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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cycle Trip-Take min on the road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19.06.01 17: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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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씨는 아직 여행 중이다. 덕수궁을 돌아보는 그의 눈이 그랬다
민형씨는 아직 여행 중이다. 덕수궁을 돌아보는 그의 눈이 그랬다

떠나고 싶어서 떠났고 가야만 해서 도착했다.
세계의 끝을 자전거로 밟은 한 남자의 덤덤한 이야기다.
 

김민형 자전거 여행루트 
여행기간: 2017년 5월27일~2019년 4월3일(677일)
이동거리: 2만300km(1일 평균 80~120km)
여행루트: 캐나다-미국-멕시코-콰테말라-엘살바도르-온두라스-니카라과-코스타리카-파나마-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일본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은하수, 사랑스러운 풍경
가슴 시리게 아름다운 은하수, 사랑스러운 풍경

●하고 싶으면 합니다

부쩍 두꺼워진 햇살에 셔츠 끝을 돌돌 말았다. 시원한 카페에서 커피나 한잔 마실까 했더니,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덕수궁을 여행 중이에요. 역시 서울은 너무 좋은 곳이네요.” 얼마 전 자전거로 여행을 마쳤다는 민형씨였다. 늦은 봄 그리고 이른 여름, 잠깐 덕수궁 흙길을 거닐며, 그가 남긴 자전거 바큇자국을 쫓아 봤다.


92년생, 원숭이띠 김민형. 그러니까 28년을 살아온 그는 677일을 자전거에 올라 세상을 달렸단다. 캐나다 에드먼튼을 시작으로 세상의 끝인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까지, 무려 2만300km의 대장정이었다. 그에게 정말 궁금한 건 사실 ‘거리’ 따위가 아니었다. 결정의 이유, 그의 여행에 동감하고 싶었다. 왜 세상을 여행했는지, 그 수단이 왜 자전거였는지. 이왕이면 답변은 감동적이길 바랬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자전거를 들춰 메고 세상으로 떠나게 된 계기요” 민형씨는 대답했다. “그냥 하고 싶어서 떠났어요. 사실 계기라고 말할 게 없네요. 고등학교 시절 김태현 작가의 <떠나지 않으면 청춘이 아니다>라는 책을 보곤, 그냥 저도 그러기로 결정한 거죠.” 그의 대답이 거창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에게는 진한 욕망이 느껴졌다. 새로운 세상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자 하는 그런 욕망. 그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했을 뿐이고 그래서 덤덤했을 뿐이다. 그냥 하고 싶은 걸 했으니까. 


대학 시절 그는 자전거에 푹 빠졌었단다. 매일 페달을 밟아댔지만 기쁨은 슬프게도 잠시 스치는 것이기에. 무리한 페달링으로 무릎 옆, 장경인대에 염증이 생겨 버렸다.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밟아댔던 페달은 민형씨의 무릎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나선 당연히 떠날 거라 확신했던 자전거 여행을 무리라고 스스로 판단했을 정도니까.

그렇다고 순식간에 사라질 욕망이 아니었다. 그는 어떤 끌림으로 일본을 여행하게 되었단다. 단돈 200만원으로 일본을 일주하기. 총 93번, 이름도 모를 일본인들의 차를 얻어 타가며 후쿠오카에서 일본 최북단 와카나이까지 90일간 7,000km를 여행했다. 잠은 대부분 길에서, 가끔은 처음 보는 일본인의 집에서 해결했다.

“일본을 여행한 것만으로 가슴이 뛰었어요. 제가 살던 세상이 아니니까, 성취감이 들면서 궁금해졌어요. 만약 지금보다 더 멀고 넓은 곳으로 떠난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까, 그곳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또 누굴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어떤 모습일까.”

그의 생각 끝엔 여전히 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아메리카 대륙만은 꼭 종단해야겠다는 깊은 열망, 그는 장경인대를 2cm 연장하는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대에 누워 마취를 시작할 때, 미소를 지었단다. 드디어 떠날 수 있다는 확신에, 그리고 설렘에. 덕수궁 나무 그늘 밑, 여전히 그는 웃고 있었다. 아직도 설레는 게 분명하다. 

우유니 사막의 계속되는 반사광으로 입은 각막 화상
우유니 사막의 계속되는 반사광으로 입은 각막 화상

●그래야만 하는 사람

2017년 5월27일, 그가 캐나다 에드먼튼으로 떠나 대장정을 시작한 날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동시에 자전거를 조립하곤 20km 정도 떨어진 에드먼튼 시내로 라이딩을 시작했다. 여행 중 민형씨에게 필요한 규칙은 딱 2가지. 배고프면 밥을 먹고, 밤이 되면 잠자고. 에드먼튼 시내 공원 한구석에 텐트를 쳤다. 잘 준비를 마친 그때 하늘이 너울거렸다. 오로라였다. 당시를 회상하던 그는 긴 탄성을 위한 숨을 들이마셨다.

“와, 시작부터 오로라라니, 왠지 운이 좋을 것만 같은 첫날이었어요. 그때부턴 일주에 대한 욕망이 막 솟더라고요.” 그는 다음날부터 하루에 8시간, 그러니까 100km 정도씩의 거리를 의무적으로 자전거에 올라 달렸다. 미국 포틀랜드에서 문제가 생기기 전까진.

