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Goto] 무인도에서의 하룻밤, 노자키지마
[Go to Goto] 무인도에서의 하룻밤, 노자키지마
  • 천소현
  • 승인 2018.10.0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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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키지마 (野崎島)
사람이 떠난 섬의 주인은 이제 400마리 이상 늘어난 야생 사슴이다
사람이 떠난 섬의 주인은 이제 400마리 이상 늘어난 야생 사슴이다

신기루 같았던 낮과 밤


무인도로 떠나기 전 마트에 들러 보급을 마쳤다. 노자키지마(野崎島)로 가는 소형 쾌속선은 깨끗하고 쾌적했다. 유네스코 유산을 보러 가는 여정에 격을 맞춘 것도 같고, 무인도로 들어가기 전에 실컷 문명의 호사를 누려 보라는 것 같기도 했다. 달리면서 본 노자키지마의 자태는 홀쭉하고 길쭉했다. 동서 2km, 남북 6.5km로, 마치 두 개의 섬을 붙여 놓은 것처럼 허리춤이 낮고 좁은데, 그 위에 섬의 보물, 노쿠비 교회(旧野首教会)가 올라앉아 있었다.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승인받은 노쿠비 교회
지난 7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승인받은 노쿠비 교회

이제 기독교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가사키는 일본에 기독교가 처음 전래된 곳인 만큼 활발한 신앙 전파가 이뤄졌지만 17세기 금교령*으로 가장 큰 인적 수난을 겪었던 곳이기도 하다. 박해를 피해 3,000여 명의 신자들이 고토의 작은 섬으로 피신했고 200년이 넘도록 ‘가쿠레 기리시탄(숨은 그리스도인)’으로 신앙을 이어 왔다. 1873년 금교령이 철폐되고 나자 신자들의 기쁨은 나가사키 전역에서 교회 건축으로 표출됐다. 나가사키현에 약 138개의 성당이 있는데 그중 40%가 고토열도에 있을 정도다. 그렇게 만들어진 ‘나가사키와 아마쿠사 지방의 숨겨진 기독교 관련 유산’들은 200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됐고, 올해 7월에 그중 12개가 공식 승인을 받았다. 우리가 막 도착한 노자키지마의 노쿠비 교회가 그중 하나였다. 

무인도를 지키는 사람들과의 긴 작별인사
무인도를 지키는 사람들과의 긴 작별인사

원래 토착신앙이 강했던 노자키지마는 신앙을 숨기기에 좋은 외딴 섬이었다. 금교령 이후에 2개의 성당이 세워졌는데 지금은 1908년에 지어진 노쿠비 교회만 전해진다. 당시 교회 건축 명인이었던 테츠카와 요스케가 설계하고 시공한 교회 중 최초의 벽돌 교회다. 대단한 건축미나 귀한 성물이 없더라도 존재 그 자체가 가치가 된 교회다. 스테인드글라스에 오후의 빛이 스며들자 동백꽃이 바닥에 깔렸다. 장미 대신 사용됐던 동백은 고토열도 전역에서 가장 흔하게 보이는 꽃이다. 1985년에 한 번 개보수를 거치면서도 교회는 원형을 크게 잃지 않았는데, 변한 것은 사람들의 삶이다. 노자키지마는 1955년에만 해도 3개 마을에 650여 명이 거주했었지만 전후 일본 경제가 호황기를 맞이하자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육지로 나가 버렸다. 마지막까지 섬을 지켰던 신사의 신관이 떠나면서 2001년부터 공식적인 무인도가 됐다. 


무너진 폐가와 잔해로 이뤄진 마을은 과거의 시간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강렬하고도 괴괴했다. 모락모락 올라오는 복잡한 상상력을 멈추게 한 것은 낯선 기척이었다. 멀리서 야생 사슴 몇 마리가 일행을 경계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이 떠난 후 빠르게 번식한 사슴들은 이제 400여 마리가 넘어, 섬의 주인이 되었다. 인간계와 사슴계를 경계 지은 철조망의 쪽문을 넘어 언덕을 올라가자 수군거리던 사슴들이 재빨리 시야 밖으로 흩어졌다. 언덕 너머 전망대에서는 바다에 가라앉은 화산화구(野崎火山火口跡)를 볼 수 있었다. 바다가 육지였던 시절, 그 옛날에 이 섬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먼 미래에도 이 섬은 여전히 무인도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노자키지마의 투명한 바다
노자키지마의 투명한 바다

무인도라고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명의 비상근 근무자가 있다. 첫 번째는 노자키지마 방문객센터의 관리인. 사슴 사진을 찍기 위해 십여 년 전부터 섬을 드나들었다는 그는 이제 사슴마다 이름을 부를 수 있을 정도라고. 두 번째 지킴이는 숙소인 노자키지마 자연학숙촌의 관리인이다. 가족들이 사는 오지카지마를 자주 오가며 섬을 돌보고 있다. 학숙촌 바로 뒤에 위치한 노쿠비 교회를 관리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학교를 개조한 숙소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구조였다. 섬의 유일한 숙소이니 혹시라도 기상 악화로 배가 뜨지 못하면 여행자를 모두 이곳에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넓은 방, 넓은 부엌에 화장실과 샤워실도 깨끗했다. 세탁기와 탈수기를 통과한 빨래를 착착 펴서 널고 나니 기분까지 쫙 펴졌다. 불편해도 불평이 나오지 않고, 빨래만 했을 뿐인데도 뿌듯한 이유를 곧 알았다. 무인도. 곁에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곳이었다. 

*금교령 | 1549년 예수회 신부인 프란치스코 사비에르에 의해 기독교가 처음 일본에 전해졌다. 그러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막부정권이 잇따라 금교령을 내리면서 1614년부터 260년 가까이 기독교 박해가 이어지다가 1873년에야 신앙의 자유를 얻었다.

노자키지마 자연학숙촌 (野崎島自然学塾村)
1985년 폐교된 초중학교의 목조 건물을 숙소로 개조한 곳이다. 수학여행 등 학생 단체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의 숙소, 화장실, 욕실, 여러 개의 조리대와 대형 냉장고가 있는 조리실 등을 갖추고 있다. 단, 식재료는 모두 섬 밖에서 준비해 와야 한다. 캠핑의 경우 개인 텐트는 사용 금지, 운동장에 상시 설치되어 있는 텐트를 대여할 수 있다. 
요금: 텐트(최대 4인까지) 2,000엔, 다인실 1인당 3,600엔
전화: +81 959 56 3990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취재협조 (주)엔타비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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