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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AIGN 여행으로 희망을 나눕니다] 낯섦과 설렘 사이, 예술로 빚은 교감

  • Editor. 김지영
  • 입력 2019.01.01 10: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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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프레임에 담긴 페트로나스 트윈타워와 말레이시아 국기 

다양한 민족, 문화가 어우러진 말레이시아에서
우리 악기, 가야금으로 나눈 교감을 전한다.

 

●Day 1 
처음 뵙겠습니다

어느 겨울 아침, 열 명의 낯선 이들이 ‘아트투어’라는 이름 아래 함께 하늘을 날았다. 목적지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였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출국의 설렘과, 초면의 긴장이 잔뜩 묻어 나왔다. 7시간의 비행 끝에 쿠알라룸푸르에 닿았다. 피곤이 물 밀려오듯 몰려왔지만 우리에겐 늦장 부릴 시간이 없었다. 바로 내일,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곧장 호텔로 이동해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가야금을 연주하는 ‘헤이스트링’ 멤버의 가녀린 손
가야금을 연주하는 ‘헤이스트링’ 멤버의 가녀린 손

어색한 기류가 돌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괜한 근심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눈앞에서 접한 가야금 연주에 넋을 잃고 말았기 때문이다. 가야금의 음색은 기품이 있었고 섬세했다. 그에 반해 곡은 더없이 창의적이며 현대적이니 상상을 뛰어넘는 소리들이 귀를 자극했다.

특히나 플라멩코의 손뼉리듬을 접목시킨 ‘포텐시아(Potencia)’라는 곡을 들었을 때는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였다. 마치 ‘공연’ 같은 ‘연습’이 끝나고 조심스레 그들에게 다가가 물었다. “손가락에 굳은 살 한 번만 만져 봐도 될까요?” 본격적인 여행이 채 시작되기도 전, 나는 이미 그들에게 녹아들었다. 예술 덕분에.

코리아플라자에서 공연 중인 아티스트들의 모습
코리아플라자에서 공연 중인 아티스트들의 모습

●Day 2 

한복, 입어 줘서 고마워요

쿠알라룸푸르에서의 첫날 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코리아플라자’로 향했다. 코리아플라자는 2008년 한국관광공사에서 문을 연 홍보센터다. 우리는 이곳에서 개최하는 ‘제주관광 설명회’의 공연을 도맡았다. 잔잔한 긴장감이 감돌던 버스 안, 한 사람이 정적을 깨며 말했다. “어! 태극기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 고개를 돌리니 가야금에 붙어 있는 태극 마크가 눈에 띄었다. 새삼 마른 침을 삼켰다. 

뚜둥을 쓰고 한복을 입은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뚜둥을 쓰고 한복을 입은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말레이시아는 다민족, 다문화 국가다. 크게 말레이, 중국, 인도계로 나뉘고 이슬람교가 국교이긴 하지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 불교와 힌두교가 공존한다. 그러다 보니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의 모습도 가지각색이었다. ‘뚜둥(Tudung)’을 머리에 걸친 무슬림 여성부터,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이들까지. 말레이시아에 온 것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었다. 헤이스트링이 직접 쓴 두 곡이 연달아 연주되고 노래와 퍼커션이 가미된 ‘경기민요 연곡’ 무대가 펼쳐졌다. 넋을 놓고 오롯이 무대에 집중하는 관객들을 보니 안도감이 일었다. 결과적으로 공연은 대성공. 행사장 앞은 한복을 입어 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뚜둥을 머리에 두르고 한복을 입은 이들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참 설레었다. 바라는 것 없이 우리문화를 사랑해 주는 그들의 모습이 마냥 아름다워 보였다. 

어둑한바투 동굴 내부
어둑한바투 동굴 내부

한여름 밤의 꿈 


아침부터 공연 준비로 단단히 긴장했던 탓에 해소가 필요했다. 곧장 한식당을 찾아 익숙한 맛으로 속을 씻어내니 다들 여유가 생겨 도시 구경을 나섰다. 먼저 힌두교 성지인 ‘바투 동굴(Cave Batu)’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릴 반긴 것은 272개의 계단. 이날 체감온도는 무려 39도에 육박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마지막 계단을 디딜 때 즈음에 왜 힌두교인들이 이곳에서 고행 축제인 타이푸삼(Thaipusam)을 여는지 절로 이해가 갔다.

