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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뭇하다, 속초가 마음에 든다

  • Editor. 차민경 기자
  • 입력 2019.06.26 09:05
  • 수정 2019.06.26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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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벽 위에 홍련암이 희망처럼 떠 있다
절벽 위에 홍련암이 희망처럼 떠 있다

설악이 푸르고 동해가 맑다. 속초에 접어들자 
초여름 바람에 초목이 우수수 흔들렸다. 
이렇게 건강하고 풍요로운 곳을 만날 줄은 몰랐다. 

 

●우리의 안녕을 확인받기 위하여


비취색이 영롱하다. 낙산사 홍련암으로 소원을 빌러 가는 길, 초여름의 바다가 보석처럼 반짝인다. 
마음 속에 소원 하나쯤 품어본 사람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홍련암은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암과 함께 국내 3대 관음성지로 꼽히는 곳이다. 소원을 들어준다는 관음보살이 있는 곳, 그 중에서도 영험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린다. 바다와 맞닿는 절벽에 자리하고 있어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다. 덕분에 새해, 설날 혹은 큰 시험이 있는 특별한 날엔 소원을 품은 사람들이 홍련암을 가득 메운다. 


어느 초여름의 흔한 주말에도 주차장이 빽빽하다. 주차장에서 의상대를 거쳐 홍련암까지 5분 남짓, 바다를 벗삼아 걸으면 눈 깜짝할 새다. 신라시대 문무왕 시절,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관음보살을 만났다. 홍련암 바닥에 뚫린 반지갑만한 크기의 유리창 너머에 그 현장이 있다. 의상대사가 좌선을 했다는 둥그런 바위다. 예사롭지 않다. 관음보살은 무엇을 들어주고 싶어 세상에 나타났을까. 범인들의 사사로운 기도에서 무엇에 탄복하고 무엇에 감동을 받아 소원을 들어주었을까?

낙산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관음성지다. 보타전과 보타전 입구의 큰 못
낙산사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관음성지다. 보타전과 보타전 입구의 큰 못

낙산사는 1340여년의 역사 동안 불에 탄 것이 여러 번이다. 2005년 산불은 낙산사 대부분이 소실됐을 정도로 큰 불이었다. 개인적으로 어린 기억에도 낙산사의 소실이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사회적으로도 상실감이 컸던 이슈였던 게 분명하다. 다만 홍련암은 오히려 그 위상이 더 높아졌다. 불길이 홍련암 앞에서 멈췄기 때문이다. 


홍련암을 나와 천천히 낙산사를 걷는다. 고운 모래가 반듯하게 깔렸다. 마음을 정갈하게 빗어내려야 할 것 같다. 보타전 앞에서는 공연이 열린다. 음색이 고운 가수가 기타를 퉁기며 부르는 노래가 나지막하게 사찰 안을 채운다. 연꽃이 막 피어나기 시작한 못에는 동전이 된 사람들의 기도가 가라앉아 있다. 

무념무상으로 훠이훠이 걸어도 그만이지만,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을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를 도와주려는 양 낙산사의 길에는 이름이 있다. 낙산사의 중심 법당인 원통보전과 해수관음상을 잇는 길은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다. 딱 맞는 이름이다. 원통보전과 해수관음상은 낙산사를 대표하는 관음 성지다. 꿈을 이루려면 꼭 걸어야 하는 길인 셈이다. 


보타전을 지나 ‘설레임이 있는 길’을 따라 오르면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활짝 핀 연꽃 위에 선 관음상의 옷자락이 바다 바람에 흩날린다. 초여름의 따뜻한 햇살이 절벽의 해당화를 어루만졌다. 뭉근한 향기가 관음보살의 숨결 같다.

동명항에 고기잡이 배가 정박해 있다
동명항에 고기잡이 배가 정박해 있다

●속초의 선, 설악의 기운


낙산사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 설악산이 해안가에 바투 다가있다. 묶을 속, 풀 초를 쓰는 마을, 속초다. 속초는 동쪽으로 동해를, 북쪽으로 영랑호와 남쪽으로 청초호를 끼고 도시가 형성돼 있다. 바다와 호수라, 영랑과 청초라. 입 안에서 글자가 도로록 굴러다닌다. 속초의 첫 인상이다. 

영금정 일대에 바위가 바다 깊은 곳까지 뻗쳐 있다
영금정 일대에 바위가 바다 깊은 곳까지 뻗쳐 있다

속초는 여러 이유로 오랫동안 관광지로 사랑 받았다. 신라시대 전국의 명소를 찾아다녔던 화랑들도 속초 영랑호를 꼭 들러가곤 했단다. 속초를 한 바퀴 돌아보니 특별한 선이 느껴진다. 손 뻗으면 닿을 양 한 발짝 거리의 설악산이 속초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우람한 산맥을 따라 불쑥불쑥 튀어나온 회색 바위가 신령처럼 신성하다. 호수와 바다로 나서도 그렇다. 영랑호의 범바위를 보자. 거대한 바위 덩어리는 이름처럼 웅크린 범인 양 위용이 넘친다. 바다에 나서도 마찬가지다. 동명항 영금정에서는 바다로 뻗쳐 나온 거대한 화강암 지대를 내려다볼 수 있다. 사람들은 바다의 깊은 곳 언저리를 바위를 딛고 서서 내려다볼 수 있다. 자잘한 모래나 자갈로는 속초가 설명되지 않는다. 선이 굵다. 

