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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이 제일 예쁜 어느 가을날

  • Editor. 김기남 기자
  • 입력 2019.09.25 16:39
  • 수정 2019.11.06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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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트레킹은 대전사에서 시작된다. 대전사 뒤로 주왕산이 영험한 자태로 솟아있다
주왕산 트레킹은 대전사에서 시작된다. 대전사 뒤로 주왕산이 영험한 자태로 솟아있다

청송은 개성이 확실한 여행지다. 보고 먹을 것이 분명하다. 
마침 청송의 매력이 가장 탐스럽게 익어가는 가을이 오고 있다.

 

●주연 배우 확실한 청송여행


청송 여행은 주왕산국립공원과 주산지가 주연이고 솔기온천, 송소고택, 달기백숙, 사과가 조연이다. 야송미술관과 객주문학관도 있지만 주연이 워낙 막강해 존재감을 내세우기가 어렵다. 여행 좀 다닌다는 이들에게 물어도 마찬가지다. 예측 가능한 답이 돌아온다. 맛집을 검색해도 열에 아홉은 백숙이다. 덕분에 청송에서는 결정장애와 정보의 홍수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일단 가고, 보고, 먹고, 몸을 담가 보면 된다. 


우선 주왕산국립공원으로 가자. 주왕산 트레킹은 체력과 시간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다. 1단계라고 할 수 있는 용추폭포까지는 왕복 2시간이면 충분하다. 길이 험하거나 가파르지 않아서 누구나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트레킹은 주왕산 입구 대전사에서 시작한다. 대전사 뒤에서 영험함을 뽐내는 기암봉은 주왕산의 특징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주왕산은 계곡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 산이다. 크지는 않지만 조금만 걸어 들어가면 국립공원 타이틀을 달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여름의 끝자락. 전날부터 오전까지 내린 비로 주왕계곡은 물이 가득했다. 시원한 바람까지 더하니 맑고 상쾌한 천연 ASMR의 완성이다.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면 학소대, 급수대, 석병암, 시루봉 등 재미난 이름의 봉우리와 바위가 이어진다. 아들바위도 있다. 왼손으로 돌을 쥐고 가랑이 사이로 던져 바위에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이 있다. 안내판에는 한복 입은 여자의 시연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남자도 종종 돌을 던진다. 아들바위 사진을 개인 SNS에 올렸더니 딸만 3명인 지인이 ‘자신도 던졌는데 3번 떨어졌노라’고 댓글을 달았다. 바위에는 이미 더 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돌이 빼곡하다.

무협 영화의 세트장처럼 신비함이 감도는 용추협곡
무협 영화의 세트장처럼 신비함이 감도는 용추협곡

주왕계곡은 정부가 뽑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 중 경관부분 우수상을 받았다. 용추폭포, 절구폭포, 용연폭포 등 여러 폭포가 색 고운 단풍과 어울리는 가을이면 절정을 맞는다. 용이 승천한 곳이라는 용추폭포는 선녀탕과 구룡소로 이어지는 3단 폭포. 폭포로 가려면 용추협곡을 지나야 하는데 협곡 입구에 들어서면 갑자기 서늘한 바람이 불며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암벽을 따라 데크를 놓아 폭포를 관찰하며 산을 올라갈 수 있는 협곡 안 풍광은 중국의 장자제가 연상될 정도로 이국적이다. 

주왕계곡에 들어서자 누가 연출이나 한 듯 한복을 입고 유람 중인 어르신 3분과 마주쳤다. 선비들도 즐겨 찾았다는 조선시대 주왕산 모습이 스쳐 지난다
주왕계곡에 들어서자 누가 연출이나 한 듯 한복을 입고 유람 중인 어르신 3분과 마주쳤다. 선비들도 즐겨 찾았다는 조선시대 주왕산 모습이 스쳐 지난다

●왕버들 생명력으로 신비한 주산지


주왕산만큼 유명한 곳이 주산지다. 주산지는 1720년에 농업용수를 모으기 위해 만든 인공저수지다. 가로 200m, 세로 100m에 깊이가 8m인 아담한 저수지지만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걸 감안하면 만만한 규모가 아니다. 기록에 따르면 만들고 한번도 바닥을 보인 적이 없다고 한다.