만난 원숭이들
몽키힐에서 만난 원숭이들

이어서 찾은 곳은 원숭이가 많아 ‘몽키힐’이라는 애칭을 가진 ‘부킷 말라와띠(Bukit Malayati)’였다. 해 질 녘 언덕 아래로 탁 트인 말라카 해협은 모든 이들의 탄성을 유발했다. 우리는 엷게 물든 석양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 위에 소담히 내려앉을 때까지 한동안 조용히 지켜보았다. 날이 어둑해지고 마침내 기다리고 기대했던 반딧불이 투어 시간이었다. “여기서는 카메라를 두고 가셔야 해요!” 아쉬운 마음보다 반가운 마음이 컸다면 직무유기일까, 카메라를 조용히 내려놓곤 달뜬 마음으로 나룻배에 올랐다.

하늘을 수놓은 별과 간간이 나타나는 마른 번개, 물과 풀 냄새, 찌르르 풀벌레 소리. 그리고 저 멀리 트리 조명처럼 반짝이는 불빛이 보였다. 반딧불이었다. “아, 꿈꾸는 것만 같다.” 마음이 재채기처럼 터져 나왔다.

네덜란드 광장에 위치한 ‘I LOVE MELAKA’ 사인 앞은 여행객들로 늘 북적인다
네덜란드 광장에 위치한 ‘I LOVE MELAKA’ 사인 앞은 여행객들로 늘 북적인다

●Day 3 
말레이시아의 경주, 말라카 


말라카는 5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말레이시아의 수도였던 곳이다. 다양한 유적들이 집중되어 있는 탓에 말레이시아의 경주라고도 불린다. 1396년, 인도네시아에서 온 왕자가 이곳에 말라카왕국을 세웠으며 동서교역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이후 동남아 패권을 노리는 서양 세력의 각축장이 되면서 1511년 포르투갈, 1641년 네덜란드, 1824년 영국의 침략을 차례로 받게 된다. 아픈 역사지만 그 덕분에 다양한 국가의 특징이 융합된 말라카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산티아고 요새 앞에서 함께 남긴 단체사진
산티아고 요새 앞에서 함께 남긴 단체사진

먼저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크리스트 교회’와 ‘스탯허스(Stadthuys)’가 위치한 네덜란드 광장으로 향했다. 붉은 광장의 모습이 튤립과 풍차 조형물과 어우러져 유럽의 소도시에 와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다음은 포르투갈의 흔적을 찾아 나설 차례다. 세인트폴 교회는 포르투갈이 점령 중이던 1521년에 지어졌으나, 후에 네덜란드가 점령하면서 묘지로 사용되었다. 그 아래로 포르투갈 군이 네덜란드 군과의 전투에 대비해 건설한 산티아고 요새가 자리 잡고 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볼거리니, 가히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한 말라카다.

타밍사리 광장에서의 버스킹
타밍사리 광장에서의 버스킹

사랑해요, ‘꼬리아’


마침내 문화예술 희망여행 ‘아트투어’의 하이라이트인 ‘타밍사리 광장 버스킹’ 시간이 다가왔다. 멤버들의 자작곡부터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 비틀즈의 노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이색적인 가야금 연주가 펼쳐졌다. 선율에 노래가 더해지자 반응은 극에 달했다. ‘꼬리아, 사랑해!’를 외치는 아이들. 살갗으로 한류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40분 남짓의 공연이 끝나고, “수고하셨습니다!” 외침과 함께 가슴 속에서 익숙하고도 낯선 뜨거움이 울컥 솟았다.

가야금의 선율이 지나가던 이들의 걸음을 붙잡는다
가야금의 선율이 지나가던 이들의 걸음을 붙잡는다

학부 시절 손때 묻은 축제 구상을 무대로 구현했을 때 느꼈던 감정 같기도, 월드컵에서 대표 팀이 승리했을 때 느꼈던 감정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무엇에도 비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밤이 저물었다. 이제 막 친해지기 시작했는데 헤어짐이 아쉬웠던 우리는 그날 밤 늦게까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메르데카 광장에 자리한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의 외관
메르데카 광장에 자리한 술탄 압둘 사마드 빌딩의 외관

 

●Day 4 

그들의 자부심, ‘메르데카’


말레이시아는 입헌군주제 국가로 왕의 권위가 하늘만큼 높다. 너른 초원 위 작열하는 태양 아래, 금빛 돔이 아찔하게 반짝였다. 말레이시아의 왕인 ‘술탄 아공’이 살고 있는 국립 왕궁(Istana Negara)이었다. 이어서 찾은 국립 모스크(National Mosque)는 최대 1만 5,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말레이 무슬림들의 정신적인 안식처이다.

