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맛있었던 퀸즈랜드에서의 일주일
완벽하게 맛있었던 퀸즈랜드에서의 일주일
  • 밀리
  • 승인 2019.07.0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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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 실장님, 우리 미팅 한 번 해요!” 
핸드폰 너머 이 한 마디가 퀸즈랜드에서의 엄청난 일주일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와사비 레스토랑의 셰프 젭 길버트
와사비 레스토랑의 셰프 젭 길버트

멜버른에서 공부했던 내게 호주는 늘 제2의 고향 같은 곳이지만 퀸즈랜드는 사뭇 낯선 곳이었다. 내리쬐는 태양, 서퍼들의 천국, 해양스포츠의 중심 등등, 동경할 만한 곳이지만 나와는 좀 다른 곳. 호주 퀸즈랜드주 관광청과의 미팅 후 두 달여가 지나고 남반구의 중심으로 날아 온 나는 의외로 잘 적응했다. 

누사 강변에서의 패들 보딩. 일출 또는 일몰을 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다
누사 강변에서의 패들 보딩. 일출 또는 일몰을 물 위에서 감상할 수 있다

●누사 Noosa

좀 너무하게 좋은 날

 
첫 공식 일정이 시작되는 누사(Noosa)로 향한다. 갑갑한 도시 공기에 취해 산 지 어언 5년. 누사로 가는 길 내내 차창을 열어 둘 수밖에 없다. 두 시간 정도 달리니 공기의 냄새가 바뀌는 게 느껴진다. 정신이 번쩍 드는 나무향과 틈틈이 느껴지는 바다향이 이 순간 딱 나에게 필요한 각성제인 듯하다. 숙소 도착. 페퍼스 누사 리조트 앤 빌라(Peppers Noosa Resort & Villas) 전체가 누사 국립공원에 속해 있어서인지 사방이 초록이다. 한 시간 남짓의 자유시간을 알뜰하게 쓰느냐, 여유롭게 쓰느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후자를 선택한다.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가 나 대신 결정을 내린 것이다. 슬슬 걷다가, 앉았다가, 새소리 듣다가 또 걷다가. 길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오랜만에 온몸으로 좋은 공기를 흡수 중인데 누군가가 말을 건다. 


“Are you OK, mam?” 
리조트 직원이다. 서로 당황했다. 그래. 내가 좀 피곤해 보이겠지. 저 너무 괜찮아요. 

페퍼스 리조트 숙소 내부 거실. 테라스로 나가면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
페퍼스 리조트 숙소 내부 거실. 테라스로 나가면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다

그날 저녁. 길바닥에 앉아 있던 나를 버리고 곱게 단장한 뒤 엠브이 카탈리나(MV Catalina)로 향한다. 누사강변을 따라 움직이는 누사 유일의 유람선 레스토랑이다. 이곳에서 앞으로 일주일을 함께할 팀을 만난다. 어색하게 서로 인사하고 눈치 보느라 정신없는 30분이 지나가고 나니 주변이 다시 느껴진다. 석양이 지는 누사강, 예쁘게 꾸며진 유람선 내부, 흥을 돋우는 라이브 뮤직, 향수 냄새만큼 좋은 음식 냄새 그리고 유람선 한쪽 끝에 서 있는 셰프 맷 생클레어(Matt Sinclair). 그는 2016년 호주 마스터셰프 출신으로 현재는 본인의 브랜드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실력파 셰프다. 그런 그가 우리의 저녁을 만들어 준다니 가슴이 두근두근할 수밖에. 동남아 음식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그의 말에 단 맛과 짠 맛이 강한 음식을 생각했지만 기본에 충실함을 잊지 않은 듯 그의 음식은 깔끔함 그 자체다. 만족스러운 저녁이 저물어 간다. 어색하기만 했던 서로가 와인 한 잔, 두 잔에 마음을 연다.

