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彰化), 색 바랜 영화 같은 도시
장화(彰化), 색 바랜 영화 같은 도시
  • 박준
  • 승인 2019.01.02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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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너머로 황금노을이 드리워진 장화. 대불상 주변의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야구장 너머로 황금노을이 드리워진 장화. 대불상 주변의 스카이워크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장화의 거리는 때로 과거의 한국 같고, 오래된 청춘영화의 색 바랜 배경 같으며, 때로는 과거의 일본 같다. 
장화를 걷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지난 시절로 회귀한다. 
장화 사람들은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간마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장화선형차고
장화선형차고
정숙한 여인들은 꺼렸을 정도로 폭이 좁은 모루샹 골목길
정숙한 여인들은 꺼렸을 정도로 폭이 좁은 모루샹 골목길
옛날 영화 속 모습과 달라지지 않은 장화의 거리 풍경
옛날 영화 속 모습과 달라지지 않은 장화의 거리 풍경
장화의 순수함과 잘 어울리는 거리 벽화
장화의 순수함과 잘 어울리는 거리 벽화

●노스탤지어 장화 

‘짱화’는 정말, 못말려~ 

늦은 가을날, 타이완 장화(彰化)에 왔다(현지에서는 모두 ‘짱화’라고 발음한다). 타이완에 처음 온 것도 아닌데 장화는 낯설기만 하다. 이름조차 몰랐던 장화현은 타이중 남쪽에 위치한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차로 두 시간 반쯤 걸렸다.

높이가 22m나 되는 팔괘산의 대불상
높이가 22m나 되는 팔괘산의 대불상

제일 먼저 팔괘산(八卦山) 대불상을 찾았다. 팔괘산은 타이완 12대 경승지 중 하나로 꼽히고, 여기에 자리한 대불상은 장화 제일의 관광 명소다. 일단 거대하다. 해발고도 74m 언덕에 높이 22m의 대불상을 세웠다. 불상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좀 놀랐다. 불상 내부는 여섯 개 층으로 나뉘고, 각층마다 사람만한 크기의 인형들이 부처가 해탈에 이른 이야기를 보여 주는데 너무 소박하다. 1961년 처음 생겼을 때는 동남아에서 가장 큰 불상이었고, 지금까지도 늘 장화의 랜드마크로 꼽는 곳이라는데 투박함 때문인지 뭔가 좀 아쉽다. 대불상 뒤편의 사원은 화려한 왕궁 스타일로 1972년 지어졌다. 독특하게도 도교와 불교, 유교의 요소가 뒤섞여 있는데 사원 규모마저 거대하다. 

팔괘산의 사원은 도교, 불교, 유교의 요소가 공존한다
팔괘산의 사원은 도교, 불교, 유교의 요소가 공존한다
스카이워크 에서는 장화 시내를 쉽게 조망할 수 있다
스카이워크 에서는 장화 시내를 쉽게 조망할 수 있다

불교신자가 아니어도 대불상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이곳은 장화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한편으론 대불상을 올려다보고 반대편으로 도시의 파노라마를 내려다볼 수 있다. 대불상 주변으론 ‘스카이워크’를 만들어 놓아 손쉽게 팔괘산을 둘러볼 수 있다. 잠시 스카이워크를 걷다 어느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장화 시가지를 바라본다. 고층건물이라곤 거의 눈에 안 보인다. 스카이워크 옆에는 야구장도 하나 있다. 야구장 너머로 황금노을이 진다. 청춘영화의 한 장면 같다. 노을을 보고 주차장으로 가는데 주변이 유난히 어둡다.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부러 조명을 어둡게 했다고 한다.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본 장화 시가지
스카이워크에서 내려다본 장화 시가지

장화에서의 첫날 밤은 포르테 호텔 장화(Forte Hotel Changhua)에서 묵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가려는데 호텔 직원이 사진을 같이 찍자고 청한다. 무슨 영문인가 싶었는데, 여기선 한국인 관광객을 보기 힘들다고 한다. 한 TV 프로그램 때문에 타이완을 찾는 한국 관광객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지만 거의 똑같은 곳만 갈 뿐 이곳을 찾는 이는 아직 드문 것 같다.

