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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를 완벽하게 보는 법

  • Editor. 김진
  • 입력 2019.01.0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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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피렌체는 로맨틱하다
냉정과 열정 사이, 피렌체는 로맨틱하다

중세 유럽의 분위기에 흠뻑 젖었다. 
르네상스가 피어난 피렌체는 어딜 가나 풍성한 이야기로 넘쳤다. 
성장이 멈춘 도시, 시에나는 과거를 고스란히 가둬 놓았다. 
도시를 걷고 마시고 먹으면서 시간이 속삭이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피렌체’라는 도시명은 아르노 강변에 꽃이 만발하여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꽃 피는 곳’이란 뜻의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플로렌티아는 프랑스어와 영어로는 ‘Florence’로 표기하며, 각각 ‘플로랑스’, ‘플로렌스’라고 발음한다. 현지 발음으로는 ‘피렌쩨’에 더 가깝다. 

아르노 강가에 자리 잡은 이 호텔은 15세기 당시 궁전이었다
아르노 강가에 자리 잡은 이 호텔은 15세기 당시 궁전이었다

걷다가 마주치는 모든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지나쳤던 모든 것에 의미가 있었다. 
이야기가 많아서 나는 누군가에게 종알종알 떠들고 싶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더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고, 
책을 찾아 읽게 하는 여행이었다. 

 

●15세기 궁전에 머무르는 일 


피렌체에서 걷다 보면 르네상스의 유산이 툭툭 튀어나온다. 이런 경험은 놀라움을 넘어 때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역사와 유산이 삶과 동떨어져 있지 않고, 또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은 피렌체 사람들에게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호텔은 아르노 강변에 자리했다. 눈에 띄지 않는 다소 평범한 외관이지만 들어서는 순간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검은색 롱코트를 입고 챙이 짧은 검은 모자를 눌러쓴 중년의 도어맨이 무거운 회전문을 열어 주는데, 낮은 음성의 정중한 영어 인사는 귀족의 궁전에 초대받은 기분을 느끼게 했다. 버틀러와 함께 방으로 향했다. 

“이 호텔은 얼마나 오래되었나요?”
“1432년에 완공되었고 귀족가문인 기온티니의 궁전이었습니다. 1866년에 호텔로 바뀌었지요.”


어쩐지. 궁금증은 명쾌하게 해소됐다. ‘세인트 레지스 플로렌스’로 명명된 호텔은 피렌체 두오모 돔을 건축한 브루넬레스키의 작품이라고 했다. 호텔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몇 군데는 손을 봤겠지만 르네상스 건축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서 머무르는 내내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머리가 새하얀 할머니 하우스키퍼는 또 얼마나 귀여운지. 푸근한 인상의 그녀는 프릴이 달린 앞치마를 하고 은쟁반을 들고 총총총 걸어 다녔다. 화려한 샹들리에 아래서 르네상스 시절의 피렌체를 상상해 봤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피렌체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작품이다. 베키오 광장뿐 아니라 미켈란젤로 광장에도 복제품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은 피렌체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작품이다. 베키오 광장뿐 아니라 미켈란젤로 광장에도 복제품이 있다

 

●다비드 상을 제대로 감상하는 법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은 르네상스 예술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메디치 가문의 사무소였고 피렌체 공국의 행정국 역할을 했던 곳이라 사무실을 뜻하는 ‘우피치(Uffizi)’가 붙었다. 가장 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작품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책에서 보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와 미켈란젤로의 ‘성가족’을 마주하니 경이롭기까지 하다.   


우피치 미술관은 루브르나 대영박물관에 비교하면 규모가 작지만 역사적 의미는 남다르다. 약탈품을 가져와 전시한 대형 박물관들과 달리 우피치 미술관은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에서 탄생한 미술품을 그대로 보존했다는 점에서 적어도 제국주의적이지 않다. 메디치 가문 역시 그들이 수집했던 작품을 그대로 우피치에 남겼다. 피렌체를 메디치와 떼어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베키오 궁전(Palazzo Vecchio) 앞에는 다비드상 레플리카 즉, 복제품이 서 있다. 진품은 아카데미아 박물관에 전시돼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보는 것은 광장에 전시된 복제품이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게끔 제작된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로우 앵글로 다비드상을 찍었더니 동행한 친구가, “다비드상을 그런 각도로 찍는 사람은 언니뿐”이라며 깔깔거리며 면박을 줬다. 나중에 보니 매우 기괴한 사진으로 남았다. 다비드상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15m쯤 떨어져서 올려다보는 것이란다. 그러면 조각상의 균형이 완벽하다.

두오모는 피렌체의 중심이지만 지배적이거나 권위적인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두오모는 피렌체의 중심이지만 지배적이거나 권위적인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피렌체의 모든 길은 두오모로 통한다


피렌체의 모든 길은 두오모로 통한다고 할 만큼 두오모는 찾기가 쉽다. 게다가 붉고 둥근 지붕을 쑥 내밀고 있어서 어디에서나 방향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피렌체 두오모의 본래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Santa Maria del Fiore)’이다. ‘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라는 뜻이다. 외관은 흰색, 분홍색, 녹색의 세 가지 대리석으로 장식돼 화려하고 우아하다. 성당 내부는 생각보다는 검소하다. 별다른 장식이 없고 미켈란젤로의 제자 바사리가 스승의 그림을 본뜬 ‘최후의 심판’이 천장에 거대하게 그려져 있다. 

