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의 여행의 순간] 사진의 숙명을 거스르는 일
[로드리고의 여행의 순간] 사진의 숙명을 거스르는 일
  • 박 로드리고 세희
  • 승인 2019.03.04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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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가진 현실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은 찍는 사람의 몫이다.
평면에서 입체적인 세상을 상상할 수 있게끔.

스리랑카 갈레 해변

 

2차원인 사진은 3차원인 척 무던히도 애쓴다.

사진이 처음 발명되었을 때부터 가진 현실적 숙명일 테다. 사진이 그토록 닮기를 바라는 세상은 영원히 3차원적일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사진은 끝내 2차원 평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홀로그램이나 입체사진이 있긴 하지만, 그 또한 평면을 여러 개 겹쳐 놓은 것에 불과하거나 인간의 착시에 기댄 것일 뿐이다. 사진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을 담을 수 있고,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사진 속의 장면은 실제로 있었던 어느 한 순간이란 사실을 우리는 의심하지 않는다. 사진을 보면서 세상을 떠올릴 수 있게끔, 평면에 입체감을 더하는 일은 사진을 찍는 사람의 몫이다.
 

예멘 올드사나 광장
예멘 올드사나 광장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탁월한 위치를 찾는 것이다. 광각 렌즈로 담을 것인지 망원 렌즈로 담을 것인지를 고민하며. 단렌즈 하나뿐이라면, 그 렌즈로 담을 수 있는 마땅한 거리를 가늠해야 한다. 그렇게 마땅한 위치에 이르면 카메라 앞에 놓인 세상을 바라보며 입체감을 검토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공간 ‘전체’를 봐야 한다는 것. 숙련되지 않은 사람일수록 주요한 피사체에 미혹돼 배경을 등한시하곤 하는데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배경과의 조화 속에서 빛을 발하는 법이다. 원근감이 잘 와 닿지 않는다면 발걸음을 옮겨 더 나은 위치를 찾아야 한다. 광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거나 신발을 벗고 벤치에 올라서야 할지도, 때로는 무릎을 걷고 바닷물에 발을 담가야 할지도 모른다. 입체감의 절반은 카메라의 위치에서 온다.

스위스 취리히 벨뷰 광장
스위스 취리히 벨뷰 광장

나머지 반에는 ‘빛’이 포함된다. 밝고 어두움의 대비만큼 입체감을 확실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없으니까. 하지만 여행사진에 있어서 좋은 빛이란 언감생심일 때가 많다. 처음 가 본 낯선 여행지에서 빛의 상황을 알기란 어려울 뿐더러 빛이 좋아질 때까지 한없이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운 좋게도 빛이 좋다면 금상첨화겠으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도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일 수는 있다. 주요 피사체와 배경이 겹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망원 렌즈를 선택하거나 조리개를 한껏 열어 심도를 얕게 하면 저절로 배경이 분리되면서 입체감이 생긴다. 렌즈가 마땅치 않다면 그저 피사체가 겹치지 않게끔 구도를 잡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또 하나는 풍경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요소를 넣는 것이다. 프레임 안에 사람이 있다면 이미 훌륭하다. 여러 사람이 멀고 가깝게 흩어져 있다면 원근감을 표현하기에 더욱 좋다. 동물이나 자동차도 마찬가지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고 사진의 입체감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입체감이 희미한 평면적 구성에서 피사체가 빛날 때도 있다. 인물 그 자체의 선을 살리기 위해 배경을 일부러 잘 보이지 않게 처리하기도 하는데, 이런 사진들은 공간감은 없어도 인물의 이목구비가 생생하게 표현돼 강렬한 인상을 준다. 사진에 정석이란 없고, 입체감은 어디까지나 선택적 요소다. 더구나 부족한 장비와 여건 속에서 탄생한 여행사진에서 입체감이 돋보인다면, 그것은 사진을 찍는 사람이 자신의 선택을 위해 그만큼의 기지를 발휘했다는 증거다. 그 사진이 돋보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로드리고의 여행의 순간
박 로드리고 세희는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촬영감독이다. 틈틈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트래비>를 통해 여행사진을 찍는 기술보다는, 여행의 순간을 포착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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