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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100년의 이야기] 멈추지 않는 나팔 소리, 크라쿠프

Krakow 크라쿠프

  • Editor. 천소현
  • 입력 2018.11.0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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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고딕 양식의 크라쿠프 성모 마리아 성당
성모 승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비트 스토보쉬 제단Oltarz Wita Stwosza은 높이 13m, 폭 11m로 유럽에서 가장 큰 목조 제단이다. 1477~1489년에 시민들의 모금으로 제작되었으며, 전쟁 중에 독일군에 약탈되어 눈베르크의 동굴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다시 찾아왔다.
성모 승천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비트 스토보쉬 제단(Oltarz Wita Stwosza)은 높이 13m, 폭 11m로 유럽에서 가장 큰 목조 제단이다. 1477~1489년에 시민들의 모금으로 제작되었으며, 전쟁 중에 독일군에 약탈되어 눈베르크의 동굴에 방치되어 있던 것을 다시 찾아왔다.

 

유럽 최대의 크기라는 리넥 구브니(Rynek Głowny) 광장은 유럽 최대의 인파로 북적이는 듯했다. 그런 분주한 흐름을 매 시간 잠시라도 멈추게 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 대성당 첨탑에서 비명처럼 울려 퍼지는 트럼펫 소리였다. 몽골족타타르들의 침입을 발견한 초병의 나팔 소리가 목으로 날아든 화살 때문에 뚝 끊기게 된 것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지금은 나팔수 대신 소방관들이 첨탑 위에서 화마로부터 도시를 지키며 매 시간 연주도 병행하고 있다고.

1596년 바르샤바로 수도를 옮기기 전까지 750년의 역사가 고여 있는 크라쿠프는 500년 이상 왕들이 살았고, 묻힌 바벨성(Royal Wawel Castle)을 포함해 로마 다음으로 많다는 성당과 교회들까지, 보이는 것마다 로마네스크, 고딕, 바로크, 신고전주의 등 다양한 건축의 변천사를 보여 주는 유적지였다. 매일이 축제 같으니, ‘북쪽의 파리’라 불렸던 이유를 알겠다. 광장에 도열한 아름다운 마부, 아니 마녀(?)들의 미소에 홀려 꽤 비싼 관광마차에 오르게 되더라도, 한번쯤 그런 호사를 누리고 싶어지는 분위기다. 

코페르니쿠스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배출한 야기엘론스키 대학교는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다
코페르니쿠스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배출한 야기엘론스키 대학교는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다

도시의 가치가 공인된 계기는 197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첫 등재 목록 12개에 이름을 올린 것이다. 그러나 그 즈음 일을 시작했다는 가이드 여사님의 기억 속에 당시 크라쿠프는 인근 공장지대의 매연에 찌든 회색도시였고, 저녁이 되면 우범지대로 변하는 우울한 도시였다고. 1989년 체제 전환 이후 산업화가 가속화되면서 문화도시로 방향을 잡은 크라쿠프는 늘어나는 관광객의 자본으로 때를 벗고,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당시 40명이었던 가이드가 현재는 1,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17세기 로마에서 온 대사들이 입성하는 길에 부를 과시하기 위해 일부러 황금말굽을 헐렁하게 달고 들어와 길에 떨어지게 했다는 그 길에는 황금 대신 황금빛 호박을 파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고, 직물시장이었던 수키엔니체(Sukiennice)는 광장 중앙에서 여전히 쇼핑센터의 역할을 수행 중이었다.

