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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미식의 끝

마포 미식로드-망원·상암동 편

  • Editor. 김예지 기자
  • 입력 2019.10.01 11:15
  • 수정 2019.11.07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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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끝까지 차오르는 순간에마저 맘껏 환호했다.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미식로드 위에서.

딱 벌어진 한 상에 귀한 술에, 필요한 건 수려한 경치였을 터. 조선시대 성종의 형 효령대군의 별장으로 지어진 망원정은 성종이 명나라 사신을 비롯해 중요한 손님을 맞는 장소로 쓰이곤 했다. 정자에 오르면 저 멀리 강과 산의 경치까지 한눈에 내다보였기 때문이다. ‘망원정(望遠亭)’에서 음미하는 맛은 그렇게 한껏 배가됐을 것이다.  

그 옛날 한강을 바라보고 하는 얘기였다면, 지금은 오히려 강을 등질 필요가 있다. 망원역 주변, 망원시장을 중심으로 소위 ‘망리단길’에 곁을 맞대고 선 작은 가게들이 심상치 않은 맛을 낸다. 그렇다고 마냥 상업적이지만은 않은 주택가의 느낌과 소소한 골목길이 향수를 돋운다. 지난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유럽식 샌드위치, 구수하신 이모님이 구워 주는 숯불갈비, 뜨끈하고 건강한 가정식까지 망원동의 끼니들은 하나같이 정겹다. 사실 이 모든 걸 차치하고서라도, 먹부림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로 충분했다. 미식이다.

●제대로 된 샤퀴테리아
소금집델리 SALT HOUSE DELI

2016년 훈제 베이컨을 시작으로 수제 가공육을 연구해 온 소금집 공방이 2018년 처음으로 낸 델리(식당)다. 매일 공방에서 샤퀴테리(Charcuterie, 가공육을 말하며 스페인의 하몽, 이탈리아의 프로슈토 등이 해당된다)와 신선한 버터, 치즈, 채소, 직접 구운 빵을 가져온다. 메뉴 중 꼭 맛봐야 할 것은 잠봉 뵈르. 프랑스 국민 샌드위치 격으로, 바게트에 잠봉(Jambon, 얇게 저민 햄)과 뵈르(Beurre, 버터)가 들어가는데 소금집델리의 잠봉은 제주산 흑돼지로 만든다는 것, 뵈르는 프랑스산 이즈니 버터(Beurre D’Isigny)를 사용한다는 게 특징이다. 그 외에도 늘어진 치즈가 치명적인 그릴 샌드위치 루벤(Reuben), 와인 안주로 더없이 좋은 샤퀴테리 보드 등등. 평일에도 오픈 전부터 줄을 설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9길 14
영업시간: 매일 11:00~22:00
가격: 잠봉 뵈르 1만2,000원, 샘플러 보드 2만8,000원

●만족이란 이런 것
성산왕갈비

오래된 아파트 상가 2층, 아는 사람만 찾아올 법한 곳에 있는 성산왕갈비가 동네 주민뿐 아니라 외부인들의 발길까지 끄는 비결은 단순하다. 고기 그 자체. 돼지갈비 하면 흔히 떠오르는 자작한 양념이 밴 갈비가 아니라, 소금으로 간을 한 생갈비를 참숯불에 구워 낸다. 주인장 혹은 직원이 직접 불판에 올려 주는 갈비는 넓이로 보나 두께로 보나 ‘왕’이다. 지글지글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기본으로 제공되는 미역무침, 샐러드 등 반찬들이 하나하나 정갈하고 특히 푸짐한 버섯 된장찌개(정말로 버섯으로 넘친다)와 포슬포슬한 계란찜이 또 별미다. 자고로 갈비란 다 뜯을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므로. 살코기를 다 먹어 갈 때쯤 불판에 남은 뼈를 타기 직전 정도로 바싹 구워 주는데, 고기가 과자 같다.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233
영업시간: 매일 11:30~22:00
가격: 돼지생왕갈비 1만6,000원

●우리 집 앞에 있지 그래
미아논나 MIA NONNA

조용한 주택가에 숨어 있는 미아논나를 찾는 게 어렵다면 후각을 믿어 보자. 고소한 빵 냄새와 오븐에 구워지는 토마토, 바질 향, 달달한 쿠키향이 퍼지는 그곳에 있다. 화려한 기교보다는 재료의 맛을 살려 샌드위치를 만든다. 현재 핫 샌드위치와 바게트 샌드위치를 판매 중인데(이탈리안 샌드위치는 날이 더 추워지면 다시 개시할 예정) 그릴에 구운 가지, 루콜라, 바질 페스토가 들어간 바게트 샌드위치는 빵 반, 채소 반의 비율을 자랑해 마치 샐러드처럼 산뜻하다. 역시나 재료를 아끼지 않은 얼그레이 무화과 석류 머핀도 단골들이 즐겨 찾는 메뉴. 여느 가정집에 놀러온 것 같은 오붓한 분위기와 사촌언니처럼 푸근한 주인장의 서비스 또한 단골이 느는 이유다.

