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에 펼쳐놓은 이야기, 코히마(Kohima)
언덕 위에 펼쳐놓은 이야기, 코히마(Kohima)
  • 차민경
  • 승인 2019.02.07 13: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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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인도의 얼굴, 나갈랜드

멋진 궁전을 생각했지만 울창한 밀림이었다.
짙은 쌍커풀 대신 외꺼풀의 갸름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밤이 되면 골짜기에 십자가가 빛났다.
인도였지만, 인도가 아니었다. 

자카마(Zakhama) 마을의 사람들.
나갈랜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보았다.
사람들은 공동 우물에서 머리를 감고,
나무를 때서 요리하며 산다

코노마를 돌보는 사내
도비피 인(Dovipie Inn) 네이케돌리 헤카(Neikedolie Hiekha) 사장

도비피 인은 이번 인도 여행에서 가장 오지에 있었던 숙소다. 그날, 코노마의 유일한 호텔이었던 도비피 인에는 단 세 명의 투숙객이 있었다. 미국인 여행객 한 명과 우리. 말총머리를 한 미국인 여행객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휘리릭 사라졌다. 레스토랑은 우리의 독차지였다.

나갈랜드에서의 마지막 날을 그냥 보내긴 아쉬워 아주 천천히 저녁을 먹었고, 저녁을 다 먹은 뒤에는 가이드 에이프릴이 사다준 전통 술 케아(Kha)를 나눠 마셨다. 나갈랜드는 술을 마시는 것을 부끄러워 하는 문화라 쉽게 살 수 없어 아주 귀하게 구한 것이었다. 쌀을 발효해 만든 케아는 막걸리와 비슷한 쿰쿰한 냄새가 났다.

곧이어 합류한 게스트는 호텔 주인 네이케돌리 헤카였다. 그렇다면 정확히 누가 게스트인가? 네이케돌리 헤카는 시골의 험한 일을 거뜬히 해낼 것 같은 다부진 몸을 가진 젊은 청년이었다. 나갈랜드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대도시인 코히마에서 교육을 받고, 코노마에 정착했다고 했다.

“호텔도 운영하지만, 코노마의 관광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하고 있어.” 저녁에 보았던 전통 공연도 직접 기획해 만들었고, 때로는 여행사 역할도 한다고. “코노마는 아름답기도 하고 대도시와 달리 조용하고 평화롭지. 누구든 온다면 좋아하게 될 거야.” 맑고 선명한 눈빛에서 자부심이 초롱거렸다. 맞다. 반나절 만에 코노마에 반한 사람이 이미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주소: Phetsu Kiku, T.Khel, Khonoma
홈페이지: www.dovipieinn.com

 

우리에게는 꿈이 있지
가이드 에이프릴

에이프릴은 코노마에서 나고 자랐다. 코노마 언덕을 내려다보면 눈에 띄게 좋은 집이 몇 채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에이프릴의 집이다. 이혼한 누나, 누나의 딸이 얼마 전부터 같이 산다. 서른 중반의 에이프릴은 20대 중반부터 가이드 일을 시작해 인도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장난기가 많은 에이프릴이 딱 한 번 아주 진지해졌던 때가 있었는데, 코히마에서 코노마로 이동하던 어느 길목에서다. 산 허리를 지나던 중 뜬금없이 거대한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 차를 세운 에이프릴은 비석에 새겨진 문구를 읽으며 나갈랜드를 이해하려면 이걸 꼭 알아야 한다고 했다. ‘우라 우비에(Urra Uvie).’ ‘나의 땅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에게 속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인도 사람들과 다른 민족이고, 우리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실제로 나갈랜드는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쉽게 병합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인도가 1947년 독립한 이후 16년이 지난 1963년이 되어서야 나갈랜드가 인도에 편입됐고, 이후엔 분리독립 운동 때문에 유혈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인도 중앙정부의 관리 감독 때문에 지금은 예전만큼 분리독립 운동이 활발하진 않지만 여전히 불꽃은 남아 있는 상태다. 에이프릴은 비석의 우라 우비에 문구를 동그랗게 둘러싼 또 다른 문구(Khunak Ngeu Khum)에도 뜻이 담겨 있다고 했다. 나가족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고 알려주지도 않는다고. 에이프릴은 비장해 보였다. 

산봉우리를 따라 따개비 군락처럼 집들이 들어섰다. 대도시인 코히마에는 그래도 시멘트 건물이 많은 편이다

 

나갈랜드 코히마 Kohima 

●수탉이 아침을 깨우는 도시


코히마(Kohima)에서는 새벽 다섯시면 어김없이 수탉이 운다. 몇 초 간격으로 밤을 찢고 아침을 부르려는 듯 울어젖히는데, 그 소리를 핑계 삼아 개들도 짖기 시작하고 자동차 엔진도 붕붕 울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길 위에 가라앉았던 흙 먼지가 구름처럼 일기 시작하면 이 도시가 깨어나는 것이다. 


