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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마다 시간이 밟힌다, 마포 양화진

  • Editor. 김예지 기자
  • 입력 2019.05.29 09:20
  • 수정 2019.05.29 09: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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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양화대교가 들어선 자리는 조선시대 뱃놀이 명소, 양화진이었다
지금의 양화대교가 들어선 자리는 조선시대 뱃놀이 명소, 양화진이었다

익숙한 동네를 새롭게 여행하는 방법 중 하나,
시간을 겹겹이 뜯어보는 것이다.


조선시대 풍경맛집 양화진


저기 저 와인 바는 가 본 적이 있다만. 이 길의 이름은 이날에야 알았다. 합정역 7번 출구로 나오자 ‘성지길’이 이어졌다. 10분가량 걸었을까, 꽤나 가파른 나무 계단 앞에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표적처럼 서 있다. 어려운 단어들 중 가장 먼저 눈에 꽂힌 건, 꽃. 주변에 버들꽃이 많이 펴서 이름이 붙었다는 ‘양화’나루의 무용담에 관한 내용이었다.


양화나루(진, 津)는 한강나루, 삼전도나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나루로 꼽힐 만큼 번성했었다. 강화로 가는 통로이자 삼남(三南) 지방에서 올라오는 농산물을 받던 운송기지, 군사 훈련장 역할도 했다. 풍경마저 빼어났다. 조선시대 역사서 <한경지략(漢京識略)>에 ‘양화진은 경치가 좋아 명나라 사신들이 매일 그곳에 나가 놀며 시를 지었다’는 기록을 봐도 양화진은 말하자면, 믿고 가는 조선의 접대코스였던 셈이다. 잠두봉과 선유봉 사이를 오가던 뱃길이 그렇게도 수려했다나. 지금의 양화대교가 들어선 자리다.

절두산순교성지 입구 쪽에 있는 성녀 마더 데레사 동상
절두산순교성지 입구 쪽에 있는 성녀 마더 데레사 동상

●COURSE 1
절두산순교성지

강물에 묻혀 버린 꿈


계단을 타고 오르면 잠두봉, 지금은 ‘절두산순교성지’라 불리는 곳이다. 머리가 잘린다. 누에의 머리라는 뜻의 ‘잠두(蠶頭)’가 ‘절두(切頭)’라는 날카로운 이름을 얻게 된 건 1866년 병인년 이후다. 그해, 우리나라 역사상 최대 천주교 박해 사건인 병인박해(丙寅迫害)가 있었다.

십자가 모양을 한 잔디길 뒤에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 보인다
십자가 모양을 한 잔디길 뒤에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이 보인다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당시 흥선대원군은 애초에 천주교에 적대적이지는 않았다니 말이다. 러시아가 통상을 요구하며 조선을 압박해 오자, 천주교 신자 사대부 남종삼이 대원군에게 프랑스 주교와의 만남을 권할 수 있었던 이유다. 프랑스와의 동맹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막을 수 있다는 그의 논리 뒤엔 문호를 개방하고 신앙의 자유를 얻으려는 전략이 숨어 있었다. 그러니까 조금만 빨랐어도. 지방에 있던 프랑스 주교들이 한양에 오는 한 달여 시간 동안 청나라의 천주교 탄압 소식이 들려왔다. 조선에서도 천주교를 몰아내야 한다는 유림세력의 거센 주장에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고려한 흥선대원군은 결국 천주교 박해령을 선포했다. 8,000여 명. 남종삼과 프랑스 선교사를 포함해 이곳 잠두봉에서 죽음을 맞은 이들의 수를 가늠하면 할수록 지명은 가혹하게도 사실적이다. 수많은 머리들이 잘려 나갔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 꼭 정원을 산책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 꼭 정원을 산책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성인의 칭호를 얻은 김대건 신부의 동상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성인의 칭호를 얻은 김대건 신부의 동상

지금 절두산의 공기는 보드랍다. 꽃과 나무로 둘러싸인 순교성지는 하나의 커다란 정원 같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들로 채워졌다. 1967년 병인박해 100주년이 되는 해에 만들어진 ‘한국천주교순교자박물관’과 우리나라 최초로 성인의 칭호를 받은 김대건 신부 동상, 남종상의 흉상과, 강변 쪽으로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대변하는 척화비를 지난다. 성지 입구의 ‘한국순교성인시성기념교육관’으로 되돌아와 순례의 증거를 남긴다. 2019년 봄과 여름 사이, ‘절두산순교성지’ 스탬프를 쾅 찍는 것으로.