몸은 피곤하고 밤은 깊은데 호텔 바깥이 궁금하다. 한국인뿐만 아니라 아예 외국인 관광객을 찾기 힘들다는 장화의 밤거리를 무작정 걷는다. 고요한 거리에는 낡고 오래된 세월이 그대로 배어 있는데 때로는 인적조차 드물다. 커다란 간판이며 다닥다닥 붙은 건물 때문인지 문득 20~30년 전 우리나라 지방 어딘가를 걷는 것 같다. 장화의 밤거리는 때로 과거의 한국 같고, 오래된 청춘영화의 색 바랜 배경 같다. 때로는 일본의 소도시를 연상시킨다. 

수십 년 전 한국의 어느 지방 소도시 같은 모습의 장화
수십 년 전 한국의 어느 지방 소도시 같은 모습의 장화

그렇구나…. 장화는 때로 ‘과거의 일본’ 같다. 사실이 어떻든 나는 장화에서 편안하다. 장화는 별거 없는 것처럼 보인다. 패키지 투어 같은 건 어림도 없겠다. 그런데 나는 그게 좋다. 아무것도 없어서 좋다. 기사를 쓰기에는 난감한데 나는 관광객을 볼 수 없는 도시에 왔다는 게 신났다. 하지만 장화에는 나를 건드린 뭔가가 있다. 아무것도 없는데 특별한 뭔가를 가진 도시. 장화의 첫인상이다. 이틀간 둘러본 장화는 역시나 뽐내지 않는다. 촌스럽고 투박하다. 하지만 늘 환하게 웃어 준다. 거리를 걸으며 나는 종종 웃음을 터뜨리며 되뇌었다. 
‘아, 장화는 진짜 순수해.’ 

 

●가슴을 쓰다듬는 골목

신사를 만드는 골목 

장화현 루강(鹿港)도 비슷하다. 연평균 기온은 22도 정도로 선선하고, 장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내국인 관광객이 온다지만 소박한 동네 분위기는 매한가지다. 루강에는 택시조차 없고, 버스가 다니는 도로도 하나뿐이다. 미로 같은 골목길이 많아 과거에는 인력거가 거리를 오갔는데 요즘에는 관광객을 태운 전동 자전거가 삼륜차 같은 모습으로 인력거를 대신한다.

서로 가슴이 닿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 모루샹
서로 가슴이 닿을 정도로 좁은 골목길 모루샹

루강의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는 모루샹(摸乳巷)이다. 이름만 들어선 어떤 곳인지 전혀 알 수 없는데 막상 와 보니 그저 좁은 골목길이다. 입구에서 어안이 막힐 정도다. 고작 이 골목길이 전부라고? 모루샹이란 이름이 걸작이긴 하다. 쓰다듬을 ‘모’, 젖가슴 ‘루’, 골목 ‘샹’자에서 따왔다. ‘가슴을 쓰다듬는 골목’이라고? 골목이 하도 좁아 두 사람이 마주치면 가슴을 부딪치지 않고서는 지나갈 수 없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모루샹의 길이는 100m에 달하는데, 가장 좁은 곳의 폭은 70cm도 안 되기 때문이다. 옛날에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 정숙한 여인들은 이 골목을 피했다.

아홉 개의 굴곡이 있는 골목길 주취샹
아홉 개의 굴곡이 있는 골목길 주취샹

이런 연유로 모루샹은 ‘신사 골목’이란 별명도 가졌다. 맞은편에서 여인이 걸어오면 그녀가 앞을 지날 때까지 신사는 기다려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저 골목일 뿐인데 하는 의문이 가시진 않지만 어쨌거나 루강의 유명 관광지다. 모루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치샹(九曲巷)이란 골목도 있는데 아홉 개의 굴곡이 이어지는 골목이다. 