입장에 앞서 팔다리를 가리는 긴 가운을 걸쳐야 한다. “더워 죽겠는데 저걸 어떻게 입어요?!” 당혹감도 잠시, 보랏빛의 이국적 의상이 제법 마음에 들었던 우리는 경건한 사원의 분위기를 배경으로 인증숏을 남기는 데 심취했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남긴 뒤 향했던 곳은 메르데카 광장(Merdeka Square)이다. ‘메르데카’는 독립이라는 뜻으로, 1957년 8월31일 영국 국기를 철거하고 말레이시아 국기를 게양한 곳이다. 높은 국기 봉이 이들의 자부심을 짐작케 했다. 야시장에서의 만찬을 끝으로 공항으로 향했다. 발길에서 다들 아쉬움이 뚝뚝 묻어났다.

국립 모스크에서 인증사진을 남기는 데 심취했던 우리, 참 좋았다
국립 모스크에서 인증사진을 남기는 데 심취했던 우리, 참 좋았다

 

문화예술 교류를 통한 ‘교감’


출발 전, 과연 국악을 통해 말레이시아 사람들과 교감이 가능할까 의문을 가졌다. 요즘은 한국인들에게도 낯선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물론 말레이시아라는 국가가 한국에 대한 호감이 높기도 하지만, 이번 아트투어의 성공 요인은 무엇보다 ‘헤이스트링’ 멤버들이 보여 준 음악, 공연 자체의 완성도에 있었다. 낯선 땅에서 우리에게조차 낯선 ‘가야금’을 통한 교감. 원주민과 이주민,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말레이시아였기에, 더욱더 특별한 경험으로 남은 듯하다.

그들의 따뜻한 격려와 포용에 아직도 가슴속은 그날의 태양만큼이나 뜨겁다. 낯섦에 대한 편견의 장막을 하나씩 거둘 때, 우리를 둘러싼 세상은 조금씩 넓어진다. 생각보다 말레이시아가 지닌 이야기는 훨씬 더 매혹적이었고, 가야금이 만들어 내는 선율은 훨씬 더 아름다웠으며 낯선 이들과의 나흘은 훨씬 더 유쾌하고, 애틋했다.

아티스트로, PD로, 인솔자로, 각자의 위치에서 반짝이던 멋진 이들과 맥주 한 잔에 행복에 겨웠던 그 저녁이 문득 그리워, 이 추운 겨울 다시 맥주를 홀짝여 본다. 그럼 조금이라도 더 오래 기억되지 않을까 하며. 
 

여운이 짙게 남은 해 질 녘, 타밍사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말라카의 전경
여운이 짙게 남은 해 질 녘, 타밍사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말라카의 전경

독자기자 김지영
디지털 콘텐츠 마케터이자 예술경영학 석사 과정 중인 학생으로 ‘무수한 오늘’에 대해, 애틋한 시선을 바탕으로 <동아일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획일화된 행복을 벗어나 모든 이가 자신만의 행복을 정의하는 세상을 꿈꾸며, 문화예술이 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화예술 희망여행 ‘아트투어’는 여행을 통해 예술 활동과 다양한 문화체험의 기회를 선물하는 하나투어 사회 공헌사업입니다. 이번 사업은 정동극장이 주최한 청년국악 인큐베이팅 사업에서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된 가야금 앙상블 팀 ‘헤이스트링’과 하나투어문화재단의 후원으로 국악의 아름다움을 알리고자 11월23~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한류의 중심 말레이시아에서 두 차례의 현지인 대상 공연을 진행했으며 아티스트들은 현지 공연과 문화체험을 통해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트래비-하나투어 공동캠페인‘여행으로 희망을 나눕니다’는 여행을 통해  발견한 꿈과 희망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글·사진 김지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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