절두산 순교성지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 6


●COURSE 2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조선에 청춘을 바치다


공동묘지 산책이 생각만큼 섬뜩하지 않다. 절두산순교성지 바로 옆에 자리한 외국인선교사묘원은 이국적이다 못해 생소한 풍경이다. 묘원이 처음 조성된 것도 아마 이맘때 계절이었을 거다. 1890년 7월, 제중원의 2대 원장이자 고종의 주치의로 활동했던 헤론(John W. Heron)이 세상을 떠났을 때다. 당시 제물포에 외국인 묘지가 있었지만, 제물포까지 시신을 운반하기 힘들 만큼 무더웠던 탓에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가 생겼다. 이후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한 선교사(개신교)와 가족 500여 명이 이곳에 잠들었다. 

양화진에 처음 묻힌 외국인 선교사, 헤론의 묘
양화진에 처음 묻힌 외국인 선교사, 헤론의 묘
외국인선교사묘원은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이국적인 모습이다
외국인선교사묘원은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이국적인 모습이다

의료, 교육, 문화 등 활동분야를 막론하고 양화진에 묻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조선에 열렬히 청춘을 바쳤다는 것. 26살, 약혼자를 뒤로하고 선교활동을 위해 조선으로 건너온 영국인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는 지금의 연세대학교인 ‘연희전문학교’를 설립했다. 1904년 러일전쟁 취재차 조선에 왔던 영국 특파원 베델(Ernest T. Bethell)은 <대한매일신보> 창간과 함께 항일기사를 쏟아 내다 일제의 고문을 받고 37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고종의 밀사로 활동하고 조선 독립을 도왔던 미국 청년 헐버트(Homer B. Hulbert)는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결국엔 조선에 묻혔다. 1949년 할아버지의 몸으로 한국을 찾은 헐버트는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이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묘비 하나하나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묘지를 산책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일 듯하다.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주소: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길 46
운영시간: 월~토요일 10:00~17:00(일요일 휴원)


●COURSE 3
선유도공원

선유봉은 살아 있나니


진경산수화의 대가, 조선 최고의 화백이었던 겸재 정선은 한강 풍류를 즐겼다. 강 건너 망원정이 내다보이는 선유봉의 ‘선유정’에서. 잠두봉과 함께 양화진의 비경을 책임지던, 정선의 선유봉은 안타깝지만 사라지고 이제 없다. 1916년 일제시대, 일본이 여의도에 활주로를 건설하려는 목적으로 선유봉 채석작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봉우리가 깎여 나간 자리에 1978년 선유정수장이 들어섰다가 2000년 경기도 구리에 정수장이 생기면서 선유정수장은 그 기능을 잃었다. 그리고 2002년 공원이 됐다.

과거 정수장의 골자를 그대로 살린 선유도공원
과거 정수장의 골자를 그대로 살린 선유도공원
담쟁이로 가득한 ‘녹색기둥’은 선유도공원에서 손꼽히는 포토 스폿이다
담쟁이로 가득한 ‘녹색기둥’은 선유도공원에서 손꼽히는 포토 스폿이다

잠두봉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선유도에 내렸다. 선유도공원으로 향하는 길, ‘환경 재생 생태공원’이라는 타이틀과 ‘정수장’에서 오는 투박함을 떠올린 건 오산이었다. 실제로 공원에는 침전지와 여과지 등 과거 정수장의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중요한 건 아주 세련된 방식으로 과거를 되살렸다는 점이다. 정수시설의 침전지 자리에 단풍나무와 대나무를 심은 ‘시간의 정원’, 여과지에 수생식물을 심은 ‘수생식물원’, 정수장 콘크리트 지붕을 들어내고 남은 기둥에 담쟁이를 심은 ‘녹색기둥’ 등, 그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공간이 없다. 그 옛날 겸재가 좋아했다던 선유정은 그 자리 그대로 복원됐다. 시대는 달라도 한강 풍류는 여전하다. 

선유도공원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선유로 343
운영시간: 매일 06:00~00:00


▶양화진 근대사 뱃길 탐방, 노를 저어라

이야기꾼의 해설과 함께 양화진 잠두봉 유적과 선유도까지 둘러보는 한강 역사문화 관광 프로그램으로, 마포구와 문화유산활용연구소 (주)컬처앤로드가 주관한다. 절두산순교성지 코스와 외국인선교사묘원으로 나뉘는 코스는, 각 3시간 정도 소요된다. 7~8월 한여름을 제외하고 4월~10월 초 매월 3~5회에 걸쳐 진행되며 참가자는 회당 40명까지 선착순 모집한다. 

코스 | 합정동주민센터→절두산순교성지 또는 외국인선교사묘원→잠두봉선착장→선유도공원→잠두봉선착장
참가비 | 6,000원(보호자 동반한 미취학 아동 무료, 기념품 증정)
문의 및 참가신청 | 컬처앤로드 문화유산활용연구소 02 719 1495

 

글·사진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마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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