루강에서 겨우 한 사람밖에 지나갈 수 없는 골목이 여러 군데 생긴 이유가 있다. 매년 9월 몽골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 집들을 다닥다닥 붙여 지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골목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맞던 바람은 거의 사라졌다. 또 다른 설명도 있다. 일거리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도시의 난개발로 좁은 골목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루강은 번성하는 항구를 가졌다. 자연히 땅값은 비쌀 수밖에 없었고, 1인치의 땅은 금 1온스처럼 귀하게 여겨졌다. 이처럼 땅이 귀한 루강에서 큰 집을 짓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골목의 집들이 세로로 기다랗게 도로를 향하고 있는 이유다. 한편, 모루샹이나 주치샹에서 멀지 않은 라오제(老街), 말 그대로 옛거리의 골목은 청나라 시대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장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장화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 시절, 순수의 시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란 타이완 영화가 있다. 장화를 배경으로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하이틴 로맨스다. 여주인공 션자이는 청춘영화의 공식답게 예쁘고 공부도 잘하는데, 남자 주인공 커징텅은 공부와는 담쌓은 말썽꾸러기다. 영화는 유치할 수 있어도 누군가를 사랑했던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을 떠올리게 한다. 흔히 청춘의 미숙함에 관한 영화에 빠져드는 이유다. 돌아보면 우리의 청춘은 대개 유치하고 미숙했으며 맹랑하거나 허황되지 않았던가? 

화 속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장화의 거리
영화 속 모습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장화의 거리

영화의 배경은 1990년대 중반이니 영화의 주인공들이 실제로 살았다면 이제 마흔을 훌쩍 넘겼을 것이다. 1978년생인 감독 나이도 이들과 비슷하다. 주인공들이 다닌 정성고등학교는 장화에 실제로 있다. 자전적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구파도(柯景腾) 감독 또한 정성고등학교에 다녔다. 시간이 없어 정성고등학교에 가 보지는 못했지만 커징텅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를 향해 달리던 그 고가도로만은 한눈에 알아봤다.

꼭 영화 속의 장소가 아니더라도 장화의 거리를 걷다 보면 어디선가 불쑥 션자이나 커징텅이 나타날 것 같다. 션자이와 내기에서 진 커징텅이 벌칙으로 머리를 자르러 간 곳은 미광 이발소다. 장화 거리를 걷다 보면 미광 이발소와 비슷한 분위기의 가게들을 여전히 볼 수 있다. 늦은 밤 팔괘산에 가면 대불상 주변에서 영화처럼 강시들이 통통거리며 다닐지도 모른다. 그만큼 장화의 분위기는 20년 전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션자이와 커징텅이 속마음을 살쩍 내보이며 천등을 날리는 장면이 떠오른다. 두 사람은 그때 몰랐을 것이다. 그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란 걸. 장화의 밤거리를 걷다 보면 시간은 마치 그 청춘의 시절로 회귀한 것 같다. 흘러가 버린 시절을 회상하며 두 사람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 때 날 좋아해 줘서 고마워.”
“나도, 그때 널 좋아했던 내가 좋아.”

