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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었다, 가자 하동 그리고 순천

  • Editor. 차민경
  • 입력 2019.03.25 14:18
  • 수정 2019.03.25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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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매화꽃이 몽글몽글 맺혔다
하동 평사리 최참판댁. 매화꽃이 몽글몽글 맺혔다

꽃이 피었다. 매화꽃과 앵두꽃이 톡톡 망울을 터트렸다. 
지리산 끝자락, 순천과 하동을 천천히 거닐었다. 


●드라마틱한 삶의 군상, 하동


섬진강을 끼고 달리니 하동이다. 한적한 2차선 도로에는 수령이 꽤 됐을 법한 벚나무가 빽빽하다. 봄이 완연해지면 길 끝에서 끝까지 꽃잎이 흩날리겠다. 쌍계사로 가는 길목은 ‘십리벚꽃길’이란 이름이 달렸을 정도. 봄나들이를 오자면 이곳이 제격이겠다. 매화꽃과 앵두꽃은 서둘러 피었다. 소담한 나무에 톡톡 맺힌 꽃잎은 설탕 같다. 달콤하다.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목은 ‘십리벚꽃길’이다. 쌍계사안으로 들어서면 꽃보다 깊은 풍경이 나타난다
쌍계사로 들어가는 길목은 ‘십리벚꽃길’이다. 쌍계사안으로 들어서면 꽃보다 깊은 풍경이 나타난다

꽃을 상상하며 쌍계사로 들어선다. 무려 신라시대에 세워진 쌍계사는 융숭한 역사만큼이나 속이 깊다. 국보 1점, 보물 9점, 지방지점 문화재 20점 등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가 없다. 대웅전은 비밀스럽게 숨겨져 있다. 직선으로 이어진 일주문, 금강문, 천왕문, 그리고 팔영루를 지나야 대웅전에 닿는다. 겹겹이 쌓인 문을 하나하나 지날 때마다 속세의 근심과 때를 하나하나 벗는 기분이다. 대웅전 앞에는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쓴 진감국사탑비가 있다. 국보 제47호, 쌍계사를 설립한 진감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흐릿해진 비문과 상처가 시간의 흐름을 곧장 느끼게 한다. 역사를 모르고 와도 진감국사탑비를 보면 쌍계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역사를 따라가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여행지에서 나만의 장소를 찾는 것이다. 쌍계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길을 꼽으라면, 대웅전 왼편으로 청학루를 거쳐 팔상전으로 이어지는 계단길을 들고 싶다. 계단은 108개, 불교적 의미를 되새김질 하는 길이다. 반듯하게 뻗은 계단을 하나씩 밟아 올라갈 때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던 대웅전의 분주함이 잊힌다. 곧고 높이 솟은 전나무숲은 운치를 더해준다. 

소설 (토지)의 공간을 재현해 놓은 최참판댁의 소담한 풍경
소설 '토지'의 공간을 재현해 놓은 최참판댁의 소담한 풍경

쌍계사에서 10~15분 거리에는 박경리의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됐던 평사리가 있다. <토지>의 핵심이었던 최참판댁과 그 주변인물의 집 총 14동을 재현해 뒀다. 최근 방영했던 <미스터 선샤인>을 비롯해 여러 사극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고.

최참판댁에 들어서면, 재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느낌보다 원래 있었던 한옥을 보존해 둔 것 같은 느낌이 더 크다. 그만큼 사소한 부분도 생생하다. 실제 박경리 선생 생전에 최참판댁 건립을 함께 논의해 박경리 선생이 작고한 2008년 준공됐다. 작가의 마음에 드는 장소에 최참판댁이 만들어졌으니 이 공간이 살아있는 것 같은 기분은 괜한 기분이 아닐지도 모른다. 최참판댁 대문 앞에서 평사리를 내려다보면 이곳을 배경으로 피고 지었던 많은 이야기들이 스쳐간다. 꼭 소설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삶은 소설 속에서나, 현실에서나 극적이니까. 

화개장터의 흥겨운 분위기. 공연자들은 북을 치고, 농을 치면서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화개장터의 흥겨운 분위기. 공연자들은 북을 치고, 농을 치면서 사람들의 발목을 잡는다

드라마를 보려면 화개장터로 가야 한다. 온갖 인간 군상이 모이는 곳, 장터. 화개장터는 단순히 사람이 모이는 곳만은 아니다. 영남과 호남이 맞닿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 화개면은 섬진강이 지나는 작은 마을에 불과하지만 하동포구가 성업을 이뤘던 조선 중엽에는 지리적 의미가 남달랐다. 덕분에 5일장이 만들어져 온갖 물자가 모였던 것이다. 지금은 5일장 대신 상시시장이 서서 언제든지 화개장의 재미를 즐길 수 있다. 

