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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MPAIGN 여행으로 희망을 나눕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 Editor. 정상규
  • 입력 2019.05.01 15: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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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김구선생 피난처 2층에 자리잡은 침실 창가
중국 김구선생 피난처 2층에 자리잡은 침실 창가

향수는 기분을 선물하고,
여행은 추억을 선물한다는 말이 있다.
아주 특별한 사람들과 여행을 나눴다.

 

●먹먹한 감정, 상해 임시정부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해 하나투어문화재단과 해피기버가 무척 특별한 여행을 준비했다. 평균연령 67세에 달하는 20명은 모두 독립유공자 유족회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독립운동가 후손이었고 동시에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였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생계의 문제로 인해 임시정부를 한 번도 방문해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가 사관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탑골공원을 시작으로 청와대를 들렀고, 효창공원으로 거쳐 사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안중근 의사) 묘소 앞에서 인사를 드린 뒤 백범 김구 선생의 묘소에 도착했다. 국내 일정을 마치고, 다음 날 새벽 상해 임시정부로 떠났다. 프랑스 조계지에 있었던 상해 임시정부는 한때 대한제국의 정부였다는 것이 무색할 만큼 작았다. 이곳에서 과연 어떠한 마음으로 국무위원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을지, 시작부터 스며드는 먹먹한 감정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사의사의 묘역
사의사의 묘역

●평생 잊지 못할 인사, 그리고 감사


1932년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일제의 탄압은 극에 달했다. 상해 임시정부 요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피신해야만 했고, 이때 백범 김구 선생은 중국인 부부가 제공한 은신처에 몸을 숨겼다. 일제의 감시가 없을 때는 하얀 빨래를 널고, 감시가 있을 때는 색상이 있는 빨래를 널었단다. 언제 본군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부둣가로 바로 연결되는 비상계단을 만들어 놨고, 나룻배가 늘 대기하고 있었다. 그 마을 사람 중 단 한 명이라도 밀고를 했더라면 독립운동사는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 그리고 이봉창 의사, 윤봉길 의사의 희생, 자신의 삶과 현실을 기록한 것이 바로 <백범일지>다.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온 것 같은데, 너무 고맙습니다.” 여든 일곱 독립유공자 어르신의 말씀이었다. 이것이 마지막이 아니라고, 지속적인 일들을 해보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후손으로서 독립유공자분들께 더 많은 추억을 선물해 드리고 싶다는 아쉬움을 간직한 채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평생 잊지 못할 인사를 말이다. 
 

*글을 쓴 정상규 작가는 역사교육 앱 ‘독립운동가’를 최초 개발했으며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잃어버린 영웅들, 청년들이여 깨어나라>의 저자다.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민간위원, 서울특별시 홍보대사, 사회공헌 NGO 포윅스(4WEAKS)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하나투어 독자기자 ‘장보영’을 소개합니다.
스물다섯 살에 처음 오른 지리산에서 하늘과 바람에 매료됐고, 이듬해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의 사계를 걸으며 생의 순수와 열정을 만났다. 산악 잡지와 문화 잡지를 만들며 10년을 보낸 그녀는 <트래비> 독자기자로서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글 정상규  사진 하나투어문화재단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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