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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와 레이먼 킴 셰프의 도카이 미식 여행

  • Editor. 최갑수
  • 입력 2019.03.05 11:03
  • 수정 2019.03.12 10: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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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또 먹었다. 닭 날개 튀김에서 시작해 장어덮밥과 쇠고기, 은어 솥밥, 라멘, 교자까지. 나고야에서 다카야마를 거쳐 하마마쓰까지 일본 네 개 현을 도는 내내 배가 불러 있었던 며칠. 도쿄, 오사카, 규슈와는 그 맛이 또 달랐다.

일본 한가운데 주부(中部) 지방이 자리한다. 니가타, 도야마, 이시카와, 후쿠이, 야마나시, 나가노, 기후, 시즈오카, 아이치현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데 남쪽 네 개 현인 기후, 미에, 시즈오카, 아이치현을 따로 떼어 도카이 지방이라고 부른다. 나고야를 제외하곤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이다. 박찬일 셰프와 레이먼 킴 셰프. 세상 누구보다 먹는 걸 좋아하고 마시는 걸 사랑하는 이 두 셰프가 도카이 지방으로 날아갔다. 이유야 빤하지 않은가. 먹고 마시기 위해서다. 도쿄, 오사카, 홋카이도, 규슈 등 일본 전역을 떠돌며 음식을 탐했던 이들이 드디어 도카이 지방에도 상륙한 것이다. 


●나고야의 소울 푸드


나고야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무렵.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아까부터 배가 고팠어요.”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레이먼 셰프가 말했다. “나도 그래.” 박 셰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뭐부터 먹어 볼까?” “테바사키(手羽先) 어떨까요?” 가이드가 말을 꺼낸다. “나고야의 명물 요리죠. 시원한 나마비루(생맥주)와 함께 먹으면 최곱니다.” 박 셰프의 눈이 반짝인다. “그럼 가야죠.”

테바사키는 닭 날개에 파우더를 살짝 묻히고 튀겨 낸 음식이다. 후추와 소금을 잔뜩 쳐서 맛이 진한 것이 특징이다. 나고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테바사키 요리 대회가 있을 정도다. “우리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혹은 조각내어 조리해 먹는 방식을 선호하지만 일본에서는 닭의 부분육 요리가 발달해 있죠.” 고기 전문가 레이먼의 설명.


가이드가 안내한 곳은 ‘세카이노 야마짱’이라는 체인점이다. ‘후라이보’와 함께 테바사키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원조는 1963년 테바사키를 개발한 후라이보다. 하지만 대중화시킨 곳은 세카이노 야마짱이다. 1985년 처음 문을 열었고 지금은 전국에 69개 지점을 내고 있다. 메뉴판에는 ‘VERY SPICY’, ‘나고야의 소울푸드 마보로시노 테바사키’라고 씌어 있고 초대 사장인 야마모토 시게오가 일러스트로 그려져 있다. 자위대 취사병 출신인 그는 나고야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이자카야 후라이보에서 테바사키를 배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미해 만든 뒤 전국적으로 히트시켰다. 

닭 날개 튀김 테바사키.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새 눈앞에는 뼈만 가득하다
닭 날개 튀김 테바사키. 정신 차리고 보면 어느새 눈앞에는 뼈만 가득하다

이 집에서 팔고 있는 다른 메뉴 역시 모두 흉내 낸 것이라고 하는데 오리지널을 베껴 온 것을 부끄럽지 않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테바사키가 나왔다. 닭 날개 30개가 접시 위에 가득 쌓여 있다. “매운 맛보다는 짠맛이 강하네요. 아마 튀김옷 없이 날개만 튀긴 후 겉면에 간장 소스를 발라서 그런가 봐요.” 레이먼의 평. 몇 개 먹다 보니 입술이 맵다. 아마도 후추 때문이리라. 생맥주와 먹으니 더 맛있다. “이런 음식을 먹을 땐 이것저것 따지지 않아야 해. 더 엉성해도 되고 약간 난폭한 느낌이 나도 좋아. 어차피 그 맛에 먹는 거니까.” 박찬일 셰프 앞에는 어느새 뼈가 수북하게 쌓여 있다.

코메다 커피의 모닝구 세토. 커피와 간단한 토스트를 내준다
코메다 커피의 모닝구 세토. 커피와 간단한 토스트를 내준다

테바사키가 나고야 서민들의 저녁을 위로해 주는 소울푸드라면 나고야 사람들의 아침을 책임져 주는 음식이 바로 ‘모닝구 세토(Morning Set)’다. 나고야의 별칭은 ‘카페 도시’. 나고야의 전 음식점 중 카페가 차지하는 비율이 일본 전국 평균 2배를 차지한다. 카페에서 소비하는 금액도 아이치현이 일본 전국 2위라고 하니 나고야 사람들의 카페 사랑은 알아줄 만하다. 나고야의 카페에서 오전 7~11시에 커피를 시키면 보통 달걀 요리와 버터나 잼을 바른 빵을 내준다. 가격도 저렴해 350~400엔 정도다. 제일 유명한 곳은 ‘코메다 커피(Komeda’s Coffee)’로 모닝세트를 제일 먼저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나고야는 팥이 유명해 딸기잼이나 버터 대신 빵에 팥을 발라 주는 곳도 있다. 


