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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 홋카이도

  • Editor. 이혜린
  • 입력 2019.06.03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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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촘촘히 뻗은 비에이 자작나무숲
하늘을 향해 촘촘히 뻗은 비에이 자작나무숲

복잡한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절실했던 날, 
홋카이도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화려한 볼거리는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소소한 풍경이 필요했다.


●오타루OTARU

동화 속의 가게 
오타루 오르골당

오타루는 삿포로에서 약 40분 정도 떨어진,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삿포로가 주었던 도시의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오타루는 탄광과 무역으로 한때 홋카이도 제2의 도시로 번성했던 곳이다. 무역이 줄어들고 광산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레 산업은 축소됐지만, 홋카이도의 옛 감성은 여전히 곳곳에서 묻어났다. ‘여행자의 거리’가 특히 그랬다. 쭉 뻗은 좁은 도로의 양옆에는 이국적 분위기의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었다. 일본 전통의 분위기와 유럽 건축양식의 조화를 보여주는 건물들은 무역으로 번영하던 당시 각국의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모든 공간이 오르골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공간이 오르골로 가득 차 있다

평소 선택을 잘 하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이 거리에서는 주의해야 한다. 이 작고 귀여운 것들을 결코 하나만 선택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오르골당(Otaru Music Box Museum)은 3층짜리 건물로 약 1만 5,000점의 오르골이 가득 차 있다. 상점보다는 박물관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이런 천국에서 딱 하나만 고르는 것도 실례다. 이것저것 바구니에 담다 보니 어느덧 무거워진 양손과 반대로 지갑은 홀쭉해졌지만, 마음만은 풍요로워졌다.

 

잔잔히 차오르는 행복 
오타루 운하

마음에 드는 디저트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들고선 거리를 빠져나와 걷기 시작했다. 여행자의 거리에서 오타루 운하까지는 걸어서도 오갈 수 있다. 과거에는 무역의 중심지로, 현재는 대표격인 관광 명소로 기능하는 오타루 운하는 오타루의 심장이나 다를 바 없다. 무역항의 기능이 사라지자 운하의 일부를 산책로로 조성하고, 오래 된 창고 건물들을 상점과 레스토랑으로 개조한 것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지금의 운하 모습이다.

하늘에 파랗게 물든 오타루 운하
하늘에 파랗게 물든 오타루 운하

운하 산책로는 10분 정도면 왕복이 가능한 길이다. 그리 길지 않은 산책로를 천천히 따라 걸으니 잔잔한 행복이 차올랐다. 야경 명소로 유명한 곳이지만, 한적한 낮의 운하는 오타루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다시 오타루를 찾게 되는 날에는, 이곳에 가만히 앉아 오타루의 하루가 떠오르고 저무는 모습을 바라보리라 다짐했다. 오타루는 그렇게 하루를 잔잔히 보내기 좋은 곳이었다.

 

●비에이 BIEI

무채색 풍경 속 단 하나의 색 
흰수염폭포

온도는 아직 겨울의 언저리에 머물러 있는 듯했지만, 계절에 무심하게 폭포는 끊임없이 흘러갔다. 비에이의 주요 명소 중 하나인 흰수염폭포는 흘러나오는 가느다란 여러 개의 물줄기가 폭포로 합쳐지는 모습이 마치 수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온천수가 흐르기 때문에 사계절 내내 얼지 않는다.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흰 색의 물줄기는 호수 바닥과 만나는 순간 푸르게 물들었다. 이 물줄기는 또 다른 명소인 청의 호수(아오이이케, 靑い池)까지 흘러간다. 흐린 날씨일 때도 유일하게 채도가 높았던 에메랄드빛은 어쩐지 더 빛나 보였다.

흰수염폭포는 계절에 상관없이 365일 푸르게 흐른다
흰수염폭포는 계절에 상관없이 365일 푸르게 흐른다

겨울과 봄의 중간에서 만난 비에이는 눈의 왕국 대신 ‘사색의 마을’이라 부르고 싶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도심을 벗어나 사람도, 풍경도, 폭포의 물줄기까지도,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생각도 느리게 따라 흘렀다. 고즈넉한 풍경 속을 걸으며 사색에 잠기니 탁신관에서 본 사진 속의 주인공이 된 듯했다.

