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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바닷마을 이야기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8.09.05 16:44
  • 수정 2018.09.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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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람한 대나무가 빽빽히 숲을 이룬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길
우람한 대나무가 빽빽히 숲을 이룬 울산 태화강 십리대숲길

그런 순간이 있다. 온갖 소음이 귓속에 왕왕 울리다가도 음소거를 누른 듯 
고요해지는 순간. 정자항 방파제 끄트머리에서, 태화강 대숲길 한 복판에서 그랬다. 
울산을 여행한다는 것은 조용한 해안마을을 산책하는 것과 같다. 

한가로운 정자항의 풍경
한가로운 정자항의 풍경

 

●만선의 꿈 가득한 정자항


어깨 너머로 바다가 넘실거리더니 정자항이었다. 울산 시내에서 약 20km, 항구마을은 대도시 울산을 잊게 할 만큼 수수하다. 정자항을 팔 벌려 안고 있는 듯 포물선을 그린 두 개의 방파제까지 한 눈에 폭 들어오는 크기다. 고기잡이배는 방파제 안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빼곡히 정박해 있고, 그물과 통발은 육지에 내어놓고 말린다. 길을 따라 걸으면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콧등 안을 찌르는 듯 진해졌다가 또 멀어지곤 한다. 어련, 이런 게 항구의 정취인가 싶어 싫은 줄 모르겠다. 

정자항
정자항

육지 쪽으로는 대게집들이 또 다른 방파제인양 줄지어 붙어 있다. 횟집을 찾는 것보다 대게집이 훨씬 많을 정도니 다른 항구의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다. 울산에서 북쪽, 포항과 울진 인근이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대게잡이 어역인데, 2000년대에 들어서 울산 인근까지 어역이 넓어지며 이곳 정자항에 대게 유통이 활발해졌단다. 요즘은 한창일 때보다는 어획량이 줄어들었지만 이미 굳어진 ‘대게마을’의 이미지는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대게의 제철로 치는 것이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니 수족관은 대부분 텅텅 비었다. 찬바람 불기 시작하면 달라지겠지. 

고기잡이배가 들어오는 어항인 정자항은 한가로운 듯하다가도 활기가 넘쳤다
고기잡이배가 들어오는 어항인 정자항은 한가로운 듯하다가도 활기가 넘쳤다

반대로 정자항 한쪽에 자리한 활어직판장은 활기가 넘친다. 작은 운동장만한 크기에 양쪽으로 주르륵 가게들이 붙었다. 계단식으로 쌓아 둔 빨간 대야 안에는 종으로 분리한 물고기, 해산물이 그득그득하다. 맨 바닥에 놓인 대야에서 넘친 염수는 직판장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다. 조심조심 걷는 것은 우리의 몫, 혹 어느 대야에서 활어가 튀어 올랐을 땐 물에 젖을 운명이었거니 생각해야 한다. 어쩐지 어릴 적 부모님 손잡고 갔던 직판장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인데, 실제로 정자항 활어직판장은 올해로 무려 22년이 됐다. 지금의 자리 바로 옆에 신축 활어직판장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내년 초 오픈이 예정돼 있다고. 없어진다고 하니 괜히 서운해 추억을 소환하며 한 바퀴를 더 돌았다. 


정자항을 안고 있는 두개의 방파제에는 고래를 형상화한 등대가 하나씩 세워져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좌측에는 빨간 고래, 우측에는 흰 고래다. 방파제 위로 바다를 향해 나아가면 항구의 소음이 잦아진다. 잔잔한 바다는 느리고 여리게 방파제에 닿았다가 떨어져 나간다. 장사항 북쪽으로는 장사해변과 요근래 형성되기 시작한 강동산하도시개발구역 언저리를 볼 수 있다. 

 

●강태공은 낚시줄을 드리우고 


정자항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차로 10분이면 된다. 해안도로를 따라서 바다를 끼고 달리다보면 금방이다. 장사항이 상권이 형성돼 부산하던 느낌이었다면 당사항은 그야말로 작은 동네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소박하고 조용하다. 동네 노인들은 평상에 둘러앉아 화투를 치고, 정박해 있는 몇 안되는 배 안에는 인기척이 없다.

오히려 띄엄띄엄 바다를 향해 늘어선 낚시대가 분주하다. 찌를 노려보는 강태공의 눈빛도 조용한 동네에 어울리지 않게 예리하다. 당사항은 해양낚시공원으로 조성돼 있다. 입질이 많고 잡히는 어종도 다양해 인근의 낚시 애호가들이 주로 찾는단다. 당사항 육지에 닿아있는 용바위와 인근 바다에 자리한 넘섬까지 다리를 놓고 낚시를 즐길 수 있게 했다. 낚시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어도 흥미로운 길이다. 바다 위의 섬을 밟아볼 수 있는 길인데다 당사항 인근을 바라보기에 더없이 좋은 뷰포인트가 되기 때문. 연초에는 일출을 보려는 사람도 밀려든다. 용바위에 얽힌 설화도 재미있다. 의심을 받던 뱀이 오해를 벗고 용으로 승천할 때 갈라진 바위가 용바위란 것이다. 승천한 용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괜히 한 번 둘러본다. 