●나고야 음식의 하이라이트, 히츠마부시


‘나고야메시’라는 말이 있다. 나고야를 대표하는 향토요리란 의미다. 음식에 대한 나고야 사람들의 남다른 고집과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나고야메시를 대표하는 음식이 바로 ‘히츠마부시’다. 장어덮밥으로 우리나라에서 복날에 삼계탕을 챙겨 먹듯이 일본의 복날에는 히츠마부시를 챙겨 먹는다. 나고야는 예부터 도쿄(東京)와 교토(京都)의 중앙에 위치했다고 하여 ‘중앙의 수도’라는 뜻의 ‘주쿄(中京)’라고 불렸다. 지방의 번주들이 에도에 일정기간 머무르는 차근 교대를 하러 갈 때 반드시 나고야를 지나야 했는데, 이것이 나고야가 크게 번성하고 음식이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된다.   

호라이켄에서 히츠마부시를 먹고 있는 박찬일 셰프(왼쪽)와 레이먼 킴 셰프(오른쪽)
호라이켄에서 히츠마부시를 먹고 있는 박찬일 셰프(왼쪽)와 레이먼 킴 셰프(오른쪽)

‘호라이켄(houraiken.com)’은 히츠마부시를 처음으로 시작한 집이다. 메이지 6년(1873년)부터 아쓰다 신궁 내에서 히쓰마부시를 만들었다. 히츠마부시는 ‘나무 밥통’을 의미하는 ‘히츠(櫃)’와 ‘섞다, 묻히다’라는 뜻의 ‘마부스(まぶす)’가 합쳐진 말로, 창업 당시 장어를 배달하던 나무 그릇이 자주 깨져서 깨지지 않는 나무로 그릇을 만든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집은 장어를 3일 동안 굶겨서 요리합니다. 그러면 장어의 체내에 있는 불필요한 기름기가 쏙 빠지고 맛이 한결 담백해지죠.” 가이드의 설명이다.


히츠마부시를 가져온 종업원이 먹는 법을 설명해 준다. “먼저 밥통의 뚜껑을 열고 주걱으로 밥을 4등분한 후 한 부분씩 밥공기에 덜어서 드시면 됩니다.” 첫 번째는 그대로 먹고, 두 번째는 와사비와 파, 김을 넣어서 먹고 그 다음은 오차즈케(お茶漬け)로 먹는다. 그렇다면 마지막은? 가장 맛있었다고 생각하는 방법으로 한 번 더 먹으면 된다.

나고야식 장어덮밥인 히츠마부시. 특제 양념으로 찐 장어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나고야식 장어덮밥인 히츠마부시. 특제 양념으로 찐 장어가 입에서 살살 녹는다

뚜껑을 여니 장어 한 마리가 노릇하게 구워져 밥 위에 올라가 있다. 도쿄나 오사카 등의 대도시보다 양이 푸짐하다. 모락모락 솟아나는 김이 ‘자자, 쳐다보지만 말고 어서 듬뿍 떠먹으라니깐!’ 하고 속삭이는 것 같다. 장어 양념 향이 밥의 온기와 함께 피어올라 콧속을 간지럽힌다. 조심스럽게 한 젓가락 떠서 먹어 보니 과연 소문대로다. 장어는 혀 위에서 사르르 녹는다. “이럴 땐 공복감이 오히려 고마워요. 두 배는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까요.” 레이먼이 말한다. 박 셰프도 고개를 끄덕인다. “훌륭한 맛이다.” 이 짧은 말에 히츠마부시의 맛이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 구스미 마사유키는 장어덮밥을 두고 “밥과 장어 양의 배분을 걱정하면서 주의 깊게 먹어 나가는 즐거움”이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다. 시간이 지날수록 밥과 장어가 줄어드는 게 아쉽다. 이 집은 예약이 안 되고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여름철에는 기본이 3시간이라고 한다.


