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갚기 위한 세계여행
빚을 갚기 위한 세계여행
  • 김예지
  • 승인 2018.12.04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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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고 떠나고 찍고 떠나고. 10년 넘게 일과 여행을 반복해 온 촬영감독 로드리고는 또 한 번 여행을 앞두고 드라마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가 일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여행인데 여행을 하는 이유는 뜻밖에도,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했다.

시리아 알레포

●박 로드리고 세희


때마침 찍고 있어 만날 수 있었다. 드라마 촬영으로 전날 밤을 꼴딱 새고서 조금은 초췌한 기색의 그였지만. “로드리고(Rodrigo)는 남미에서 흔한 남자 이름이에요. 누구에게나 쉽게 불릴 수 있는 그런.” 만나기 전부터 줄곧 궁금했던 ‘로드리고’는 말하자면, 그에게 평등의 징표 같은 거였다. 막내에서 감독이 되기까지 지난 15년간 영화와 드라마를 찍으며 속했던 촬영팀에서는 늘 누군가는 위, 누군가는 아래에 있었다.

“선후배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과 터놓고 소통하고 싶어요.” 박 그리고 세희라는 이름 사이에 스스로 로드리고를 붙였다. “호칭 없이 부르는 사람이 그리 많진 않지만요. 가끔 감독님 빼고 로드리고라고만 불릴 때 쾌감이 있어요.” 존경하는 멕시코 출신 감독, 로드리고 프리에토(Rodrigo Prieto)를 자주 떠올릴 수 있다는 것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평등과 균형에 대한 사유(로드리고는 ‘생각’ 대신에 이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가 증폭된 건 여행에서였다. 그가 만난 세계에는 불균형이 파다했다. “여행도 그중 하나였죠. 특히 서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여행을 꿈꿀 수조차 없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지구 어딘가, 한 젊은이에게 해외여행은 아무리 일해도 넘볼 수조차 없는 벽이다. 경비를 마련한다 한들, 비자 발급이 되지 않아 여행을 할 수 없다. “존재에 있어 그들과 저는 전혀 차이가 없는데 말이죠. 자유를 가진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에요.” ‘부채의식’에 의해서, 그러니까 빚을 갚기 위해 한다는 로드리고의 여행은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자유와 관련이 있다.

중국 티베트
중국 티베트

●자유라는 부채를 갚는 법


여행의 자유를 빚졌다. “70~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개인의 인권이 신장되고, 이후 해외여행이 일반화되고. 앞선 세대 덕에 누리고 있는 자유라고 생각해요.” 빚이란 건 갚아야 마땅할진대 방향은 그 반대. 지난 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다음 세대에게 베풀겠다는 것이다.

로드리고가 빚을 갚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여행의 영감을 주고 싶어요. 제가 경험했던 것들을 묵히지 않고 끊임없이 풀어내면서요.” 3년간 아시아를 떠돌며 찍은 사진과 글을 노숙자 재활을 위한 잡지 <빅이슈>에 1년 넘게 재능기부로 기고했고, 이를 기반으로 여행기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를 펴냈다. 지금도 한 매체에 유럽 여행기를 연재하며 또 다른 ‘영감(靈感) 딜리버리’ 루트를 궁리 중이다.

파키스탄 길깃
파키스탄 길깃

두 번째 방법은 스케일이 좀 더 크다. “전쟁, 테러 등이 없는 세계평화를 지향해요. 다음 세대에게 지금보다 균형 있는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요.” 올해 초, 로드리고는 한 국제평화단체와 함께 미얀마와 방글라데시 국경에 있는 로힝야족 난민 캠프를 찾았다. 불교권인 미얀마에서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유로 탄압에 시달리다 탈출을 감행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위로하고 돕는 것, 존재를 세상에 알리는 것. 모두 제 여행 목적의 일부죠. 보편적인 여행이 아닌 것 같긴 해요(웃음).” 10대 시절 로드리고에게 감명을 줬던 ‘바람의 딸’ 한비야 구호팀장에게도,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나눔을 실현한 1세대 여행사진가 신미식 작가에게도, 보편적이지 않은 여행은 세계를 마주한 뒤 숙명처럼 흘러온 것일지 모른다.

중국 신장
중국 신장

●사유의 트랙 위에서


“영화는 좋아하지만 영화 촬영은 ‘Shit’이에요(웃음). 그만큼 고된 일이라 쉼 없이는 계속하기가 힘들어요.” 꼭 빚 때문(public)이 아니더라도 안식을 위해(private) 떠나야만 한다고, 여행의 두 ‘트랙(track)’을 가지고 있다고 로드리고는 말했다. 여행에 처음 맛을 들이게 된 계기가 일 때문이었다는 건 좀 아이러닉하지만. 2004년, 로드리고는 생애 첫 영화 촬영차 3개월간 중국에 머물렀다. 서로 다른 언어와 정서들이 뒤섞인, 중국은 큰 세계였다. “여행의 씨앗이었죠. ‘개안(開眼)의 환희’라는 말을 여전히 좋아해요.” 1년의 영화 촬영이 끝나고 목돈이 생겼던 차. 인도로 떠났다. 