퀸즈랜드주 음식 관련 캠페인의 홍보대사이기도 한 셰프 맷 생클레어
퀸즈랜드주 음식 관련 캠페인의 홍보대사이기도 한 셰프 맷 생클레어

이른 아침, 침대에 누워 결정 장애가 있는 듯 맘을 정하지 못한다. 나갈까, 말까. 더 잘까, 운동을 할까. 창밖 하늘이 비현실적으로 맑으니 나가는 것이 맞지 싶다. 그렇게 모닝 패들보드를 타러 어슬렁어슬렁 나왔는데 역시 인원은 달랑 셋. 미국에서 온 데이비드(David), 뉴질랜드에서 온 카린(Karyn),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의지를 불태우며 강 위를 둥둥 떠다닌다. 그러다 불끈 쥔 패들을 잠시 세우고 보드 위에 서서 주변을 살피니 보이는 파라다이스. 펠리컨들이 물고기를 잡고, 독수리 몇 마리가 머리 위에서 유유히 날고, 이름 모를 형형색색의 새들이 수풀 사이사이 앉아 있다.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니야?” 
“세상 참 불공평해.”
“여기 있는 우리 셋이 운이 좋은 거야.”
불평인지 감탄인지 모를 수다를 그렇게 떨었다. 물 위에서부터 땅을 밟을 때까지.    

해 질 무렵 와사비 레스토랑의 전경
해 질 무렵 와사비 레스토랑의 전경

완벽하게 유니크한 레스토랑 


와사비 레스토랑 & 바(Wasabi Restaurant & Bar)는 일주일간의 여정 중에 단연 가장 인상 깊은 곳으로 꼽힌다. 누사에 위치한 이 일본 레스토랑은 그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음식을 만든다. 쓰는 식재료의 대부분이 모두 이 지역에서만 나는 것이기 때문이다(물론, 흔하고 익숙한 재료도 있다). 로컬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세계적인 식문화 트렌드지만 이곳은 한 단계 더 앞서 나가고 있다.

호주에 이민자들이 유입되기 전부터 이 땅에서 자라던 토종 작물들을 원주민 전문가와 함께 연구해 레시피를 만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여전히 하루에도 몇 번씩 새로운 재료를 채집하러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계속 연구해서 희귀한 것은 자신들의 농장에 심어 보존해 나간다.

토종꿀도 마찬가지다. 이 지역 토종벌은 일반 꿀벌의 1/4 크기로 침이 없고 채집하는 꿀도 매우 맑고 묽다. 벌집 안에서 꿀이 자연 발효되어 특유의 새콤한 맛도 더해진다. 몸집이 작은 탓에 벌집 한 통에서 나오는 꿀의 양은 1년에 고작 1kg 정도인데, 와사비 레스토랑은 자신들의 농장 한 편에 벌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 레스토랑에서 쓸 꿀을 얻는다. 꿀 이야기는 정말 일부분일 뿐이다.

그러니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을 어디서 또 맛볼 수 있을까. 그들이 이 일을 하는 이유, 원주민들과 함께 연구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자세와 열정, 자연이 준 기회를 놓치지 않되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 이 모든 것이 지금 우리가 먹고 있는 이 한 입에, 한 그릇에 담겨 있고 또 온전하게 느껴진다. 숙연해지는 맛. 일식 레스토랑이라고 알고 갔지만 이곳 와사비는 완벽하게 퀸즈랜드 레스토랑이다. 

진으로 숙성시킨 바라문디와 핑거 라임 그리고 새콤한 맛이 나는 식용개미
진으로 숙성시킨 바라문디와 핑거 라임 그리고 새콤한 맛이 나는 식용개미
야생버섯과 호박으로 만든 애피타이저. 토종꿀을 손 위로 직접 뿌려 준다
야생버섯과 호박으로 만든 애피타이저. 토종꿀을 손 위로 직접 뿌려 준다

뇌가 위에게 보내는 신호


매년 5월 중순에 누사에서 열리는 누사 푸드 & 와인 페스티벌(Noosa Food & Wine Festival)은 퀸즈랜드뿐 아니라 호주 각지의 유명 셰프, 레스토랑, 와이너리들이 참여하는 축제다. 전날 방문했던 와사비 레스토랑도 역시 이 페스티벌에 참여 중이다. 음식과 술이 가득한 이곳에서 우리는 정말 매일 넘치게 먹고 마셨다. 그게 우리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조금씩 지쳐갈 즈음(믿기지 않겠지만 정말로 지치는 순간이 온다. 모두가 소화제 나눔을 하기까지 했으니…) 한줄기 빛처럼 다가온 것은 농장방문 일정. 일정표에도 나와 있다. ‘많이 걸어야 하니 편한 신발 필수.’ 

