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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키에서의 3일

Soul Village, Soul Food, Soul Trip

  • Editor. 김진
  • 입력 2019.04.01 15:46
  • 수정 2019.04.23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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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바라키현 마카베 거리엔 최소한 백년도 넘은 간토식 전통 가옥이 이어져 있다
이바라키현 마카베 거리엔 최소한 백년도 넘은 간토식 전통 가옥이 이어져 있다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은 여행의 시작이면서 끊임없이 탐닉하기 좋은 나라다. 1,000원 남짓의 환율만 봐도 여권을 슬쩍 꺼내 보게 된다.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를 이미 다녀왔다면 슬슬 호젓한 소도시로 마음이 향한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2박 3일뿐. 

홍매화가 봉오리를 터뜨리는 순간
홍매화가 봉오리를 터뜨리는 순간

●봄, 매화에 취한다는 것


이바라키로 떠났다. 인천공항을 출발해 이바라키 공항에 도착하니 오후 4시 반.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하늘이 서서히 붉은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우리나라보다 해가 빨리 지는 태평양 연안에 가깝다는 뜻이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산과 너른 들판, 낮은 집이었다. 평화롭고 조용했다. 이바라키현청 소재지인 미토(水戶)시는 소도시의 정갈한 매력과 고즈넉한 전원 풍경을 두루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가이라쿠엔(偕楽園)은 오카야마시의 고라쿠엔, 가나자와시의 겐로쿠엔과 함께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힌다. 1842년 미토 번주(藩主, 다이묘)였던 도쿠가와 나리아키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정원에 ‘가이(偕, 모두)+라쿠(楽, 즐기다)엔’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호숫가에 펼쳐진 센바 공원까지 합쳐 가이라쿠엔이라고 하는데 크기가 300만 평방미터에 달해 뉴욕 센트럴파크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정원으로 기록돼 있다. 

매화가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일찍 봄을 구경 온 여행자들은 매화 향기에 취한다
매화가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조금 일찍 봄을 구경 온 여행자들은 매화 향기에 취한다

약 100종, 3,000여 그루의 매화가 2월부터 피기 시작하면 도시 전체가 매화 향기로 메워진다. 방문했을 때는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덜 피어서 아쉬울 만도 한데 사람들의 얼굴은 만개한 꽃송이처럼 웃고 있었다. 엄지손톱만 한 홍매화에 코를 살며시 대어 보니 겨우내 감춰 두었던 향긋한 봄이 터졌다. 모든 매화가 열리면 향기에 취해 몽롱해질지도 모르겠다. 이바라키의 매화 시기를 놓쳤다고 해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매화가 진 자리엔 또 다른 꽃이 핀다. 3월부터는 센바호수 근처에 벚꽃이 피고, 5월에는 철쭉 축제가 열리며 여름엔 연꽃이 반긴다. 9월엔 싸리 축제가 열린다.  

이바라키는 낫토의 고향답게 각종 낫토 제품들이 즐비하다
이바라키는 낫토의 고향답게 각종 낫토 제품들이 즐비하다

●낫토의 고향, 이바라키


“이바라키는 풍요로운 지역입니다. 홋카이도에 이어 농산물 생산액이 두 번째로 높은 곳이거든요. 그래서 관광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충분히 살 만했어요.”
도쿄와 가까운데도 이바라키가 생소했던 이유를 알았다. 가이라쿠엔 기념품 가게에서는 낫토, 멜론으로 만든 가공식품, 말린 고구마, 요구르트, 푸딩, 매실액 같은 특산품이 즐비하다. 모두 이바라키현에서 나는 농산물로 만든 특산품이라 했다. 현청 공무원이 기념품으로 준 동그란 냉장고 자석엔 콩처럼 생긴 얼굴에 볏짚을 쓴 소녀가 매화를 머리에 꽂고 웃고 있다. 이름은 미토 쨩. 낫토를 형상화한 캐릭터다. “일본 사람들은 이바라키 하면 낫토를 떠올립니다.” 


