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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CRAFT] 초음속 여행 시대는 어쩌다 망했을까?

  • Editor. 유호상
  • 입력 2019.02.01 15: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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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전 이미 우리는 초음속 여객기 시대를 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작품, 콩코드로 상징되는 초음속 여행 시대. 
그런데 정작 첨단 기술 시대인 오늘날에는 초음속 여객기를 볼 수 없다. 왜 사라졌을까?

“오, 인류여…” 불타 오르며 떨어지는 비행선 힌덴부르크(Hindenburg)호를 바라보며 내뱉었다는 시카고 라디오 모리슨 기자의 탄식이다. 1937년 5월6일, 비행선 시대가 종말을 고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63년 후, 시대의 아이콘 콩코드가 이륙 중 불 붙은 채 추락한다. 초음속 여행 시대의 마감이었다. 묘한 기시감이 느껴진다.

 

●이름부터 족쇄, ‘콩코드’

놀랍게도 콩코드는 1962년에 이미 구상 중이었다. 1976년 정식 운항을 시작했을 때 음속의 2배로 나는 여객기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신문 1면 톱 거리다.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획기적인 기술의 결정체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지금이야 미국이 항공 산업을 주도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과거 항공 기술의 요람은 유럽이었다. 세계 최초의 제트 여객기 코멧(Comet)을 선보인 곳도 영국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여객기 시장은 미국이 ‘싹쓸이’를 하고 있었다. 위기의식을 느낀 유럽은 시장을 탈환하고 자존심을 세워 줄 ‘히든카드’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한 발 앞선 기술력과 빠른 속도를 갖춘 초음속 여객기였다. 문제는 이러한 여객기의 개발이 한 나라의 역량만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는 점. 그래서 영국과 프랑스가 뭉쳤다. 미국 역시 초음속기를 개발하려다 중도 포기할 정도로 (이때의 부산물이 보잉747 점보기다) 위험 부담이 큰 사업이었다.

 
어느 한쪽이 중도 포기하지 못하도록 큰 위약금까지 걸었고, 비행기 이름도 ‘화합’을 의미하는 콩코드(Concorde)로 정했다. ‘배신하면 알지?’ 서로에게 주는 무언의 경고(?)였다. 


이들을 옥죈 ‘부담’이란 무엇이었을까? 기술적 난제는 아니었다. 당시 영국은 이미 초음속 폭격기의 엔진과 핵심 기술들을 확보한 상태였다. 문제는 막대한 개발비였다. 당초 계획보다 6배 이상 늘어난 개발비는 기획자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1977년 기준으로 비행기 한 대의 가격이 2,300만 달러까지 올랐는데, 당시 최신 전투기(예나 지금이나 전투기 값은 상상 초월의 고가다) 한 대가 약 300~350만 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혈압이 오를 만한 일이다. 설상가상으로 1973년 석유파동으로 기름 값이 두 배 넘게 치솟으면서 항공사들은 빠르게 나는 콩코드에 흥미를 잃고 승객을 많이 태울 수 있는 보잉 747기로 눈을 돌리게 됐다.

 

●늘어나는 ‘폭망’의 요인들

 

런던/파리- 뉴욕간 2시간 대 비행! 콩코드의 파격적인 목표였다. 음속의 2배 속도로 ‘순항’하는 여객기란 당시로서는 경이로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콩코드는 그야말로 돈 먹는 하마였다. 가장 큰 ‘공신’은 엔진. 제트엔진과 팬을 결합시켜 연비도 좋고, 소음이 적은 터보팬(Turbofan) 엔진을 당시에는 공기저항 때문에 쓰지 못했다. 연비가 최악이지만 길쭉한 터보제트(Turbojet) 엔진을 쓸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효율이 떨어지는 엔진으로 순항하기 위해서는 공기가 희박한 6만 피트의 고공(일반 여객기는 3만 피트)까지 올라가야 했으니, 그야말로 기름을 벌컥벌컥 들이키는 항공기였다. 


