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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의 트렌드 리포트] 멍 때리는 여행이 필요한 이유

  • Editor. 이상현
  • 입력 2019.04.3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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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br>에어비앤비 정책 총괄<br>
이상현
에어비앤비 정책 총괄

“거기 정말 좋아요. 가면 할 게 하나도 없어요.”  
사이판으로 휴가 여행을 가면 어떻겠냐고 물었을 때 자타공인 여행 고수인 친구는 답변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여행을 가서 할 게 하나도 없다니? 그리고 그것이 왜 좋다는 말인가? 


의문을 품고 도착한 사이판에서는 실제로 그다지 할 게 없었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4시간 걸리는 사이판은 면적이 115㎢에 인구가 6만 명 정도의 작은 섬이다. 이곳에는 미술관도 없었고, 놀이동산이나 워터파크는 커녕 동물원도 없었다. 오래된 맛집이나 맥줏집도 없었다. 그리고 보너스로 미세먼지도 없었다. 미개발 지역이 많은 이 작은 섬에서는 인터넷과 전화가 먹통이 될 때가 많았고, 도로명이 없는 곳조차 있었다. 이렇다 보니 사이판에서의 생활이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각종 외부 행사와 회의, 잦은 해외 출장으로 늘 바빴고 잠시도 휴대폰이나 컴퓨터와 떨어질 수 없었던 서울에서의 일상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차츰 사이판에서의 느긋한 일상을 즐기게 됐다. 일상을 깡그리 잊고 오랜 시간 석양을 바라보았고,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을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잠이 들고 깨어나면 또다시 바다와 나무, 하늘을 보았다. 절벽이 가로막힌 길목에서는 차를 세우고 밤하늘의 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이판에서의 일주일은 ‘멍 때리기’가 참 유용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 순간이었다. 개인적으로나 사업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고 그와 관련한 계획도 꼼꼼하게 세울 수 있었다. 모두 ‘멍 때리기’, 뇌를 쉬게 하여 얻은 결과였다. 


요즘은 여행 스케줄을 짜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현지에서도 길을 쉽게 찾을 수 있고, 해당 지역을 여행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여행사 가이드, 여행 가이드북, 또는 호텔 컨시어지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에서 구글 검색만 몇 번 하면 현지의 맛집부터 관광 명소에 대한 정보와 자세한 경험담까지 얻을 수 있게 됐다.


인터넷은 여행에 편리함을 더해주었지만 한편으로는 느긋한 여행의 묘미를 앗아간 듯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현지의 거리를 여유 있게 거닐며 호젓한 식당을 찾아 그 지역만의 음식을 맛보기도 하고, 현지인의 생활을 직접 경험하며 함께 어우러지는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스마트폰 덕분에 여행 계획을 빡빡하게 짜서 쉴 새 없이 옮겨 다니며 여행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기술 발전의 아이러니다.


기술의 진보는 유연한 사고를 방해한다.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 스마트폰으로 통화를 하고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주고받고, 이메일을 확인하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이처럼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새로운 기획이나 참신한 아이디어가 더욱 절실하다. 정형화된 일상에서는 유연하게 사고하기가 힘들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떠올릴 수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면 퀸 멤버들이 시골로 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최고의 앨범을 만들기 위해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곡 작업에 몰두했고, 그렇게 해서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명곡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에어비앤비 창업자들도 어려웠던 시기에 미국 중부의 시골에 3개월간 머물며 사업 계획을 구상했고, 그 3개월은 사업 성공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뇌는 휴식을 취할수록 서로 다른 정보를 연결해 새로운 연상을 가능하게 한다고 한다.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문제가 있다면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을 몰아내야 한다. 휴식을 통해 생각을 몰아내고 싶은가? 적극적으로 멍 때릴 수 있는 여행을 떠나야 할 시간인 듯하다. 
 

이상현
에어비앤비 한국·일본 정책총괄 대표 /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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