플라스틱으로 포장한 낫토가 생기기 전에 낫토의 전통적인 포장 방법은 볏짚이었다. 메주를 볏짚으로 묶듯 이바라키에서도 낫토를 만들 때 볏짚을 활용해 왔다는 것. 볏짚 속에 있는 토착 미생물로 콩을 발효시키는 원리가 우리나라와 똑같다. 볏짚에서 발효시킨 낫토는 시중에선 잘 구하기 어렵지만 관광지에서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니 기념품으로 사 가면 좋다. 젓가락질할 때마다 질척거려서 먹기가 귀찮았다면 초콜릿으로 감싼 낫토, 말린 낫토, 낫토 과자 등 쉽게 먹기 편한 가공 제품을 선택하면 된다.   

가물어서거대한 위용을 볼 수는 없었지만,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맞이하는 후쿠로다 폭포는 이바라키현의 대표적인관광명소다
가물어서 거대한 위용을 볼 수는 없었지만,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맞이하는 후쿠로다 폭포는 이바라키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다

 

●물이 맑은 곳


이바라키에 왔다면 일본의 절경을 감상해야 하는데, 이바라키 달력 사진을 수놓는 후쿠로다 폭포가 대표적이다. 작은 녹차 밭과 상점이 늘어선 산속 마을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니 보행자를 위한 터널이 나타났다. 터널 끝엔 엘리베이터가 있어서 폭포 꼭대기에 오르는 수고로움이 없다.

후쿠로다 폭포 흔들다리

어두운 길이 끝나니 서서히 폭포가 위용을 드러내면서 펼쳐졌다. 하얗고 가느다란 물줄기가 계곡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4단으로 흘러내리는 폭포는 사계절 다른 모습으로 비경을 만들어 낸다. 보는 각도와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전망대가 여럿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흔들 다리는 정말 많이 흔들리는데, 장난으로 쿵쿵거리며 뛰어가던 일행 때문에 기겁하면서도 깔깔깔 웃는 소리가 계곡을 따라 퍼졌다.

은어나 어묵 등을 구워 파는 가게
은어나 어묵 등을 구워 파는 가게

서걱대는 대나무 숲길을 따라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가 퍼졌다. 기념품 상점에서는 대나무를 쪼개서 만든 수제 은어 망을, 허름한 음식점에선 은어를 구워 판다. 은어 구이는 맑은 물을 자랑하는 이 마을에서 흔한 길거리 음식이다. 눈을 크게 뜬 은어는 파닥거리던 자세 그대로 꼬치에 꽂혀 있어 좀 기이하긴 해도 맛은 일품이다. 

의외로 번지점프를 하기 위해 류진대조교를 찾는 사람이 많다

●짜릿한 체험


“아찔한 체험을 하러 가실 거예요.” 고즈넉한 산골 마을뿐인 히타치오타(常陸太田)시에서 무슨 액티비티가 있을까 싶었지만 반전이 있다. V자 험준한 류진 협곡 위에는 보행 현수교 류진대조교(龍神大弔橋)가 있다. 길이는 325m, 높이는 110m에 이른다. 중간중간 유리로 된 구역이 있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목덜미가 뻐근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다리 중간에 설치된 번지 점프는 짜릿함의 정점. 다리를 묶고 호수를 향해 뛰어내리는 사람들을 멀리서 바라만 봐도 전율을 느끼기 충분하다. 다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오쿠쿠지 현립 자연공원의 트레킹 코스는 현지인에게 인기가 많다.  

 

●1일 2온천

이바라키에도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 있는데 바로 츠쿠바(つくば)시다. 간토 지역 최고의 온천 마을이 있는 츠쿠바산은 일본 100대 명산 중 하나이자 이바라키가 자랑하는 명소다. 둘째 날 묵은 곳은 산 중턱에 위치한 아오키야(靑木屋) 호텔. 차분하고 정갈한 다다미방은 서너 명이 쓰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유카타로 갈아입은 후 호텔 꼭대기에 있는 노천탕에 몸을 담갔다. 스멀거리는 수증기 뒤로 탁 트인 풍광은 온천수만큼이나 심신의 피로를 풀어 주는 효과가 있다. 이바라키산 제철 식자재로 만든 가이세키 요리에 일본 맥주를 한 잔 곁들이니 온천 효과인지 알코올 기운인지 몸이 녹았다. 다다미방으로 오니 어느새 호텔 직원이 이부자리를 펴놓았다. 눈을 뜨니 아침 6시. 눈곱도 떼지 않고 또다시 온천으로 향했다. 마치 일본에서는 1일 2온천이 기본이며 의식인 것처럼.

