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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의 트렌드 리포트] 아빠는 카톡, 아들은 게임 금지… 소도시 부자 여행

  • Editor. 이상현
  • 입력 2018.11.26 15:13
  • 수정 2018.11.27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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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br>에어비앤비 정책 총괄<br>
이상현
에어비앤비 정책 총괄 대표

 

나는 지난주에 무척 즐겁고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늘 일에 쫓겨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일곱 살 아들과 단둘이 일본 규슈 지방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 우리는 4박5일 일정의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커다란 규칙 하나를 정했다. 바로 내비게이션을 포함한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지 않기로 한 거다. 


서울에서도 매일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는데, 하물며 외국의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스마트폰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일단 시도해보기로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갖는 부자의 시간을 최대한 만끽하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는 길에 여행 규칙을 몇 가지 더 정했다.


첫째, 여행하는 동안 절대로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둘째, 모든 것은 아들이 결정한다. 셋째, 현지 언어를 최대한 습득한다. 넷째, 여행 중 겪은 일과 대화 내용은 둘만의 비밀로 평생 간직한다. 마지막으로는 이렇게 정해진 규칙 외에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하지 말라거나 하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한 규칙의 대전제는 익숙한 일상과의 이별이었다. 예를 들면, 아빠는 스마트폰으로 이메일과 카카오톡을 확인하지 않고, 아들은 만화를 보거나 게임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디에 가고, 무엇을 먹고, 언제 잠을 잘지는 모두 아들이 결정하기로 했다. 일본어를 전혀 못하지만 식사 메뉴를 현지 언어로 주문해보고, 하루 종일 동물원과 공룡박물관에서 보내기로 약속했다.


아들과 단둘이 한 여행은 하나의 게임이고 놀이였다. 우리는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며 늘 보던 스마트폰에서 벗어나 함께 공룡 그림을 그렸다. 아침 식사는 호텔의 조식 뷔페가 아닌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때웠고, 자전거를 타고 2시간이 넘게 숲 속을 탐험했다. 나무와 꽃 이름을 공부하고 외우는 대신 새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동물 발자국을 찾았고, 나무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숲을 즐겼다. 우연히 발견한 노점 포장마차에서는 감자튀김과 주먹밥으로 점심식사를 해결했고, 한적한 목욕탕에서는 탕 속을 누비며 수영을 했다. 저녁에는 바비큐 캠핑장에서 고기와 채소 대신 마시멜로와 초콜릿을 비스킷 사이에 넣어 구워 먹었다.


아들은 여행 내내 비상식량이 있어야 한다며 땅콩과 초콜릿을 가방에 넣고 다녔다.  바지를 뒤집어 입어도, 같은 옷을 3일 연속 입어도 괜찮다고 했다. 무언가 결정하기 어려울 때는 가위 바위 보로 정하길 좋아했고, 장래희망으로는 공룡 발자국을 연구하는 고고학자가 되고 싶고, 빵을 굽는 제빵사도 관심이 있다고 했다. 하루 중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야, 너 오늘 놀 시간 있냐”라고 했다. 나는 아들이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말할 때마다 아들과 함께 깔깔거리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간 가져보지 못한 색다른 행복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행복한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행복의 재료를 하나하나 모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여행한 곳이 볼 것과 할 것이 많은 대도시가 아닌 소도시였기 때문이리라. 영국의 추리소설가인 킬버트 체스터턴은 여행자와 관광객에 대해 “여행자는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반면, 관광객은 보러 온 것을 본다”라고 말했다.


소도시는 여행자에게 ‘소확행’을 느끼게 해준다. 구체적인 여행 계획이나 목적 없이도 한적한 숲과 골목길을 산책하며 소도시의 풍경과 분위기를 여유롭게 만끽할 수 있다. 저비용 항공사들의 다양한 운항 노선은 소도시에 대한 접근성과 편리성을 더해준다. 그뿐만이 아니다. 소도시의 한적한 공항과 거리, 그리고 현지인의 푸근한 인심은 보너스다. 소도시는 단순하면서도 고유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소도시 여행은 이미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대도시 중심의 여행에서 벗어나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여행 경비가 저렴하면서도 다양한 행복의 재료를 제공하는 소도시가 새로운 여행지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니 아이와 단둘이 떠나는 여행이라면, ‘소확행’을 만끽할 수 있는 소도시가 최고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소도시 여행에서 얻는 수많은 행복의 재료는 父子 여행을 富者 여행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2019년에는 소도시로 떠나는 부자 여행이 여행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상현

에어비앤비 정책총괄 대표 /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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