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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개를 그리다

  • Editor. 김예지
  • 입력 2019.03.04 10:35
  • 수정 2019.03.13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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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사는 올드독 정우열 작가는 <노견일기>를 통해 16살 반려견 풋코와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개에 대한 이야기지만 개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올드독이라는 필명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정확히 말하면 올드독은 제가 그리는 캐릭터 이름이에요. 처음 만든 건 2004년쯤으로 기억하는데, 당시엔 캐릭터라고 하면 아기나 강아지처럼 귀엽고 어린 이미지가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좀 나이가 있고 귀엽지만은 않은, 시니컬한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올드독이었고, 그 캐릭터로 일상만화를 그리다 보니 어느새 제 필명처럼 되어 버렸네요. 

<노견일기> 잘 보고 있어요. 반려견 풋코와는 어떻게 같이 살게 됐어요?

2012년 제주에 올 때만 해도 소리와 풋코, 두 마리였어요. 소리는 지인이 키우던 개였는데 2002년에 처음 만났을 때 온몸에 장난기가 가득한 6개월 된 강아지였죠. 그러다 2003년 초쯤, 지인이 아내가 임신을 해서 개를 키울 수 없을 것 같다고, 소리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겠다는 거예요. 실은 그 지인은 전에도 개를 키우다가 다른 사람에게 보낸 전력이 있었고, 불행하게도 그 개는 대학교 교정에서 길러지다 차에 치어 죽었어요. 소리의 운명은 또 어찌 될까 하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어서 절반쯤 개를 구조하는 마음으로 제가 키우겠다고 했어요. 그 무렵 소리는 여섯 마리 강아지를 낳았고, 그중 하나인 풋코와도 함께 살게 됐죠.

소리와는 언제 이별했나요?
2014년 2월이요. 뇌종양을 앓았어요.

웹툰 전반에 깔린, 뭐랄까… 묵직한 감정들의 이유였군요. 
<노견일기>는 확실히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에 관한 만화에요. 소리와의 이별이 크게 영향을 미쳤죠. 만화에서 아직 소리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했는데, 저로서는 너무 슬프고 울적한 이야기라 똑바로 마주할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풋코는 또 어떻게 이별하게 될지 예상할 수가 없어서 만화가 과연 어디로 흘러갈지 잘 모르겠네요. 

하하. 풋코는 건강해요?

그런 편인 것 같아요. 개를 키우기 전에 탐독하던 책이 있었는데, 거기 보면 소리와 풋코의 품종인 폭스테리어의 수명이 10~14년이라고 되어 있거든요. 3월이면 풋코는 만 16세가 되는데 아직도 바닷가에 가면 잘 뛰어다니니까 이만하면 훌륭하죠. 

제주로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라도 있나요?

결정적인 계기 같은 건 없고요. 개와 헤엄치러 다니는 게 좋아서 바다를 찾아다니다가 어느새 제주에 살기 시작했습니다.

프리다이빙도 즐기신다고요.

수영과 바다를 좋아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그런데 처음엔 바다에 갔을 때 뭘 하고 놀아야 할지 잘 몰랐어요. 수영장에선 정해진 레인이 있고 거길 무슨 영법으로 몇 바퀴 돌았다, 하는 식의 성취감 같은 것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바다에선 영법이니 몇 바퀴니 하는 게 통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좀 심심해하던 차에 스노클링이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물고기 구경이 신기하고 좋았는데, 그러다가 조금 더 깊은 곳에 가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프리다이빙이란 걸 배우게 됐죠. 지금은 강사 자격증까지 따서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있어요.

바다가 왜 그렇게 좋아요?

우리는 언제나 지금 우리가 사는 곳 이외의 세상에 대해서 궁금해하잖아요? 여행도 그래서 하는 거고, 별을 바라보며 지구 밖 세상을 궁금해 하는 것도 그래서고요. 바다도 바로 그런 곳이거든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 이외의 곳, 지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다른 세상. 공기통 같은 다른 장비의 도움 없이 오롯이 몸만 가지고 하는 프리다이빙은 바다를 여행하는 아주 멋진 방법이죠. 

바다가 아무리 좋아도 이주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아요.  

