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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의 트렌드 리포트] 화장실 손익계산서

  • Editor. 이상현
  • 입력 2019.06.03 17:46
  • 수정 2019.06.03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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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현
에어비앤비 한국·일본 정책총괄 대표

내 기억 속 최고의 여행은 20년 전 인도로 떠난 배낭여행이다. 좋아하는 시인 류시화 씨가 쓴 인도 여행기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재밌게 읽은 뒤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인도의 신비로움을 오랫동안 동경해온 데다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자유를 맛보며 새롭고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일까.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20대에 떠난 인도여행은 내게 기대 이상으로 큰 만족감을 주었다.


인도로 2번의 배낭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인도 마니아가 되었고 최소 10년은 주변 사람들에게 인도 이야기만 하고 다녔다. 지인들에게는 책을 선물했고, 인도에서 마셨던 짜이 차로 아침을 시작했다. 오후에는 인도에서 배워 온 명상을 하고 노래를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인도 식당에서 식사를 했을 만큼 인도 음식도 즐겼다. 인도 여행은 당시의 순간을 생각하면 절로 기분이 좋아질 만큼 소중한 경험을 선물했다.


그토록 애정하는 인도였지만, 참을 수 없을 만큼 불편하고 괴로웠던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화장실이다. 휴지를 안 쓰는 문화에서 볼일을 보는 것은 충격이었고, 시골로 떠난 여행이다 보니 화장실의 대부분은 위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장 기본적인 생리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에 빠지다 보니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장시간 버스 여행을 하다가 버스 기사가 중간에 승객을 내려줘도, 화장실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너른 들판 한복판에서 몇몇 남자 승객이 한 방향을 향해 볼일을 본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인도 농촌에서는 야외에서 대소변을 해결하는 광경을 종종 보았는데 이 또한 매우 큰 충격이었다.


그랬던 인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 인도 총리는 ‘클린 인디아’라는 구호를 내걸고 깨끗한 화장실 설치를 국가 차원에서 밀어붙였고 화장실과 공중위생 시설을 완비하겠다는 굳은 각오로 지금까지 약 8,000만 개의 화장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향후 5년간 1억1,100만 개의 화장실을 새로 짓는다고 하니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화장실 혁명이라고 불릴 만하다.


화장실 혁명은 중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악취보다 더 유명한 칸막이 없는 중국식 화장실이 줄어들고 있다. 재래식 변기도 좌변기로 대부분 바뀌어가고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낙후된 화장실 인프라 개선 의지를 표명했고 10만 개가 넘는 화장실 개조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들보다 일찍 화장실 혁명을 시작한 우리나라는 그래도 사정이 많이 나은 편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부터 지하철의 공중화장실 등 일상에서 접하는 화장실 상태를 보면 예전에 비해 굉장히 좋아졌다. 유럽의 깨끗한 유료 화장실보다 더 깨끗한 곳도 보았다. 그래도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 솔직히, 잘하는 김에 조금만 더 잘하면 좋겠다.


5월 초에 제주도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 둘과 아무런 준비 없이 한라산에 올랐다. ‘한라’는 하늘의 은하수를 잡아당길 만큼 높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데, 높은 것만이 아니라 아름답기로도 빠지지 않는 국립공원이다. 정상인 백록담까지 가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아담한 숲길을 산책하는 느낌이다. 다양한 새소리가 있고 울창한 나무와 예쁜 꽃이 피어 있다. 반면 내려오는 길에는 높은 절벽 아래 숨겨진 작은 계곡이 아름다웠고 숲에서는 노루가 뛰놀았다.


관광객을 위해 잘 갖춰놓은 길과 이정표를 보니 역시 국립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라산을 오르는 외국인 관광객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한라산의 아름다움과 우리나라의 여러 아름다운 관광지와 문화를 이야기 하느라 9시간의 등산길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한라산의 화장실만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저분했다. 등산길에 만난 한 외국인 관광객은 ‘한라산 화장실의 위생 상태에 충격을 받고 등산을 포기하고 내려간다’고 할 정도였다.


소소한 문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화장실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깨끗한 화장실은 관광객은 물론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마음 같아서는 아예 다음번 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침체한 관광산업 부활 의지와 더불어 화장실도 개선하겠다는 실천방향도 다뤄졌으면 좋겠다. 가장 기본적인 부분에서의 혁명 없이는 4차 산업혁명도 없다. 한라산의 매력에 빠져 자발적인 한라산 홍보대사가 될 수 있는 누군가가 고작 화장실 때문에 마음을 접는다면 이 얼마나 바보 같은 장사인가.  

이상현
에어비앤비 한국·일본 정책총괄 대표 / 한양대학교 국제학부 겸임교수
*이상현의 트렌드 리포트는 이번호를 끝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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