“당시 배낭여행의 성지 같은 곳이었거든요. 무작정 떠나긴 했는데, 만만치가 않더라고요. 100배 바가지를 쓴 적도 있어요.” 한 달을 꼬박 인도에 있을 생각이었지만, 결국 3주 만에 네팔로 건너갔다. 그러고선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애초에 한 달로 계획했던 여행은 잔고가 0이 될 때까지 세 달간 이어졌다. “한국에 들어온 건 노트북을 팔기 위해서였어요. 그 돈으로 다시 일주일도 안 돼 몽골로 갔죠.” 다시 잔고는 바닥을 보였고, 이번엔 카메라. “촬영하는 사람이 카메라를 판다는 건 진짜 대단한 용기에요(웃음). 그만큼 티베트에 가고 싶었어요.” 팔고 떠나고 팔고 떠나고. 그렇게 한 해를 보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아시아 여행의 후반전은 전반전보다 호흡이 길었다. 2년을 촬영하고, 2년을 여행했다. 그중 1년을 시리아, 파키스탄, 예멘 등 중동에 머물렀다. “CNN 뉴스에서 보던 장면들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중동에서 이방인에 대한 환대는 늘 상상 이상이었죠. 길을 묻기만 하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니, 물어보기가 망설여질 정도였다니까요.” 언어가 통하지 않았지만 가슴팍에 와 닿았다. 푸짐한 빵 한 보따리가. “한 번은 파키스탄 어느 버스 터미널에서였어요. 어떤 아저씨가 밥은 먹었냐, 바디랭귀지로 묻더라고요? 고개를 저으니 데려간 곳이 제과점이었어요. 계산할 틈도 없이 빵 봉지를 가슴팍에 탁, 들이밀고는 갈 길을 가시더라고요.”

소위 위험하다고만 들어 온 나라에서, 소시민들의 삶은 더없이 평화로웠다. 관광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곳에서 여행의 낭만은 극대화됐다. “그렇다고 여행제한, 금지국가를 권하는 건 아닙니다. 클리셰(Cliche)를 깰 필요가 있다는 거죠. 간혹 외국인들도 우리나라를 막연하게 위험하다고 단정 짓곤 하잖아요.” 


두터운 바가지만큼이나 단단했을 인도의 클리셰는 어떻게 됐을까. 한국에 돌아온 후 두 번이나 또 인도엘 갔고, 지금 이 순간마저 인도가 그립다고 로드리고는 답했다. “주변 친구에게 인도 여행을 권하고 싶진 않지만요(웃음). 라다크, 인도 북부에 또 가고 싶어요.” 세상을 구경하고 몸으로 만난다. 사유하고 변화한다. 로드리고의 트랙 위에서 주로 일어나는 행동들이다.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로마

●여행은 본능이다


“요트 자격증을 땄어요. 태평양 작은 섬나라들로 가려고요. 한국에서부터, 바람을 타고.” 로드리고 여행의 갈래 중엔 ‘탐험’도 있다. 카약, 산악스키, 요트 등 무동력 운송수단을 이용해 대륙을 넘나드는 여행이다. “극한 환경에 도전했던 인류에 대해 감동을 느껴요. 이동하고 싶은 욕구가 중첩돼 만들어진 도구들이니까요.” 북극 에스키모인들은 바다를 건너고 사냥을 하기 위해 1인용 보트 카약을 만들었다.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눈 덮인 알프스 봉우리를 넘으려던 이들의 바람은 산악스키를 탄생시켰다. “높이 오르고 싶은 욕구가 클라이밍, 바다 속에 대한 호기심이 스쿠버다이빙의 기원인 거죠. 여행은 인간의 본능이에요.”


본능에 충실해 외도를 했다. 영화와 드라마 대신 로드리고는 지난 4년간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출장을 자주 가잖아요(웃음). 별 찍으러 몽골에, 달 찍으러 캐나다 동부에 갔어요. 활화산을 촬영하러 콩고와 에티오피아에도 갔고요.” 일은 일이건만, 이따금 여행의 순간들이 스쳤기 때문이다. 미니밴 차창 밖에 흐르는 강변도, 이른 아침에 걷는 숙소 주변 산책길과 촬영을 마치고 찾는 야간 개장 미술관도. “작년까지는 지인들이 연락할 때 꼭 한국이냐고 먼저 묻곤 했어요(웃음). 올해 들어서야 다시 드라마 현장으로 복귀했죠.”

스페인 바르셀로나
스페인 바르셀로나

외도는 청산했지만 종종 재회한다. 3~4개월간의 촬영이 끝날 때마다 틈틈이 파리, 바르셀로나, 바르샤바, 취리히 등 도시에 다녀왔다. 로드리고는 요즘 유럽 여행 중이다. “이번 드라마 촬영이 끝나고도 베니스와 암스테르담에 갈 계획이에요. 유럽은 아시아와는 다른 매력이 있더라고요. 평소 관심이 많았던 현대예술의 감각을 엿보는 재미가 있어요.” 아시아, 유럽, 그 다음은 남미가 될 것 같다. 체 게바라* 헌정 여행을 목표로 대형 오토바이 면허도 땄단다. “파리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파리 얘기에 유독 귀가 솔깃하잖아요. 어딘가에 가고 싶다고 맘먹는 순간부터 여행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요.” 여행이 본능이라면, 바람(wish) 외에 별다른 동력이 필요할까. “평생 여행하고 싶어요. 모든 대륙을 경험할 때까지.” 약간의 바람(wind)이면 충분하다.  

*체 게바라│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에 다니던 그는 친구와 함께 오토바이로 중남미를 여행하며 고통과 가난을 목격했다. 이후 쿠바혁명에 가담했고 중남미의 민중혁명을 위해 싸웠다.


*박 로드리고 세희는 촬영감독이다. 2004년 영화 <청연>을 시작으로 <우아한 세계>, <아테나: 전쟁의 여신> 등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촬영팀에서 일했다. 여행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1,000일간의 아시아 여행을 기록한 <나는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다>, 국제평화단체 ‘개척자들’과의 항해훈련을 담은 사진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를 펴냈다.

 

글 김예지 기자 인터뷰사진 강화송 기자 장소제공 COSO 여행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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