힌터랜드 피조아스에서의 만찬 전 테이블 세팅
힌터랜드 피조아스에서의 만찬 전 테이블 세팅

특수작물 전문으로 소량만 키워 레스토랑에 공급하는 두 농장은 더 폴스 팜(The Falls Farm)과 힌터랜드 피조아스(Hinterland Feijoas). 그들의 농장을 걸어다니며 밭에서 바로 뜯은 여러 가지 허브를 맛보고 설명을 들으며 공부하는 시간이 너무나도 여유롭고 편하다. 빈속의 행복을 느끼고 있을 때쯤 맞이한 늦은 점심으로 눈앞에 펼쳐진 것은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다. 동공이 흔들린다. 우리 괜찮을까? 서로와 눈빛으로 대화하며 앉은 테이블. 맛있는 음식을 보면 뇌에서 신호를 보내 위가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농장에서 나는 재료들로 만들어진 음식 앞에 다들 뇌가 크게 반응한 듯하다. 마치 내내 굶은 사람들처럼.  

셰프 맷 윌킨슨이 즉석에서 만든 샐러드. 농장에서 수확한 채소와 딸기 위에 마카다미아를 올렸다
셰프 맷 윌킨슨이 즉석에서 만든 샐러드. 농장에서 수확한 채소와 딸기 위에 마카다미아를 올렸다

사심을 듬뿍 담은 여담 한 쪽. 누사의 농장을 걸어다니던 날 우리와 함께 했던 셰프가 있다. 맷 윌킨슨(Matt Wilkinson). 그는 멜버른에 적을 둔 셰프로 식재료에 대한 지식이 남다르기로 유명하다. 쓸데없는 기교를 부리지 않고도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려내는 그의 음식에는 집밥 같은 따뜻함이 있다. 그런 그의 캐릭터가 아마 누사 푸드 & 와인 페스티벌과 잘 맞아 초대된 것이라 생각한다. 유학생 시절 그의 레스토랑에 줄기차게 드나들었다던 한 사람은 일정표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한 후 내내 발을 동동거린다. 그리고 함께 늦은 점심을 먹던 그 시간에 팬심이 드디어 폭발한다. 속사포로 자신이 팬임을 알리고 일사천리로 사진까지 찍고 돌고래 소리를 내며 그의 주변을 휘젓고 다닌 이 사람은 결국 셰프 맷으로 하여금 자신의 인스타그램까지 팔로우하게 만드는 저력을 발휘한 후, 함께 있는 크루들에게 남은 일정 내내 놀림을 받았다는 그런 이야기. 

핫한 카페 ‘커피 아이코닉’에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핫한 카페 ‘커피 아이코닉’에서 모닝커피를 마셨다

●브리즈번 Brisbane 

워너비들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브리즈번에서의 첫날은 커피로 시작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호주의 커피가 얼마나 유명한지 모를 수 없다. 브리즈번 역시 커피와 카페 문화 발전에 점점 더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작은 골목골목마다 숨겨져 있던 보석 같은 곳들을 찾아내고 대중에게 소개하는 작은 투어도 있다. 지금 브리즈번에서 가장 핫한 카페 두 곳은 커피 아이코닉(Coffee Iconic)과 펠릭스 포 굿니스(Felix for Goodness)다. 바리스타들이 직접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커피가 맛있다. 집에 가면 이 한 잔의 커피가 그리울 것이 분명하다. 게스트가 어떤 커피를 마시고 있는지 꼭 알았으면 좋겠다는 그들. 커피를 말할 때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얼굴에서 행복이 느껴지는 이 사람들이 만들어 주는 커피라면 뭐든 믿고 마실 수 있다. 커피 아이코닉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잠시 생각해 본다. 브리즈번의 따뜻한 햇살, 이곳 사람들의 여유, 지금 나의 여유, 바리스타의 자부심과 그들이 커피를 만들 때 느끼는 즐거움이 모두 담겨 이렇게 완전한 한 잔이 만들어지나 보다. 