화개면에서 만난 하동 그림 지도
화개면에서 만난 하동 그림 지도
하동 재첩국
하동 재첩국

주말이면 화개장터 인근의 2차선 도로가 꽉 막힐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 장터는 2001년 새롭게 시설을 단장해 재개장했다. 장터 마당에서는 우스꽝스런 분장을 한 공연자들이 각설이타령을 벌이고, 북을 치고 노래를 하면서 엿을 판다. 옛 추억이 생각나 흐뭇한 어르신도 발을 못 떼고, 처음 보는 공연에 놀란 아이들도 발을 못 뗀다. 마당을 쩌렁쩌렁 울리는 흥겨운 가락에 장터가 들썩인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산지가 지리산인 온갖 먹을거리가 넘쳐난다. 각종 약재, 버섯향이 풀풀. 섬진강 민물과 남해의 바닷물이 만나는 심해에서 자라는 벚굴도 화개장에서 흔하다. 아이 얼굴 크기만 한 벚굴은 가까이 다가서기만 해도 특유의 향이 훅 풍겨온다. 3~4월이 제철이라 하니 꽃이 만개할 봄, 하동을 아니 올 이유가 없다.


●이토록 편안한 마을, 순천


순할 순, 하늘 천자를 쓴다. ‘하늘을 따른다’는 뜻이다. 지명을 따라 마을이 만들어지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순천에 올 때마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행지를 고를 때마다 순천을 리스트에 올려놓는 이유다. 

겨울을 넘긴 순천만 습지. 노란 갈대가 봄 바람에 춤을 췄다
겨울을 넘긴 순천만 습지. 노란 갈대가 봄 바람에 춤을 췄다

서울에서 차로 4시간, 순천에 도착하니 봄 햇살이 포근했다. 순천만 습지에 융단처럼 깔린 노란 갈대숲이 봄바람에 넘실대는 것이 마치 춤추듯 계절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에도 마찬가지 기대가 묻어난다. 두꺼운 목도리를 풀고 가벼운 자켓을 펄럭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남해로 둥글게 튀어나온 순천만 습지는 수평선을 멀찍이 밀어낸 듯 널찍하고 평평하다. 갈대밭이 5.4㎢(160만평), 갯벌이 22.6㎢(690만평) 규모다. 어림잡기도 쉽지 않다. 다만 우리의 눈과 발로는 한 번에 다 헤아릴 수 없는 크기라는 건 알겠다. 그리고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퇴적물이 계속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순천만 습지는 미국 동부 조지아주 연안, 캐나다 동부연안, 아마존강 유역, 유럽 북해연안과 견주는 세계 5대 연안습지다. 규모도 그렇지만 더 의미 있는 것은 생명력이다. 수많은 갯벌 생물과 철새들이 망막한 이 땅을 터전 삼는다. 갈대숲 사이로 난 데크를 쉬엄쉬엄 걷다보면 자연스레 순천만의 생태를 알게 된다. 순천만에서는 국제적 희귀 조류 25종, 그리고 한국조류 220여 종을 볼 수 있다. 갈대숲이 새들에게 은신처가 되는데다 뻘 속에서 먹이를 구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가끔 도심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은 큰 새가 출몰하면 데크를 산책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흑두루미, 재두루미 같은 큰 새들의 겨울 서식지라고 하니 아마 그런 종류의 새가 분명하다. 참고로 순천만은 우리나라 유일의 흑두루미 서식지란다.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순천만의 대표적인 풍경이 한 눈에 담긴다. 동글동글한 갯벌이 섬처럼 놓여있고, 갈대숲이 펼쳐진 그 모습이다. 여름이면 붉은 빛으로 타오르는 칠면초 군락도 이곳에서 감상하면 감동이 배가 된단다.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순천의 이미지는 순천만국가정원이 생기면서 한층 배가 된 것 같다. 순천을 생각하면 순천만습지에 이어 ‘정원’이 딱 떠오르니까. 정원이란 단어가 연상시키는 분위기는 어떻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들리는 한가로움, 일상의 소란과 떨어진 평화. 

순천만국가정원에서는 여러나라의 정원 스타일을 만날 수 있다.
순천만국가정원에서는 여러나라의 정원 스타일을 만날 수 있다.

순천만국가정원은 2013년 열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자리를 재단장한 곳이다. 박람회 후 2년 만에 ‘대한민국 제 1호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전세계 23개국이 참여해 83개의 정원을 꾸며 열렸는데, 지금도 행사 당시의 모습이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다. 풍차가 돌아가는 네덜란드 정원, 비밀스러운 정자가 놓인 중국 정원, 데칼코마니를 한 듯 균형미가 돋보이는 이탈리아 정원 등이다. 꽃과 식물이 깨어나기엔 이른 초봄이라는 게 아쉬울 뿐.  각국의 정원을 넘나드니 마치 세계여행을 하는 것 같아 한껏 기분이 들뜬다. 

순천 꼬막정식
순천 꼬막정식

순천만국가정원은 순천을 흐르는 동천을 사이에 두고 동-서쪽으로 나뉜다. 동쪽에는 호수정원과 세계정원이 모여 있고, 서쪽에는 한국정원과 야생동물원 등이 있다. 어디에서나 평화를 찾기 좋다. 특히 호수정원 인근의 벤치가 인기가 많다. 잔잔한 물결이 치는 호수와 호수 중앙에 봉긋하게 솟은 봉화언덕이 찰떡같이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봉화언덕은 능선을 따라 사람이 오를 수 있게 디자인 돼 있는데, 덕분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적인 풍경 사이에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만 유일하게 동적이다. 오묘한 안정감이 찾아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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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차민경 기자 cham@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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