드물게 부채꼴을 하고 있는 장화선형차고는 근대문화유산이다
드물게 부채꼴을 하고 있는 장화선형차고는 근대문화유산이다

●일본이란 오래된 사진

기관차 호텔과 서울역, 도쿄역 

장화선형차고(彰化扇形車庫)는 열두 칸의 차고를 가진 부채 모양의 차고다. 말 그대로 동그랗다. 장화가 자랑하는 근대문화유산인데 전 세계를 통틀어도 이런 선형차고는 세 개밖에 없고, 나머지 두 개는 멕시코에 있다고. 디젤, 전동기관차뿐만 아니라 증기기관차를 정비하고 수리하는 공간 또는 장거리를 운행하는 기관차의 차고 역할을 하는데 이로 인해 ‘기관차 호텔’이란 별명도 있다. 기차가 차고 쪽으로 진입하면 플랫홈은 오른쪽으로 움직이면서 안과 밖의 철로를 이어 준다. 1922년 문을 열었으니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차곡차곡 타이완 철도의 역사를 써 왔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선형차고를 만든 건 1895년에서 1945년까지 장장 50년 동안 타이완을 지배한 일본이다. 선형차고를 보니 서울역이 생각났다. 서울역은 1925년 처음 문을 열었고 남대문역으로 불리다 경성역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설계도, 시공도 일본인이 맡은 탓에 ‘작은 도쿄역’이라 불렸다. 점점 잊혀 가는 과거의 서울이다. 

 

완세이, 집으로 돌아오다

2015년에 개봉된 <완세이 백 홈Wansei Back Home>이란 다큐멘터리가 있다. 엉뚱하게도 타이완을 고향이자 파라다이스로 기억하는 일본인들 얘기다. 이들은 일본 식민지 시절 타이완에서 태어났고, 1945년 패망 후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이다. 자기가 태어난 타이완을 타의로 떠나 낯선 이국 같은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일본인 노인은 70년 후 자기가 살던 동네로 돌아와 큰 소리로 “카라오 와치하~”를 외치며 친구를 찾지만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카라오뿐만 아니라 적잖은 친구들이 이미 세상을 떠난 뒤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처음에는 일본이 자기의 과거를 참 애틋하게 포장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완세이 백 홈>을 만든 건 일본인이 아니라 타이완 사람이다. 타이완에서 태어난 일본인이 자기의 가슴 아픈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다큐를 일본 감독 아닌 타이완 감독 황명정(黄铭正)이 만들었다는 데서 나는 혼란에 빠져 버렸다. 더욱이 이 영화는 중국어권의 최고 영화제 중 하나인 타이완 금마장 영화제의 베스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작이다. 타이완 사람들에게 도대체, 일본은 어떤 나라인가?


일제가 타이완에 남긴 흔적이 선형차고뿐이겠는가? 처음 타이베이 북부를 여행하면서 한국의 간이역과 똑같은 기차역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건 타이완도, 한국도 아닌 일본 기차역 모습이다. 집과 건물도, 우체통도 일본과 비슷하다. 타이완을 여행하면 종종 일본이 겹쳐진다. 장화도 그렇다. 거리는 종종 익숙한 일본의 풍경을 생각나게 한다. 기분만 그런 게 아니다. 타일로 마감한 일본식 집과 건물은 인천에, 군산에, 목포 등지에 여전히 남아 있는 건물과 다르지 않다. 한국이건 타이완이건 식민지배의 흔적은 깊다. 아이러니한 건 일본을 대하는 두 나라의 감정이다. <완세이 백 홈>은 종전 7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로 타이완 TV에 소개되었고, 고향 타이완에 돌아간 완세이는 옛 친구를 찾아 해후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고 눈물지으며 헤어진다. <완세이 백 홈>의 주인공 아버지는 장화선형창고를 만들거나 총독부에서 일했을지도 모른다. 


일제 식민지 당시보다 더했다는 장제스의 폭정, 2·28 사건 같은 비극 때문에 타이완 사람들이 식민시대를 미화한다는 설명만으론 부족하다. 식민植民의 뿌리는 그리 깊을까. 아니면 세월이 흐른다는 건 이렇게 모든 걸 그립게 만드나? 중국의 일부로 여겨지는 ‘중화민국’ 대신 독립국 ‘타이완’이란 이름을 갈망하면서도 ‘일본’이란 과거를 간직하고 그리는 타이완 사람들의 태도는 여전히 의문이다.