유럽 최대의 공공 광장인 리네크 구브니 광장과 성모 마리아 성당. 망루 역할을 했던 두 개의 첨탑에서는 지금도 매 시간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진다
유럽 최대의 공공 광장인 리네크 구브니 광장과 성모 마리아 성당. 망루 역할을 했던 두 개의 첨탑에서는 지금도 매 시간 트럼펫 소리가 울려 퍼진다

가장 붐비는 곳은 역시 15세기부터 전해져 오는 세계 최대 크기의 제단을 포함해 귀한 유물들을 품고 있는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독일이 약탈해 갔던 이 문화재를 다시 돌려받기 위해 애쓴 시간들도 상당하다. 도심의 확장이야 막을 수 없었지만 성벽을 허문 자리에 해자를 메우고 나무를 심어 구도심을 에워싸는 4km의 녹지공원 플랜티(Planty)를 조성했다. 8개의 성문 중 북쪽의 플로리안스카 성문과 바깥 망루만큼은 허물지 않고 남겨 두는 등 보전과 개발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도 애를 쓰고 있다. 

12세기 몽골족 침입 당시 화재로 불탄 집터도 광장 지하에서 발굴됐다
12세기 몽골족 침입 당시 화재로 불탄 집터도 광장 지하에서 발굴됐다

 

●역사의 단층 아래에서 


수키엔니체의 2층 테라스 카페에서 커피와 함께 광장의 활기를 전지적 시점으로 감상하는 것도 좋았지만, 4m 80cm아래 지하에도 비밀의 공간이 있었다. 2010년 오픈한 광장 지하 중앙박물관(The Underground Square Central Museum)에는 역사의 단층처럼, 중세 이전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6개월을 예정했으나 5년이나 걸렸다는 발굴 작업의 결과물은 1,100여점에 이른다. 무게로 가치를 매겼다는 당시의 화폐, 흡혈귀(로 추청 되는)의 유해, 뇌수술을 받고 1년 이상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10세기의 해골, 세금을 아끼기 위해 만든 바퀴가 2개밖에 없는 수레, 배수가 쉽도록 기울여 만든 도로를 지나 숯으로 남은 집터 앞에 발걸음이 멈춰졌다.

몽골의 침략으로 전소되다시피 했던 1241년 당시 화재 흔적이었다. 도시는 재건되었고, 이후 몇 차례의 침략이 있긴 했지만 2차 세계대전의 포화만큼은 피해 간 덕분에 오늘날 폴란드의 정신적 수도로 남게 되었다. 그 주축에는 1364년 창설되어 폴란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야기엘론스키 대학교(Uniwersytet Jagielloński)도 있는데, ‘태양을 멈추고 지구를 돌게 한’ 코페르니쿠스와 ‘냉전의 시대에 끊임없이 화해의 메시지를 던졌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모교이기도 하다. 위대한 이름들을 쫓아 방문한 14세기 고딕 양식의 대학 박물관과 교수들의 정원은 사뭇 사색적인 분위기였다. 

중세의 도시 역사를 보여 주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엄
중세의 도시 역사를 보여 주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엄

크라쿠프는 오래, 깊게 공부하고 싶은 텍스트였다. 미처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한 유대인 거주지 카지미에시Kazimierz 지구(쉰들러 리스트 실화의 배경지다)와 ‘나무를 돌로 만들었다’고 할 만큼 부흥의 업적을 이룬 카지미에시 빌에키(Kazimierz III Wielki) 대왕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 바벨성의 이야기는 다음 과제로 남겨 두었다. 지구가 돌고 있으니, 마음 한 자락을 여기 묻어 두면 돌고 돌아 또 만날 날이 올 것임을 믿는다.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지하수가 스며들면서 형성된 소금 호수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지하수가 스며들면서 형성된 소금 호수
지금은 염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소금을 얻고 있다
지금은 염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소금을 얻고 있다

 

●거대한 지하 소금 도시


소금처럼 귀해지라 했던가. 소금 1kg이 금 500g과 같은 가치를 지녔던 중세에 학문, 종교, 무역 등 모든 면에서 번성했던 크라쿠프의 부유함은 모두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덕이었다. 일정이 지체되는 바람에 2시간밖에 여유가 없다고 하자, 가이드 야르스키씨가 ‘대통령도 그보다는 오래 머물렀다’며 웃었다. 그 말을 이해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당 4m씩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100여 미터 아래로 내려가니 복도 길이만 300km, 40여 개의 채플, 200여 개의 소금 호수, 극장, 식당, 기념품점에 요양소까지 있는 거대한 지하 도시가 나타났다. 입구만 해도 26개나 되지만 관광객들이 볼 수 있는 곳은 전체의 1% 정도에 불과하다고. 

