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설희의 GO BACK] 600년 전 그 날의 서울
[최설희의 GO BACK] 600년 전 그 날의 서울
  • 최설희
  • 승인 2019.02.0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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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

익숙한 종로를 새롭게 거닐어 본다.
서울의 시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 있는 목조지도. 조선시대 한양도성을 한눈에 볼 수 있다

▼Go Back to 종로 여행 코스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 ▶ 청진동 시전행랑 터(교보문고 옆) ▶ 중학천 ▶ 피맛골 ▶ 조선시대 우물 ▶ 청진동 시전행랑 터(1호선 종각역 옆) ▶ 의금부 터 ▶ 공평도시 유적전시관

 

“좀 식상하지 않을까?” 작년 연말, 대뜸 종로를 여행하자는 남편의 제안이 의아했다. 물론 궁궐과 동상이 많긴 하지만, 익숙하게 다 아는 것들이 아닌가. 그러나 10년 넘게 종각역 근처로 출퇴근을 해온 그는 나름의 내공을 내비쳤다. “광화문사거리에서 종각역까지 조선시대 시전행랑 터가 대거 남아 있어. 하천의 흔적, 기념비, 우물, 전시관도. 평소 그냥 지나치기 바빴을걸.” 그러고 보니 늘 대형서점, 카페, 음식점을 찾아가는 데만 급급했으니까. 놓치고 있었던 서울 역사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찾아 나서 보는 게 어떻겠냐는 남편의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우리의 종로 여행은 5호선 광화문역 4번 출구 앞에 위치한 고종즉위40년칭경기념비에서 시작됐다. 칭경기념비는 1902년 고종 즉위 40년,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황제 칭호를 쓰게 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돌거북 위에 세워진 비석의 앞면에는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의 글이 새겨져 있다. 울타리 밖에서 바라보는 비석은 겨우 존재 여부만 알 수 있을 정도로 멀찍이 있지만 1902년, 그 어느 해보다 고종의 야심이 절정을 이뤘던 해를 빛내고 있다. 즉위 40주년 기념행사를 국제행사로 개최해 대한제국을 문명제국으로 만들려던 그의 계획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당당했던 그의 포부만은 문화유산으로 남았다.

5 교보문고오른쪽에 위치한 시전행랑 터
교보문고 오른쪽에 위치한 시전행랑 터

칭경기념비를 지나 교보문고 건물 입구 오른쪽으로 가면 종로 청진 2, 3지구 시전행랑 터가 자리하고 있다. 시전이란 조선시대 당시 지금의 종로를 중심으로 설치된 ‘어용상설시장’, 즉  왕실과 국가의식의 수요품을 공급하던 상점들이 섰던 장소였지만, 서민들의 일상 생활용품도 취급했다고 하니 규모가 꽤 컸을 것이다. 땅 밑에 깔린 터를 볼 수 있도록 한 투명한 바닥을 무심코 지나기만 했었는데. 이번만큼은 시선을 아래로 두고 행랑터와 벽에 쓰인 설명을 꼼꼼히 살펴보며 걸었다. 그동안 분주히 오갔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나마 상상해 본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활기차다.

물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중학천 시작점이 보인다
물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중학천 시작점이 보인다

시전행랑 터에서 디타워 방향으로 불과 몇 걸음 내딛으니 청계천 가운데 중학천이 보인다. 조선시대 청계천을 지탱하는 하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하천이었던 중학천은 길이가 2.4km에 달했지만, 1957년 도시정비를 목적으로 복개된 이후 지금은 물길의 흔적만 남았다. 하천 옆길을 천천히 거닐다 보면 옛 축대 일부를 발굴해 보존해 놓은 곳도 볼 수 있다. 


중학천에서 다시 길을 건너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에 다다르면 피맛골 간판이 등장한다. 고위관료를 피하기 위해 서민들이 모여들었던 뒷골목, 피맛골에는 작은 장국밥집과 주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아무리 비좁고 허름한 공간일지라도 서민들에게 더없이 편했을 안식처였을 터. 낡고 허름한 가게들은 재개발로 모두 사라졌지만, 지붕 아래 옹기종기 모인 가게들은 예전 피맛골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 르메이에르 종로타운과 그랑서울을 지나면 어느덧 종각역. 역 주변으로는 교보문고 건물 주변에서보다 훨씬 더 규모가 큰 행랑터가 전시되어 있는데, 이 일대에 약 2,000여 개의 점포가 있었다고 한다. 화재 방지와 식수 확보를 위해 만들어진 우물터와 조선시대 의금부(양반 윤리에 관한 범죄를 담당하던 사법기관)가 있었던 자리도 확인할 수 있다. 

물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중학천 시작점이 보인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유구 중 ‘전동 큰 집’을 복원한 모형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는 일부 집터를 온전히 보존했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는 일부 집터를 온전히 보존했다

그랑서울 맞은 편에 위치한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은 종로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탁월한 선택이다. ‘한양의 골목에서 조선을 보다’라는 부제가 붙은 전시관에는 지금까지 보았던 청진동 일대의 조선시대 흔적과 공평동 일대를 재개발하는 과정, 조선 한양에서 근대 경성에 이르기까지,서울의 골목길과 건물터를 온전하게 보존해 놓았다. 남아 있는 유구(옛 건축물의 흔적)를 위쪽으로 5.9m, 왼쪽으로 2.3m 옮겨 전시관 내부에 복원했다. 4대문안 대형 목조지도, 이 지역 유적 발굴시 전시관 조성과정과 당시 건축물 모형, 4대문안 시전의 확장과정 등을 각종 시청각자료를 통해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눈여겨 본 적은 없었는데. 유적지가 정말 많았구나.” 하루의 끝, 남편은 어느새 시간여행에 푹 빠져 있었다. 크리스마스 무렵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종로를 메우고 있다. 목적은 달라도 우리 모두는 한곳에 서 있다. 서울의 600년이 파노라마처럼 깔렸다. 

공평도시유적전시관
주소: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26
오픈: 매일 09:00~18:00(월요일 휴무)
입장료: 무료


*최설희는 소중한 사람과 함께라면 소소한 여행지에서도 얼마든지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믿는 여행자다. 홍보 관련 일을 하다가, 남편의 발령으로 4년간 싱가포르에 머물렀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 싱가포르>를 펴냈다.

 

글·사진 최설희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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