바로크와 남명 건축 스타일이 결합된 루강민속박물관
바로크와 남명 건축 스타일이 결합된 루강민속박물관
뒷면에는 중국식 건물도 보인다
뒷면에는 중국식 건물도 보인다

기구한 타이완의 역사


루강민속박물관(鹿港民俗文物館)에 갔을 때도 기분이 묘했다. 건축만 보면 청나라 시기에 지어진 루강의 다른 건물과 달리 바로크 스타일 건물에 남명南明의 건축 스타일을 결합시켰다. 앞에서 보면 서양식이고 뒤에서 보면 중국식 건물도 보인다. 6,000여 점의 유물을 통해 명청 시기부터 중화민국 시기까지 종교, 의례, 축제 등에 관련된 민속뿐만 아니라 루강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  


겉만 보면 루강의 역사와 문화를 여러 유물을 통해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고, 이는 틀린 말도 아니다. 루강 최고 부호였던 구씨 가문의 저택이 박물관으로 바뀌었는데 이는 1973년 구씨 가족이 저택을 기증한데서 비롯됐다. 저택 안에 있던 모든 유물 또한 기증했다. 청나라 시기 때부터 수집해 온 의복, 보석, 악기, 가구, 책 외에도 다양한 물건이 현재까지 그대로 저택을 지킨다.

구씨 집에서 100여 년간 일상적으로 쓰던 물건들은 루강민속박물관의 최고 컬렉션으로 변신했다. 1세기에 걸친 구씨 가문의 역사는 100년 전 사업가이자 정치가인 고현영(辜顯榮)에서 비롯된다. 그는 이 거대한 부를 어떻게 축적했을까? 나는 이게 궁금했다. 그가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시절은 일본의 타이완 지배시기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의 집을 ‘모리야마 마츠노수케’라는 일본인 건축가가 지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모리아먀 마츠노수케는 1919년 이 집을 짓기 전인 1916년에 타이완문학국립박물관 건물과 대통령궁을 지을 정도의 대단한 건축가였다. 겉만 보면 고현영은 영락없는 친일파다. 

루강민속박물관에는 구씨 가문이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루강민속박물관에는 구씨 가문이 쓰던 물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데, 타이완 사람들 생각은 나와 좀 다른 것 같다. 이는 한국이나 중국 본토와는 전혀 다른 타이완의 역사적, 지리적, 사회적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작은 섬나라에 불과한 타이완은 어쩌면 근대국가의 정체성을 갖기 전부터 비독립국가로 살아 왔다. 타이완에서는 여러 차례 외부세력에 의해 권력이 뒤바뀌었다. 타이완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겪으며 일제의 지배 또한 이 같은 권력 교체의 하나로 간주했다. 자연히 저항은 적었다.

한편 중국본토에서 타이완으로 이주해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어야 했던 타이완 사람들에게는 어떻게든 부를 쌓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했고 이는 무엇보다 중요한 미덕으로 간주됐다. 고현영은 일본의 후원 하에 소금, 설탕, 아편 등의 전매권을 차지했다. 결국 타이완의 경제적 지배층은 일본과의 협조 또는 야합을 통해 정치적 지배층으로 부상했다. 일본으로선 타이완은 모범적인 ‘식민지 쇼케이스’였고, 타이완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일본’이란 오래된 사진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천후궁은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마조 사원이다
천후궁은 타이완에서 가장 오래된 마조 사원이다

●바다의 여신  천후마조 

묵묵한 그녀의 존재감

타이완은 수많은 사원을 가졌다. 사원은 마을의 중심이자 살아 있는 민속박물관으로 타이완 특유의 화려한 돌조각과 나무 장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루강은 타이완에서 두 번째로 긴 역사를 가진 타운이다. 자연히 오래된 사원이 많은데 그중 어떤 사원은 300년 이상 됐다. 타이완에서 문화적, 예술적인 경험을 원한다면 루강의 마조(媽祖) 사원인 ‘천후궁(天后宮)’을 빼놓을 수 없다.