모든 것이 소금으로 만들어진 지하 성당에서는 매주 미사가 집전된다
모든 것이 소금으로 만들어진 지하 성당에서는 매주 미사가 집전된다

 

이제 광산은 더 이상 소금을 캐내지 않고 스며든 지하수가 고인 소금 호수에서 염전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하고 있기에 광부도 250여 명에 불과하다. 대신 하루에 8,000~9,000여 명에 이르는 방문객을 소화하기 위해   일하는 가이드가 500명이란다. 8과목을 1년 이상 공부해야 가이드가 될 수 있기에 자부심이 대단하다. 천장과 바닥은 말할 것도 없고, 벽면을 채우고 있는 모든 성상과 샹들리에까지 소금으로 만들어진 성 킹가 채플(Saint Kinga’s Chapel)은 70년 동안 7명의 광부들이 대를 이어 수작업으로 완성한 곳이다. 1895년에 첫 미사를 드린 이후 지금까지 매주 미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상의 건물은 작지만 지하는 거대한 도시다
지상의 건물은 작지만 지하는 거대한 도시다

2013년에 완성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성당은 재단, 십자가, 감실까지 모두 소금일 뿐 아니라 빛이 더해져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시즌마다 각종 공연과 결혼식, 매주 일요일의 미사, 하루 3교대로 운영되는 지하 요양원 등등 지하도시의 삶도 분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하에서 번지점프를 하고, 열기구도 띄웠다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도 폴란드 사람들답다. 

기념품으로 사온 소금을 귀하게 사용하는 중이다. 수천 년간 누적된 짠맛이 감칠맛이 되듯, 폴란드의 시간도 곱씹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travel  info


Airline 
LOT 폴란드항공 

2016년부터 LOT 폴란드항공이 인천-바르샤바를 주 5회 직항으로 연결하고 있다. 비행 소요시간은 10시간 40분. 총 255석의 보잉 787 드림라이너 기종을 투입하고 있다. 다른 유럽 목적지로 갈 경우 바르샤바에서 1회, 5일 이내의 스톱오버가 가능하다.  www.lot.com


Currency 
폴란드는 2004년 UN에 가입했지만 아직 유로화를 도입하지 않았다. 유로나 달러를 시내에서 즈워티(PLN)로 환전해서 사용하면 된다. 관광지 곳곳에 환전소가 흔하다. 2018년 10월 현재 환율은 1즈워티가 304원 정도다. 


Movie
폴란드 여행자를 위한 추천 영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명작으로 꼽히는 <피아니스트>가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고발한다면, <바르샤바 1944>는 바르샤바 봉기 당시 폴란드 젊은이들의 고뇌와 전쟁의 비극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결이 좀 다르지만 10월 말에 개봉한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추상미 감독이 한국전 당시 폴란드로 입양된 전쟁고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Place 
폴란드 한국문화원

2010년 오픈한 한국문화원은 한국어 강좌, 사물놀이 강습, 7,000여 권의 한국 관련 서적을 보유한 도서관, 영화 상영 등 각종 문화 행사로 폴란드인들의 한국 문화 이해를 돕고 있다. 내년에는 한국-폴란드 수교 30주년을 맞아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할 예정이다. 
pl.korean-culture.org 

 

Hotel 
호텔 프란쿠스키 Hotel Francuski

1912년부터 호텔로 운영되어 온 유서깊은 호텔은 많이 바뀌지 않았다.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을 만큼 자부심이 가득한 부티크 호텔. 모든 것이 앤티크하고 클래식해서 아득할 지경이다. 그 모든 불편에도 불구하고 중세로 돌아간 듯한 하룻밤은 특별하다.
www.francuskihotelkrakow.com

 

글 천소현 기자  사진 이승무
취재협조 폴란드대사관 www.seul.msz.gov.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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