물에 잠긴 채 자라는 능수버들과 왕버들은 주산지의 상징이다. 운무가 깔린 어스름한 새벽이면 물에 비친 왕버들의 신비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작가의 발길이 여전하다. 사실 왕버들은 물과 친하지만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그나마 주산지의 왕버들은 호흡근을 발달시켜 숨을 쉴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고 수령이 많아지면서 수세가 예전에 비해 많이 약화됐다. 부러지거나 죽은 나무도 드문드문 볼 수 있다. 물도 좋지만 주변의 산책로도 아늑하다. 저수지 둘레를 온전히 돌 수는 없고 끝에서 끝을 절반 정도만 보고 다시 걸어 나와야 하는데 나무가 우거져 느긋느긋 산책하기에 좋다.

해가 뜨고 지면서 빛에 따라 천만가지 표정을 연출하는 주산지
해가 뜨고 지면서 빛에 따라 천만가지 표정을 연출하는 주산지

●마음까지 맨들맨들 솔기온천


땀과 먼지를 씻고 하루의 피로를 달래기에 온천만한 것이 없다. 청송에 갔다면 소나무의 기운이 녹아 있다는 솔기 온천에 몸을 담가야 한다. 주왕산온천관광호텔에 붙어 있는 솔기온천은 알칼리성 중탄산 나트륨천 중에서도 특등급에 속한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탕에 들어가는 순간 물이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물이 미끌미끌해서 벽에도 ‘비누칠이 가시지 않는다고 걱정 마시라’는 안내문까지 붙어 있다. 신경통부터 여러 피부질환에 좋다는데 여행자가 즉각 효과를 보기는 어려워도 마음의 위로를 받기에는 충분하다. 객실에서도 온천수가 나온다. 투숙객이 아니라 온천만 이용하러 오는 손님들도 제법 많다.  

송소고택은 남녀가 유별한 조선시대에 아녀자가 함부로 보이지 않도록 안채를 가리는 헛담을 세우는 등 당시 상류 가옥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송소고택은 남녀가 유별한 조선시대에 아녀자가 함부로 보이지 않도록 안채를 가리는 헛담을 세우는 등 당시 상류 가옥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아흔아홉칸 고택에서의 하룻밤


온천 후 노곤한 몸을 대궐같은 한옥 고택에 누이는 것도 운치가 있다. 청송 덕천마을은 경주 최씨와 쌍벽을 이룬 청송 심씨 가문의 본향이다. 심대평 전 충남도지사와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도 청송 심씨 후손이다. 덕천마을 중심에는 조선 영조 때의 만석꾼 심처대의 7대손인 심호택이 13년에 걸쳐 지은 아흔아홉칸 송소고택이 있다. 송소고택은 국가 민속문화재 제250호이면서 현재 한옥 스테이 시설로도 활용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심호택의 둘째 아들이 살던 송정고택이 있다. 규모는 더 작지만 단정하고 관리도 잘 돼 있다. 송정고택은 관광공사가 인증한 한국관광 품질인증숙소이기도 하다.     

달기백숙과 닭떡갈비
달기백숙과 닭떡갈비

●물 좋은 청송의 맛


물이 좋은 청송은 온천만큼 약수도 유명하다. 달기 약수는 조선시대에 발견돼 지금도 마르지 않은 천연탄산 암반수다. 이름처럼 달지는 않고 찝찌름한 독특한 맛이 난다. 약수탕 주변에는 식당이 빼곡한데 하나같이 백숙을 판매한다. 달기 약수로 요리한 백숙은 물에 함유된 철분 탓에 국물에 푸른빛이 돌고 고기도 부드럽다. 닭고기를 떡갈비처럼 요리해 백숙과 2~3인용 세트로 내놓기도 한다. 


청송 여행의 기념품은 역시 사과다. 사과 자체도 꿀맛이지만 파우치에 담은 사과즙도 선물용으로 좋다. 지역특산물로 만드는 배상면주가의 증류주 시리즈인 ‘아락’도 청송 사과를 주재료로 만들었다.


글·사진=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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