●입에서 스르르 녹는 쇠고기 맛


닭날개튀김과 장어덮밥을 먹고 나고야를 떠나 다음으로 찾은 도시는 기후현 다카야마다. “자, 이 도시에서는 뭘 먹을까요.” 레이먼이 박 셰프를 바라본다. “고기 먹자. 히다규가 유명하다고 하더라.” 다카야마는 명물 쇠고기인 히다규는 고베의 고베규, 마츠자카의 마츠자카규와 함께 일본 3대 명품 쇠고기로 꼽힌다. 작은 교토라고도 불리는 다카야마에는 히다규로 만든 초밥을 파는 ‘사카구치야’라는 가게가 있다. 히다규를 올린 스시를 만들어 엄청난 히트를 친 집이다. 밥 위에 토치로 살짝 익힌 히다규를 올린 후 소스를 발라 준다. “깊숙한 내륙지방이라 신선한 해산물을 이용한 니기리 스시를 만들기가 어려워 아마도 이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만들었을 거야.” 박 셰프의 분석이다. 히다규 스시가 접시 대신 새우 센베이 위에 올려져 나왔다는 것도 흥미롭다.

히다규를 굽고 있는 레이먼 킴 셰프. 육즙이 살아 있다
히다규를 굽고 있는 레이먼 킴 셰프. 육즙이 살아 있다

물론 이들이 쇠고기 초밥으로만 만족할 수 없는 일. 히다규를 한 판 가득 구워 먹기도 했다. 마츠자카에는 고기와 곱창, 간 등을 파는 집이 많다. 원래 맛있는 고기인데 ‘고기 굽기의 달인’ 레이먼이 구우니까 더 맛있다.


●빼놓을 수 없는 라멘과 교자


히타 다카야마 지역에는 ‘주카 소바’라는 명물 요리가 있다. 라멘이 중국에서 일본에 전해진 것은 메이지 시대(1868∼1912년) 중기. 따지고 보면 그 역사가 100여 년에 불과하다. 일본 작가 하야미즈 겐로가 펴낸 <라멘의 사회생활>에 따르면, 원래 화교 거주지에서 난킹(南京)소바로 불렸던 라멘은 이후 지나(支那, 중국을 낮춰 부른 말)소바, 주카(中華)소바 등으로 불리다가 지금의 이름으로 정착했다. 맑은 닭뼈 국물에 소금을 치고 가늘고 꼬불꼬불한 면을 담은 후 그 위에 차슈(돼지고기)를 얹는 것이 전통 레시피인데 세월을 거치며 국물은 진해지고 면도 두꺼워졌다. 히타다카야마의 주카소바는 간결하면서도 시원한 옛 맛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 

‘교자노 이시마쓰’에서는 교자 라멘도 판다
‘교자노 이시마쓰’에서는 교자 라멘도 판다
바싹하게 구운 하마마쓰 교자. 피가 얇은 것이 특징이다
바싹하게 구운 하마마쓰 교자. 피가 얇은 것이 특징이다

시즈오카현 하마마쓰시에서 교자로 도카이 미식 여정을 마무리했다. 하마마쓰는 일본에서 교자로 가장 유명한 도시다다. 하마마쓰에는 교자 파는 가게만 300개가 넘고 교자학회가 있을 정도로 하마마쓰 사람들의 교자 사랑은 각별하다. 하마마쓰의 연간 교자 소비율이 일본에서 거의 최고 수준이다. “하마마쓰에는 교자의 정의가 있습니다.” 1953년 창업한 ‘교자노 이시마쓰’ 교자집 주인이 설명해 준다.

1953년 창업한 교자집 ‘교자노 이시마쓰’
1953년 창업한 교자집 ‘교자노 이시마쓰’

포장마차처럼 작은 가게에서 시작, 지금은 3대 사장까지 이어지면서 하마마쓰 최고 교자 회사가 됐다. 그에 따르면 하마마쓰 교자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하마마쓰시 내에서 만들어진 교자여야 하며 판매자가 하마마쓰에 3년 이상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 “하마마쓰 교자는 보통 교자와 달리 만두피가 얇습니다. 그래서 보통 교자보다 1.5배는 먹을 수 있죠. 그리고 만두 속에는 배추와 부추 대신 돼지고기와 양배추, 양파가 들어 있습니다.” 삶은 숙주나물이 따라 나오고 교자를 원형으로 구워 준다는 것도 특징이다.  

 

▶도카이 미식 여행을 마치기 전에

나고야에서 다카야마로 가는 길에 ‘다루마야’라는 은어 요리 전문점이 있다. 된장을 발라 구운 은어와 은어 솥밥이 별미다. 1928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대를 잇고 있다. 다루야마 gujoayu.com

아이치현 오카사키시에는 일본 최고 된장인 핫초된장 공장인 ‘가큐슈’라는 회사가 있다. 1645년 창업했다. 콩을 쪄서 효모가 붙게 한 후 큰 나무통에 넣고 돌로 눌러서 수분을 조절하면서 숙성한다. 짙은 갈색인데 아주 구수하다.
가쿠슈 www.kakukyu.jp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도카이지구 외국인관광객 촉진협의회(東海地区外国人観光客促進協議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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