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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의 여행의 순간] 여행과 여행기록 사이의 균형

  • Editor. 박 로드리고 세희
  • 입력 2019.10.01 09:25
  • 수정 2019.11.0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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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고비사막
몽골 고비사막

여행에 대한 보상심리는 기록의 원동력이 될 수도, 여행의 본질을 흐리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여행이란 자기가 사는 곳을 벗어나 
어느 정도 위험에 맞서가며 
세상을 두루 경험하고,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일이다. 


견문록(見聞錄)이라는 한자어로 대체되기도 하는 여행기(旅行記)는 직역하면 ‘여행하는 동안 보고 들은 성취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다. 여행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스토리텔링 방법이다.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불경을 구하기 위해 인도를 여행하며 기록한 <대당서역기>,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 폴로가 27년 동안 동양을 여행하며 기록한 <동방견문록> 등, 고전 여행기들을 비롯해 <오디세이>나 <서유기> 등 문학작품 역시 여행기의 형식에 크게 빚지고 있다. 이러한 고전 속에서 여행은 인생을 건 모험이자 엄청난 고역이었다. 종교적 성찰을 위해 사서 고생을 하거나, 거주하던 곳에 계속 머무를 수 없는 사정이 생겨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일이었다. 지금처럼 여가를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인도 라다크
인도 라다크

여행을 기록하는 방법도 전통적인 여행기와는 사뭇 달라졌다. 80년 전 활동했던 전방위 예술가 나즐로 모홀리 나기(Laszlo Moholy Nagy)가 “미래의 까막눈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카메라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라고 예언한 것처럼 누구나 사진으로 여행을 남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글을 쓰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기도 하거니와, 사진은 글보다 사실성과 시간성을 훨씬 부각시켜 준다는 장점이 있다. 과거에 경험했던 장면 하나하나를 기억해 내는 능력을 ‘포토그래픽 메모리(Photographic Memory)’라 부르듯, 한 장의 사진에 여행의 감흥을 가둘 수 있다. 후에 그 장면을 들추며 여행을 복기하기도, 감동을 반추하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과도 기억을 나누기에도 용이하다. 여행 기록의 수단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택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 로마

여행사진을 찍는 데는 어느 정도의 보상심리도 작용한다. 과거에 비해 쉬워졌지만 여전히 적잖이 맘을 먹어야 떠나는 여행은(물론 시간과 돈도 든다), 상황에 따라 매우 어려운 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대가를 바라는 것이 인지상정. 여행의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 사진첩에 보관해 두거나 SNS에 올려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한다. ‘인증’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이상 보상심리는 여행을 기록하는 원동력, 게으른 여행자를 움직이게 하는 촉진제가 되기도 한다. 단, 여기에만 너무 휘둘려 여행의 본질이 흐려지는 것은 꽤 안타까운 일이다. 명소를 바삐 순회하며 그저 인증샷을 남기는 데만 연연할 때, 본래 ‘여행’의 의미와는 어느새 멀어질 수 있다.


다행히 지금 우리의 여행은 고난이 아닌 즐거움이다. 그 즐거움을 남기고자 카메라를 들지만, 정말로 즐거워지기 위해 여행자가 카메라 이전에 켜야 할 것은 온몸의 감각이다. 누군가에게는 사진 찍는 일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기록의 도구로 사진을 활용하는 것과 막연한 보상심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여행자는 어디까지나 낯선 세계에 직접 부딪혀 보고 듣고 느끼는 ‘주체’다. 여행과 여행기록, 이 둘의 균형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제대로 여행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세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일은 여행의 오랜 정의이자 순수한 맛이다.  


*박 로드리고 세희는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촬영감독이다. 틈틈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트래비>를 통해 여행사진을 찍는 기술보다는, 여행의 순간을 포착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글ㆍ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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