변형 삼각 날개와 가늘게 설계된 동체는 공기 저항만 줄여 준 것이 아니라 수용 가능한 승객의 수와 연료 탑재 공간도 ‘획기적으로’ 줄여 버렸다. 덕분에 승객들은 일등석만큼의 비용을 내고도 이코노미석 수준의 공간을 제공받았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환경 문제였다. 초음속 돌파시 생성되는 소닉붐(Sonic boom)*과 엔진 연소시 발생 물질이 오존층을 파괴했다. 이 때문에 콩코드는 육지 위로 비행이 허가되지 않았고, 오로지 바다 위로만 날아다녀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또 하나의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7,000여 킬로미터라는 콩코드의 짧은 비행 거리가 그것이다(참고로 B747은 1만~1만4,000km 사이를 비행한다). 대서양 횡단 거리는 6,000km 이하였기에 가능했지만, 이보다 훨씬 긴 태평양 횡단(도쿄-LA 사이는 약 9,500km다)은 불가능했다. 런던/파리-뉴욕 노선 외에는 사실상 다닐 곳이 없었다. 비싼 돈을 들여 콩코드를 만들었지만 판매가 저조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마지막까지 생산된 총 20대의 콩코드 중 6대의 시제기를 뺀 14대의 콩코드를 구입한 항공사는 영국항공과 에어프랑스(각 7대씩)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래저래 높아진 원가는 자연스레 비싼 티켓 가격으로 메워야 했다. 초창기에는 호기심 많은 부유층 또는 분초를 다투는 백만장자 사업가, 할리우드 셀럽들이 탑승했지만, 대중들에게는 거리가 먼 비행기였다. 그래도 30년 무사고 신화를 기록해 왔던 콩코드(에어프랑스 4590편)가 2000년 7월, 이륙 중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면서 그 기록도 깨지고, 내리막길이 시작되었다. 당시 사고의 원인이 기체 결함은 아니어서 운항을 재개했지만, ‘불이 붙은 채 추락하는 콩코드의 모습’은 사람들의 뇌리에 깊게 박혀 버렸다. 안전에 대한 불신이 생기자 결국 3년 후 콩코드는 완전히 퇴역하고 말았다. 아쉽지만, 초음속 여행 시대는 대중화되기도 전에 그렇게 막을 내렸다. 콩코드의 실패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분명한 것은 어떤 ‘명분’을 위해 경제논리를 거슬러 진행했던 사업의 한계를 보여 주고 말았다.

 

●초음속 여행의 꿈은 이대로 끝?

초음속 여행시대가 영영 끝나 버린 것은 아니다. 차세대 초음속기는 다시 개발 중이다. 미국과 유럽에서 구상 중인 것을 보면 일단 크기가 비즈니스 제트기 수준으로 작아졌다. 핵심은 ‘경제성’이라는 교훈을 확실히 얻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스파이크 S-512의 경우 12~18인승 규모이고, 역시 미국의 붐테크놀로지가 구상하는 기종은 50인승 규모다. 연비 향상을 위해 엔진뿐 아니라 공기 역학적 디자인과 경량화 등에 집중하고 있다. 운임 또한 현재의 비즈니스석 수준이 목표다. 빠르면 2020년대 중반에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본항공(JAL)이 이곳에 투자하여 20대를 사전 주문할 수 있는 우선권을 가지고 있다. 


1903년 라이트형제가 플라이어호를 타고 처음 동력비행에 성공한 이래 불과 100여 년 동안 항공기술은 놀랍게 발전했다. 하지만 초기의 급격한 발전에 비하면 최근 체감하는 기술적 진보는 더딘 느낌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결국 돈이다. 과거에는 비용과 상관없이 눈에 띄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환경, 즉 전쟁과 체제 경쟁이란 것이 있었다. 지금은 실리가 중요한 경제전쟁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축적되어 오던 기술이 한 단계 도약하여 초음속 여행 시대를 부활시킬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서울에서 유럽까지 당일치기 여행? 그리 먼 미래의 이야기는 분명 아닐 것이다. 
 

*소닉붐(Sonic Boom) 비행기가 음속을 돌파할 때 기체 앞에서 압축되었던 공기의 충격파가 파장의 형태로 지상에 부딪힌다. 이때 천둥과 같은 큰 소리와 진동을 내는 현상이다.


글 유호상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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