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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의 고향, 물빛 바람이 이는 예천

  • Editor. 이수연
  • 입력 2019.09.02 09:35
  • 수정 2019.11.06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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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매가 나물 씻고 아부지가, 삽을 씻는 저녁이면, 
별들이 예천의 우물 속에서, 헤엄을 친다 카대요.’  - 안도현 <예천> 중에서 

안도현 시인의 시 <예천>에서 예천은 이 나라 땅의 눈동자 같은 우물이라고 한다. 
전국 음료수 공장의 40%가 있을 정도로 예천은 물맛이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예천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사랑하는 안도현 시인과 함께한 길에는 시원한 물빛 바람이 일었다.

●다시 예천으로, 안도현 시인 


지난 7월6일, 예천에서는 안도현 시인 초청강연 및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로 시작되는 시 <너에게 묻는다>로 유명해져 ‘연탄재 시인’으로도 불리는 안도현 시인은 40년 만에 고향인 예천으로 돌아오려 준비중이다. <너에게 묻는다>가 유명해진 까닭에 대해 그는 “연탄이라는, 아무것도 아니고 쓸모없는 존재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을 사람들이 좋게 봐 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다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에서 시가 시작된다는, 시에 대한 그의 지론과도 부합하는 얘기다. “시를 쓰는 사람보다 시를 열심히 읽는 사람이 더 시인에 가깝다”고 말하는 그는 예천에 오면 시를 읽는 모임을 만들고 예천의 매력을 알리는 잡지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고향의 새소리를 조금 더 듣고 알아갈 것이다. 무언가를 더 자세히 보고 듣는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하고 시적인 삶을 만들어 갈 수 있으므로. 

●어릴 적 뛰어놀던 도정서원

옥중의 이순신과 위기의 조선을 구한 약포 정탁의 뜻을 본받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도정서원은 낙동강 상류 내성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한다. 어렸을 적 이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바람이 그렇게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안도현 시인의 눈빛에는 도정서원을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여행자들이 도정서원 어포정의 역사와 의미와 건축미를 생각할 때, 그는 맨발로 뛰어놀다 들어온 오래된 정자에 불던 한 줄기 바람을 기억하는 듯했다.

●같은 곳 다른 생각 선몽대와 내성천

맨발로 내성천까지 걸어가던 길엔 목화밭과 고욤나무가 있었고 금모래 속에 몸을 묻고 놀다가 지치면 언제나 허벅지 높이까지 흐르는 강물에 뛰어들곤 했다는 시인은 가물어 버린 내성천을 향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마른장마에 더더욱 넓어진 모래밭엔 갈대가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흔들렸다. 그러나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한음 이덕형 등의 친필시를 간직한 선몽대에는 시상이 가득했고, 선몽대와 백송리 마을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솔숲에는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누군가는 종이를 들어 시어를 고를 때 누군가는 저녁 무렵 술 한 잔을 곁들이는 시간을 꿈꿨다. 

●영혼의 허기를 채우는 용궁순대 

일주일에 단 두 번 무궁화호가 들어오는 작은 용궁역이 용궁순대축제와 강연 및 음악회 준비로 활기가 돋았다. 두툼하고 쫄깃한 돼지막창을 피로 사용해 특별한 식감을 자랑하는 용궁순대를 먹은 사람들의 표정엔 진득하면서도 찰진 생기가 돌았다. 용궁면의 순대는 어떻게 이리 유명해졌을까? 조선시대 커다란 우시장이 있었던 예천은 당시 전국에서 두 번째로 백정이 많은 지역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순대가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추정된다. 

용궁순대로 말문을 튼 안도현 시인은 예천의 전통적인 음식 ‘태평추(돼지묵전골의 일종)’를 대상으로 쓴 시를 낭독했다. 그리고 어렸을 적 닭보다 나물이 더 많은 닭개장을 며칠씩 먹은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나라의 음식 문화가 급격하게 변해가는 점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재료가 아니라 정신적인 허기를 달래는 것이며, 풍족함 역시 물질이 아닌 행복의 문제라는 것. 시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인의 몫이라고 했다.   

●언제나 마음 편한 금당실마을 

천재지변이나 전쟁에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는 마을로 꼽히는 금당실마을. 이 마을의 집들은 길을 걸으면서도 안쪽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담이 낮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전통가옥과 돌담길에 여전히 주민들이 거주하는 금당실마을은 정돈된 여행지라기보다는 삶의 흔적이 어린 터전이다. 꼬불꼬불한 마을길을 거닐며 담장의 꽃과 담 안쪽 집에 시선을 뺏기다 보면 어느새 길을 잃게 된다. 길을 물어보다 만난 마을 주민 할아버지가 준 생 가지와 땅에 떨어진 살구를 주워 먹다 보면 길을 잃은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 여행의 묘미다. 

●간절함이 깃든 용문사 

천년고찰인 용문사는 8점의 보물 및 350여 점의 성보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은 대장전에 안치된 윤장대다. 내부에 경전을 넣어 둔 목조경판고를 회전할 수 있게 만든 윤장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오직 용문사 대장전에서만 볼 수 있으며, 한 번 돌리면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이 쌓이며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성취된다고 알려져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보물인 만큼 누구나 언제든 돌릴 수는 없지만 간절한 소원을 품었다면 윤장대를 만져 보고 소백산 기슭의 용문사에서 백두대간의 정기를 느껴 보자. 돌아가는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질 것이다.  

●풍경이 시가 되는 초간정 

안도현 시인의 시 낭송회가 열린 초간정은 초간 권문해 선생의 유고가 보관된 전각이다. 울창한 나무와 기암괴석 위의 정자가 절경을 이뤄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초간정 위에 올라서면 기단이 물가에 있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작은 것들을 불러 줄 때 그게 바로 시가 된다는 시인의 이야기가 바람결에 흔들리는 수면처럼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그러고 보면 시와 여행은 닮아 있다. 길에서 만난 작은 꽃과 길을 묻다 나눈 미소를 기억할 때 여행이 한결 풍성해진다는 점에서. 

 

▶백두대간 인문캠프
경상북도 주최, 경상북도 문화관광공사 주관, 안동시와 예천군 후원으로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김훈 소설가와의 첫 번째 여행을 시작으로, 7월에는 안도현 시인과 예천에서 두 번째 여행을 마쳤다. 9월에는 예천 금당실마을 부연당에 정호승 시인이, 10월에는 안동 하회마을 고택에 이원복 만화가가 동행할 예정이다.


글·사진 이수연(자연형)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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