일찍 일어났다. 항상 어리둥절한 표정의 호텔 직원이 몸을 씻을 뜨거운 물을 가져다주기로 한 시간은 일곱시. 원래 일어나고 싶었던 시간보다 두 시간이 일렀다. 추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웅크린 자세에서 발이라도 뻗을라치면 얼어붙은 호수에 뛰어드는 것마냥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코히마의 시내 중심가. 길은 좁고 통행량은 많다
코히마의 시내 중심가. 길은 좁고 통행량은 많다

영상 10도 안팎의 겨울을 겪는 도시 치고는 아무런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숙소였던 우라호텔(Hotel Ura)은 나름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코히마에서 5순위에 든다는 호텔이었다. 허술한 건물은 방 안 가득 냉기를 뿜어내고 있었고, 욕실 온수기는 구색 맞추기용, 손잡이를 어느쪽으로 돌려도 찬물만 흘러내렸다. 방 안에 유일한 난방기는 토스트기만 한 발난로였다. 딱 식빵 크기만큼 따뜻했다. 


어젯밤 호텔에 도착해 아침에 씻을 따뜻한 물을 부탁해 놓은 게 다행이었다. 호텔 직원은 온수가 안 나오는 줄 알고 있었던지 멋적은 표정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한참 고치는 시늉을 했다. 홍조를 띤 것을 보니 본인도 추운 모양이었다. 스물이나 됐을까? 앳된 얼굴에 우리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은 눈치였다. 아침 여섯시 오십분부터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발소리가 나기 시작했고, 일곱시 정각이 되자마자 똑똑 노크 소리가 났다. 


직원은 무릎 높이만 한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반쯤 채워 왔다. 찬물을 섞어 물 온도를 맞추고 욕실 바닥에 쪼그려 앉아 바가지로 물을 퍼서 씻었다. 샴푸는 겨우 했지만 린스와 바디워시는 포기했다. 그래도 대야 반절만큼의 온기가 너무 감격스러워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나갈랜드에서는 씻는 일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길거리로 나서자마자 뿌연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되니까. 나갈랜드주 대부분의 길은 비포장이다. 나갈랜드에 접한 마니푸르주의 임팔공항(Impal Airport)에 내려서 여정을 시작해 모든 여정을 마치고 디마푸르공항(Dimapur Airport)에 닿을 때까지 흙먼지가 숙명처럼 따라다녔다.

나갈랜드는 전체 주민의 98%가 기독교를 믿는다. 한밤에 코히마 시내를 훑어보면 십자가가 드문드문 빛나고 있다
나갈랜드는 전체 주민의 98%가 기독교를 믿는다. 한밤에 코히마 시내를 훑어보면 십자가가 드문드문 빛나고 있다

나갈랜드주의 가장 큰 도시 코히마라고 다르지 않다. 코히마에서 이틀을 머무르는 동안 달렸던 포장도로를 다 잇는다고 해도 거짓말 조금 보태 채 1km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언덕에서 코히마를 바라다보면 누르스름한 모래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있다. “길이 안 좋지? 지금 도로를 넓히고 포장하는 공사를 하고 있어.” 가이드 에이프릴이 말했다. 몇 개의 산 봉우리, 길게 이어진 능선을 따라 규칙 없이 촘촘하게 이어진 코히마의 길을 헤아려 봤다. 코히마만 해도 우리나라 청주시 인구(83만명)을 넘어서는 90만명이 사는 대도시다. 나갈랜드 전체는 충청남도 인구(212만명)보다 많은 220만명이 산다. 당분간은 도로가 포장되길 기다리는 것보다 좋은 마스크를 쓰고 오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갈랜드의 마을들은 산 꼭대기에서 시작돼 아래로 번진다. 코히마만 해도 해발 2,000m 높이다. 부산의 산복마을처럼 생겼다. 산등성이에 걸터앉은 건물들은 다리를 길게 내리고 있다. 절반쯤 땅에서 떨어져 나온 바닥을 지탱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파른 언덕에 마을이 있으니 길이 좁고 체계가 없다. 다니게끔 길을 낸 것이 아니라 다닐 수 있는 방향으로 길을 냈다. 운전자들은 어디에서 차가 오건 너그러이 비켜주고, 기다린다. 이 길에선 형편이 피차 마찬가지라서. 

아침, 우라호텔 뒷 테라스에서 햇살을 즐기던 사람들
아침, 우라호텔 뒷 테라스에서 햇살을 즐기던 사람들

 

●우리, 같이 사는 사이


“나갈랜드는 16개 부족이 살아. 옛날엔 서로 전쟁을 하며 싸웠고, 다른 부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높은 곳에 터를 잡았던 거야.” ‘나가(Naga)’는 ‘벌거벗은(Naked)’ 혹은 귀에 뚫은 큰 구멍을 뜻하는 ‘낭카’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누군가 나갈랜드 사람들의 외형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가이드 에이프릴은 앙가미족 후손이라고 했다. 16개 부족 중 가장 인구가 많다. 마을 이름 마지막 음절에 ‘마’가 들어가면 앙가미족의 마을이다. 코히마, 자카마, 코노마 등등. 코히마박물관에는 나갈랜드의 각 부족 문화가 전시돼 있다. 서로 공통점이 많은 듯 보였지만 떼어 놓고 보니 생김새도 그렇고 부족 문양이나 가옥의 형태 등 꼭 하나씩 다른 부족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아이들은 오후에 역사 시험이 있다고 했다. 교과서에는 영어가 빽빽. 다섯명 모두 부족이 다르지만 친구다
아이들은 오후에 역사 시험이 있다고 했다. 교과서에는 영어가 빽빽. 다섯명 모두 부족이 다르지만 친구다

