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그대의 봄에 바람처럼 꽃처럼
후쿠오카, 그대의 봄에 바람처럼 꽃처럼
  • 이수연
  • 승인 2019.05.02 09:3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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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봄날의 삼확행 여행 후기
가와라신사의 옥석 앞에 활짝 핀 벚꽃
가와라신사의 옥석 앞에 활짝 핀 벚꽃

삼월의 어느 주말, 바람에 실려 다녀왔습니다. 
꽃샘추위가 따라붙었지만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습니다.
누구나 갈 수 있는 후쿠오카에서 보낸 3일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여행이었습니다. 

잘 다녀왔습니다! 
<트래비> 인생 여행 1탄 | 후쿠오카, 봄날의 삼확행 | 2019년 3월23~25일 

지난 14년 동안 <트래비>는 대한민국에서 독자 이벤트를 가장 많이 한 여행잡지였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한 번쯤 경쟁의 틀을 벗겨 보고 싶었죠. 그래서 만들어진 ‘후쿠오카, 봄날의 삼확행’ 여행은 오로지 ‘용기’를 지닌 여행자들의 차지가 되었습니다. 캠핑을 하고 온천을 하며 민낯으로 부대꼈던 여행자는 서로에게 선물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여행으로 만난 우리는 이번 여름이 오기 전에 국내 캠핑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답니다. 

올레길 구석구석을 안내해 주신 모모사카 유타카 국장님과 따듯한 도시락을 준비해 주신 가와라마치의 주민들, 아직 개장 전이었지만 캠핑장 사용을 허락해 주신 히라오다이 캠핑장 관계자분들뿐 아니라 양손 무겁게 사케를 들고 우리의 모닥불을 찾아 주셨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세심하게 우리를 살펴 주었던 후쿠오카관광연맹의 스즈키 아야씨, 운전부터 요리까지 만능이셨던 송준헌 엔바티 후쿠오카 지사장님께도 두고두고 갚아야 할 빚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신 캠핑여행가 김민수 작가님께는 밤마저 환하게 비춰 준 후쿠오카의 보름달을 따다 드리고 싶네요. 바로 그런 존재이셨답니다. 

지쿠호·가와라 코스를 안내해주는 올레 화살표
지쿠호·가와라 코스를 안내해주는 올레 화살표
700m 고지에 자리잡은 히라오다이 캠핑장
700m 고지에 자리잡은 히라오다이 캠핑장
맑은 봄날, 삼나무숲과 대나무숲이 교차하는 지쿠호·가와라 올레길을 걸었다
맑은 봄날, 삼나무숲과 대나무숲이 교차하는 지쿠호·가와라 올레길을 걸었다

 

●after the travel 
봄날의 사확행 :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다들 자신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가 있잖아요. 저는 그게 사람인 것 같아요.”
떠나기 전, 배낭 앞에 한껏 펼쳐놓은 짐만큼 걱정을 잔뜩 껴안았던 내가 돌아와 사람들에게 한 말이었다. 


걱정의 일부는 현실이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뚝 떨어진 기온과 휘몰아치는 비바람에 침낭 속에서 추위와 씨름하며 또다시 의문이 차올랐다. 따뜻하고 편한 집을 놔두고 왜 낯선 사람들과 규슈 히라오다이 고원까지 찾아와 이 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게 춥다는 말을 날숨처럼 뱉으며 긴긴밤을 지새운 뒤 부스스한 모습으로 서로의 생사를 확인한 우리는 찬바람이 끼어들지 못하게 다닥다닥 붙어 앉아 아침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여행 첫날의 어색한 분위기는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트래비)여행팀을 위해 집 앞에 사케와 커피를 준비해 준 모모사카 유타카 가와라마치관광협회 사무국장(가운데)
(트래비)여행팀을 위해 집 앞에 사케와 커피를 준비해 준 모모사카 유타카 가와라마치관광협회 사무국장(가운데)

가볍게 준비운동을 하고 오른 지쿠로·가와라 올레길, 아직 벚꽃은 만개하지 않았지만 한결 따스해진 햇살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졌다. “오하이오!” 맑은 목소리에 돌아보니 허리 숙여 정원을 가꾸던 할머니가 미소 지었다. 할머니 품에 안긴 수선화에서 말간 봄이 고개를 들었다. 또 다른 집에선 낯선 이방인들을 빼꼼 내다보는 아이에게 유카타를 입은 할아버지가 ‘안녕하세요’를 알려주고 있었다. ‘오하이오-’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빙긋 웃어 보이자 아이도 수줍게 ‘오하이오-’ 하고 대답했다. 

가와라의 특산물인 죽순 요리. 다들 이렇게 크고 부드러운 죽순은 처음이라고 했다
가와라의 특산물인 죽순 요리. 다들 이렇게 크고 부드러운 죽순은 처음이라고 했다
쓰러진 대나무를 엮어 만든 숲속 의자
쓰러진 대나무를 엮어 만든 숲속 의자

가와라마치 주민들이 준비한 정성 어린 점심 도시락에도 봄 향기가 가득했다. 죽순 절임은 조금씩 베어 먹고 유자가 들어간 녹색 양념은 벚꽃 모양 당근이 들어간 된장국에 풀어 먹었다. 우리를 안내한 푸근한 인상의 모모사카씨(가와라마치 관광협회 사무국장) 집에는 커피와 말차와 사케가 준비되어 있었다. 신문지로 돌돌 말린 사케는 이른 봄 이 시기에만 나온다고 했다. 술잔 위에 작은 쌀알이 동동 떠 있는 햇사케에서는 상큼한 봄 향이 났다. 커피에도, 말차에도, 물에도, 자꾸자꾸 권하는 어떤 잔에도 봄 햇살만큼 따스한 마음이 어려 있었다.