포틀랜드에는 평소 알고 지내던 지인이 유학 중이었단다. 민형씨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회포를 풀기 위해 마트로 향했다. 잠시 짐과 자전거를 남겨 둔 채. 그렇게 민형씨는 자전거와 영영 이별하게 되었다. “정말 갑자기 없어지니 욕도 안 나와요. 수중에는 600만원이 있었어요. 그 이외의 것들, 캠핑 장비, 노트북, 자전거 그냥 전부 없어져 버린 거죠. 딱 3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포기한다, 히치하이킹을 한다, 다시 자전거를 산다’ 그런데 3가지 다 하기 싫더라고요.”

민형씨는 턱을 긁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근데 여행을 오겠다고 수술까지 받았잖아요. 포기가 정말 힘들었어요.” 그는 자신의 사정을 고이고이 적어 포틀랜드 지역 방송국에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사연은 포틀랜드 지역방송에 대서특필 된다. 곧이어 포틀랜드의 유명 자전거 탐정, ‘브라이언 핸슨’의 도움으로 그를 위한 자선회가 개최되었고 무려 800만원이라는 돈이 순식간에 모금되었다. 자선회의 이름은 <Take min on the road>. 포틀랜드는 그를 길 위에 다시 데려다 놓았고, 전보다 더 좋은 자전거에 오른 그에겐 한 가지 의무가 생겼다. 그는 이제 세상 끝으로 기어코 가야만 하는 사람이다.

한 번쯤 정말 세상을 느껴 보고 싶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한 번쯤 정말 세상을 느껴 보고 싶었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멕시코, 데셈보퀴에서 만난 한 아이. 웃음은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행복의 언어다
멕시코, 데셈보퀴에서 만난 한 아이. 웃음은 세계 어디에서나 통하는 행복의 언어다

●보이지 않아도 결국

‘미까사 에스 뚜까사(Mi casa es tu casa)’ 그가 남미를 가르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 ‘내 집이 너의 집’이라는 뜻. 특히 멕시코 사람들 특유의 환대는 그를 조금 느슨하게 만들었다. 조금은 천천히, 얼마 남지 않은 여정을 즐기기로 했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산크리스토발이라는 도시에선 1달 동안 스페인어를 공부했고 콜리마라는 도시에는 무려 3주 동안 약해진 무릎을 치료했다. 


볼리비아에 들어서선 우유니 사막을 달렸다. “우유니 사막에는 정말 아무도 없어요. 그냥 모든 것이 하얗고 거기에 저만 있는 거죠. 아름다워요. 밤이면 텐트를 치고, 하늘을 봤는데 별이 한가득이더라고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죠.” 그야말로 펑펑 울었단다, 본인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한참을 울고 텐트에 누웠을 때조차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날 밤, 그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그리고 찾아온 아침, 분명 새하얀 세상이 가득해야 하는데, 온통 뿌옇게 번져 보였다. 앞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눈을 못 떴어요. 정말 너무 무서웠죠. 제 주위에는 아무도 없는데, 저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조차 몰랐어요.” 그렇게 아름답다고 느낀 흰 세상이 주는 거대한 공포는 그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들었다.

“간신히 실눈을 떴어요. 저 멀리 발전소가 하나 보였어요. 그냥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죠. 도착하니 정말 큰 리튬 발전소였어요. 저의 통행을 제지하러 나온 군인이 내부 응급의사를 불러 주었어요.” 전날 계속된 반사광으로 인해 각막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왠지 그날 밤 이상할 정도로 눈물이 나더니, 역시 사람이 감동해서 펑펑 울긴 조금 힘든가 봐요(웃음). 저는 여행이 거의 끝나 가는 이 시점에서, 정말 감동해서 눈물이 나왔다고 생각했거든요.”

다행스럽게도 리튬 발전소 직원들의 보살핌으로 그의 시력은 다시 돌아왔다. 진료비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볼리비아 국가 소속기관이라 진료비가 무료라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안심이 됐는지.” 갑작스러운 시련에 찾아온 위기감 덕분이었을까, 그는 전보다 더 강력히 일주에 대한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 민형씨는 달리고 달렸다. 


결국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에 도착했다. 세상 끝에서, 자전거 안장을 내려오며 어떤 생각을 했냐고 물었다. “여기구나, 했구나, 면목이 생겼다! 정도?” 그전과 무엇이 달라졌냐고 물었다. “달라진 건 없어요. 저는 여전히 저죠. 하지만 남들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죠. 저의 기억을 여행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저의 여행을 세상에 공유해 보고 싶어요. 아직은 그 시작점이 보이지 않지만요.”

사실 그는 지금에 익숙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흰 세상은 무섭지만 결국 어디든 달리면 도착할 테니까. 민형씨에겐 의무가 생겼다. 그는 이제 세상에 이 모든 이야기를 알려야만 하는 사람이다. 포틀랜드가 그를 다시 길 위에 데려다 놓았듯, <트래비>도 그랬으니까.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그가, 어딘가의 끝에 도착할 수 있길 바란다. 

 

*김민형은 자전거로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했다. 677일, 2만300km를 달렸다. 그렇다고 치열한 여행은 아니었다. 그의 여행은 뭉근하고 친숙하다. 길 위에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수많은 사람과 이별했다. 돌아온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인연들을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새로운 길 위로 다시 무작정 나섰다.
인스타그램 kim_min_hyeong04
홈페이지 blog.naver.com/alsgud0404

 

글·인터뷰 사진 강화송 기자  여행사진 제공 김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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