우시쿠 대불. 높이가 120m라 하면 잘 와 닿지않지만 건물로 45층 정도라고 하면 그 규모가 짐작이 된다
우시쿠 대불. 높이가 120m라 하면 잘 와 닿지 않지만 건물로 45층 정도라고 하면 그 규모가 짐작이 된다

●번뇌와 행복 사이


‘압도적’이라는 진부한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우시쿠 대불을 보면 그 표현이 절로 나온다. 우시쿠(牛久)시는 미토시에서 50km 정도 떨어진 평야 도시다. 청동 불상 우시쿠 대불은 높이가 120m나 되어 자유의 여신상보다 세 배 높다. 대불 내부는 5층으로 이뤄져 있고 85m 지점에 있는 전망대에서는 우시쿠의 너른 평야와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날씨가 좋으면 후지산까지도 보인다 했다.

불경필사 체험. 종이에 글자가 흐릿하게 인쇄돼 있어어린아이가 된 기분으로 한자를 따라 그리기만 하면 된다
불경필사 체험. 종이에 글자가 흐릿하게 인쇄돼 있어 어린아이가 된 기분으로 한자를 따라 그리기만 하면 된다

대불 안으로 들어가니 영험한 기운이 가득했다. 내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작은 불상을 하나씩 사서 법당에 모셨다. 불경을 필사하는 체험도 가능한데 내용을 잘 몰라도 소소한 염원 하나 정도는 마음에 담아 가는 기분이 든다. 지금은 중국과 미얀마의 불상에 밀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불상이지만, 1995년에 가장 큰 불상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기록이 있다. 포토존에서 얼굴만 내밀고 재미있는 기념사진을 찍으면 찍힌 사람이나 찍은 사람이나 찰나에 번뇌가 사라진다. 

이바라키의 특색이 잘 배어 있는겐친소바
이바라키의 특색이 잘 배어 있는 겐친소바

●빼놓을 수 없는 겐친소바


소도시 여행의 매력은 오래된 마을을 거닐 때 오롯이 느껴진다. 사쿠라가와(桜川)시 마카베(直壁)는 읍내 정도의 크기로, 고풍스러운 일본 건축물이 거리마다 늘어선 곳이다. 작은 마을의 매력은 역시 걸어야만 알 수 있다. 현지 어르신들이 많이 들어가는 식당을 찾아갔다. 우동과 겐친소바 글씨만 커다랗게 붙어 있어 내공이 느껴지는 집이다. 겐친(けんちん)이란 두부, 우엉, 표고 등을 기름에 볶아 조미한 음식이나 채소를 두부껍질에 말아 기름에 튀긴 일본 식자재를 말한다. 겐친소바는 겐친으로 국물을 내 메밀국수를 말아 먹는다. 채소와 곡식이 풍부한 극히 이바라키다운 소바다. 달큼하고 짭조름한 국물부터 후루룩 들이켜고 젓가락으로 국수와 채소를 크게 집어삼켰다. 두부, 토란, 당근, 양파의 아삭한 식감에 치아의 움직임이 발랄해졌다. 

코카콜라 자판기가 빌트인 된 건축 문화재에고개가 갸웃
코카콜라 자판기가 빌트인 된 건축 문화재에 고개가 갸웃

●시간이 멈춘 마을 


마카베 거리엔 간토식 전통 가옥이 이어져 있다. 최소한 100년이 넘은 건축물들은 등록유형문화재로 지정돼 있고 상점이나 주택으로 여전히 쓰인다. 고풍스러운 기와를 얹은 검은색 목조건물은 간판이 없는 경우가 많아 찬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당최 무슨 용도일지 알기가 어렵다. 거리엔 오래된 이발소, 사진관, 수선집도 있어서 드라마 세트장을 보는 것 같다. 마치 군산의 근대마을이나 서울의 서촌을 산책하는 기분이랄까. 