루강의 중심 같은 마조 사원은 바다의 여신, 마조를 모신다. 마조는 ‘천후마조(天後媽祖)’라고도 불리는데 960년경 중국 동남부인 푸젠성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한 달이 지나도록 울지 않았고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아 침묵 ‘묵(默)’자를 따와 임묵랑(林默娘)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꿈속에서 물에 빠진 오빠와 아버지를 구했다는 그녀는 스물여덟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사람들은 바다 속에서 헤어진 아버지를 구하려다 기력이 다했다 믿었고, 마을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야 할 때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마조를 찾았다. 그녀는 어느 새 ‘천후마조’란 여신이 되어 추앙받기 시작했다. 

천후궁 입구의 삼천전 지붕에는 삼신이 모셔져 있다
천후궁 입구의 삼천전 지붕에는 삼신이 모셔져 있다

1725년 처음 지어진 천후궁은 루강에서 가장 중요한 사원으로 꼽힌다. 일본 식민지 시절과 중화민국 시대를 거치며 대규모로 보수되었다. 천후궁은 타이완에서도 가장 오래된 마조 사원으로 타이완의 모든 마조 사원은 이곳에서 여신을 모셔 갔다. 사방이 바다인 타이완에서 마조는 옥황상제나 북두성군, 남두성군 같은 도교의 어떤 신보다도 인기가 많다. 중국 본토인 푸젠성에서 기원하지만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급격히 쇠퇴한 본토의 마조 사원과 달리 타이완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마조 사원을 볼 수 있다. 

400년 고찰 용산사는 비를 다스리는 용신을 모시고 있다
400년 고찰 용산사는 비를 다스리는 용신을 모시고 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용산사의 격자 천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용산사의 격자 천장

아름다운 팔괘 모양의 처마 


고찰(古刹)의 바깥문을 들어서자 양편에서 큰  향나무 두 그루가 여행자를 맞는다. 명성에 비해 방문객이 많지 않다. 400년 고찰, 루강 용산사(龍山寺)는 타이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잘 보존된 사찰 중 하나다. 타이완의 3대 사찰로 꼽힐 만큼 유서 깊다. 청나라 시기 푸젠성 스타일로 지어졌는데 대개의 구조물은 1831년경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사의 ‘격자 천장(Caisson Ceiling)’은 ‘거미줄 천장’으로도 불린다.

팔괘 모양의 처마는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악령이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막는다. 격자천장은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용산사의 천장은 정교하기로 명성이 높다. 격자천장으로 지붕을 지지하는데 단 하나의 못도 쓰지 않고 나무 구조로만 유지하는 점도 독특하다. 1999년 타이완 중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크게 훼손되었으나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다. 메인 홀에는 관음보살을 모셨고, 뒤편 홀에는 용신과 바람신을 모셨다. 용선 경기대회가 열릴 때마다 사람들은 용산사에서 용신에게 기도를 드린다. 용신이 비를 다스려 사람들을 지켜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타이완에는 전부 5개의 용산사가 있다. 타이베이에서도 용산사에 갔었는데 타이베이 용산사와 달리 루강 용산사는 차분하다. 하루 중 언제 찾더라도 마음이 편해질 절집이다. 

루강 유리박물관에서는 흰 면장갑이 필수다
루강 유리박물관에서는 흰 면장갑이 필수다

유리와 거울의 향연


오로지 유리만으로 박물관을 꾸미고 사원을 지었다. 고색창연한 천후궁이나 용산사와 다르게 모던한 루강의 모습을 보여 준다. 유리 박물관에 들어서면 슬리퍼와 흰색 면장갑을 나눠 준다. 무슨 영문인가 싶었다. 슬리퍼로 갈아 신고 하얀 장갑을 끼고 안으로 들어가니 말 그대로 ‘유리방’ 같은 곳이 나온다. 유리방이니 슬리퍼를 신는 건 수긍이 되었는데 흰 장갑은 뭔가 싶다. 안을 둘러보다 알았다. 사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이곳에서 길을 찾는 방법은 손을 내젓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유리와 거울의 반사 때문에 앞이 막혔는지 뚫렸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리방은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사이버 공간 같다. 유리 박물관에선 이곳을 ‘골든 터널(Golden Tunnel)’이라 부른다. 오로지 유리와 거울, 조명으로 만든 터널이다. 박물관 옆에는 ‘유리 사원’도 있다.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유리 사원이다.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도 유리 사원(Arulmigu Sri Rajakaliamman)이 있다지만 순전히 유리로 만든 이곳과는 달리 30만 개의 모자이크 조각으로 장식했을 뿐이다.  

