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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으로 채우는 익산

  • Editor. 이은지 기자
  • 입력 2019.09.25 16:58
  • 수정 2019.11.06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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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궁리 오층석탑이 두 그루 소나무와 함께 너른 벌판을 바라보며 서있다
왕궁리 오층석탑이 두 그루 소나무와 함께 너른 벌판을 바라보며 서있다

여백이 가득하다. 백제의 찬란한 역사를 확 트인 공터에 상상으로 써내려갔다.


●미래를 기다리는 미륵사지 석탑


낯설지만 익숙하다. 익산의 첫 감상이다. 역사책 속에서 수도 없이 봤으니 눈으로는 가까우나, 한 번도 와본 적은 없으니 발로는 먼 곳이다. 올해 봄, 장장 20년간의 복원을 마치고 익산 미륵사지 석탑(서탑)이 모습을 드러냈다니, 익산을 방문할 이유는 이것 하나로도 충분했다.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 서탑과 동탑은 휑한 공터에 다소 거리를 두고 일직선으로 배열돼있다. 하나는 9층, 다른 하나는 6층. 비대칭적인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이게 복원이 다 된 거라고? 장장 20여년의 복원을 마쳤으니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리라 내심 기대했던 마음을 한편에 고이 접어넣는다. 1993년 9층 규모의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된 동탑은 고증이 제대로 되지 않아 뭇매를 맞았다고 한다. 문화재 복원은 역사적 추론이 가능한 지점에서 멈춰야한다. 때로는 다음 세대를 위해 남겨둬야 할 몫이 있다. 서탑은 20년간의 복원 끝에 또 다른 세월을 기다리며 서있다. 


익산 유적지 곳곳에는 방문객을 위한 배려가 묻어있다.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에서는 뜨거운 햇빛을 피할 수 있도록 무료로 우산을 대여해준다. 그늘이 없는 넓은 벌판을 거닐 여행자들에 대한 걱정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소한 친절은 여행자의 사색을 지연시킨다. 배려의 그늘 아래 찬란한 백제의 역사 위를 걸었다. 

왕궁리 후원 산책로
왕궁리 후원 산책로

왕궁리는 독특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바로 ‘한국 최고의 화장실 유적’이다. 초기 발굴 당시 두 개의 나무 발판이 걸쳐진 구덩이 유적의 용도에 대해 추측이 분분했다고 한다. 곡식이나 과일 등 식료품을 저장하던 창고라는 설이 가장 유력했지만, 구덩이 바닥에서 다량의 기생충알이 발견되면서 화장실임이 밝혀졌다. 주위에서는 백제인들이 대변을 본 후 뒤처리를 하던 나무 막대기도 여럿 발굴됐다. 현재의 위생관념으로서는 절로 질색하게 되지만, 물 항아리에 담궈 막대기를 헹구고 이용했다고 하니 사실 백제인들은 상상이상으로 깔끔했을지도. 

보석박물관에서는 11만점이 넘는 보석을 만날 수 있다
보석박물관에서는 11만점이 넘는 보석을 만날 수 있다

●반짝이는 세심함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보석을 마음껏 눈에 담을 수 있는 곳. 우리나라 유일의 보석박물관이다. 지역 거점 산업을 육성하던 70년대, 익산에는 보석 가공 산업 단지가 들어서게 된다. 전국 팔도 중에 왜 하필 익산일까? 백제시대부터 시작된 화려하고 섬세한 익산의 세공술을 인정받아서라고. 당시 수출자유지역으로 지정돼 좋은 품질의 보석을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어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미륵사지석탑, 보석꽃 등 보석으로 만든 아름다운 예술품이 전시된 보석박물관
미륵사지석탑, 보석꽃 등 보석으로 만든 아름다운 예술품이 전시된 보석박물관

보석 박물관에는 약 11만8,000여점의 보석이 있다. 시작부터 화려한 백제시대 금빛 유적이 시선을 잡아끈다. 해설사를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다보면 보석 종류가 이리도 많았던가? 절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전시는 보석의 채굴부터 가공, 연마 과정까지 상세히 이어진다. 얼핏 지나칠 수 있었던 다소 투박해 보이기까지 한 원석이 반짝이는 보석으로 재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공을 통해 다시 태어나는 보석은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내부에는 순금으로 만든 미륵사지 석탑과 독일 유명 보석 세공사가 만든 작품 ‘보석꽃’도 전시돼있다. 


보석을 저렴하게 구입하고 싶다면 봄·가을에 열리는 보석축제를 노려보자. 보석박물관 옆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귀금속판매센터인 주얼팰리스가 상시 운영 중으로, 연결 통로를 통해 보석박물관과 바로 이어져있다. 이를 어쩌나.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거늘 어느새 보석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된다. 두 손은 무겁게, 지갑은 가볍게 돌아가기 딱 좋은 곳이다. 화석전시관도 나란히 자리하고 있으니, 공룡 모형과 시대별 화석을 보며 지질시대의 역사를 돌아보는 것도 좋다. 

죄수복을 입고 교도소세트장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커플
죄수복을 입고 교도소세트장에서 기념사진을 남기는 커플

●교도소는 팔자에 없었는데요


새파란 죄수복을 입고 법정 앞에 선다. 땅땅땅. 유죄선고가 이어진다. 철창이 높게 드리운 교도소로 터덜터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매너가 사람을 만들고, 복장은 매너를 만든다. 죄수복을 입으니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팔자에 없던 무시무시한 복장을 하게 된 곳은 바로 교도소 세트장이다. 찬란한 백제의 역사를 만났다면 이제는 익산의 힙한 감성을 느껴볼 차례. 영화 <7번방의 선물> 등 수많은 영화가 촬영된 교도소 세트장에서는 100일 기념 스냅샷을 찍는 커플, 동영상을 찍으며 한국 여행의 추억을 남기는 외국인들이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간 교도소세트장에서 ‘착하게 살자’ 다짐을 해본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간 교도소세트장에서 ‘착하게 살자’ 다짐을 해본다

이대로 익산을 떠나기 아쉽다면 익산역 맞은편 골목에 위치한 문화예술의 거리를 잠깐 둘러봐도 좋다. 알록달록한 그래피티가 거리를 메운다. 익산 아트센터에는 연중 다양한 전시회 및 거리공연 등 연중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마련돼있다. 1층에는 70년대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관을, 2층에는 예술가들이 창작을 할 수 있는 작업공간을 갖췄다. 아트센터를 나와 거리를 따라 걷다보면 익산근대역사관을 만난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삼산의원을 복원해 이리시와 익산군이 통합된 과정을 둘러볼 수 있다. 익산의 과거와 현재를 바라보고, 익산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안녕, 과거의 익산. 오늘의 익산.

알록달록 벽화로 채워진 익산역 맞은편 문화예술의 거리
알록달록 벽화로 채워진 익산역 맞은편 문화예술의 거리

 

글·사진=이은지 기자 eve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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