전통의상으로 장식한 히나 인형
전통의상으로 장식한 히나 인형

마침 여자 어린이의 행복과 안녕을 비는 축제, 히나마츠리(雛祭り)를 맞아 거리엔 활기가 넘쳤다. “오늘따라 사람이 정말 많이 나왔네요.” 담당 공무원은 말했지만, 서울 사람에게 이 정도는 휑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전통가옥이나 전봇대엔 봄을 알리는 아기자기한 꽃장식이 있었다. 봄이고 축제다. 담배 가게든 반찬가게든 히나 인형만 잔뜩 전시해 놓은 것이 특이하다. 붉은 천을 깐 단 위에 인형을 장식하는 것은 히나마츠리의 풍습이다. 손바닥만 한 인형부터 마네킹까지 하나하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정과 자세와 옷매무새가 모두 다르다. 기모노를 만들 때 쓰는 비싼 원단을 겹겹이 주름 잡아 손수 바느질해 인형에 입혔는데 솜씨가 얼마나 정교한지 일본인다운 집요함이 느껴진다. 

축제 기간이라 복잡하다고 했지만 하나도 복잡하지 않은 마카베 마을, 우리나라의 조용한 읍내 수준이다
축제 기간이라 복잡하다고 했지만 하나도 복잡하지 않은 마카베 마을, 우리나라의 조용한 읍내 수준이다
짐을 실어 나르는 간이철로에서 관광객들은 그저 신난다
짐을 실어 나르는 간이철로에서 관광객들은 그저 신난다

●소울 빌리지, 소울 푸드, 소울 트립


마카베 마을은 잘 알려지지 않아 외국인이 거의 없고 일본인들만 많이 찾는 곳이다. 이렇다 할 명소는 없지만, 그래서 안내 지도나 맛집 정보도 필요 없고, 내키는 곳에 들어가 잠시 구경하고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면 그만이다. 노점에서 할머니가 만들어 파는 300엔짜리 가케우동은 맛도 맛이지만 단무지가 무한리필이라 좋았다. 이바라키에서 유명한 말린 고구마 호시이모(ほしいも)를 물고 골목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걸었다. 이바라키는 일본에서 호시이모 생산량의 90%를 맡고 있다. 달콤한 웰빙 간식처럼 이바라키는 건강했고 여행지마다 감칠맛이 났다.  

마카베 마을엔 사람의 얼굴만 보고 즉석에서시를 써 주는 특이한 시인이 있다
마카베 마을엔 사람의 얼굴만 보고 즉석에서 시를 써 주는 특이한 시인이 있다
일본에서 파는 말린 고구마의 90%는 이바라키에서 난다
일본에서 파는 말린 고구마의 90%는 이바라키에서 난다

이바라키(茨城)현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80km 거리에 위치해 있다. 도쿄에서 이바라키현 중심부인 미토시까지는 차로 넉넉잡아 1시간 반, JR로 60분이면 갈 수 있다. 이바라키현 전체 인구는 300만 명 정도인데, 현 내에 인구 30만명이 넘는 큰 도시가 없다. 대부분 농촌 지역이어서 마을 단위로 뿔뿔이 흩어져 살기 때문이다. 고즈넉한 옛 풍경과 전원을 골고루 느끼며 여행하기 좋다.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이바라키현은 연평균 기온 14도, 연간 강수량 1,250㎜의 온화한 내륙성 기후를 보인다. 이바라키현은 일본에서 잔디 생산량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양질의 잔디로도 유명해 골프장도 많다. 도쿄에서 접근성이 좋아 도쿄와 엮어 여행하기도 편하다. 

교통 | 이스타항공이 주 3회(화·목·토요일) 취항한다. 인천에서 오후 1시55분에 출발해 이바라키에서 오후 5시 편으로 돌아온다. 약 2시간 20분 소요된다. 48시간 2,000엔의 렌터카 캠페인도 열고 있어서 자유여행객은 저렴하고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바라키 공항에 도착하면 렌터카 사무실이 있다. 렌터카 관련 정보는 이바라키 공항 홈페이지에서 얻을 수 있다.  

 

글·사진 김진  에디터 트래비
취재협조 다우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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