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레스 항해일지
플로레스 항해일지
  • 강화송 기자
  • 승인 2019.10.01 1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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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전통 목선, 피니시(Pinisi)
인도네시아 전통 목선, 피니시(Pinisi)
핑크 비치, 블랙 비치, 화이트 비치를 볼 수 있는 파다르섬(Padar Island)
핑크 비치, 블랙 비치, 화이트 비치를 볼 수 있는 파다르섬(Padar Island)

인도네시아 플로레스 바다 위, 그 어딘가를 표류 중이다. 
갑판 위로 오르니 별이 넘실거리는 건지, 파도가 넘실거리는 건지. 
아무래도 상관없는 바다는 그저 검을 뿐이다.

●항해

항해란 흔들림에 이끌리는 것이다.
흔들려서야 피어나는 꽃과도 같은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게 피어나니
틀림없이 피어날 것이다.
<실제 선원의 일기 中>

선실은 한 사람이 몸을 뉘면 가득 찰 크기다
선실은 한 사람이 몸을 뉘면 가득 찰 크기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새벽녘, 배에 올랐다. 인도네시아에는 약 1만7,504개의 섬이 있다. 하루마다 1개의 섬을 여행한다면 꼬박 47년 하고도 5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소순다 열도에 위치한 플로레스(Flores) 역시 인도네시아의 수많은 섬 중 하나다. 플로레스는 포르투갈어로 꽃을 뜻하는데, 과거 이 지역에서 포르투갈인들의 무역이 성행했을 때 붙여진 이름이란다. 꽃(Flores)은 흔들리며 아름다워지는 법이고, 항해도 그렇다. 플로레스를 탐험하는 수많은 방법 중 항해가 가장 아름다운 이유다.


오전 10시, 피니시(Pinisi)의 선실이다. ‘피니시’는 인도네시아 전통 목선이다. 인도네시아의 조상들이 세계 7대양을 누비며 살아왔음을 의미하는 7개의 주 밧줄을 이용한 닻과 2개의 마스터가 있으며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목재만을 이용해 이음새를 맞춘다. 피니시는 크게 람보(Lambo)와 팔라리(Palari)로 구분된다. ‘팔라리’는 고전적인 형태의 피니시이며 보통 ‘람보’보다 선체가 작다. 현재 운용되는 대부분의 피니시는 긴 선체와 곧은 선미가 특징인 ‘람보’다. 선체에 마련된 방은 성인 한 명이 몸을 뉘면 가득 찰 공간이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망연히 바라본 창밖에는 섬과 바다가 흐른다, 여전히. 


정오 무렵부터 심히 울렁이기 시작했다. 배의 가장 후미진 곳에서 머물던 막내 선원이 다가와 나를 다독인다. 걱정하지 말라고, 물고기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 다행스럽게도 배는 정박했다.

●빛

어둠 속에서 홀로 휘청인다면
대개 빛나고 있는 것이다.
달과 별이 그렇듯, 배와 내가 그렇듯.
<실제 선원의 일기 中>

그린 바이퍼 스네이크(Green Viper Snake), 치명적인 독사다
그린 바이퍼 스네이크(Green Viper Snake), 치명적인 독사다

용이 산다

신경을 곤두세웠다. 배가 정박한 곳이 라부안 바조 서쪽에 자리한 코모도섬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도마뱀이 산다. 호기심이 많고, 추리도 가능하다. 가끔 어리광도 피운다는데, 썩 달갑지 않다. ‘너는 이따 꼭 먹어 줄게’ 정도의 크기라서. 분명 도마뱀인데, 그것을 마주하고 호칭의 이유를 알았다. 선원들은 그것을 용이라고 부른다, 코모도 드래곤(Komodo Drangon).

