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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러난 전통주의 맛

경상도편

  • Editor. 오윤희
  • 입력 2019.02.01 16:04
  • 수정 2019.02.12 14: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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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술 향이 퍼지는 고택, 도가, 산성을 아빠와 함께 여행했다. 
깊은 맛의 비결은 시간의 숙성에 있었다.

●500년 고택의 시간을 품다
함양 명가원

아빠_술마다 기품이 넘치는구나. 천년 소나무 숲의 기운이 그대로 담겨 있어.
딸_솔송주가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유죠. 은은하게 퍼진 소나무향이 압권이에요.

소나무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고택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어디선가 본 듯싶다 했더니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고애신(김태리 역)이 살던 집, ‘일두고택(一蠹古 宅)’이었다. 함양 개평한옥마을에 자리한 명가원은 하동 정씨 집안 대대로 500여 년이 넘게 가양주(집에서 빚는 술)를 빚어 온 곳이다. 현재 박흥선 대한민국 식품명인이 그 전통을 이어 술을 빚고 있다.

명가원의 술은 ‘솔송주’와 ‘녹파주’ 그리고 ‘담솔’이다. 솔송주는 지리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에 품질 좋은 햅쌀과 솔잎, 송순을 넣어 만든 술로 무형문화재 35호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름처럼 솔향기가 워낙 일품이라, “향만으로도 취한다는 말이 정말이네!”라며 아빠와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려시대 선비들의 고급약주로 사랑받았다는 녹파주와 솔송주를 2년간 저온 숙성시킨 담솔도 놓치지 말아야 할 명가원의 자랑거리. 모든 제품은 일두고택 앞 솔송주 문화관에서 시음 가능하고, 체험 프로그램(10인 이상 예약시)도 운영되고 있다. 아무래도 발길을 돌리기 아쉽다면 일두고택에서 하룻밤은 어떨까? 달빛 아래 툇마루에 앉아 솔송주 한 잔과 함께하는 한옥스테이는 상상만으로 취한다.

주소: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창촌길 3  
오픈: 매일 09:00~17:00(공휴일 휴무)
전화: 055 963 8992 
홈페이지: www.mgwkorea.com


●엄마 손맛이 듬뿍  
울산 복순도가

아빠_아들이 만든 양조장에 어머니 이름을 땄다니. 가족의 정이 넘치는구나.
딸_막걸리가 곱게 옷을 차려 입었다고 해야 할까요? 평소 마시던 것과 다르네요. 

아빠와 함께 전국 술 여행. 이만하면 꽤 괜찮은 효도인가 싶어 살짝 자만했더니 다시 반성모드다. ‘복순도가(福順都家)’라는 양조장 이름은 아들이 술 빚는 어머니 박복순 여사의 이름을 붙여 지었다니 말이다. 건축을 전공한 첫째 아들이 추수한 후 남은 볏짚을 태워 벽을 만들었고, 지금은 아버지와 둘째 아들까지 온 가족이 함께 양조장을 꾸려 가고 있다. 포부도 짱짱하다. 작은 시골마을인 울주군에서 시작했지만, 술맛으로 도시 사람들과의 교감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운영한다고. 실제로 온라인에서 복순도가의 술이 인기인 걸 보면, 그 바람이 충분히 실현되고 있는 듯하다. 

복순도가의 술은 울주 쌀로 빚어 저온에서 장기 숙성한 손막걸리. 신선하면서도 청량한 천연 탄산감이 특징인데, 사과 꽃 같기도 하고 복숭아 향 같기도 한 달달한 맛이 난다. 2019년 올해, 복순도가는 탁주와 청주를 준비 중이라고. 방문객들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과 발효 화장품 3종 세트까지 선보이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복순도가의 술은 부산 F1963과 서울 서촌차고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향산동길 48  
오픈: 매일 09:00~18:00  
전화: 1577 6746  
홈페이지: www.boksoon.com


●누룩과 정성이 비결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

아빠_주민들이 일구어 온 막걸리라니, 그 자체가 역사라고 해도 무방하겠구나.
딸_쌀막걸리의 중독성 있는 맛은 누룩에서 오는 것이었군요.

부산으로 향하는 길, 아빠가 스포일러를 하신다. 우리나라 가장 큰 산성인 금정산성을 축성하던 일꾼들이 마시던 술이 바로 금정산성 막걸리라며. 금정산성 막걸리는 1970~80년대 주세법으로 술을 빚기가 어려웠던 시절, 대통령령 9444호로 단독 허가를 받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1, 2공장으로 이루어진 양조장은 현재 대한민국 명인 49호 유청길 대표가 운영해 가고 있다. 

쌀막걸리 맛의 비결은 단연 누룩이다. 국내 유일하게 남은 누룩마을인 금정산성 마을에서 지금도 여전히 전통 방식 그대로 직접 발로 디딘 누룩만을 사용한다. 대한민국 민속주 1호로 지정된 쌀막걸리는 그 자체로 유산이다. 산성길을 따라가면 등장하는 박물관도 마찬가지. 유 대표는 이제는 보기 힘든 옛 농기구와 양조장 물품들을 한데 모아 자그마한 박물관을 꾸렸다. 매년 음력 7월7일, 박물관 앞에서 축제도 연다는데, 우리 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무료로 금정산성 막걸리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취지에서란다. 자고로 술이란 함께 마셔야 제 맛이라는 걸 모를 리 없는 그다. 

주소: 부산광역시 금정구 산성로 453 
오픈: 매일 09:00~18:00
전화: 080 9000 5858  
홈페이지: www.sanmak.kr

 

*트래비스트 오윤희는 전국 방방곡곡 우리 술 양조장을 탐하기 시작했다. 수제맥주 취재에도 종종 함께하곤 했던 ‘볼빨간’ 동행, 그녀의 아버지를 벗 삼아.
인스타그램 sool_and_journey

*트래비스트 김정흠은 일상처럼 여행하고, 여행하듯 일상을 살아간다. 아빠와 딸이 전통주를 찾아 전국을 누빈다기에 염치없이 술잔 하나 얹었다. 사진을 핑계로.
인스타그램 sunset.kim

 

글 오윤희  사진 김정흠  에디터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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