다. 이 넓은 바다가 모두 밭이고 농장이다.  

신도해수욕장 해변 끝으로 항도가 보인다.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다
신도해수욕장 해변 끝으로 항도가 보인다.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다

 

신도에서는 해수욕장 모래사장 위에 텐트를 칠 예정이었다. 짐을 실어 줄 차량도, 사람도 없었다. 섬의 허리를 따라 내려오는 일주도로는 해수욕장까지 약 2km에 불과하지만 배낭을 메고 양손에 공동부식을 나르자니 발이 천근만근이다. 축축 쳐져 일행에서 멀어지는 중인데, 어디선가 경적 소리가 들렸다. “짐만 올려!” 이보다 더 반가운 소리가 또 있을까. 마을 이장님의 트럭은 앞서 걷고 있는 일행들의 배낭을 모조리 걷어서 신도해수욕장 입구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짐을 모두 내리자 한마디만 남기고 휑하니 가 버리신다. “나갈 때도 전화 해!” 도시에선 천연기념물이 된 ‘인정’이라는 것을 보았다. 

신도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입구
신도해수욕장으로 내려가는 입구

 

솔숲 데크가 모두를 수용할 만큼 넉넉지 않아서 공평하게 모래사장에 일렬로 설영을 했다. 물이 밀려와도 안전하도록 마른 모래 안쪽으로 사이트를 잡아야 한다. 이장님께서 알려 주신 밸브를 여니 야외 개수대에서 물이 콸콸 쏟아졌다. 아직 시즌이 아니라 화장실과 샤워장은 청결치 않았지만,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신도해수욕장은 한국의 아름다운 해수욕장 15선에도 들었을 만큼 아름다운 해변이라 피서철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성수기에는 약간의 사용료도 받는다. 청소와 관리에는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품이 들어가므로.   


초승달 같은 해수욕장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800m 길이의 프라이빗 비치라니. 이런 사치가 있나. 둥글게 만입한 신도해수욕장의 풍경은 밋밋하지 않다. 왼쪽 끝으로는 물이 빠지면 신도와 연결되는 작은 섬 항도가 있고 오른쪽 끄트머리에는 손톱만 한 하얀 등대가 서 있다. 수평선에 걸려 있는 것은 동소우이도. 언젠가 가 봐야 할 섬의 일부분이었다.  


그늘을 찾아 옹기종이 모여 않으니 더위가 가시긴 했지만, 바다의 유혹이 출렁이고 있었다. 사실 수영이 뭐가 어려울까, 입고 벗고 씻고 말리고가 어려운 과정일 뿐. 그래도 귀차니즘을 극복하고 입수하니, 그리 개운하고 좋을 수가 없다. 

잘 익은 산딸기가 산책길의 간식이었다
잘 익은 산딸기가 산책길의 간식이었다

 

●팝업북처럼 펼쳐진 바다 


더위가 한풀 꺾인 시간에 마을 산책에 나섰다. 인구가 점점 줄고 하나 있던 초등학교도 2000년에 폐교하여 지금은 30가구도 넘지 않는다. 방문객의 예의로 만나는 주민들에게는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 망 가득 건조되고 있는 무안 양파에게도 아는 척. 실패한 것은 밀당의 고수 동네 강아지의 관심을 얻는 일뿐이었다. 그런저런 인기척을 듣고 바닷가 맨 앞줄 집에는 할머니가 나와 계셨다. 달리 대접할 것이 없다면서 믹스커피를 권하셨다. 육지에 정착한 아들 딸 이야기 끝에 냉장고에서 꽝꽝 언 생선과 게를 꺼내 건네셨다. 극구 사양해도, 할머니는 손을 거두지 않으셨다. 사람 귀한 섬이라 이리 귀한 대접을 다 받아 본다. 드리지는 못하고, 받기만 하니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뿐.  


저녁이 되니 모래구멍마다 게들이 나와 활개를 친다. 행여 밟을까 걱정인데, 녀석들이 보란 듯이 잽싸다. 일찍 저녁 식사를 시작한 만큼 잠자리에도 일찍 들었다. 긴 하루를 누이는 밤. 옆 텐트의 코 고는 소리가 잠잠해지자 나지막한 파도 소리만 남았다.  


덩달아 기상도 빨라졌다. 아직 아무도 깨지 않은 아침. 주섬주섬 의자와 코펠을 챙겨 바다에 바짝 자리를 잡았다. 커피 물이 끓는 동안 새벽의 섬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재빨리 원두를 갈아 드립커피 한 잔을 내렸다. 가져온 책이 한 권 있었지만 눈앞에 팝업북처럼 펼쳐진 바다가 훨씬 흥미진진했다. 읽을 거리, 볼 거리, 들을 거리가 넘쳤다. 


아침 배는 그냥 보내고 점심 배를 타기로 했다. 여유가 생긴 김에 신도해수욕장 끝자락에 자리한 민박집 박동일 사장님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잠시 들렀다. 사납게 짖어 대던 개는 어르신 앞에서는 귀염둥이로 변하는 반전의 명수다. 정성을 들여 가꾼 마당 정원에서 노란 선인장 꽃을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는데, 사장님이 ‘바로 그 꽃으로 담궜다’며 귀한 술을 한 잔 따라 주셨다. 신도가 좋아 십수년 전부터 틈날 때마다 손수 집을 지었다. 은퇴 후에는 아예 혼자 들어와 살면서 민박도 운영한다. 피서철에는 라면이나 시원한 맥주를 파는 작은 매점도 운영해 볼 계획이시다. 돌아오는 길에 콧노래가 흥얼거려졌다. 노란 술을 마시니 기분도 노랗다. 


지난밤의 흔적을 정리하고, 텐트 곳곳에 스며든 모래를 정리했다. 쓰레기는 분류해서 태울 것들은 태우고, 우이도까지 싣고 나가야 것들을 따로 챙겼다. 약속대로 이장님의 트럭이 도착했고, 이제 떠나는 일만 남았다. 다시 한 번 섬의 모든 것에 인사하는 시간. 다시 해안 일주도로를 넘으며 신도해수욕장에 손을 흔들었다. 점심은 하의도에서 먹었다. 선착장 뒤 정자까지 치킨과 맥주는 정확하게 배달되었다. 낚시 마니아들은 선착장 옆에서도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의 머쓱한 손을 잡아끌었다. 이제 집으로 가자고. 목포항으로 돌아가는 길에 신항에 서 있는 세월호를 보았다. 그 배가 보이지 않게 멀어지고 나서야 누군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만 가자고. 집으로.  

신도해수욕장의 석양. 멀리 동소우이도가 보인다
신도해수욕장의 석양. 멀리 동소우이도가 보인다

 

찾아가기
목포항에서 하의도 웅곡항까지는 차도선(2시간 18분)과 쾌속선(1시간 12분)이 운항한다. 하의도에서 신도까지는 섬사랑15호(하의도 웅곡-상태-장병-옥도-문병-개도-능산-대야-신도)가 하루 2회 운항하는데 타고 내리는 사람이 있어야 기항하고 없을 때는 지나쳐 간다.  
문의: 이성훈 선장  010 5564 1363(운항 시간 확인 필수) 

숙소
마을에 민박이라고 쓰인 집이 여럿 있지만 해수욕장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박동일 선생의 집이다. 숙박만 가능하고 식사는 각자 준비.
전화: 061 261 4415, 010 4722 4415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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