폐교된 초등학교 체육관을 개조한 아담한 사이즈의 탁신관
폐교된 초등학교 체육관을 개조한 아담한 사이즈의 탁신관

사계절을 한번에 느끼는 방법 
탁신관-자작나무 숲

채 녹지 않은 눈이 비에이로 향하는 길 곳곳에 쌓여 있었다. 이미 봄이 완연한 한국과는 달리 눈의 왕국다운 날씨였다. 비에이의 유명세는 일본의 사진작가 ‘마에다 신조’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연히 방문하게 된 비에이의 풍경에 매료된 그는 30년간 비에이의 아름다움을 사진에 담았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불과했던 비에이는 그의 사진 하나로 사랑받는 관광지가 됐다. 그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가 ‘탁신관’이다. 무언가를 오래 사랑하면 그 마음을 눈으로도 볼 수 있게 되는 듯했다. 여름의 다채로움부터 겨울의 깨끗함까지, 갤러리 안의 작품들은 비에이의 사계절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들만 골라 담아내고 있다. 이 많은 작품들을 모두 우연히 찍을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30년의 시간 동안 지속된 그의 애정 어린 시선이 액자 밖으로 전해졌다.

탁신관 옆으로 펼쳐진 자작나무숲
탁신관 옆으로 펼쳐진 자작나무숲

갤러리 옆에서는 높게 뻗은 하얀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오타루에서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운하 산책로를 거닐었다면 이곳에서는 빼곡히 심어진 자작나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걸었다. 왠지 작가가 비에이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도야 TOYA

이 또한 자연의 선물 
도야 호수-사이로 전망대

홋카이도 여행하면 역시 자연이다. 도야는 그중에서도 웅장한 대자연을 자랑하는 곳이다. 앞서 다녀온 소소하고 잔잔한 느낌의 오타루, 비에이와는 꽤 다른 분위기다(물론 홋카이도 특유의 고즈넉함은 여전하다). 여기에 한몫한 것이 바로 도야 호수다. 둘레가 약 50km에 이르며, 중앙에 네 개의 섬이 자리하고 있는 이 호수는 거듭된 화산 활동으로 인해 지형이 함몰되며 생성된 칼데라호다. 너무 광활해서 때로는 바다처럼 보이기도 한다나.

사이로 전망대의 포토 스팟
사이로 전망대의 포토 스팟

어느새 제법 굵어진 빗방울과 함께 도야 호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이로 전망대로 향했다. 비가 온 탓에 수면 위로 안개가 잔뜩 내려앉아 있었지만, 그 덕에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좀처럼 걷히지 않아 아쉬운 안개도 대자연의 섭리려니 하며 넘어갈 수 있었다. 전망대의 중심에는 TOYA 이니셜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그 앞에 삼삼오오 모여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 사이에 자연스레 섞여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날이 좋을 때 다시 오게 된다면 꼭 호수를 가로지르는 유람선을 타리라 생각하면서.

 

날이 흐려도 난 변하지 않아 
쇼와신산  

활화산이라는 말을 듣고는 “저희가 갔을 때 마침 터지면 어떡해요?”라고 질문하고 말았다. 1943년을 마지막으로 분화가 멈추었지만 정상에서는 아직 증기가 나오고 있는 활화산인 쇼와신산(昭和新山)은 사이로 전망대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화산의 열기로 인해 정상은 식물이 자라지 못하며, 눈이 내려앉아도 바로 녹아 버리기 때문에 365일 붉게 물든 모습이다. 이곳은 오히려 날이 맑을 때는 화산의 증기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마침 날이 흐렸기 때문에 산 주변으로 웅장하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완벽히 감상할 수 있었다.

날이 흐릴 때 더 잘 보이는 쇼와신산의 증기
날이 흐릴 때 더 잘 보이는 쇼와신산의 증기

모든 것이 최선의 상황에서 원하는 대로 척척 이루어진다면 좋겠지만 사람 일은 대체적으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여행도 그렇고, 변덕스러운 날씨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는 이 산과, 호수와, 자연과, 홋카이도처럼. 

 

▶Tip
Airline  피치항공이 일본 삿포로(신치토세) 노선을 매일 1회 신규 취항했다. 인천에서 오전 2시40분에 출발해 삿포로에 오전 5시30분 도착, 복편은 삿포로에서 오후 10시에 출발해 다음날 오전 1시10분 인천에 도착한다.

 

글·사진 이혜린 인턴기자 
취재협조 피치항공 www.flypea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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