Y자 막대기를 든 코모도 레인저
Y자 막대기를 든 코모도 레인저

코모도와 주변 섬에는 약 5,000마리의 야생 코모도 드래곤이 살고 있다. 덕분에 코모도섬을 비롯한 인근의 섬과 해역은 코모도 국립공원(Komodo National Park)으로 지정되었고, 1991년부터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다. 코모도섬에는 약 1,700마리의 코모도 드래곤이 살고 있는데 성체의 경우 평균 2.3m에 80kg 정도까지 나간다. 막대기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등장한 레인저가 귓속말을 건넸다. 뜨거운 그의 날숨에 소름이 한 번, 이 섬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는 그의 들숨 끝에 소름이 두 번 돋는다. 그러니까 그의 말은 코모도 드래곤도 코모도 드래곤의 식사라는 의미다. 물론 나와 그도 웃을 처지는 아니다.

코모도 드래곤의 식사시간. 썩어 가는 사체에서 냄새가 진동한다 Ⓟ전용언
코모도 드래곤의 식사시간. 썩어 가는 사체에서 냄새가 진동한다 Ⓟ전용언

코모도 드래곤은 후각이 상당히 뛰어나다. 공기 중의 분자를 감지할 수 있는 야콥슨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뱀처럼 노란 혀를 주기적으로 날름거려 분자를 감지한다. 덕분에 아주 미묘한 냄새까지 맡을 수 있다고 하니, 차마 닦지 못한 입을 틀어막는다. 코모도 드래곤의 사냥 방법은 심플하다. 달려가서 물어 죽인다. 그리고 먹는다. 코모도 드래곤의 입 안에 있는 박테리아가 사냥감을 서서히 죽게 만든다고 알려졌지만, 사실 박테리아는 보너스다. 코모도 드래곤은 턱 아래에 피를 굳게 만드는 독샘(응혈 독)을 가지고 있다. 이쯤에서 되새겨야 할 것은 코모도 ‘섬’이라는 사실이다. 한 번 물린 사냥감은 언젠가 죽어 쓰러질 테고, 결국 어딘가에 쓰러진 사채의 무덤은 코모도 드래곤의 위가 될 것이다. 식사 예절은 깔끔한 편이다. 보통 자신 몸무게의 80%까지 음식을 한입에 먹어 치운다. 체구가 작은 원숭이나 염소는 흔적도 없이 한번에 삼켜 버린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두 입 거리 정도 될 테니, 자그마한 흔적 정도는 남길 수 있겠다. 이런 이유에서 섬을 둘러볼 때는 코모도 레인저들과 필히 동행해야 한다. 레인저들은 Y자 모양의 긴 막대기(코모도 드래곤의 목을 누르기 위함)를 들고 다니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만, 정작 코모도 드래곤은 느긋하다. 점심을 막 마친 오후 2시, 자비로워지고, 나른해지는 시간이라서. 

해변이 분홍빛인 이유는 모래와, 빨간 산호 알갱이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부셔진 산호 알갱이는 상당히 날카롭기 때문에 신발을 필히 신어야 한다. 앞바다는 산호지역이며, 스노클링 스폿으로도 유명하다. 해 질 무렵에는 해변이 더욱 붉어진다. 눈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파도를 타고 밀려오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종종 보인다. 인간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외딴 섬조차 플라스틱으로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해변이 분홍빛인 이유는 모래와, 빨간 산호 알갱이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부셔진 산호 알갱이는 상당히 날카롭기 때문에 신발을 필히 신어야 한다. 앞바다는 산호지역이며, 스노클링 스폿으로도 유명하다. 해 질 무렵에는 해변이 더욱 붉어진다. 눈 시리게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파도를 타고 밀려오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종종 보인다. 인간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외딴 섬조차 플라스틱으로 죽어 가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봄을 닮은 해변

서둘러 채비를 마치고, 코모도섬을 떠났다. 동쪽을 향해, 또다시 바다를 가른다. 해가 바다에 잠기기 직전, 두 번째 정박지에 멈춰 섰다. 그곳에는 분홍빛 해변이 있었다. 발그레한 해변을 덮고 있던 하늘은 마침 또 붉었다. 노을 질 무렵, 핑크 비치(Pink Beach)에 도착했다.