직업을 바꿔야 했다면 좀 더 고민이 컸겠지만, 제 경우엔 어차피 서울에서든 제주에서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캐내서 글이나 그림으로 만드는 건 똑같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다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두고 온다는 것, 좋아하는 영화관에 마음대로 가지 못한다는 게 몹시 섭섭했고 그건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걸 다 가질 순 없으니까요.

정착하는 과정이 어렵진 않았어요?

제주에서 생업의 문제만 해결된다면, 나머지는 생각하는 것만큼 어렵진 않다고 봐요. 물론 서울에 비해 직업 선택이 제한적인지라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녹록치는 않지만요. 많은 경우에 두려움은 대상을 잘 모르는 데서 기인하잖아요. 아직 도시를 떠나 본 적이 없어서, 아직 제주에 살아 본 적이 없어서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막상 해 보면 할 만하답니다.

제주생활에 대해 묻는 한 인터뷰에서 ‘생각만큼 환상적이지 않다’라고 답하신 걸 봤어요.

생각했던 만큼 개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다는 맥락에서 나온 답변이었어요. 대부분의 오름에는 진드기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개를 데려갈 수가 없답니다. 한라산이나 성산일출봉 등 입장료를 내는 곳은 모두 반려동물 입장이 금지되어 있죠. 바다는 그나마 좀 자유로운 편이지만, 여름 시즌 해수욕장에서 개는 물에 들어갈 수 없어요. 오히려 도시에는 산책로와 개들이 뛰어놀 수 있는 운동장도 여러 곳 있어 편리하죠.

그럼에도 제주에 머무르는 이유는요?

불편한 점이 있긴 하지만 서울보다는 제주도가 훨씬 살 만하다고 느끼기 때문이에요. 제주도가 많이 변하고 있긴 해도 아직 여유가 있죠. 도심이나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한적하고 고요한 자연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경험이 쌓이다 보니 금지된 것들 사이로 갈 만한 곳, 누릴 만한 것들에 대해서도 알게 됐어요.

최근 제주에 반려견과 함께 갈 수 있는 레스토랑이나 바(bar)가 늘었다던데. 실제로 체감하나요?

반려견 출입이 가능한 곳이 늘고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어요. 제가 직접 가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개를 키우는 사람이 늘고 반려동물 문화가 확산되는 만큼, 그걸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와 성향도 분명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그렇다곤 해도 장기적으로 볼 때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삶의 인식이 확대되는 추세를 막을 순 없다고 봅니다. 꼭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내가 아닌 다른 존재들과 공존하는 삶을 추구하는 게 더 나은 삶의 방식이라는 점은 분명하니까요.

풋코랑 종종 제주를 벗어나 여행도 하세요?

개와 함께 여행을 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특히 한국에서는 더더욱 그렇죠. 유럽에 여행 갔을 땐 알프스산 위에서도, 도시의 어느 식당이나 서점에서도 개를 만나는 게 흔한 일이었던 게 기억나는데. 애석하고 아쉬운 일이에요. 게다가 이젠 풋코가 나이를 많이 먹어서 더 어려워졌죠.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 차로 전국 일주라도 한 번 할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해 봐요. 한 편으론 풋코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제 욕심일까 하는 생각도요.

캠핑은 어때요?

캠핑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개를 데리고 여행 가서 잘 곳을 찾는 게 쉽지 않아서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게 캠핑이었죠. 그런데 제주도에 와서는 캠핑하는 게 좀 더 즐거워졌어요. 일단 캠핑할 장소를 찾기 쉽고, 갑자기 날씨가 험악해진다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언제든지 텐트를 걷어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으니까요. 음식 해 먹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서 되도록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과일과 라면, 맥주 정도만 가져가곤 해요.

 

요리는 별로라도 먹는 건 좋아하세요? 제주 향토음식을 소재로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를 연재하신 적도 있잖아요.

페스코 베지테리언(Pesco Vegetarians, 붉은 육류는 먹지 않고 어류, 유제품과 달걀은 허용하는 채식주의의 한 종류)인데다 향토음식을 굳이 찾아 먹지도 않았던 저에겐 나름 도전이었죠. 연재하면서 제주 음식을 자주 먹기도 하고,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어요.

예를 들면요?

