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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의 여행의 순간] 한 장의 이야기가 완성되기까지

  • Editor. 박 로드리고 세희
  • 입력 2019.05.01 15: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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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미국 뉴욕

단순히 순간을 기록했다고 사진이 되지는 않는다.
좋은 사진은 치열한 구성에서 나온다.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로마

한 장의 사진이 온전한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분명한 주제가 필요하다.

기록된 여러 요소들 중에서도 가장 강렬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어떤 무엇 말이다. 단순히 순간을 기록했다고 사진이 되지는 않는다. 여행에서 찍은 수백 장의 사진 중에서 SNS에 올라가는 사진은 불과 몇 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경험을 우리 대부분은 가지고 있다.

인도 라다크
인도 라다크

사진은 감상하는 이에게 말을 거는 수단이다. 수십 년 전 사진이 시간을 초월하고, 먼 이국의 정취를 품은 사진이 공간을 초월해 우리에게 말을 걸어 온다. 마음속에서 어떠한 감정이 인다면, 그 말에 답하는 것이다. 주제가 선명한 사진만이 감상하는 이의 응답을 듣는 데 성공한다. 이때 주제를 더욱 또렷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부제다. 주제가 가장 주요한 피사체라면, 부제는 주제를 돋보이게 만들어 주는 또 다른 피사체다. 여행사진에선 대체로 풍경이나 그 지역의 랜드마크 등이 부제가 된다.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라도 유별난 피사체와 함께라면 특별해지기도 하고, 반대로 아무리 흔한 피사체여도 특별한 배경과 함께 있는 사진은 선명한 의미를 가진다. 주제와 부제가 만나 비로소 사진의 이야기가 완성된다. 


이쯤에서 사진 찍는 일이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주제와 부제라는 재료를 발견해 내는 것부터가 혜안과 감각이 필요한 일인데다 둘의 관계를 함께 엮는 것이야말로 사진가의 고유한 역할이자 역량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재료라도 요리사의 손길을 거쳐야만 일품요리가 탄생하는 것처럼 사진에서는 적절한 배치와 ‘구성’이 필요하다. 구성의 사전적 의미는 ‘여러 부분이나 요소들을 얽어 짜서 체계적인 하나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다. 미술이나 문학 등 예술에서는 색채나 형태, 문장과 단어 같은 요소들을 유기적으로 배치하는 일을 말한다. 영어로는 Compose, 즉 작곡과 같은 단어로 쓰인다. 소리를 엮어 하나의 곡을 만드는 것처럼, 사진 역시 여러 구성요소들을 엮어 이야기를 담는 추상적인 예술행위다.

사진과 비슷한 평면 시각 예술로서 회화가 언급되곤 하지만 구성의 입장에서 보자면 둘 사이에는 엄연히 태생적 차이가 존재한다. 회화는 빈 캔버스에서 시작해 요소들을 하나씩 채워 나가는 일이라면, 사진은 이미 꽉 차 있는 실제 세계에서 요소들을 하나씩 빼며 선택과 집중을 하는 작업이다. 렌즈를 고르고 조리개와 셔터스피드 수치를 선택하고 물론 빛의 강도와 방향을 살피는 시선. 찍을 위치를 정하기 위한 발걸음, 결정적 순간을 위한 기다림, 이 모든 것들이 사진의 요소다. 좋은 사진은 치열한 구성을 통해 나온다. 
    
세상에 숱하게 널린 평범한 장면 중에 주제와 부제를 찾아내는 눈, 그것들을 구성해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힘은 안타깝게도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면밀한 관찰력부터 풍부한 교양, 경험치가 버무려진 아주 복잡한 능력이다. 그래도 지름길이 있다. 세상 이곳저곳을 다녀 보기. 수많은 재료를 접하고 솎아 내고 배치하고 구성하는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다. 좋은 여행사진을 위해서 가장 많이 해야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여행이다. 

 

*박 로드리고 세희는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촬영감독이다. 틈틈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트래비>를 통해 여행사진을 찍는 기술보다는, 여행의 순간을 포착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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