청초호의 밤 풍경. 불빛이 호수에 동동 떠 아련하다
청초호의 밤 풍경. 불빛이 호수에 동동 떠 아련하다

이 기세는 도시 안쪽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듯하고 질서 정연하게 구획된 도심은 마치 신도시처럼 깔끔하다. 1960년대 시로 승격되기 이전 원래 마을은 청초호 이남의 대포리가 중심이었다. 곧 도심지가 청초호 이북으로 옮겨오면서 새로이 도시 구획이 이뤄졌고, 느린 속도로 차분히 성장한 이유가 있겠다. 하지만 그보다 산에서 뻗어나온 선명하고 굵직한 속초의 기운 때문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청초수 물회
청초수 물회

항구로 간다. 영금정 아래로 동명항, 속초항이 있고 그 사이에 속초항국제여객터미널도 있다. 고기잡이배는 물론이고 여객선도 왔다갔다 분주하다. 속초항은 몇 년 전부터 크루즈가 입항하면서 더 바빠졌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속초항과 접한 청초호 인근은 대형 호텔과 음식점이 우수수 들어서고 있다. 한밤 청초호에는 달만 비출 리 없다. 호수를 둘러싼 상가 조명이 호수에 동동 떠 아련한 정취를 자아낸다. 


참, 동명항은 대게로 유명하다. 원체 고깃배가 정박하는 항구였고 속초 앞바다에서 대게가 많이 잡히기 때문이다. 동명항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아예 대게마을이 조성돼 있어 대게집 건너 대게집이다. 보통 겨울부터 늦은 봄까지를 대게 철로 치지만, 철이 무슨 소용이랴? 우선 맛보고 나서야 철을 따질 힘이 생기는 법이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의 풍경.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북적인다. 시장을 걷다보면 양손이 점점 무거워지고 주머니는 가벼워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그만큼 먹어야 할 것이 많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의 풍경.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북적인다. 시장을 걷다보면 양손이 점점 무거워지고 주머니는 가벼워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그만큼 먹어야 할 것이 많다

●먹을 것 앞에서 망설이지 말 것


먹거리로 치자면 속초관광수산시장을 따라올 곳이 없다. 시장 인근에 접어들면 벌써 어디선가 솔솔 맛있는 냄새가 풍겨 절로 침이 넘어간다. 주말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은 양손에 보따리를 들었다. 닭강정은 기본 옵션이고 오징어순대나 부꾸미 같은 주전부리도 빼놓으면 아쉽다. 재래시장이라고 부르기 어색할 정도로 관광객이 바글바글한 건,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먹거리 천국이기 때문이다. 

속초에서 시작돼 전국 프랜차이즈화 된 만석닭강정은 가장 인기 음식이다. 만석만 알고 왔지만 다른 경쟁 브랜드도 곳곳에 눈에 띈다. 해안마을이니 젓갈도 인심이 좋다. 묵직하게 쌓아놓은 젓갈은 보기만 해도 밥 한 술 간절해진다. 속초를 전국에 알리는 데 일조했던 명태도 여전히 살아있다. 지금은 명태잡이가 쇠퇴했지만, 그래도 조리법과 음식은 남아있기 때문이다. 빨갛게 무친 말린 명태는 주로 젓갈집에서 판다. 속초에서는 이걸 냉면에 올려 먹는다. 일명 ‘코다리냉면’이다.

속초관광수산시장 골목골목에는 실향민들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속초는 북한과 가까워 실향민들이 모여사는 ‘아바이마을’이 있다. 고향을 북에 둔 사람들은 먹거리로 그리움을 달랬는데, 이런 이북 음식이 인기를 끌면서 속초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함흥냉면, 아바이순대, 가자미식해 등이 대표적이다. 골목 안쪽을 훑다보면 곳곳에서 ‘아바이순대국’을 내건 작은 식당을 볼 수 있다. 

시장 한 켠에서 만난 고양이
시장 한 켠에서 만난 고양이

실향민 음식 중 하나인 오징어순대는 골목까지 가지 않아도 만날 수 있다. 시장 중심 거리 여기저기서 커다란 불판을 펼쳐 놓고 쉬지 않고 오징어순대를 부쳐댄다. 노릇한 기름냄새, 오징어의 짭쪼롬함이 촉촉하게 섞여 주머니를 탈탈 털게 만든다. 자고로 오징어순대는 베어 물지 말고 한 입에 담아야 하는 법. 동그랗게 속을 감싸고 있는 오징어가 뒤틀리며 뭉개져 입안을 가득 채운다. 묵직하게 녹아나는 육즙이란. 흐뭇하다. 속초가 마음에 든다.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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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차민경 기자 cham@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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