지구상에 수많은 해변 중 핑크색 모래사장을 거닐 수 있는 해변은 단 일곱 곳뿐이다. 버뮤다, 바하마의 하버 아일랜드, 필리핀의 산타크루즈, 이탈리아 부델리섬, 네덜란드의 보네르, 그리스의 바로스 그리고 바로 이곳, 코모도 국립공원에 위치한 핑크 비치다. 분홍을 한 움큼 퍼 손에 쥐었다. 빠르게 흩어지는 것들 중 흰 것은 모래고 붉은 것은 붉은 파이프 오르간 산호의 알갱이이다. 차가운 파도가 모래와 붉은 산호 알갱이를 한참 흔들고서야 완연한 분홍이 피는 것이 마치 이른 봄의 벚꽃 잎과도 같다. 그토록 파랗던 하늘도, 바다도 온통 분홍이 가득이다. 넋 놓고 바라보는데 세찬 파도가 나를 덮쳤다. 흰옷에 가득 물든 바다는 다신 하얘질 수 없는, 분홍색이었다. 봄을 닮은 기분이다.

파다르섬 정상까지는 넉넉잡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파다르섬 정상까지는 넉넉잡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최선을 다해 바라보는 일


시곗바늘이 북쪽을 향해 겹친 밤, 침대 끝에 걸터앉아 망연히 바라본 창밖에는 별과 달이 흐른다. 몸을 뉘어 잔뜩 웅크린다. 고시원을 연상케 하는 작은 선실. 이 밤이 지난다면 남을 것은 꿈에서 깬 나뿐이다. 지금의 밤을 곧 어제라고 말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퍼, 어둠을 견뎌 본다. 귀를 막는다. 낡은 배와 파도가 몸 비비며 내는 얕은 신음은 여전하다. 건너편 선원실에서는 굉음이 여럿 들린다. 저녁으로 먹었던 생선은 어지간히도 소화가 잘되는 모양이다. 답답한 마음에 갑판 위로 올랐다. 세상은 검고, 별이 빛난다. 눈을 질끈 감았다. 세상은 여전히 검고, 흔들림은 더욱 선명해진다. 아무래도 어두운 이 밤을, 좀 더 즐기기로 한다.

화이트 비치, 파다르섬에서는 총 3개의 해변을 내려다볼 수 있다
화이트 비치, 파다르섬에서는 총 3개의 해변을 내려다볼 수 있다

넋 놓고 밤을 감상하고 있던 그때, 비릿한 담배 냄새가 나를 덮쳤다. 새벽을 알리는 갑작스러운 선원의 방문이었다. 머리를 감지 않은 채 갑판 밑을 내려다보니 애처로운 작은 보트 한 척이 흔들리고 있다. 예감이 스쳤고, 틀리지 않았다. 코모도 국립공원은 ‘누사뜽가라(Nusa Tenggara)’주에 속한다. 인도네시아어로 누사(Nusa)는 ‘섬’을 의미하고 ‘뜽가라(Tenggara)’는 남동쪽을 의미한다. 즉, 코모도섬 말고도 둘러봐야 하는 섬이 가득하다는 소리다. 작은 보트 위로 옮겨 타, 세 번째 정박지인 파다르섬(Padar Island)으로 향했다. 보트는 약 15여 분 동안 검은 바다를 갈랐다. 꿈처럼 어두운 하늘은 별을 빛냈고, 꿈보다 어두운 바다는 하늘을 빛냈다.

동이 트고, 사랑도 싹튼다
동이 트고, 사랑도 싹튼다

파다르섬은 코모도 국립공원 내에서 코모도섬과 린차섬 다음으로 면적이 크다. 동이 트기 전, 섬의 정상을 오르는 것이 목표다. 앞길을 밝혀 줄 선원 한 명과 어둠을 헤치기 시작했다. 가파르진 않지만 30분쯤의 여정 끝, 섬의 가장 높은 곳에 도착했을 때 동이 트기 시작했다. 듬성듬성 자란 팔미라(Palmyra) 야자를 제외하곤, 구릉은 전부 초원에 뒤덮여 있다. 빛이 가장 먼저 비춘 곳은 오른쪽, 화이트 비치다. 곧 왼쪽의 블랙 비치와 핑크 비치에도 빛이 한껏 깃든다. ‘경이롭다’라는 표현으론 섬의 곡선을 대신하긴 힘들다. 태초의 것을 감상하는 방법은 그저 넋 놓고 바라보는 것뿐이다. 파다르섬의 경관 앞에서는 그것이 최선이다. 

