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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역사 발길 따라 뚜벅뚜벅 전남 산책

  • Editor. 이은지 기자
  • 입력 2019.06.26 09:20
  • 수정 2019.06.26 0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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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메타세콰이어길을 손 잡고 걷는 연인들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을 손 잡고 걷는 연인들

자연이 선사하는 조화로운 풍경을 좋아한다. 
사람이 만들어낸 고즈넉한 거리를 종종 찾는다. 
전남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눈에 담으며
사람들의 발자욱을 따라 때묻은 거리를 걸었다.

양림근대역사문화마을의 아기자기한 카페
양림근대역사문화마을의 아기자기한 카페

●선교사들의 꿈과 애환


양림근대역사문화마을에는 한옥과 서양식 건물이 공존한다. 광주의 5대 부자들이 살았던 곳이자 서양인 선교사들이 모여 교회, 학교, 병원 등을 개설한 마을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개화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았다.

광복 이후 양림동의 모습을 담은 기억창고
광복 이후 양림동의 모습을 담은 기억창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 양림마을의 연혁과 역사를 알 수 있는 관광안내소가 가장 먼저 맞이한다.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이는 법이라, 본격적으로 마을을 둘러보기 전 관광안내소에 들러 양림의 역사를 살펴본다. 버들양에 수풀림. 마을 이름을 곱씹으며 그 속으로 들어갔다.

카페와 주택가를 지나 한참을 걸어가니 광주에서 순교한 오웬 선교사를 기리기 위한 오웬기념각이 좌우대칭의 네덜란드식 건축양식을 뽐내고 있었다. 최대 1,500명 수용가능한 크기로 개화기 초기에 음악회, 오페라, 연극, 무용 등의 공연이 펼쳐진 광주의 문화전당이었다고. 3.1운동으로 일제에 교회가 몰수당했을 때와 1950년대부터 1960년대 초까지는 예배당으로 사용됐다니 문화와 종교가 융합된 복합적인 공간인 셈이다.

근대 부잣집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이장우 가옥
근대 부잣집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이장우 가옥

서양식 건물을 봤으니, 전통 한옥으로 향한다. 가운데 큰 연못이 있는 이장우 가옥은 안채, 사랑채 등을 갖춘 상류 가옥이다. 굳게 닫혀있는 대문에 잠시 당황했으나, 옆으로 눈길을 돌리니 작은 샛문이 관람객들을 향해 열려있었다. 근대 상류층이 된 듯 100년이 넘은 은행나무와 곱게 가꾸어진 정원을 거닐었다. 전통과 서양의 조화. 양림근대역사문화마을에는 근대의 두 얼굴이 있었다. 

 

●7080 추억을 찾아서


양림마을에서 나와 투명한 교회 모양의 설치물을 끼고 길을 건너면 광주 소녀상이 있다. 소녀의 손을 잡아준 후 옆에 있는 펭귄마을 입구로 향했다. 펭귄 조형물과 그림이 멀리서도 한눈에 펭귄마을임을 말해준다. ‘펭귄마을’의 이름은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이 뒤뚱뒤뚱 걷는 모습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잠시 엄숙해졌으나 이내 그 재치에 감탄하게 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히 따라오는 불편함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연륜이 돋보인다. 

시계가 잔뜩 걸려있는 펭귄마을 사진관 앞은 포토존이다
시계가 잔뜩 걸려있는 펭귄마을 사진관 앞은 포토존이다

방치돼있던 작은 마을은 동네 주민들의 손길에 의해 활력을 찾았다. 화재 이후 쓰레기만 쌓여있던 빈 공간을 버려진 물건들로 채워 전시하던 것이 그 시작이라고. 오래돼 고장난 시계, 어릴 적 가지고 놀던 장난감, 손때가 묻은 생활용품은 펭귄마을에서는 모두 소중한 예술품이 된다. 홀로 버려졌던 물건들은 함께 모여 추억을 되새기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나 중년들에게는 젊은 시절의 추억을, 청년들에게는 레트로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온갖 잡동사니들이 규칙도 없이 놓여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런 무질서가 질서를 자아낸다. ‘바람 불어 좋은 날, 우리 함께 해요’, ‘이대로도 충분해’ 따뜻한 마음씨가 묻어나는 글귀도 구석구석을 장식한다. 낯선 곳에서의 좋은 날, 이대로도 충분하다. 

광주호 호수생태원은 주민들이 여유롭게 산책하는 휴식공간이다
광주호 호수생태원은 주민들이 여유롭게 산책하는 휴식공간이다

●배움과 예술의 정원


광주호 호수생태원은 도심 속 자연 학습의 장이다. 진달래, 개나리, 장미 등 야생화가 있는 꽃단지와 자연관찰원에서 식물들의 생태를 직접 관찰할 수 있고, 수변 습지에서는 새가 부화하는 모습도 지켜볼 수 있어 아이들이 살아있는 자연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다. 돌밑길, 가물치길, 버들길 등 산책로도 잘 조성돼있어, 휴식 공간으로도 적합하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만났던 새파란 도보다리를 재현한 곳이 나온다. 쨍한 색감이 조용하고 차분한 산책로에 활기를 더한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전망대에 올라 탁 트인 광주호를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자연 생태 관찰뿐만 아니라 국제 정원 박람회 수상작과 조형물 등 예술을 엿볼 수 있는 광주호 호수생태원
자연 생태 관찰뿐만 아니라 국제 정원 박람회 수상작과 조형물 등 예술을 엿볼 수 있는 광주호 호수생태원

입구 옆에는 세계 최대 정원 및 원예 박람회인 첼시 플라워쇼 수상작을 재현해놓았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겨진 장소란다. 황지해 작가의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 정원’과 ‘해우소’가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 정원’은 분단으로 인해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DMZ의 풍경과 철조망을 열어놓는 연출로 통일에 대한 열망을 담은 작품이다. ‘해우소’는 전통 화장실을 재현해 근심을 버리고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조상들의 지혜를 담았다. 작가의 의도를 곱씹으며 정원을 한바퀴 돌았다.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예술 작품을 그저 스쳐지나갈 뻔했으니, 또 한번 여행을 배운다. 여행에도 세밀한 관찰이 필요한 법. 

