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설레는 산책, 인천
늘 설레는 산책, 인천
  • 온새미
  • 승인 2019.10.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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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우리 사이에 놀이는 이런 것이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사람을 앞장세워, 동네 산책에 나서는 것. 
그가 자주 걷는 거리에 단골 카페, 단골 갤러리를 졸졸 따라다니며 발을 들여놓게 된다. 또 하나의 세계로. 

한국근대문학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한국근대문학관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내 발목을 잡은 도시

‘인천’이라는 말만 들어도 설렌다. 멀리 비행기를 타고 떠나는 관문이 이 도시에 있다는 이유로 말이다. 공항이 들어서기 이전에도 인천은 그런 곳이었다. 1883년 개항이 되면서 신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 지금 인천 중구에 가면 그 유명한 차이나타운이 있고, 조계 경계계단을 기준으로 반대편엔 일본 및 각국 조계지에 만들어진 건축물이 남이 있다. 개항 때 들어선 은행, 호텔, 영사관 등의 건물들은 지금 기념관, 박물관, 관공서 등으로 바뀌어 개방하고 있다. 한일 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요즘, 이 거리의 일본풍이 거슬린다는 의견도 있지만, 일어났던 역사를 지워 낼 수는 없지 않은가. 현 일본 정부가 아무리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려 해도, 진실은 바뀌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이 거리엔 종종 모던 풍의 옷과 장식으로 한껏 멋을 낸 젊은이들이 활보하곤 한다. 기웃거리다 돌아갔던 인천 여행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인천의 오래된 골목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아끈다. 아니 잡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익살스런 조형물
인천아트플랫폼의 익살스런 조형물
한국근대문학관의 독특한 천장
한국근대문학관의 독특한 천장

●인천아트플랫폼 

인천아트플랫폼은 1883년 개항 이후 건립된 인천 중구 해안동 일대의 건축문화재와 1930~40년대 건축물을 리모델링해 예술가 레지던시로 운영하면서 전시 및 공연, 시민참여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프로젝트다. 창작스튜디오, 전시장, 공연장, 생활문화센터 등 총 13개 동의 공간이 재생되면서 낙후되었던 개항장은 이제 예술가의 창작공간으로, 시민들의 문화예술 향유의 광장으로 확장됐다.

2층에서 내려다본 한국근대문학관
2층에서 내려다본 한국근대문학관
한국근대문학관 전경
한국근대문학관 전경

●Museum
한국근대문학관
근대를 안다는 것은 

인천아트플랫폼 거리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국근대문학관’은 당시의 중요한 문학 작품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한국의 근대문학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1900년대 초 서구의 근대문화가 집중적으로 들어왔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한국문학을 통해 재발견할 수 있는 기회다. 김소월, 한용운, 강경애, 염상섭, 채만식 등 민족의 영혼을 노래한 작가들의 초록과 초판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따분한 문학 시간과는 달라서 벽에 그려진 삽화를 통해 작가와 대화하기도 하고 차를 마시며 담소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을 기회도 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 아! 소리가 절로 날 것이다. 물류창고, 김치공장 등으로 백 년을 견뎌 낸 창고건물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시다. 

한국근대문학관
주소: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 15번길 76  
운영시간: 10:00~18:00, 매주 월요일 및 명절 당일 휴관, 해설 가능 시간 10:00~12:00, 13:00~17:30  
전화: 032 773 3800  
홈페이지: lit.ifac.or.kr 

중구청 앞 도로는 개항로로 이어진다
중구청 앞 도로는 개항로로 이어진다
카페 개항로 91
카페 개항로 91

●인천 중구청 

한국근대문학관을 나와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인천 중구청이 보인다. 1883년 10월31일 조계지 내 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한 영사관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몇 번의 리모델링을 거쳐 3층짜리 건물이 되었고 1985년부터 인천 중구청으로 사용되고 있어 그 당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외벽에 붙여진 스크레치 타일은 당시 외장마감 타일의 교과서적인 공법을 보여 주고 있다. 그 시절의 애환이 느껴지는 거리를 벗어나 경동으로 향했다. 신포시장 안에 있는 공갈빵과 닭강정이 계속 유혹을 했지만,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싸리재를 넘는 사람들. 카페 싸리재 앞
싸리재를 넘는 사람들. 카페 싸리재 앞
로마네스크 양식의 답동성당
로마네스크 양식의 답동성당

●싸리재 

인천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의 고갯길 싸리재는 경동의 옛 지명이다. 신문물이 먼저 오가던 길목답게 예식장, 극장, 양화점 등이 생겨 근대 생활양식을 먼저 받아들였고, 병원과 약국 등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세월이 흘러 인천의 중심이 신도시로 이전하며 화려했던 그 시절은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개를 넘을 때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것은, 꼭 몸의 반응만이 아니다. 그 싸리재를 넘어 배다리로 향하는 길에 커피향이 넘어왔다.