박물관 앞 마당에는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모여 재잘대고 있었다. 에이프릴이 한눈에 척 아이들의 부족을 맞추더니 부족마다 ‘인사말’부터 다르다며 한 명씩 인사를 시켜 줬다. 누구의 인사말은 구르듯 부드럽고, 누군 여운 없이 톡 끊는 듯하다. 부족은 16개이지만 약 200여 개 언어가 있단다. 서로 소통하려면 공용어로 쓰이는 나가믹스어(힌두어+아쌈어) 그리고 영어를 써야 한다.


혹은 간단한 한국어 인사말도 통한다. ‘안녕하세요’ 같은 것. “요즘 드라마 <후아유> 보고 있어, EXO도 좋아해!”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알고 보니 나갈랜드에 한국 드라마 전용 채널이 있을 정도로 한류가 인기란다. 인도 어느 지역보다도 나갈랜드에서 한류가 영향력이 크다고. 소녀들이 동양에서 온 이방인에게 호기심을 보였던 건 그 때문이었다. 어디에서 왔냐는 질문에 한국인이라고 하자 한바탕 웃음을 쏟아 내더니 눈빛이 초롱초롱, 귓속말을 나누며 수줍어한다. 포용력은 나갈랜드 사람들의 덕목인 것 같다. 


나갈랜드는 매년 12월1일부터 열흘 동안 ‘혼빌페스티벌(Hornbill Festival)’을 열어 자신들의 부족문화를 펼쳐 놓는다. “나갈랜드는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혼빌페스티벌은 누구나 알지. 인도 사람들도, 유럽과 호주, 미국 사람도 다 알아.” 혼빌페스티벌을 겨우 사흘 남겨 놓고 만난 나갈랜드주정부 관계자의 말이다. 그러고 보니 델리공항 입국장을 통과할 때 심사관에게 나갈랜드에 간다고 하자 “거기서 곧 혼빌페스티벌이 열려”라고 귀뜸해 줬던 게 기억났다. 


준비 중인 페스티벌 공연장을 둘러보니 여느 스타디움 못지않은 크기였다. 16개 부족이 전통 옷을 입고 공연을 펼친단다. 각 부족의 가옥과 문화를 전시하는 전시공간도 공연장에 붙어 있다. 페스티벌 직전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던 게 이렇게 아쉬울 수가. 

마을 이름이 ‘마’로 끝나면 앙가미족이다. 자카마 마을의 앙가미족 사람들
마을 이름이 ‘마’로 끝나면 앙가미족이다. 자카마 마을의 앙가미족 사람들

사실은 꼭 보고 싶었던 게 있었다. 코냑(Konyak)부족의 공연이다. 나갈랜드에 오기 전, 어느 행사장에서 코냑 부족의 공연을 보고 완전히 빠져 들었던 것이다. 같은 날 다른 부족 공연들은 바구니를 들고 농사를 짓거나 우산 하나를 들고 남녀가 사랑 놀음을 하거나, 베를 짜서 직물을 만드는 내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반쯤은 졸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코냑 부족 남자들이 나타나 맨다리로 발을 구르고, 창을 휘두르고, 떼창을 하니 눈이 번쩍 뜨였던 것이다. 두고두고 보려고 영상으로도 찍어 놨다. 가이드 에이프릴 오피셜, 코냑 부족은 나갈랜드의 여러 부족 중에서도 가장 호전적이고 용감한 편이었다고 한다. 남자 부족원은 날 때부터 바구니를 하나 받게 되는데 싸움이나 전쟁에 나가 상대의 목을 담아 오기 위한 용도다. 바구니를 채워 온 남자만이 전사로 인정 받았다. 그래서 코냑 부족 별명이 ‘헤드헌터’라고. 물론 지금 시대에는 그 바구니가 차는 일은 없으니 걱정하지 말란다. 소름. 

주사위 게임 루도(Ludo)를 하는 동네 노인들
주사위 게임 루도(Ludo)를 하는 동네 노인들

바구니가 필요 없게 된 것은 문화 개방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그만큼 용맹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코냑 부족은 워낙 용맹했던 탓에 인도의 영국 식민지 시절, 침략자인 영국인들에게 강하게 저항했다. 영국인들은 일부러 코냑 부족에게 아편을 유통시켰다. 그런 이유로 지금 코냑 부족은 체구는 물론이고 기세도 예전과는 다르다고 했다. 

 

글 차민경 기자  사진 최갑수
취재협조 인도관광청 www.incrediblein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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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가리 2019-02-19 12:27:41
와 정말 멋지네요! 영화나 다큐로만 볼 것 만 같은데 언젠간 꼭 가보고 싶어요 !!! 매번 티라운지에서 여행상품을 찾아보는데 .. 한번 더 가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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