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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CRAFT] 감당하시겠습니까? 20시간 논스톱 비행

  • Editor. 유호상
  • 입력 2019.10.01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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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을 지루함으로 배배 꼬게 만들고 심지어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란 말까지 나오게 한 장거리 비행! 
유럽 혹은 미주 노선을 타면 꼬박 10~12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앞으로 이 정도는 장거리 비행 축에도 끼지 못할 것 같다.

침대까지 갖춘 A380 스위트. 이런 자리라면 40시간도 탈 수 있을 듯 ⓒSingaporeAirlines
침대까지 갖춘 A380 스위트. 이런 자리라면 40시간도 탈 수 있을 듯 ⓒSingaporeAirlines

최근 호주 항공사인 콴타스항공이 가을에 있을 선라이즈 프로젝트(Project Sunrise)를 발표했다. 시드니-뉴욕, 시드니-런던 노선에 대한 초장거리 비행 시험이다. 특히 시드니-런던 구간은 거리가 무려 1만7,000km다. 현재 최장거리 노선인 싱가포르항공(SQ22편)의 싱가포르(창이공항)-뉴욕(뉴어크리버티공항)의 1만6,600km보다도 400여 킬로미터나 긴 데다, 풍속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하면 비행시간은 무려 21시간까지 예상된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먼 거리인지 감이 잘 안 올 것이다. 지구본을 놓고 거리를 한 번 보시라. 지구 둘레가 대략 4만 킬로미터이니 거의 지구를 반 바퀴 휘감아야 하는 거리다.


1903년 12월 14일, 라이트 형제는 인류사에 길이 남을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했다. 이때의 성과가 얼마인가 하면 자그마치(?) 37m의 거리에 12초의 비행시간이었다! 비행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다. 그로부터 불과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비행기는 대서양을 건널 수 있는 수준으로 발달했고 오늘날 초장거리 비행이란 용어의 의미는 통상적으로 약 12시간 이상의 논스톱 비행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제 항공 분야의 마지막 과제라는 ‘20시간 비행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장거리 비행의 역사 

장거리 비행이라 하면 늘 화제의 중심이 되는 곳이 있다. 외로운 ‘섬’ 호주다. 지리적 특성상 항공 역사 초기부터 장거리 비행을 개척해 온 호주는 특히 영국과의 노선에 중점적으로 공을 들여 왔다. 장거리 비행의 효시 중 하나는 ‘더블 선라이즈(The Double Sunrise)’ 서비스다. 1943년 콴타스항공이 실시한 이 서비스는 2차 세계대전 중 싱가포르의 함락으로 끊어졌던 호주-영국 간 하늘길의 일부를 다시 잇기 위한 것이었다.

카탈리아라는 비행정을 이용해 28~33시간이 소요됐는데 물론 오늘날과 같은 논스톱 비행이란 언감생심이었고, 당시엔 급유와 보급 등을 위해 여러 중간 기착지가 필요했다. 더블 선라이즈는 긴 비행 중 승무원들이 일출을 두 번 보게 돼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당시는 전시라 군사우편이나 주요 인물의 운송이 우선이었기에 여객기라고 보긴 힘들었다. 콴타스항공이 호주-영국 직항 노선을 처음 취항한 것은 1947년인데 이때도 중간 기착지가 일곱 군데나 있었고 약 55시간의 비행 때문에 이동 시간만 나흘은 족히 잡아야 했다. 지금은 안전하고 편하게 그리고 논스톱으로 단 20시간(?)이면 도착하지만, 여전히 장시간이라고 기겁을 하게 되니,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초장거리 노선이 가능해진 배경은 말할 것도 없이 항공기 제작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금속재보다 훨씬 가벼우면서 강도는 강한 복합재료, 4개씩 주렁주렁 달지 않아도 단 2개만으로도 대양을 건널 수 있는 고장 없는 엔진, 연비 향상에 지대한 공을 세우는 공기 역학 기술 등이 모인 결정체가 바로 요즘 우리가 타고 다니는 에어버스 A350이나 보잉의 787이다.

현재 세계 최장 노선에 투입된 싱가포르항공 A350-900ULR  ⓒSingaporeAirlines
현재 세계 최장 노선에 투입된 싱가포르항공 A350-900ULR ⓒSingaporeAirlines

●알고 보니 문제는 사람 

그런데 초장거리 비행시대가 마냥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복병이 있는데 바로 돈이다. 인간사 가장 큰 걸림돌은 늘 기술적 장벽보다 돈이었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유럽 노선은 보통 12시간 안팎, 미국 동부 노선은 14시간 안팎이 소요된다. 통상 운항의 한계 시간인 15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이런 한계 덕분에(?) 인천공항 같은 주요 허브공항들이 환승지로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런데 초장거리 비행이 진행되면, 이게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환승여객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허브 공항들이 초장거리 비행을 견제할 만한 서비스나 조건들을 내놓으며 반격(?)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또 하나, 초장거리용 비행기의 시설 문제가 있다. ‘장시간 동안의 사육’이 두려운 승객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현재 구상 중인 기내설비는 편안하고 넉넉하다. 심지어 비행기 데크 밑 화물칸을 개조해 이층 침대나 휴게실, 라운지(거창하게 ‘짐(gym)’이라는 표현도)를 만든다는 계획까지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항공사들은 수익 창출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승객수를 고려할 때 모든 좌석을 비즈니스석이나 프리미엄 이코노미석으로 설계하기도 쉽지 않다. 실제로 초장거리 노선을 준비 중인 항공사들의 말이 최근 살짝 바뀐 분위기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초장거리 노선의 운영에는 돈이 많이 든다. 조종사를 비롯한 승무원들은 안전한 비행을 위해 지켜야 할 규정 근무시간이 있는데 이게 초과할 경우 교대할 예비팀이 있어야 하며, 장거리 비행에 맞춰 기름을 더 많이 넣으려면 돈이 되는 화물 운송을 그만큼 포기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잘 돌아가려면 기름값이 싸야 하는데 국제유가는 늘 오르락내리락 불안정하다.


이 모든 걸 넘어선다 해도 체크리스트의 마지막 관문이 남았으니, 그건 바로 이 비행기에 탈 사람들의 문제다! 비행기는 준비가 됐어도 정작 승객과 승무원이 20시간이 넘는 비행을 견딜 수 있느냐는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콴타스항공은 이번 시험비행에 기니피그, 아니 승객과 승무원 40명을 탑승시킬 계획인데 이들에게는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해 수면 패턴이나 건강 상태 등을 모니터링하고 그 결과에 따라  초장거리 노선의 신설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하긴 시간만큼이나 배로 늘어난 스트레스가 승객들의 기상천외한 히스테리 확률을 얼마나 높일지도 사실 모를 일이다. 이 시험비행을 통한 검증은 정말 중요할 듯하다. 

 

ⓒairbus-zodiac
객실 아래 화물칸을 개조해 침대 공간과 라운지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 ⓒairbus-zodiac
객실 아래 화물칸을 개조해 침대 공간과 라운지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 ⓒairbus-zodiac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글 유호상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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