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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CRAFT] 오른쪽 문으로 타면 안 될까요?

  • Editor. 유호상
  • 입력 2019.09.02 0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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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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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어느 나라, 어느 공항에서도 비행기의 오른쪽 문을 이용해 본 기억이 없다. 탈 땐 왼쪽으로, 내릴 땐 오른쪽으로, 가끔 밀릴 땐 양쪽 문 모두를 통해 타고 내려도 좋으련만 왼쪽 문만 이용하는 것에는 예외가 없다.

왼쪽으로 타고 내리는 배의 모습, 익숙하다 ⓒWikipedia
왼쪽으로 타고 내리는 배의 모습, 익숙하다 ⓒWikipedia

●충무김밥의 종이 같은 것

오래전 충무김밥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충무김밥을 시키면 보통 접시 위에 기름종이를 깔고 그 위에 얹어서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 왜 기름종이를 까는지 대부분 모른다는 점이다. 바다로 나가는 어부들이 김밥이 쉬지 않도록  김밥과 그 속을 따로 내어 만든 것이 충무김밥이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된 그릇 없이 종이로 대충 쌌다가 배 위에서 펼치고 먹었던 것. 이때부터 ‘충무김밥은 곧 종이를 깔고 먹는 김밥’이 된 것이다. 배 위가 아닌 식당의 테이블에서 충무김밥을 먹는 우리에게는 이런 종이가 더 이상 필요치 않지만, 여전히 접시 위에는 종이가 깔려 있다. 물론 일부에서는 마케팅적인 의도로 기름종이를 깔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충무김밥을 만들어 팔거나 사먹는 대부분의 사람은 종이가 왜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깐다는 점이다. 이처럼 어떤 관습이 후대에 와서 초기의 목적은 사라진 채 맹목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우리가 ‘전통’이라 부르는 것의 특성 중 하나다.

초창기 배의 키잡이 노 ⓒWikipedia
초창기 배의 키잡이 노 ⓒWikipedia

●항해선과 비행선의 공통점 

비행기 역시 이의 연장선에 있다. 사실 지금 시점에서는 딱히 왼쪽으로만 비행기를 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유라면 그저 오래전부터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그 오래전이란 초기 비행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배로 바다를 항해하던 시절부터다. ‘비행선’이라는 이름에서도 볼 수 있듯 바다의 항해와 하늘의 비행은 비슷한 부분이 많다. 자연스럽게 항해의 많은 부분이 비행 분야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 옛날 배는 선체의 왼쪽 면을 부두 방향으로 대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승객들이 승·하선할 때는 주로 왼편을 이용했고 그때의 전통이 비행기에도 이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애당초 배는 왜 왼편으로 접안해야 했을까? 초기 배의 모습을 보면 추측이 어렵지 않다. 당시 배들은 사공이 배 한쪽에 서서 키잡이 노(Steering Oar)를 이용해 추진과 방향을 조절했다. 노는 배 옆면에 달아야 했고 노가 장착된 쪽으로는 당연히 배를 대기가 불편했다. 보통 사공들은 오른손잡이가 많다 보니 오른쪽에 노를 다는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배는 왼편으로 접안하여 승객과 화물을 싣고 내리게 됐다. 또 불필요한 것들은 배 오른쪽으로 던져 버리는 습관도 이때 나왔다고. 이런 배경으로 항해에서는 좌현, 즉 왼쪽을 포트(Port)라고 하고, 우현, 즉 오른쪽은 스타보드(Starboard)라 한다. 여기서 스타는 별(Star)이 아니라 조향(steer)할 수 있는 쪽이라는 의미의 중세 영어인 ‘Steorboard’가 나중에 ‘Starboard’로 변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좌현도 본래는 라보드(Larboard)란 용어를 썼는데(싣는 것을 의미하는 ‘load’의 중세 영어 ‘lade’가 들어간 ‘ladeboard’에서 옴), 스타보드와 발음이 비슷하게 들린다는 점 때문에 1844년 영국 해군이 이를 포트로 바꾸었다고 한다.

복장만 봐서는 누가 선장인지 기장인지 구분이 어렵다  ⓒGoogleImage
복장만 봐서는 누가 선장인지 기장인지 구분이 어렵다 ⓒGoogleImage

●바다에서 하늘로 이어진 전통 

오늘날 비행기의 엔진 시동 절차도 예외 없이 ‘전통’에 기반한다. 항공 여행 초창기에는 승객들이 항상 활주로에서 직접 비행기로 올라가야 했다. 이때 프로펠러가 돌고 있는 엔진 주변이 위험할 수 있으니 승객이 없는 오른쪽 엔진부터(쌍발 엔진기는 2번, 4발 엔진기는 4번) 시동을 걸어두고 왼쪽의 엔진은 승객들이 모두 탑승한 뒤 시동을 걸었다. 탑승동에서 기내로 바로 들어가는 탑승교 방식이 일반적인 지금은 엔진 시동 순서에 별 의미가 없어졌지만, 그 ‘전통’은 대체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비행기 기장석이 왼쪽에 있는 것 역시 과거 프로펠러 비행기의 비행 특성에서 유래된 것으로 제트기 시대가 된 지금은 그 의미가 희석됐다. 


항해 용어 또한 그대로 항공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공항, 항로, 순항, 접안 등의 용어가 그 예다. 우리말에서는 ‘선장’과 ‘기장’으로 나누어 부르지만, 영어에서는 배나 비행기의 총 책임자를 모두 캡틴(Captain)이라고 부른다. 비행에서 사용하는 속도의 단위는 노트(Knot), 거리의 단위는 노티컬 마일(Nautical Mile)이다. 특히 노트의 경우, 옛 항해 시절 줄을 묶어 마디(Knot)로 만들어 속도를 측정하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 당시 용어가 지금까지 이어져 비행에서도 속도를 나타내는 단위로 쓰이고 있다. 물론 이런 단위의 경우에는 오늘날에도 실질적인 효용성이 있기 때문에 쓰인다는 점이 살짝 다르긴 하다.


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이 관행이 되어 버리면, 그 본래의 의미를 모른 채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끔은 그 전통에 ‘왜?’라는 의문을 가져보게 된다. 그저 ‘예전부터 해왔으니까!’가 유일한 대답이라면 이제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진정한 ‘전통’이란 그 본래 목적도 함께 이어져 올 때 의미가 있지 않을까. 오늘도 공항 탑승구에서 꾸역꾸역 비행기로 들어가는 긴 줄에 서서 든 생각이다.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글 유호상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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