●하루

새로움을 만나,
그것에 익숙해지고 
결국 이별하는 일.
하루는 대개 그렇게 흐른다.
<실제 선원의 일기 中>

아야나 코모도 리조트 와웨치추 비치의 전경
아야나 코모도 리조트 와웨치추 비치의 전경

▶travel  info

Indonesia
인도네시아는 세계에서 영토가 15번째로 큰 국가다. 동서 거리만 5,120km에 달하며 약 1만7,504개의 섬이 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대략 20배 정도의 크기.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 4위의 인구수를 자랑한다. 언어는 무려 700개 정도.

피니시의 선상 위에서
피니시의 선상 위에서

Religion 
인도네시아에서 종교는 의무다. 주민등록증에도 종교가 표기된다. 약 90%의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이슬람을 믿는다. 그런데 발리 인구의 90%는 힌두교를, 타나 토라자 인구의 90%는 기독교를 믿는다. 한편 족자카르타의 보로부두르(Borobudur) 사원은 세계 최대 불교 유적지다. 

Currency 
루피아(IDR)를 사용한다. 1만 루피아는 약 800원(2019년 9월 기준) 정도.

Food 
인도네시아 음식은 천개의 맛이 있다고 표현할 만큼 다양하고 풍부하다. 과거 천연 자원과 위치의 특성으로 주변국과의 무역이 성행했기 때문이다. 나시고렝(Nasi Goreng, 볶음밥), 른당(Rendang, 쇠고기 조림), 사떼(Sate, 꼬치구이), 가도가도(Gado Gado, 땅콩소스 샐러드)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맛인지라, 큰 거부감 없이 음식을 즐길 수 있다.

Airline 
가루다항공이 자카르타와 발리 덴파사르에서 라부안 바조 코모도 공항을 연결한다. 자카르타에서 라부안 바조까지 항공편은 매일 운항하며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발리에서는 1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배로 이동할 수도 있다. 국영선사인 펠리(PELNI)에서 운영하는 배를 타면 발리 베노아(Benoa)에서 라부안 바조까지 36시간이 걸린다.

HOTEL
아야나 코모도 리조트 와웨치추 비치
AYANA Komodo Resort Waecicu Beach

2018년 9월 문을 연 이 호텔은 라부안 바조 일대에서 최초의 5성급 리조트다. 호텔 내에 올 데이 다이닝 레스토랑인 린차, 일식당인 혼젠을 비롯해 스파, 키즈클럽, 마이스 및 웨딩을 위한 부대시설이 마련돼 있다. 특히 바다 위 나무데크에 자리한 나가 바, 바다 전망에 최적화 된 메사바 등 리조트 곳곳에 석양을 감상하기 위한 명소도 많다. 다양한 보트도 운영한다.
 Pantai Waecicu, Labuan Bajo, Nusa Tenggara Tim, 86554   +62 385 2441000

KOMODO  TOUR
용을 만나다 

코모도 드래곤은 세계에서 가장 큰 육지 파충류로 알려져 있다. 통상적으로 길이는 2~3m에 이르지만 최대 313cm 크기의 코모도 드래곤도 발견됐다. 낮에는 체온을 높이기 위해 햇빛을 쬐고, 밤에는 땅을 파고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코모도 드래곤의 먹이로는 섬에 있는 원숭이나 염소부터 사슴, 멧돼지 심지어는 물소까지도 그 대상이 된다. 아야나 코모도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투어의 경우 1시간 거리에 위치한 코모도섬 또는 린차섬으로 갈 수 있는 보트를 제공한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인도네시아대사관(KBRI Seoul), 인도네시아관광청(VITO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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