해안을 따라 걸으며 갓바위를 보러 가는 길
해안을 따라 걸으며 갓바위를 보러 가는 길
갓을 쓴 모양을 한 두 개의 바위가 쌍을 이루고 있다
갓을 쓴 모양을 한 두 개의 바위가 쌍을 이루고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부자


세월에 따라 모습은 변한다. 사람도 자연도. 바위가 갓을 쓰게 된 것도 시간이라는 연유가 있었으리라. 지레 감상을 옮기며 넓게 펼쳐진 바다를 따라 목포 8경 중 하나인 갓바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갓바위로 향하는 길에는 정박된 배가 몇 척, 그리고 저 멀리 물 위를 떠다니는 배들이 있다. 동적인 것과 정적인 것이 한 프레임에서 교차한다. 프레임 속을 천천히 걸어들어가며 순간을 걷는다. 나란히 갓을 쓴 한 쌍의 바위에는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 그 중 하나는 부자의 이야기다.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다 실수로 관을 바다에 빠뜨리고 말았고, 불효를 저질렀다는 생각에 갓을 쓰고 자리를 지키다 죽고 말았다. 이후 바위가 솟아올라 큰 바위는 아버지바위, 작은 바위는 아들바위라 불리게 됐다고. 여행에 안타까운 전설이 하나 더 깃들었다. 

햇살이 대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죽녹원의 푸르른 여름
햇살이 대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죽녹원의 푸르른 여름

●죽녹원에서 초록빛 휴식을


무작정 초록빛이 간절해질 때가 있다. 몸과 마음에 피로가 가득해질 때쯤, 눈에 초록빛을 가득 담으면 그나마 해소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분죽, 왕대 등 다양한 대나무가 모여 사는 죽녹원에는 많은 가족 여행객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철학자의 길 등 총 8개의 산책로가 조성돼있으니, 어느 누구와 함께 와도 입맛에 맞게 푸른 대나무길을 골라 거닐 수 있다. 중간중간 정자와 벤치가 위치해 잠시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충할 수도 있다. 대나무는 다른 식물보다 산소를 많이 배출한다고 하니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하게 드리운 대나무숲에서 깊게 호흡해본다. 이 정도의 욕심은 부려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상쾌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으며, 후덥지근한 날씨에 느껴졌던 더위가 싹 가신다. 

메타세콰이어길은 커다란 나무가 드리운 그늘 덕에 한 여름에도 시원하다
메타세콰이어길은 커다란 나무가 드리운 그늘 덕에 한 여름에도 시원하다

●피톤치드 쏙쏙, 담양 메타세콰이어길


담양의 푸른 매력은 메타세콰이어길로 계속 이어진다. 담양군이 1970년 가로수 조성사업 당시 심었던 3~4년생 메타세콰이어 묘목은 세월을 따라 무럭무럭 자라 울창한 숲을 이뤘다. 원래 차가 달릴 수 있는 도로였으나, 바로 옆에 국도가 뚫리면서 산책로로 바뀌었다. 이젠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황톳길이 나무 사이를 잇는다. 총 2km 정도의 산책로에는 손을 잡고 걷는 연인들이 많았다. 카메라를 들고 서로의 모습을 사이좋게 담는다. 꼭 잡은 두 손에 각자 순간의 영원을 꿈꾸겠지. 연인과 함께 걷는 순간에는 알면서도 유치한 바람을 간직하고는 하는 법이니까. 하늘로 높게 뻗은 나무 사이를 걸으며 왜 연인이 걷기 좋은 길인지를 새삼 실감했다. 복잡한 도심 속을 벗어나 온전히 서로의 온기를 느끼기 좋은 길이다. 

메타세콰이어길 한 켠에는 색색의 장승이 우뚝 솟아있다
메타세콰이어길 한 켠에는 색색의 장승이 우뚝 솟아있다
메타프로방스에서 사이좋게 추억을 남기는 연인
메타프로방스에서 사이좋게 추억을 남기는 연인

메타세콰이어길 바로 맞은편에는 이국적인 풍경을 자랑하는 메타프로방스가 있다. 프로방스 내에는 다양한 카페와 식당, 기념품점이 자리 잡고 있어 메타세콰이어길에서 산책을 한 후, 일행과 함께 여유롭게 차 한잔을 즐길 수 있다. 프로방스 입구에 들어서면 하얗게 칠해진 외벽이 지중해풍 풍경을 선사한다. 한 켠에는 연인과 가족의 소망을 담은 알록달록한 자물쇠 벽이 골목을 따라 자리하고 있었다. 자물쇠에 진심을 담은 메시지를 쓰고, 옆에 있는 하트 모양의 조형물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빼곡이 추억을 담아본다. 

 

기자가 체험한 우수여행상품
동백여행사[호남전통맛기행]

 

글·사진=이은지 기자 eve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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