주소: 서울 마포구 망원로 6길 61
영업시간: 월~수·금·토요일 12:00~18:00, 일요일 12:00~16:00, 목요일 휴무
가격: 핫 샌드위치 1만원, 바게트 샌드위치 1만원

●가성비 특 이탈리안 코스
트라토리아 몰토 trattoria molto

소믈리에 출신이자 과거 와인 바를 운영했던 오희석 셰프는 캐주얼하지만 정통 방식에 충실한 이탈리안 요리를 선보인다. 딱새우, 고흥 유자, 참바지락과 모시조개 등 지역 재료를 활용한 레시피의 변주가 돋보이는데, 트라토리아 몰토는 2018~2019년 ‘미쉐린 가이드 서울’ 더 플레이트(신선한 재료를 사용한 좋은 요리를 맛볼 수 있는 레스토랑)로 선정되기도 했다. 코스 요리를 즐기는 손님들이 대부분인 것은 그만큼 가성비가 탁월하기 때문. 카르파초, 프로슈토 등을 애피타이저로 시작해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메인으로, 티라미수와 같은 이탈리안 디저트로 기분 좋게 마무리한다. 평소 와인과 친하지 않더라도 페어링에 도전해 보자. 메뉴판에 적힌 셰프의 전문적이고 솔직한 와인 추천 설명을 살펴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 332-12
영업시간: 매일 12:00~15:00/ 18:00~22:00
가격: 런치코스 3만5,000원 저녁 데구스타지오네 5만5,000원

●익숙해서 당기는 맛
원조청기와숯불갈비

30주년부터 가게 앞에 써 붙인 숫자 뒷자리에 어느덧 8이 덧대져 있다. 식당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테이블과 장판과, 그 모든 것에서부터 ‘38년 전통의 돼지갈비 전문점’의 내공이 느껴진다. 메뉴판이 단출하다. 으레 고기집이라면 있을 법한 냉면 같은 부메뉴 없이 오직 고기와 음료, 공기밥이 전부다. 그중 국내산 돼지갈비가 단연 대표메뉴. 고기를 주문하면 쌈 채소와 마늘, 물김치와 쌈장 등 꼭 있어야 할 찬들만 식탁에 오른다. 무엇보다 청기와숯불갈비의 내공이 진정 드러나는 부문은 직원들의 서비스. 숯불에 직접 고기를 구워 주시는 이모님의 손놀림이 하나의 공연처럼 능숙하다. 다 익은 갈비는 불판 위에 놓인 간장종지에 쏙 넣어 주는데 덕분에 마지막 한 점까지 촉촉하게, 달큼하게 즐길 수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105
영업시간: 매일 11:30~24:00
가격: 돼지갈비(200g) 1만2,000원

●기다림 뒤엔 고소한 보상이
이치젠 ICHIZEN

이치젠은 망원동에서 가장 핫한 식당 중 하나다. 오픈 30분 전부터 가게 앞에 달린 대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야 겨우 입장할 수 있지만 기다림 뒤에는 비교할 데 없는 바삭함이 찾아온다. 일본식튀김덮밥이다. 새우, 오징어, 연근, 가지, 김, 계란, 꽈리고추 등을 올린 ‘이치젠텐동’과 각각 새우와 장어에 집중한 ‘에비텐동’과 ‘아나고텐동’, 이 모든 재료를 아우르는 ‘스페셜텐동’이 있다. 14명 남짓 앉을 수 있는 바(bar)형 테이블이 전부인 가게 내부는 소담한 편. 주문과 동시에 바로 맞닿은 오픈 키친에서 각종 재료들이 튀겨지는 현장을 보고 있으면 시각, 청각, 후각으로 이미 맛있다. 그리고 곧 미각에 와 닿는 맛은 그동안의 모든 기다림을 보상한다. 느끼함이 걱정된다면 사이드로 바질토마토를 주문하자. 물론 맥주도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포은로 109 101호
영업시간: 화~토요일 12:00~20:30(브레이크 타임 14:30~17:30), 일요일 12:00~17:00
가격: 이치젠텐동 9,000원, 스페셜텐동 1만5,000원

 

*마포 미식로드에 등장하는 식당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 블루리본 서베이, 트립 어드바이저 등의 평가를 기준으로 선정했습니다.

글 김예지 기자 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마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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