브리즈번의 더 칼라일 호텔 룸 내부. 은은한 핑크 대리석과 나무로 아늑하다
브리즈번의 더 칼라일 호텔 룸 내부. 은은한 핑크 대리석과 나무로 아늑하다

제임스 스트리트(James Street)는 브리즈번 안에서도 가장 트렌디한 장소다. 그리고 그 중심에 새로 문을 연 더 칼라일 호텔(The Calile Hotel)이 있다. 시드니와 멜버른에서 주말을 보내러 이 호텔에 올 정도로 모두가 원하는 워너비랄까. 호텔 조식을 먹는 사람들조차도 너무 핫해서 내 모습을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된다. 호텔 내 메인 레스토랑인 그리스 레스토랑 헬레니카(Hellenika)는 또 다른 세상이다. 내가 못 알아봐서 그렇지 다 연예인인가 싶을 정도로 멋있는 손님들이 가득하고 레스토랑의 서비스 역시 나무랄 데 없다. 음식 역시 흠잡을 것 없다. 함께 있던 호주 친구 사라가 둘러보던 나에게 묻는다.


“너 푸드스타일리스트잖아. 여기 어떤 것 같아? 괜찮지?”
원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한다. 
“나 이 옷 입으면 안 된다고 왜 말 안 해 줬어?”  

시그니처 제품인 그린하우스 진으로 만든 자몽 칵테일
시그니처 제품인 그린하우스 진으로 만든 자몽 칵테일

●골드코스트 Gold Coast 

스폰지처럼 흡수했던 일주일


골드코스트에 도착해서는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짧은 일정 때문에 마음이 조급하다. 다 보고 싶어서 열심히 따라다니던 중에 가장 마음에 든 곳은 잭 할아버지의 크래프트 디스틸러리(Granddad Jack’s Craft Distillery). 3대째 진을 만들고 있는 곳이다. 요즘 호주에서는 진이 한창 인기인데 특히 각 지역에서 만드는 로컬 진이 각광받고 있다. 나름대로 진을 많이 마셔 봤다고 생각했는데 또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진이라니! 생각해 보면 그 옛날에 우리도 집집마다 술을 담가 마셨던 시절이 있다. 그 맛이 다 달랐겠지. 당연한 일이다. 이곳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것. 그래서 그 핑계로 술을 몇 병 집어 본다. 시음회 이후 모두 술을 살까, 말까 눈치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네다섯 명이 내 뒤로 줄을 선다. 그리고 진 공장 안에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카드 긁는 소리. 사장님이 나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나 스스로를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스폰지라 여기며 일주일동안 경험한 모든 것을 그대로 흡수했다. 그전에 내가 알고 있던 정보들, 지식들은 잠시 치워 두고 다 처음이다 생각하고 보냈던 한 주. 그리고 떠나는 날 아침에 드는 생각은 ‘갈 길이 멀다, 더 배우자. 더 경험해야지. 감사해야지.’ 완벽하게 맛있었던 퀸즈랜드에서의 일주일이었다. 

 

*글을 쓴 푸드스타일리스트 밀리는 호주 멜버른 윌리엄 앵글리스(William Angliss Institute of TAFE)에서 커머셜 쿠커리과정을 이수하고 수년간 현지 5성급 호텔에서 조리사로 일했다. 귀국 후 잡지화보 촬영과 표지 스타일링에 참여했고 포시즌스 호텔, 이마트, 신세계 등의 브랜드와 협업하고 있다. 저서로는 <토스트>, <파스타>, 공동저서로는 <이렇게 사는 게 다 무슨 소용이람>이 있다.

글·사진 밀리  에디터 트래비  사진제공 호주 퀸즈랜드주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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