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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의 여행의 순간] 카메라를 든 여행자의 태도

  • Editor. 박 로드리고 세희
  • 입력 2019.06.01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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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 페트라
요르단 페트라

사진은 때때로 폭력성을 품는다.
윤리를 지키는 것은 결국 사진을 위한 일이다.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로마

뉴욕의 거리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을 때다. 어떤 사람이 다가와 방금 촬영된 화면을 보여 줄 것을 정중하게 요구했다. 자신이 화면에 보이면 그 영상을 지워 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어쩔 수 없이 영상을 보여 줘야 했지만, 다행히 그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넓은 화각이라 찍은 영상을 지워야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경험상 대체로 북미나 유럽 사람들은 초상권에 매우 민감한 편이다. 방송이나 상업적인 촬영에서는 제작진이 일일이 ‘출연 동의서’에 서명을 받아가며 촬영을 진행해야 할 정도다. 개인적으로 떠난 여행에서라면 어쩔 수 없이 뒷모습이나 개개인을 잘 알아볼 수 없게끔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다. 

몽골 고비 사막 가는 길에 만난 작은 마을의 아이들
몽골 고비 사막 가는 길에 만난 작은 마을의 아이들

 

사진은 때때로 폭력성을 품는다.

탁월한 사진 비평으로 유명한 수전 손택, 롤랑 바르트, 존 버거 등이 공통적으로 언급했고, 수전 손택은 심지어 카메라를 총과 동일시하기까지 했다. 총구를 적에게 겨누고 가늠자에 눈을 댄 뒤 방아쇠를 당겨서 총을 쏘는 행위는 사진 찍을 때의 모습과 영락없이 닮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영어 단어 ‘shoot’은 ‘총을 쏘다’와 ‘촬영하다’라는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사진은 찍히는 누군가에게는 위협적일 수 있다. 타인을 촬영할 때 예의를 갖추어야 하는 이유다. 사진을 찍기 전에 동의를 얻어야 하며, 상대방이 수치심을 느끼거나 불쾌해할 수 있는 상황은 애초에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면 몸짓과 표정을 총 동원해 최소한의 ‘심증적 동의’를 구해야 한다. 너무나도 찰나적 순간이거나 자연스러움을 해칠 것 같아 피치 못하게 먼저 사진을 찍었을 경우에도, ‘후(後)’ 동의는 여전히 필요하다. 사진 속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태도가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윤리를 지키는 것은 결국 사진을 위한 일이다.
  

티베트
티베트

‘최고의 인물사진은 사람에 대한 정보가 아니라 영혼이 비치는 사진’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최고의 여행사진은 어떤 사진일까? 사진의 성패가 보는 이의 공명을 얼마나 불러일으키는가에 달려 있다면, 좋은 여행사진은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사진일 것이다. 인물을 중심으로 이국의 감정을 진하게 담아내려면 무엇보다 피사체와의 사전 교감이 중요하다. 찍히는 사람이 열린 마음으로 여행자를 대하면 짧은 교감만으로도 친구가 되어 그만큼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고의 사진은 언제나 ‘아직 찍지 못한’ 사진이라 믿을 때 여행은 끊이지 않는다. 여행은 아직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일이기도 하다.

 

*박 로드리고 세희는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촬영감독이다. 틈틈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트래비>를 통해 여행사진을 찍는 기술보다는, 여행의 순간을 포착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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