아늑한 카페 싸리재
아늑한 카페 싸리재

●Cafe 카페 싸리재
커피향 가득한 음악 감상실  

즉석에서 콩을 갈아 모카포트에 넣은 뒤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있는 사람은 카페 싸리재의 주인장 박차영이다. 손수 만든 풍부한 거품, 마지막 한 모금까지 남아 있는 진한 향의 매력에 빠져 계속 찾게 되는 카페다. 오래된 문예잡지와 빛바랜 신문을 벽에 바른 앤티크한 분위기의 카페로만 이해한다면, LP판이 돌아가는 순간 흠칫 놀라게 될 것이다. 고음질의 스피커만이 재생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음색의 퀄리티는 음악 감상실 수준이다. 2층에 올라가 상량문을 보면 ‘귀 소화 오년(1930년) 사월 오일 오후 세시 입주상량 용’이라고 적힌 글을 볼 수 있다. 이 집의 역사다. 2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이는 뒤채가 바로 박차영씨와 아내가 살고 있는 한옥. 카페에서 여러 문화 예술 활동과 인문학 강의 등을 마련하며 고집스레 세월의 더께를 쌓고 있는 부부의 모습은 엄숙하면서도 신선하다.

카페 싸리재 
주소: 인천광역시 중구 개항로 89-1 
영업시간: 매일 10:00~22:00
전화:  032 772 0470  

잇다 스페이스 이영희 관장
잇다 스페이스 이영희 관장
나무를 잘 살린 조형물
나무를 잘 살린 조형물

●Gallery 잇다스페이스
소금창고에서 이어진 시간 

처음 방문했을 때, 감탄했었다. 좁은 골목 안에 이렇게 멋진 공간이 있을 줄이야!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비밀의 아지트지만, 이참에 공개한다. 잇다 스페이스(itta space)는 1920년대 소금 창고로 첫 숨을 텄다. 화약을 만든 재료로 소금이 필요했던 일제는 소래에서 소금을 생산했고, 그 소금을 저장할 창고가 여럿 필요했다. 처음의 용도가 폐기된 이후 1940년대에는 일본식 한증막으로 사용되었다가 10년 후에는 서점 ‘문조사’로 역사가 이어졌다. 동네 사람의 기억에는 헌책방 ‘동양서림’으로 남아 있다. 긴 세월 동안  소년 소녀들이 책장을 넘겼던 이 공간을 인수한 이영희 관장님은 100여 년 시간과 사람을 ‘잇는’ 문화 재생 공간을 꿈꾼다. 폐허에 움튼 오동나무 한 그루가 지난 시간과 현재의 갤러리를 이어주는 상징으로 보존되었다. 초대전과 대관 전시가 시즌마다 다양하게 바뀌지만, 이 갤러리만의 특별한 상설전이 있다면 지붕과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궤적이다.  

잇다스페이스
주소: 인천광역시 중구 참외전로 172-41  
영업시간: 하절기 11:00~18:00, 동절기 11:00~17:00, 매주 월요일 휴관, 1~2월 장기휴관(예약제로 관람가능)  
전화: 010 5786 0777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한미서점
드라마 '도깨비'에 나왔던 한미서점
철길 밑을 지나는 지하 차도
철길 밑을 지나는 지하 차도

●배다리 

싸리재를 지나 큰길로 들어서면 고가 철길이 보인다. 인천역을 출발해 서울을 지나 의정부, 청량리를 거쳐 소요산까지 가는 철도 길이다. 참 길게도 이어졌다. 신호등을 건너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다. 배다리 헌책방 길이다. 인천 중구에서 동구로 이어지는 배다리는 예전에 갯골이 있던 곳이라 인천 앞바다에 나갔던 배들이 저녁이면 다리처럼 이어져 정박하던 곳이다. 우마차를 타고 경성으로 향하던 길이 철길과 나란히 있어 운치를 더하고,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하는 한미서점 근처에는 헌책방이 모여 있어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다. 

인천양조장 안에서는 휴지깡도 미술품
인천양조장 안에서는 휴지깡도 미술품
인천양조장 앞 깡통로봇
인천양조장 앞 깡통로봇

●Community 인천양조장
양조장이 빚어낸 맛

톡 쏘는 맛이 일품인 ‘소성주(邵城酒)’는 인천을 대표하는 막걸리다. 70년간 이 술을 빚어 왔던 인천양조장은 동네 물맛이 예전 같지 않자 1996년 이전했고, 이후 서점 등으로 활용되었던 낡은 공장은 새 주인을 받아들였다. 스페이스빔의 전신인 ‘지역미술연구모임’은 1995년부터 스터디, 미술전문지 발간, 전시기획 등의 활동을 이어오던 단체로, 상시적인 공간이 필요해지면서 2002년 1월 인천 구월동에 스페이스빔을 개관했다가 2007년 지금 자리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이후 10년 넘게 스페이스빔으로 활동했지만 작년에 ‘인천양조장’으로 다시 이름을 바꿨다. 발효와 숙성을 거치면서 깊은 맛을 내는 막걸리처럼 이 공간을 찾는 사람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대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최소한의 수리만을 고집했다. 막걸리 공장의 일부분이었던 고두밥실, 발효실, 숙성실 등을 그대로 살려 미술활동 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100호를 넘고 있는 소식지 <시각>을 펼쳐보면 자세한 활용법을 알 수 있다. 방마다 아기자기한 수공예품과 앤티크한 물건들이 가득하고, 예쁜 카페도 자리한다. 

인천양조장 (구)스페이스 빔
주소: 인천광역시 중구 서해대로 513번길 15.  
전화: 032 422 8630  
홈페이지: www.spacebeam.net

 

*글을 쓴 온새미 작가는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인천의 매력에 끌려 인천을 탐구하며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전시회도 열고, 강의도 하는 여행 작가다. 지난 8월의 어느 날, 트래비아카데미 졸업생들을 위해 인천 여행 가이드를 자청해 주셨고, 이 글은 그 여정의 기록이다. 

글 온새미  사진 임창식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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