낚시 애호가의 사랑을 받는다는 당사항. 해양낚시공원은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낚시 애호가의 사랑을 받는다는 당사항. 해양낚시공원은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많다

당사항에서 남쪽으로는 몽돌 해변이 펼쳐진다. 파도에 동글동글 깎인 몽돌이 여느 모래사장과 다르게 흑빛으로 반짝인다. 육지까지의 폭이 넓은 것도 아니건만 곳곳에 캠핑과 수영을 즐기는 사람이 즐비하다. 여름이면 휴가를 나온 사람들이 해안길을 빽빽하게 메워 주차가 힘들 정도라고. 호젓하게 몽돌해변을 즐기고 싶으면 가을도 나쁘지 않다 싶다. 

 

●대숲의 소리를 들어봐


태화강공원에 들어서니 빽빽한 십리대숲길이 신기루처럼 멀리 있다. 울산을 관통하는 강, 태화강에 조성된 생태공원은 여의도공원의 2.3배에 달하는 크기다. 그러니 십리대숲이 이름처럼 무려 4km에 달할지언정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도 걸음은 가볍다. 방금 지나온 울산의 도심이 기억이 안날 정도로 공원 안은 한가하다. 멍하니 쉬거나 운동 삼아 뛰거나, 그냥 걷거나. 도시의 걱정이 숨어들 자리가 없다. 모래 바닥을 걷는 기분은 얼마만이던가. 바람에 푸르륵 날리는 모래먼지도 낭만으로 참아줄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생겨났다.  

도시의 풍 경과 어우러지는 태화강공원
도시의 풍경과 어우러지는 태화강공원
태화강공원에 피어난 박꽃
태화강공원에 피어난 박꽃

 

홀로 청청한 대숲은 가까이 다가설 때까지도 속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나무 줄기 사이를 곰곰 들여다봐도 철옹성인 것 마냥 기척이 없다. 그러니 신기하다. 대숲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주위를 둘러싼 세계가 완전히 바뀐다. 넓게 펼쳐진 공원에서 하늘과 강을 들이마시다가 한 발짝 만에 갑작스레 하늘과 강을 잃는다. 높이 동굴을 이룬 우람한 대나무가 사방을 둘러싸는 것이다. 대숲의 생기로움은 공기로, 소리로 느낄 수 있다. 들숨이 상쾌해지고 귓가에는 잎사귀 흔들리는 소리 뿐이다. 담양 죽녹원이 떠오르는 것은 당연지사, 그렇다고 아쉬워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온 세계와 떨어질 수 있는 행운이 어찌 쉬운 것이랴. 

대왕암공원에서는 여러 갈래길을 만날 수 있다
대왕암공원에서는 여러 갈래길을 만날 수 있다

 

대왕암공원의 녹음은 더욱 짙어졌다. 벚꽃과 동백이 지천에서 흐드러지던 봄이 지나 나무는 잎사귀 무거울 정도로 초록이 흠뻑이다. 뙤약볕을 피해 대왕암공원을 찾은 이들도 한가득. 해송이 빽빽한 송림길을 걷다보면 한소끔 더위가 식으니 그렇다. 해안선을 따라서, 혹은 송림길 속을 헤매면서 걸을 수 있는 대왕암공원 둘레길은 굽이굽이 재미있는 풍경을 내어준다. 대왕암으로 건나가는 대왕교엔 해풍이 솔솔. 


대왕암공원에서는 국내 세 번째로 세워진 등대인 울기등대도 볼 수 있다. 1906년 일본이 처음 설치했고, 1987년 등대불이 더 잘 보이는 위치에 새로 설치했다. 일본이 ‘울산의 끝’이란 의미로 ‘울기’로 불렀다가 2006년 등대건립 100주년과 함께 ‘울산의 기운’을 뜻하는 ‘울기’로 바꿔 부른다. 

대왕암공원 해송 사이로 울산의 바다를 내려다 본다
대왕암공원 해송 사이로 울산의 바다를 내려다 본다

대왕암공원은 슬도까지 아우른다. 대왕암에서 해안선을 따라 북쪽으로 내려가는 둘레길 ‘바닷가길’을 따라 가면 슬도에 닿는다. 와중에 용디이목전망대, 고동섬전망대, 캠핑장 등을 거치니 40여분의 긴 거리여도 지루할 새가 없다. 슬도는 ‘큰 거문고 슬’자를 쓰는 섬으로 슬도에 바람이 불면 거문고 뜯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슬도’란 이름이 붙었다. 그러니 슬도에선 여유로운 시간이 필요하다. 거문고 소리가 들려올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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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차민경 기자 cham@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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