얀 대리석과 분홍색, 초록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두오모
하얀 대리석과 분홍색, 초록색의 조화가 아름다운 두오모

피렌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는 두 군데다. ‘조토의 종탑’과 두오모 돔인 ‘큐폴라’다. 조토의 종탑으로 오르는 계단은 414개, 큐폴라는 464개다. 도전하듯 무거운 배낭을 메고서 두 군데를 연이어 올라갔지만 권하고 싶지는 않다. 육상선수의 종아리를 갖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두오모의 큐폴라는 두터운 내벽과 상대적으로 얇은 외벽으로 이뤄져 있고 그 사이는 빈 공간으로 되어 있다. 그 틈새에 설치된 좁은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만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모든 고생이 한순간에 잊힌다. 큐폴라에 오르니 피렌체 거리가 방사선으로 펼쳐졌다. 붉은 지붕이 촘촘하게 지평선까지 이어지니 꽃의 도시라는 말이 와 닿았다. 


경쟁도시 시에나가 대성당을 완성하자 피렌체는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작은 성당을 밀어 버리고 화려한 성당을 짓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두오모의 시작이다. 


성당 몸체는 다 지었지만 피렌체 사람들은 색다른 형태의 지붕을 원했다. 큐폴라는 지름이 45m나 되는데, 이렇게 거대한 돔 형태의 지붕을 만들 만한 기술력을 가진 사람은 그 당시 아무도 없었다.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는 1420년부터 1436년까지 수많은 반대와 의심을 무릅쓰고 큐폴라를 완성했고 그 건축 과정은 두오모 박물관(Museo dell’Opera del Duomo)에 가면 이해하기 쉽게 전시돼 있다.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명소다
베키오 다리는 피렌체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명소다

●아르노 강의 낭만, 다리


피렌체에는 사랑이 서린 다리가 있다.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베키오 다리’다. 베키오 다리의 이탈리아 이름은 ‘폰테 베키오’. ‘오래된(Vecchio) 다리(Ponte)’라는 뜻이다. 베키오 다리가 아르노강 양쪽을 연결하는 다리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베키오 다리는 여느 다리에 비해 생김새가 독특하다. 단순히 아르노강의 좌우를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리 좌우에 보석 상가가 가득해서 다리를 건너다 보면 다리라기보다는 빽빽한 상점가를 지나는 기분이 든다.

다리 한가운데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금세공 예술가인 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이 놓여 있어 다리의 품격을 높여 준다. 흉상 주변으로는 사랑을 약속하는 수많은 자물쇠가 촘촘히 달려 있다. 여기도 사랑의 이야기가 담겼다. 피렌체 출신의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베키오 다리에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단테는 첫사랑 베아트리체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랑의 시를 썼고 <신곡>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이상적인 여성으로 표현했다. 


*두오모 통합권
대성당과 큐폴라, 조토의 종탑, 산 조반니 세례당, 두오모 박물관, 지하예배당을 72시간 이내에 둘러볼 수 있다.
요금: 18EUR


▶피렌체를 기억하는 세 단어 
메디치, 르네상스, 두오모

피렌체와 가장 각별한 단어를 꼽으라면 ‘메디치’, ‘르네상스’, ‘두오모’일 것이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시기에 대한 의견은 다르지만, 르네상스가 태어난 장소가 피렌체라는 데에는 전문가들도 이견을 내세우지 않는다. 르네상스를 선도한 인물들은 거의 피렌체와 그 인근 출신이라는 점도 놀랍다. 단테, 브루니 같은 문학가, 보티첼리 같은 화가, 브루넬레스키와 같은 건축가뿐만이 아니다. 레오나르도와 미켈란젤로같이 한 분야로 규정하기 어려운 천재 거장도 여럿이다.

 
르네상스 시대라고 하면 이런 예술가만 생각하기 쉽지만 이들의 뒤에는 그들을 후원했던 상인들이 있었다. 피렌체 르네상스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먹을 수 없는 것이 15~17세기 메디치 가문(Medici Family)이다.

메디치가는 피렌체 공화국의 평범한 중산층 가문이었지만, 고리대금업으로 시작해 은행업, 부동산 투자와 다양한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해 유명해졌고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의 정치, 경제, 종교를 쥐락펴락했다. 교황청 자금의 유통을 맡을 정도였으니 메디치가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개인적으로만 쓰지 않고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다는 점은 메디치가가 지금까지 좋은 평가를 받는 가장 큰 이유다.

가우디가 오늘날 위대한 건축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 후원자 ‘에우세비 구엘’을 빼놓을 수 없듯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부르넬레스키, 마키아벨리 같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메디치가의 후원 덕분이었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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