어찌 보면 당연한 거지만, 향토음식이란 그 지역의 지역적 특성과 한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음식이라는 사실이요. 제주도의 경우 해산물이나 제철 채소는 많이 얻을 수 있는 반면 벼농사가 안 돼 쌀은 귀하고 대신 메밀, 콩, 차조 같은 걸로 음식을 만들었어요. 돼지고기는 관혼상제 때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기 때문에 돼지 한 마리를 잡으면 최대한 버리는 거 없이 알뜰하게 먹기 위한 방법을 고안해야 했어요. 그래서 뼈째 삶은 국물은 몸국이나 고기국수가 되고, 거기서 나온 고기는 돔베고기가 되는 식이죠.  

즐겨 먹는 제주 음식이 있다면요?

고등어 샌드위치, 성게 돌솥밥, 유채나 방풍나물도 좋아해요.

정통이라기보단 퓨전에 가깝네요. 음, ‘향토음식’의 범위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는 현대적인 음식을 즐기면서 지방에서는 향토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것만을 찾는다면 그건 그 지방의 역동성을 배제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향토음식의 배경이 되던 재료와 조리법의 한계는 과거의 산물이잖아요.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바탕으로 하되 조리법이나 철학 면에서 현대적인 감각을 입힌 것까지 향토음식에 포함돼야 한다고 봐요.

고기를 먹지 않는 건 아무래도 풋코와 관련이 있겠죠?

반려견과 함께 살다 보니 동물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고, 공장식 축산업이 동물들의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에도 큰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밖에도 제가 먹는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생산되었는지, 제가 소비하는 것들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하고 절제하고 있죠. 캠핑을 갈 때도 늘 일회용품 등 쓰레기를 가능한 한 만들지 않는 것에 각별히 주의하고, 가끔 환경 단체와 관련된 일을 하기도 해요.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여기 살면서 더 그렇게 됐어요. 도시에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든 그걸 부지런히 치우고 감춰서 마치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제주는 달라요. 바다는 쓰레기들의 최종 종착역 같은 곳이어서, 치워지지 않고 감춰지지 않은 쓰레기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요. 분리수거보다도 더 상위의 문제,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럼 제주에 여행자가 많아지는 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겠어요.

그 점에 관해선 공리주의적으로 생각하는 편이에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의 자연과 문화를 누렸으면 좋겠거든요. 다만 그 과정에서 여행자와 거주자 모두 행복한 방법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결과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을까요?

여행자를 대상으로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캠페인을 한다거나, 제주도 내 음식점과 카페 등에서 일회용품 쓰는 걸 강하게 규제하는 등등이요. 제주도는 지금 처리 가능한 용량의 몇 배에 달하는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어요. 여행자 스스로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게끔 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제주에 계실까요?

제주도에 이주해 온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더라고요. 처음 서울이나 다른 대도시에서 제주도로 떠나오는 일은 어려웠지만, 한 번 떠나 보니 언제든 또 떠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들 얘기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주도가 좋아서 제주도에 살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른 곳으로 떠나서 다시 한 번 여행하듯 살아 보고 싶어요. 제주도가 덜 좋아져서나 싫증나서가 아니라, 삶은 유한하고 가능하면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싶기 때문이죠.

또 다른 작품 계획은요?

늘 생각은 하는데. 부끄럽게도 그만큼 실천은 잘 못하는 편이에요.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 제주도 바다를 배경으로 한 만화인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웃음). 여름이 오면 더 자주 바다에 갈 거라, 어떻게든 그 전에 작은 결실이라도 맺어야겠어요!  

*올드독 정우열 작가는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겸 가끔 에세이나 짧은 소설 등 글도 쓰는 작가다. 블로그로 연재한 웹툰 <올드독>, <올드독 다이어리> 등이 각종 신문과 잡지에 고정 코너로 자리를 잡았다. 반려견 소리와 풋코와 함께한 10년간 이야기를 엮어 2014년 에세이집 <개를 그리다>를 펴냈고, 2016년 제주 향토음식을 주제로 <올드독의 맛있는 제주일기>를 그렸다. 지금은 풋코와의 일상을 담은 <노견일기>를 연재 중이다.  인스타그램 olddog

 

글 김예지 기자  사진제공 정우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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