함께 장을 보고,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밤을 보냈다. 척척척 손발이 맞아 가는 동안 친구가 되었다고
함께 장을 보고, 함께 요리를 하고, 함께 밤을 보냈다. 척척척 손발이 맞아 가는 동안 친구가 되었다고
가와라마치의 전통 방식으로 사케를 데워 마셨다. 대나무향이 가득했다
가와라마치의 전통 방식으로 사케를 데워 마셨다. 대나무향이 가득했다

빽빽한 삼나무 숲과 쭉 뻗은 대숲, 신사와 공동묘지, 광산과 초지를 지나는 동안 한창 꽃잎을 펼친 동백과 목련, 홍매화와 벚꽃을 마주했다. 겨울의 흔적인 황금색 들판과 이른 봄의 발자취인 연둣빛 들판을 지나고 유채꽃이 가득한 철길 옆을 지날 땐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올레길의 상징인 빨간 끈과 파란 끈으로 이어진 길 위로 사슴이 나무를 파헤친 자국과 멧돼지가 죽순을 파먹은 흔적을 만났다. 제 안에 커다란 구멍을 지닌 육백 년 된 나무와 묘한 표정의 석상들도 지나쳤다. 길의 마지막, 신라 사람들을 신으로 모신 가와라 신사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나와 수제 생강차를 건넸다. 길 위에는 예상했던 화사한 봄 풍경은 없었지만 예상치 못했던 사람의 따스한 봄이 있었다.

천연 족욕의 재미가 쏠쏠, 히라오다이의 센부쓰 종유동 탐험은 졸졸졸 흐르는 물을 따라 이뤄졌다
천연 족욕의 재미가 쏠쏠, 히라오다이의 센부쓰 종유동 탐험은 졸졸졸 흐르는 물을 따라 이뤄졌다

트레킹을 마치고 들어간 노천탕은 따끈따끈했다. 머리 위로 드리워진 가지엔 화사한 벚꽃이 저녁 어스름에 물들고 있었다. 천천히, 등에 두 마리가 벚꽃 사이를 드나들었다.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듯 여유롭게. 아야씨(후쿠오카관광연맹에서 나온 안내인)는 일본에서 온천을 한 후엔 반드시 탄산음료인 라무네나 우유를 마셔야 한다고 권했다. 자판기에서 뽑아 마신 병우유는 깜짝 놀랄 만큼 신선했다. 이 이상 행복할 수 있을까. 다들 따스한 행복에 취해 오래된 친구처럼 농담을 주고받았다. 


마지막 여정인 센부쓰 동굴에선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좁은 길을 걸으며 때로는 허리를 숙이거나 몸을 비틀었다. 춥고 답답할 것 같던 동굴은 안온하고 고요했다. 수중 트레킹은 처음이라 걱정했지만 껴입은 옷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고 두려움보다는 탐험가라도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히라오다이 고원에 자리한 캠핑장에서 둥글게 설영을 했다
히라오다이 고원에 자리한 캠핑장에서 둥글게 설영을 했다

그러고 보니 <트래비>와 함께한 후쿠오카 여행에서 예상대로 흘러간 건 아무것도 없었다. 만개한 벚꽃 대신 수많은 이름 모를 들꽃과 단아한 정원의 꽃들을 만났고, 시골의 자연과 동물의 흔적으로 사람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캠핑과 추위 덕분에 일행들에게 낯가릴 겨를이 없었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일본인들과는 눈빛과 인사만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다. 서둘러 벚꽃을 보고 오겠다는 생각도 유유히 날던 등에처럼 느슨해졌다. 


후쿠오카 여행을 마치고 열흘 만에 뒤풀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한결 따스해진 눈빛으로 방긋방긋 웃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길에서 나는 일본에, 어쩌면 캠핑에, 아니 사실은 사람에 푹 빠져 버렸음을 고백했다. 


낯선 공간에 자신을 던져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것이 여행이라면 낯섦으로 가득 찬 해외여행은 농도 짙은 여행이고, 캠핑은 여행에서 한 발 더 나아간 게 아닐까. 떠나기 전 꽁꽁 묶여 있던 낯섦에 대한 두려움은 봄날의 삼확행에 스르르 풀려 다음 여행을 꿈꾸게 한다. 


캠핑과 트레킹과 온천이 드리워진 여행이라는 ‘봄날의 삼확행’을 살짝 고쳐 써 본다. <트래비>와 함께한 여행은 삼확행에 사람이 깃든 사확행, 네 가지 확실한 행복 여행이라고.  

“저희 내려 주세요!” 히라오라디 고원의 풍경이 펼쳐지자 차를 멈추고 걷기를 택했다
“저희 내려 주세요!” 히라오라디 고원의 풍경이 펼쳐지자 차를 멈추고 걷기를 택했다

*트래비 인생여행 1탄에 참여한 자연형(닉네임)은 블로그 및 sns 공간에 여행과 음악, 문화 이야기를 잔잔하게 펼치는 여행 인플루언서다.   blog.naver.com/natur_herz

글 이수연(자연형)  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후쿠오카현 관광홈페이지 www.crossroadfukuoka.j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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