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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바르, 크로아티아 여행의 쉼표

  • Editor. 강영주
  • 입력 2019.08.01 10:30
  • 수정 2019.08.0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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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바르 타운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 스페인 요새
흐바르 타운의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곳, 스페인 요새

스플리트와 두브로브니크 사이 흐바르섬은 
마치 누워 있는 사람처럼 기다란 모양을 하고 있었다. 
딱 그렇게 종일 쉬리라는 다짐뿐이었다.

능소화를 따라온 길은 아치로 시작되는 다른 골목으로 연결된다
능소화를 따라온 길은 아치로 시작되는 다른 골목으로 연결된다

●흐바르로 흘러온 날

꽤 오랜 시간 이어진 크로아티아 여행에서 위기를 맞은 건 네 번째 도시인 스플리트에서였다. 신선했던 여행지의 자극에 곧 무심해지더니 모든 것이 귀찮고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즉흥적인 변주가 절실할 때, 절대 거르는 법 없는 아침식사까지 포기한 채 호텔 방에서 찾아 낸 곳은 ‘흐바르(Hvar)’. 최근 유럽인들의 여름 휴양지로 손꼽힌다는 곳이다. 그 섬으로 가려면 배를 타야 했다. 

흐바르 타운의 항구에 도착한 때는 늦은 오후.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벌목된 통나무가 넘어가듯 침대에 쓰러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 음악과 사람들이 함께 버무려진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느낌이 나쁘지 않다. 눈을 떠 보니 창문 너머로 아드리아해와 하늘이 경계 없이 온통 새파랗다. 다시 신나게 잠에 빠져들었다.

미소 한가득한 얼굴에서 여유로운 삶이 느껴진다
미소 한가득한 얼굴에서 여유로운 삶이 느껴진다

●이 마을을 사랑하게 될 누군가에게

카메라와 약도 한 장만을 달랑 들고 버스에 올랐다. 30분이 채 지나기 전에 도착한 종점은 스타리그라드(Stari Grad). 흐바르섬 북쪽에 위치한, ‘스타리(크로아티어로 ‘오래된’이라는 의미)’라는 이름대로 약 2,400여 년 역사를 품은 곳이다. 크기가 아담한 마을은 산책 삼아 걷기가 편했고,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설레었다. LP판이 가득한 골목에선 자전거를 탄 현지인의 미소가, 능소화로 장식된 건물과 이국적인 노천카페가 불쑥 나타나곤 했다. 

프란치스코 수도원 입구에 위치한 해변
프란치스코 수도원 입구에 위치한 해변

하늘로 우뚝 솟은 종탑을 찾아가면 성스테판 광장(Sv. Stjepan)을 만날 수 있다. 미로 찾기 하듯 정처 없이 걷다가 마주치는 흉상의 주인공은 크로아티아의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페타르 헤크토로비치(Petar Hektorovi?). 동상 뒤에는 시인의 여름 별장(Tvrdalj Castle) 입구가 있고, 언덕 쪽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작지만 잘 꾸며진 정원이 딸린 도미니코 수도원(St. Petar Mu?enik)이 등장한다. 시인 페타르가 묻혀 있다는 곳이다. 이 모든 건 산책할 당시만 해도 몰랐던 정보들이다. 굳이 정보에 의지하지 않아도 되는, 스타리그라드는 그런 곳이었으니까. 한 번에 눈을 사로잡는 풍경을 기대한다면 스타리그라드의 편안한 여유와 담백한 아름다움을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발견하기만 한다면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마음까지 깨끗하게 빤 것처럼 상큼하고 보송보송한 풍경
마음까지 깨끗하게 빤 것처럼 상큼하고 보송보송한 풍경

●채우고 싶어진다는 것

다시 흐바르 타운. 시장에서 사 온 체리를 모두 먹어치우고 크로아티아산 화이트와인 포십(Posip)을 홀짝이며 최대한 게으름을 부렸지만 해는 아직 넘어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흐바르의 일조시간은 유럽에서 가장 길다). 흐바르 타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스페인 요새의 망루까지 올랐다. 흐바르를 선택한 건 아주 잘한 일이었다는 뿌듯함이었을까, 8월의 말끔한 흐바르 공기 때문이었을까. 해가 사라진 바다는 붉고 푸른 빛들로 가득 찼다.

스페인 요새와 망루 주변으로 700년 넘게 흐바르 마을을 보호해 온 성벽이 남아 있다
스페인 요새와 망루 주변으로 700년 넘게 흐바르 마을을 보호해 온 성벽이 남아 있다

흐바르 타운은 일몰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곳이 됐다. 요트가 바다로 떠나 조용하던 낮 시간과는 달리 해가 내려간 마을에는 쿵덕쿵덕 비트가 흐르기 시작했다. 화려한 차림을 한 클러버들이 분위기를 돋우고, 데시벨은 점점 높아져 갔다. 영락없는 휴양지의 밤이다. 해가 뜨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진 해변 산책로와 프란치스코 수도원을 타박타박 걸어 볼 것이다. 그리고 두브로브니크행 배에 오를 것이다. 애초에 쉬자고 온 여행지에서 산마루까지 오르는 열정은 무엇이며, 침대를 박차고 나서는 이 바지런함은 또 어디서 온 거란 말인가. 무언가 비워졌음이 분명하다.  

수도원 종탑과 마을의 일몰 풍경이 인상적이다
수도원 종탑과 마을의 일몰 풍경이 인상적이다

 

글·사진 강영주  에디터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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