▶travel  info

Express Train
타이완 고속철도(THSR)

타이중 여행의 출발점은 타이완 중서부의 타이중이다. 타이중에서 기차를 이용해 손쉽게 장화나 루강으로 이동할 수 있다. 타오위안 공항에서 출발하면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다. 고속철 승차권 소지자는 각 고속철 역에서 시내로 가는 셔틀 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고속철도 예약 www.thsrc.com.tw

 

Hotel
루강 유니온 하우스 호텔(Union House)

루강에 하나뿐인 부티크 호텔이다. 마그네틱 키의 한 면에 루강의 골목길을 판화처럼 그려 눈길을 끌었는데 객실의 가운도 마찬가지다. 객실 창밖으론 그윽한 풍치의 고찰, 용산사가 내려다보인다. 욕실 천장에는 독특한 조명이 하나 있다. 목욕을 하고 샤워 부스나 욕조에서 나왔을 때 춥지 않게 따뜻한 열을 비춰 준다. 점심 메뉴로 ‘샤오츠’라 불리는 길거리 음식을 프랑스 코스 요리처럼 내온 것도 인상적이다. 부티크(Boutique) 호텔이란 바로 이런 곳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www.unionhouse.com.tw

Restaurant
버섯마을(魔菇部落)

버섯농장을 견학, 체험하고 식사에 쇼핑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 이곳에선 직접 키운 버섯이 들어간 훠거(타이완식 샤브샤브)를 먹을 수 있는데 느타리버섯이 모종 상태 그대로 나온다. 온몸을 소독하고 버섯이 자라는 시설을 둘러보았는데 버섯이 아주 단단하고 탄력 있다. 영지버섯커피와 버섯을 이용한 마스크팩도 살 수 있다. 루강 중심가에서 15km 정도 떨어졌다. www.mushrooms.com.tw

 

What to do 
타이완쿠키학원(台灣優格餅乾學院)

쿠키에 관한 공장이자 체험시설이다. 우리에게는 좀 낯설지만 쿠키를 만드는 시설을 견학하고 체험할 수 있는 ‘관광공장’이다. 마침 단체로 이곳을 찾은 고등학생들이 쿠키를 만드는 실습을 하고 있었다. 해리포터의 마법세계를 모티프로 내부를 꾸몄다. 버섯마을이나 타이완쿠키학원처럼 장화에는 관광과 산업을 결합시킨 예가 많다. 
cookieschool.com.tw

리본 뮤지엄 (Ribbon Museum)
리본을 만드는 관광공장이다. 이 세상의 모든 리본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선 끈이나 띠 모양의 온갖 물건을 만든다는 말이다. 리본을 응용한 온갖 상품을 볼 수 있고, 리본으로 꽃을 만드는 간단한 실습도 할 수 있다. 구찌, 프라다 등 많은 명품 포장에 쓰이는 리본도 여기서 만들어진다. 리본이 생산되는 과정을 둘러볼 수 있는데 촬영은 엄격히 금지된다. 리본으로 만든 거대한 벽화도 이색적이다. 
www.ribbon888.com

WIFI
타이완 각지의 정부기관, 공항, 주요 정거장과 여행지 등 3,000여 곳의 iTaiwan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다. 사전에 공항, 관광국, 지하철역, 기차역의 서비스센터에서 계정을 신청해야 한다. 

글·사진 박준  에디터 트래비 
취재협조 타이완관광청 www.putongtaiwa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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